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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설 명절을 잘 보내고 계신지요?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새해에는 모든 소원 성취가 이뤄지시기를 바랍니다.
내 고향 임실 장재리 주변에는 신안 팔개부락이 거주하며 살았으며 그 신안 팔경(新安八景) 을 보면- - -
옛부터 신안서원이 있어 왔는데 신안서원의 사림(士林) 들이 우리고향 신안팔경을 뽑았다고 전합니다. 신안서원의 사림들은 신안리의 풍광이 군내 전역의 명소들의 풍광을 망라했다 했습니다.
첫째 이산청풍(夷山淸風)라 해서 백이산의 바람은 무더운 여름철 가슴속까지 시원하게해준다 했으며- - - -
활짝 개인다 했습니다.
연기로 아름 다웠으며 - - --
넷째 도평어화(島坪漁火) 현곡리 섬들시 냇물에 밤마다 고기잡이 하는 어화가 휘황하대서 도평어화...예전에는 밤에 고기를 잡으려면 관솔불을 들고 나갔다 합니다 너무 아름다와 붙인 이름이며 - -- - 것입니다. 부족사회 때에 추장의 거주지로 추정한다고 했는데 저녁노을 땅거미가 질 때 발산 부락상공에 띠처럼 깔린 연기는 참으로 아름다운 한폭의 동양화였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새들도 둥지에 깃들이고 갈천의 낚시꾼도 하나둘 낚싯줄을 거두는데 이때 서쪽하늘은 붉게 물들고 가을의 단풍철은 산도 하늘도 함께 물들어 한층 가경이었다고 했습니다.
비가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운 날씨인데도 동네 많은 사람들은 함께 모였습니다. 태평소의 높디 높은 음율에 징과 장구가 장단을 마추며 “기굿(시작 굿)”이 벌어지면 농악패들의 울긋불긋한 고깔과 옷자락이 덩실덩실 춤을 추어 대곤 했습니다.. 음식을 장만했던 것은 여느 마을이나 같았고 따끈한 국과 찌게 그리고 적당히 짭짤한 맛있는 반찬으로 밥과 막걸리로 출출한 배를 채우는 - 그 맛은 - - 그옛날 어릴 때 어머님이 해주시던 음식 - - 바로 고향의 그 맛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 곳 고향으로 은퇴 후 귀향 할려는 마음으로 가슴이 설레입니다. 초롱초롱한데 농악 굿은 계속되고 - - - 계속되는 가운데 굿꾼들은 마을 구석 구석 집집마다 방문하여 굿을 쳐 줍니다. 마을 사람들인 관중은 여전히 그대로고 추운 날씨에도 낮에서 밤까지 농악은 계속되며 모든 사람은 신들린 사람처럼 신명나 있습니다.. 않자 "쾡가리"를 사내라고 저녁 내내 잠을 자지 않고 설쳐대며 할머니를 졸라 댔던 그 옛날이 - 대보름이 다가오면 생생하게 다시 다가 오곤합니다. 친구들과 깨진 양은 그릇으로 굿 흉내를 내며 놀았던 내가 그 날 이후 진짜 "쾡가리"를 가지고 곧잘 리듬에 맞추어 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싫다 아니하시고 "쾡가리"를 빌려다 준 할머님 덕택이었으며 요즈음도 그 놈을 보면 얼른 반가운 생각이 들고 어느 장단에도 리듬에 맞춰 "쾡가리"를 쳐 댈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그 시절 그 때의 신명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옛날 고향 생각을 하며 대종회 총무 삼섭 글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
첫댓글 아름다운 고향, 즐거움이 돋아나는 고향, 희망이 넘치는 임실 백련산과 운암호가 가장 예술이지요
요즈음은 <임실사람들 이야기>라는 까페에서 임실소식을 잘 전해줍니다
즐거운 새해 맞으시길빕니다
설 명절 잘 보내십시요.임실은 듣기는 많이 들었는데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운봉 문중이 있던데 임실의 자연부락인가요?
진안, 장수, 운봉은 임실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고 이곳은 해발 600m 이상되는 고산지대입니다. 따라서 물 맑고 공기가 좋고 오곡백화가 爛漫한 곳이랍니다. 그리고 백련산에는 예전엔 절이 있엇는데 제가 그곳에서 고시 공부를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집 마루에서 보면 백련산 봉우리가 보였고 여름철 비가 묻어 올 때는 백련산 봉우리에서 부터 비구름이 몰려 오곤 하던 큰바위 같은 신령의 산이기도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꿈과 그리움으로 가득한 곳입니다만, 삼섭이사님의 고향은 가마솥에 돼지머리를 고운 물에 씨레기를 넣고짙은 된장국을 풀어 건져 올리는 향수가 있는 곳이군요.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 품속같은 포근함이 있는 곳이지요. 새해에는 삼섭이사님이 종사로 분주한 한 해가 되실것 같습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임실 ! 아주 좋은 시골 고향 을 두셧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