4. 아무르 강의 속울음 1회
강제이주 시베리아횡단열차 1호는
두려움이었다
분노였다
절망이었다
유형의 길이었다
한인들이 걸어들어가야 할 끝없는 나락이었다
승차 직전 공민증을 경비병들에게 빼앗겼다
공민증은 한인들의 생존 판이었다
귀화 한인들의 안전띠였으며 여행과 이주의 담보였다
쏘비에트 연방의 국민 된 자며 레닌의 추종자였음을 증거 하는 문신이었다
공민증은 굴욕이었으며 유랑의 흔적이었다
고국으로부터 주어진 상처였으며 천형이었다
공민증 없는 몸은 영혼을 따라 어둠을 밟을 수 없었다
공민증의 박탈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이었다
해방은 서글펐다
해방은 서러웠다
한인들은 짐짝처럼 열차 안으로 버려졌다
열차 안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승객을 태우는 여객열차가 아니었다
소와 말과 돼지를 수송하는 화물열차를
널빤지로 막아 바람을 견디게 한 개조열차였다
개조열차의 황량함이 강제이주 한인들의 상징이었다
생이 얼마나 허술하게 흘러가게 될지 말해주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열차를 선로 속으로 가라앉혔다
한 량에 네 가구를 승차시켰다
네 가구가 고향에서 가지고온
이불보퉁이, 가재도구, 옷 보따리,
식량자루로 열차바닥은 어지러웠다
첩첩한 검은 얼굴들, 떨고 있는 붉은 눈빛은 더 어지러웠다
여기저기 한숨 쌓이고
짐들 사이의 틈을 비집고 노인들이 풀기 없는 몸을 뉘었다
두 가구는 바닥에, 두 가구는 2층에 자리를 잡게 했다
노인이 있는 가구는 바닥의 공간을 고마워했다
역을 밝히고 있는 불빛으로 열차 안은 어슴프레 검은 얼굴들이 떠 있었다
원형의 작은 난로 하나가 가운데 놓여 있을 뿐
열차 안은 두려운 침묵의 폐쇄공간이었다
조용하고 무기력한 승차가 시작되면서
경비병들의 눈초리가 더 삼엄해졌던 하루였다
승차한 한인들은 어떤 이유로든 열차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열차 안이 유형지였다
뼈가 시려오는 걸 애써 감추고 있는 사내들이었다
예까쩨리나 가족이 승차하지 못하고 있었다
빅토르를 함께 승차 시킬 수 없다는
경비병의 완강한 태도는 바뀔 것 같지 않았다
빅토르는 목에 핏대를 세워 동승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답답하고 초조했다 경비병은 그의 처지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예까쩨리나와 함께 가야 한다
너의 가족은 이번 열차가 아니다
나는 이 가족을 보호하여 중앙아시아까지 가야 한단 말이다
너는 이 가족이 아니다
경비병은 완강했다
나는 예까쩨리나의 약혼자이고 예까쩨리나 아버지는 캄차카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너는 아니다
나는 예까제리나 가족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
네가 왜?
나는 이 가족의 보호자니까
네가 약혼자라는 걸 증명해라
나와 약혼한 예까쩨리나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믿을 수 없다는 말은 믿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바위처럼 묵직하고 견고한 경비병을 움직이지 못하면
예까쩨리나는 중앙아시아까지 보호 할 수 없다
빅토르는 초조하게 주머니를 뒤진다
당원증이다 이 당원증이 구원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여기 내가 공산당청년당원이라는 증명서가 있다
어디 보자
이래도 내 말이 믿기지 않나
조선사범대학 학생이군 청년당원 가입은 언제인가
대학 입학하자마자 가입했다
경비병은 볼세비키 신봉자임에 틀림 없었다
경비병은 어깨를 으슥하며 빅토르의 어깨를 쳤다
이제는 믿을 수 있다 승차해라
빅토르는 허탈했다 발걸음이 잠시 휘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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