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는 실패를 몰랐다. 난 실패 따위는 모르고 살았다. 내가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것이 내가 최초로 맛본 실패였다. 물론 20살까지 내가 겪은 실패는 셀 수도 없다. 하지만 난 그때까지의 삶에서 그렇게 어려움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아마 부모님이 대신 책임져주고, 나를 키워주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재수를 하면서 삶의 고통을 본격적으로 체험하기 시작했다. 내가 목표한 것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은 첫 경험이었다. 물론 고3 때도 무수한 낙심을 겪었지만, 살만했다. 난 공부하는 그 자체를 즐겼으니까.
아무튼,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25년 동안 난 무진장 실패를 경험했다. 가장 큰 실패는 내 인생 청춘의 황금기에 부닥쳤다. 그때 존경하고 감화되었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내 정신은 미친 상태가 되었다. 내 고집이 지나치게 셌던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법정 스님이 “고집은 개성의 밀도와 정비례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문제는 정도가 너무 지나쳤다.
결정적인 시기에 실패를 맛보게 되니, 그 이후 연쇄적으로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17년 동안 실의에 빠져 지내고 있다. 다행히 간간이 정신이 차려질 때는 글도 꽤 쓰고, 삶에 몰입하기도 했다. 그래도 난 실망하고 무너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똥이 많으면 더 큰 스승이 된다는 말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통으로 담금질을 하지 않은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위대함도 없다. 결국, 난 스스로 뭔가를 깨닫게 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매일 실패했으니 내가 이룬 성취는 남들에 비해 한참 부족하다. 그런데 난 열등감이 많지 않고, 남들과 비교도 잘하지 않는다. 대신 난 내 삶에 욕심을 많이 줄일 수 있는 장점을 얻었다. 인생에 공짜가 없다고 했다. 뭔가 대가를 치르면 우리는 다른 면에서 얻는 것이 있다. 이것이 요즘 내가 발견한 공의 논리이다. 세상은 양과 음, 미와 추, 선과 악이 함께 움직인다. 자연은 인간에게 함께 주는데, 우리는 이 중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것만 받고 나머지는 회피한다. 마치 자기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처럼 말이다.
실패는 나쁜 것만이 아니다. 구글의 연구 중에 90퍼센트는 실패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그런데 나머지 10퍼센트의 성공이 구글의 미래를 책임진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는 행동의 다수는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그 중 운이 따르는 소수의 영역에서 우리는 승리한다. 나도 무진장 실패하고, 전화 영업에 약간의 소질을 보였다는 것과 글쓰기를 즐긴다는 적성을 발견했다.
그래서 난 매일 실패할 것이다. 시각을 바꾸면 이것은 매일의 실험이 된다. 중요한 것은 넘어져도 일어나서 다시 걷는 것이다. 남들의 시선에 개의치 말아야 한다. 한국은 한 번 넘어지면 일어서기 힘들게 돼 있다. 긍정적인 사람은 이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
난 25년을 실패했다. 대학 입시 실패, 법률 자격증 실패, 목표하는 취업 실패, 그리고 이어지는 사회생활의 실패 등등 끝이 없다. 그래도 난 쫄지 않는다. 자존감도 무척 낮지만,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지금을 살 뿐, 과거와 미래 따위는 없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 요즘도 매일 실패하지만, 난 나를 좋아한다. 이것이 나의 장점이자 강점이다. 나만의 무한한 긍정 정신이 나를 살게 한다.
인생은 결국 두려움이 과제라는 것을 난 깨닫게 됐다.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어떤 행동을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한국인은 그만큼 자립심과 독립심이 길러지지 않았다. 가정 환경도 상처가 많지만, 사회적 문화도 금지된 선을 넘지 말라는 규율이 강하다. 삶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뭐 그것을 하다가 좀 실패하면 어떤가. 우리는 너무 경직된 문화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사회적 공기가 자유롭지 못하고, 창의적인 사람도 잘 없다. 마지막으로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김신웅 마음성장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