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공방> 첫 출발은 나무 공예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목재가 주는 따뜻하고 무른 질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어느날 인터넷에서 마주친 초콜릿 색 껍질을 가진 쪽동백나무로 만든 작품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습니다. 쪽동백나무 공예 취미를 가진 분을 찾아 폭염이 내리쬐던 지난 6월 5일 홍대 앞을 찾았습니다.
마침 홍대 앞 프리마켓이 개장 5주년을 맞는 날이군요. 여러 예술가 틈 속에 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바로 쪽동백나무 때문입니다. 멀리서도 뚜렷이 보이는 짙은 나무 빛깔과 뽀얀 속살의 대비가 쪽동백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멀리 안동에서 올라 온 배은주씨. 뙤약볕 아래 쪽동백을 닮은 구리 빛 피부가 건강미를 한껏 발산합니다. 주중에는 환경단체의 책임 있는 활동가인 배씨는 주말이면 나무공예가가 됩니다. 그는 어느덧 홍대 앞 프리마켓에 참가해 대중들 앞에 솜씨를 뽐낼 정도가 됐습니다.
그녀가 주로 만드는 작품은 한 뼘을 넘지 않는 소품입니다. 종류로는 장승, 솟대, 나무목걸이, 연필, 열쇠고리, 휴대폰 고리, 사슴, 장서인, 도장 등입니다. 요즘은 또 뭘 만들까 행복한 고민 속에 산다고 합니다. 그녀에게 쪽동백 공예의 매력과 작품 만드는 법을 듣고 배워봤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사는 이야기 한 토막도 함께.
매력 만점 쪽동백... 일상 소품제작에 적합
▲ 자연속의 쪽동백나무.
ⓒ 김학송
쪽동백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재질과 색감, 그리고 엉뚱하게 붙여진 이름 등 참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원래 껍질은 잿빛을 띤 흰색 계통에 갈색의 털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다갈색으로 변하면서 털이 없어지는 데 이 때에 전지(剪枝)해 목각 재료로 사용합니다. 쪽동백은 한·중·일 등지에 주로 서식하는 특성에 맞게 동양적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재미난 것은 동백나무와 전혀 닮지 않았는데 붙여진 이름입니다. 서양에서는 꽃 모양 때문에 'snowbell'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왜 쪽동백이 됐을까요. 그것은 열매에서 짜낸 기름이 옛날에는 동백기름을 대신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한방에서는 열매를 옥령화라고 해 요충을 제거하고 종기의 염증을 완화하는 약재로도 쓰인답니다.
흔히 눈에 띄는 나무는 아니랍니다. 제법 깊숙한 숲으로 들어가야 군락을 만날 수 있답니다. 쉽게 찾는 방법 중 하나는 계곡 주변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 물을 좋아하는 수종이라 계곡 주변에 가지를 널찍이 드리운답니다.
그런 가지를 예쁘게 전지하면서 재료를 구합니다. 다른 나무들도 그렇지만 약전(弱剪)은 가지를 더욱 번성하게 합니다. 가로수로 많이 쓰이는 버즘나무 전지를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물론 손아귀를 넘는 굵어진 가지는 손대지 않습니다. 쪽동백은 비속성수이기 때문에 손가락 굵기의 잔가지를 주로 전지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만들기에 들어갑니다.
[How to - 나만의 휴대폰 고리 만들기]
▲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휴대폰 고리.
ⓒ 유성호
ⓒ 유성호
휴대폰고리 준비물 : 적당히 말린 쪽동백 가지, 쇠톱, 사포, 조각칼, 랍스터 고리
별다른 손재주가 필요 없는 나만의 휴대폰 고리를 만들어 봅니다. 먼저 숲에서 구해 온 쪽동백 가지를 씻어서 10∼15일 정도 말려야 합니다. 수분을 적당해 날려보내야 조각칼이 '아삭하게' 잘 먹는 답니다. 그늘에서 말려야 갈라짐 없이 매끈한 재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음 순서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냅니다. 휴대폰 고리는 새끼손가락 굵기의 가지가 적당합니다. 길이는 약 3cm 전후가 좋지만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불편함이 없는 범위 안에서 더 길게 해도 괜찮습니다. 자르는 것은 쇠톱을 사용하면 되고 자른 면은 사포를 이용해 부드럽게 처리합니다.
사포는 자른 면만 처리해야 합니다. 외피에 사포질을 하면 흠이 납니다. 외피는 천으로 닦아줍니다. 이제부터 멋진 나만의 문양을 새깁니다. 자신이 없을 때는 책이나 인터넷에서 문양을 찾아 흉내 냅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꽃, 물고기, 동물 문양을 주로 새긴다고 합니다. 또 자신만의 기하학적 문양을 새기기도 합니다. 이름이나 짧은 소원 등 글자를 새겨 넣으면 더욱 뜻 깊은 작품이 된다고 조언합니다.
그녀의 조각칼은 맞춤으로 2mm 굵기로 가늘게 팔 수 있는 것부터 끌까지 다양하게 있지만 이번엔 작은 둥근칼과 삼각칼을 사용했습니다. 가정에서는 문구점에서 파는 삼각칼을 이용하면 됩니다.
평소에는 환경단체 활동가, 주말엔 목공예가...예리한 눈과 조각도는 내 무기
그녀의 본업은 환경단체 활동가입니다. 경북 안동시에 있는 사단법인 낙동강환경연구센터의 정책팀장입니다. 대학 졸업 후 이 단체에서만 5년째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나무심기 자원봉사 행사를 통해 환경단체의 매력을 느낀 것이 인연이 됐답니다.
센터는 안동에 있는 임하댐, 안동댐 등 댐의 수질 및 환경을 감시하고 강 상·하류 지역의 분쟁을 조정합니다. 1988년 사회문제연구소라는 이념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단체로 출발한 센터는 반독재, 도시빈민, 대구페놀사태 등 사회 환경문제 해결에 앞장섰습니다.
최근에는 매년 환경마라톤을 개최해 지역 축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대회는 친환경 마라톤 코스를 달리면서 1회용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쓰레기 배출 최소화를 실천하는 이색 대회입니다. 지역민의 반응이 좋다고 귀띔하네요.
그녀는 2년 동안 활동비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일했습니다. 참여정부 들어서기 전까지 시민사회단체가 대부분 그렇듯이 재정이 빠듯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자연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이 금전적 보상보다 앞섰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녀의 자연 사랑에 대한 짧은 글입니다.
"식물을 좋아하다 보니 봄이면 숲이나 식물원, 화훼단지를 찾아가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습니다. 원래 지구의 주인은 식물이라고 합니다. 지구상의 유일한 생산자이기도 합니다. 흙을 알게 하고, 순환과 기다림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말없는 벗입니다."
그녀는 또 자신의 취미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무가 좋아서 쪽동백 공예를 시작했습니다. 환경단체에 있다보니 숲에 가는 일이 많았는데, 어느 날 쪽동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지치기를 하고 뭘 할까 궁리하다가 조각을 시작했습니다."
지구의 원래 주인은 식물... 나무가 좋아서 공예 시작
▲ 그녀의 작업실 풍경. 다름 아닌 집이다.
ⓒ 배은주
ⓒ 유성호
그녀는 조각칼 다루는 법을 배우기 위해 3개월 간 서각전문가에게 배웠습니다. 또 제대로 된 작품을 위해 전문가에게 10여종의 칼을 맞췄습니다. 취미생활 초기 투자비가 제법 들어간 셈입니다. 요즘은 홍대 앞 프리마켓에서 작품을 팔아 투자비는 회수했다고 말하며 웃습니다.
지난해 생명평화축제 대회에서 전시하던 중 관람객 한 분이 홍대 앞 프리마켓을 알려줘서 참여하게 됐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답니다. 그런 인연으로 기자도 안동에 사는 그녀를 서울 하늘아래서 쉽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레츠(LETS) 운동가인 일본 공예가 후쿠이 테쓰야는 공예와 생활기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공예와 생활기술을 이어주는 선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제 삶을 영위하는 '생활인' 자신이다. 공예라는 것은 일용생활품을 미적 의식을 가지고 만들어내는 행위이며, 생활기술이라는 것은 '자본제에 의존하지 않고, 또 자원·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의미한다."
그녀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 말을 합니다.
"좋아하는 일이 먹고사는 문제와 상충되지 않고, 함께 연동되어 갈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직한 노동을 통해서 '앎'이 단순히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는 지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시장은 우리의 오래된 미래이며 현재입니다."
어느새 그녀는 기자 이름이 새겨진 휴대폰 고리를 완성해 쥐어줍니다. 이름의 한 획 위로 푸르디푸를 것 같은 잎새 두 닢이 하늘로 뻗어 주변 벚나무가지에 닿으려는 듯 합니다. 문양으로는 목어가 새겨있습니다. 항상 뜬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의미를 담았답니다. 직접 해보고 싶었지만 잘 갈아진 조각칼을 망가트릴까 싶어 참았습니다.
평일에는 환경일꾼, 주말이면 목공예가의 삶을 사는 그녀의 당당한 얼굴로 석양이 드리울 무렵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휴대폰 고리는 무르고 따뜻한 질감 때문에 요즘도 만지작거리며 하루에도 몇 번씩 손때를 묻힙니다. 그럴 때마다 쪽동백은 반질거리며 뽀얀 속살이 도드라지게 드러냅니다.
"이상과 현실 또는 앎과 실천 사이의 거리를 좁혀 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숙제일 것이다. 어느 글귀에서처럼 '돈이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일하라'가 가식이 아닌 삶에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다. 그것을 지금 실험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