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本意)건... 전혀 아니건 간에...
어려운 발걸음을 한김에 내쳐서 사무실을 완전히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혼자서는 들여다 보기도... 그리고 차마 내손으로 들어내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떻게든 처분할 게 있으면 처분(?)을 해서...
단돈 몇 푼이라도 챙겨보라면서 예의 나와 같은 업종의 일을 하는
친구 부부(夫婦)가 서둘러 앞장을 서서 나 대신 모든 일을 해 주었다.
나는 모든 생각을 상실해 버린 사람마냥 망연자실 쏟아지는 비를 맞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정리를 하는 그네들 곁에서 더 이상 흐를 곳을 잃어버린 물처럼
마냥 겉돌고만 있었다.
그러지 않을려고... 그런 생각을 않을려고...
내 딴에는 애(?)를 쓰느라고 써보았지만... 자꾸만 미어지는 가슴으로...
고개만 숙여도 쏟아지려는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받은 배신과 상처 때문에...
나는 이미 내게 남은 한줌의 기력마저도... 모두 잃어버린 듯 했다.
정말이지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젠 더 이상 돌아갈 곳도... 돌아갈 사람들도...
나에겐 없다는 것이 현실로 내 가슴을 아프게 파고 들었다.
일부러 안동서 화물차를 몰고온 친구의 처남(집사람 남동생) 편으로...
사무실에 있던 에어컨이랑 책상 3개, 상담용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석유 스토브...
냉장고 및 각종 가구들과 컴퓨터, 복사기와 함께 프린터, 팩시밀리 등의 기능을 갖춘 복합기
수출 서류를 꾸밀 때 사용하던 전자타자기와 두 개의 벽시계 그리고 커다란 거울 등...
그 외에 쓸만한 것들을 모조리 쓸어담다시피 해서 보냈다.
(하다못해 깨끗히 씻어 두었던 주방용기들과 각 책상마다 있던 쓰레기통까지)
그리고는 친구 부부와 남아서 남은 원단(각가지 샘플이나 개발용으로 만들어진)을
실어내기 좋게 다시 비닐포장을 하여 가지런히 쌓아 두었다.
생각보다 그 일이 아주 힘도 들고 손이 많이 갔다.
그렇게 해둬야만 스탁장사(일명 짜치:잡다한 원단 찌꺼기를 취급하는 업자)들에게서
얼마라도 더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나를 위한 그런 친구 부부의 마음이 고마웠을 뿐...
내게는 그런 것 따위를 생각할 마음의 여유는 손톱끝만큼도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쌓아둔 원단 외에 남은 거라곤...
의자마저 가져 가버린 커다란 내 책상 하나와...
다른 몸체를 모두 떠나 보낸 채 마치 나를 닮은 모습으로 컴퓨터 책상위에
덩그러니 버려진 듯 남은 컴퓨터 모니터 하나와...
내 의자 뒷 편에 서있는 두 짝의 진열장과 4개의 파일서랍장 및 사무실용
고성능 복사기가 있었지만 나 없는 동안이라도 친구의 사무실로 옮겨서 쓰도록 했다.
그리고 예전에 한번 챙겨서 보낸 것 말고도 사무용 비품과 소모품들이 꽤 많아서...
친구가 차를 가지고 한차례 더 들러야만 할 것 같았다.
짐을 싸고 보내고 버릴 것은 버리고 그렇게 정리를 하는 동안에...
오히려 친구의 집사람이 몇 차례 콧물(?)을 훌쩍거렸다.
그러면서 못내 안타까워하고 그렇게 동생을 통해 시골(친정 고향인 안동)로 나머지는
자신들의 사무실로 챙겨가는 일에 대해 진심으로 가슴 아프고 미안해 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지금의 내 입장에... 그러한 내 마음으로 봤을 때...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어찌할 수도... 무얼 팔아서 단 몇 푼이라도 챙긴다는 것은...
정말이지 죽었다가 깨난다해도 다시는 못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내가 되려 고맙다고 그리고 사소한 것들이라도...
친구에게 남겨주고 갈 것이 있어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했었다.
물론 절대로 공짜(?)로 가져갈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령 업자를 불러서 용도에 맞게 처분을 한다고 해도
지금의 내게 큰 도움이 될 정도의 돈은 되지 않을 것이었기에...
형편이 넉넉치 않아서 많이(?)는 못 드린다고 한없이 진실로 미안해하는...
친구부부에게 넘겨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십여년 가까이 내 손끝이 닿고 마음과 정성이 쏟아졌었던 물건들이었기에
더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낯선 사람들 손에 마치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을 나는 상상조차 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복사기도 턱도 아닌 값을 쳐주려는 업자를 마다하고...
친구 사무실로 옮겨다가 쓰라고 했다.
내가 팔려면 단 돈 15만원 밖에 쳐주지를 않는다지만...
다시 살려면 새 것으로는 150~60만원은 훨씬 더 넘을 것이었고...
중고로 산다고 해도 80만원은 더 줘야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근간에 들어 중고품 취급하는 명색이 '재활용 코너'를 일이 있어
몇 차례 들락거려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네들의 主`특기가 그저 치워주다시피 주워다가 조금 닦고 손질을 해서는
만만찮은 가격으로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되파는 것이라는 걸......
(물론 꼭 필요한 좋은 일이긴 했다)
아무튼 그렇게 내 사무실은 이제 완전히 공중분해가 되어 버렸다.
내 손에 남은 거라곤 책상서랍에서 발견 된 초등학교 동기회 명단이 저장 된 디스켓 한장과
잡다한 개인소품(내 책상 옆에 걸려 있던 막내의 자그만 사진 액자까지) 몇 가지가 든
종이봉투 하나가 전부였다.
정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휘~ 돌아본 내 사무실에서...
수많은 영상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울어지는 회사를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직원들을 거의 다 내 보내고...
시내에 있던 오프스텔을 떠나 그 먼(?)곳 친구의 공장으로 옮겨진지 약 3년...
나는 결국 그곳에서마저 그렇게 손을 들고 떠나야만 했다.
불을 끄고 문을 잠그는 내 손끝이 잔잔하게 떨려옴이 느껴졌다.
끝으로 공장의 친구에게 사무실 열쇠를 건네 주면서...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되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작별의 악수를 나누었다.
몸도 마음도 곤죽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여관으로 돌아가 시간이 쫓기는 바람에 얼른 겉옷만 양복으로 갈아 입고는...
여`친 친정 아버님의 빈소를 들렀었다.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긴 했지만 별로 할 말은 없었다.
어떻게 그네들에게 지금의 내 상황이나 입장을 설명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내일을 아침 일찍 다시 나는 떠나야만 할 것이었다.
그곳이 어딘지...???
어디로 가야만 하는 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쨌건 가야만 한다는 건... 사실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나를 이토록 어딘가로 내 몰았던 이유(?)마저 상실해버린 지금에도... 말이다.
첫댓글 사무실을 정리하듯 길고 긴 방황도 잘 정리하시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