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마곡 서울 식물원 방문 후기
지난 설날, 마곡 서울 식물원을 찾았다. 긴 연휴를 그저 집에서만 보내기 아쉬웠고, 추운 겨울 온실 관광이 제 맛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식물원이나 온실을 좋아한다. 내 취향이다.
아빠와 함께 자차로 이동, 때마침 연휴라 주차비도 안 받았다. 나이스!
입장료는 성인 1인 5000원. 장애인 복지카드 들고 가면 동반자 1인까지 무료!
* 본인이 장애인이라면, 특히 시각장애인이라면 꼭 복지카드 지참하세요.
입장하자마자 바로 온실인 건 아니고, 드넓은 라운지가 나온다. 벽난로 포토존이 인상적이다.
맙소사! 도서관도 있었다. 내가 식물원에 도서관 있는 건 처음 본다. 미니어처 전시를 하고 있더라.
일단 도서관 보고 호감도가 빡 치솟음. 급상승하는 애정도.
씨앗 박물관도 한켠에 마련되어 있었다. 층층나무 등 여러 식물 표본과 씨앗이 있더라.
라운지 꼼꼼이 둘러보고, 마침내 온실로 입성하려고 계단을 내려가는 중, 나는 발견하고야 말았다! 내 손이 난간에서 ‘하자 있는 불량 점자’를 만지고 만 것이었다. 두둥!
‘내려가는 길’이라고 찍혀 있어야 하는 점자가! 왜! 대체 왜, 왜애애애~!
묵자로 따지자면 이렇게 찍혀 있는 거다. 거꾸로 뒤집힌 것도 모자라 반대로 적힌 이 글씨!
시각장애인으로서 안내 데스크에 제보하고 왔다. 근데, 응대를 보니 신경 안 쓰이는 모양이다. 반응 참 심드렁하시고요, 근데 이 점자 서울 식물원 쪽팔리는 일이고요. 흥치뿡!
우여곡절 끝에 계단을 내려와 보니, 귓가로 뭔가 자연의 소리 같은 게 들렸다. 출처가 어디인가 싶었는데, 한쪽에 영상을 보여주는 코너가 있더라.
밀림의 한 장면, 하늘의 구름 움직임, 우기인지 갑자기 내리는 비, 새의 지저귐 등.
* 위의 영상 감상하시죠. 통탄할 노릇이지만 음성해설은 없더군요. 이건 왜 배리어프리 기본 옵션이 아닌 건데?
마침내 온실에 입성!
일단 공기와 온도와 습도부터 확 달라진다.
온실에 첫발 내딛고 아빠랑 함께 셀카 한 장 찍으면서 고민함. 페딩 벗을까?
야자수를 만져본다. 온실의 따뜻함(?) 속에서 줄기가 왜 이리 가늘지? 내 상상 속에서 야자수는 좀 더 막, 굵고, 막 우람하고......
오오~! 열대의 이 더운 공기!
그래서 폭포가 더 반가웠다. 물이다~!
망고나무, 열매는 어디 있지? 아직 수확철이 아닌가벼!
커피나무 등장! 오호라, 저기서 울 어머님께서 즐겨 마시는, 그 커피가 열린단 말이렷다?
파파야나무, 요건 열매가 열려 있더라. 만져보니, 웬 조롱박 같은 것이.
왼손에 길쭉한 망고, 오른손에는 호리박처럼 생긴 파파야.
근처에 과일 바구니 같은 구조물에 열매 모형들이 담겨 있었다.
드디어 꽃 발견!
연분홍 꽃잎과 약간 진한 분홍색 꽃술. 큼직한 꽃송이가 매력적이다.
사실 꽃 좀 구경하러 왔는데, 순 이파리라서 서운할 뻔.
이름도 거창한 네오레겔리아 루브라플리아.
헐, 역시 외국산 식물 티 확 난다.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그 유명한 나무, 바오밥나무.
어린 왕자의 별이 워낙 작아서 어린 왕자는 바오밥나무 싹을 보이는 족족 다 뽑아버렸다는데......
서울 식물원에서는 사이 좋게 어우러져 포토존을 형성하고 있네.
소행성 B612호, 어린 왕자, 장미, 사막여우까지 주요 캐릭터들이 총 출동했다.
여기는 지중해, 올리브나무가 산들산들 손짓하는 공간.
선선한 바람과 적당한 온도부터가 다른 구역과는 차별화된 곳.
왜 휴가를 지중해 지역으로 가는 줄 알겠다. 이러니 가는 거였어!
올리브는 ‘평화’를 상징한다지?
응, 이 구역 정말 평화로운 온도야.
허브류 발견~! 스피아 민트.
내 코에 가장 익숙한 식물이다.
귤 봤드아~! 이거 익었나, 안 익었나.
만져서는 모르겠네. 그래서 못 따겠네. 쳇!
* 착한 어린이 친구들은 따지 마세요!
하와이안 무궁화.
꽃이 다홍색이고 큼직하다. 강렬한 무궁화라고 할까?
이 꽃은 무려 미모사의 꽃!
하얀 꽃잎에 꽃술은 분홍이다.
미모사는 소설 <아침 인사>에서 여주인공이 애정하는 식물로 등장.
특징은 잎새에 사람의 손이나 어떤 벌레 같은 게 닿으면 이파리가 오므라든다고.
와, 나 미모사 꽃은 처음 봤다!
이 사진들 외에도 식물들은 많았다. 스마트팜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도 있고, 온실을 나와서는 시원한 청귤 에이드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있다.
덧붙이자면, 시각장애인은 안내 데스크에서 오디오북 가이드를 요청해서 들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있는 설비는 써줘야 하는 법!
부탁하자면, 만약 그때도 계단 난간 점자가 불량하면, 수고스럽겠지만 안내 데스크 찾아가서 지적질 좀 해주면 고맙겠다.
이 사람들이 말이야, 한두 번 지적질 해가지고는 안 고치더라고.
서울 식물원 총평, 5000원이 살짝 아까운 듯하다가도, 아깝지 않은 듯한, 반나절 나들이하기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첫댓글 완공 자랑 한것보다 실제로 가보니 지방의 식물원 보다 내실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내용도 없고 그저 세금만 낭비한 느낌은 나만의
생각일까? 차라리 싹 밀어내고 집없는 서민들을 위한 주택을 지었으면 동정이라도 했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