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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새
김 동 리
“다그르르르…….”
저승새가 왔다.
툇마루에 앉아 졸고 있던 만허(滿虛)스님은 눈을 번쩍 뜨며 주름살 그것 같은 얼굴을 쳐들었다. 보리수(菩提樹)를 바라보았다.
“다그르르르……”
저승새가 두번째로 내는 소리였다.
스님의 눈길은 그 소리가 나는, 보리수의 중간 윗가지 쪽으로 쏠렸다. 거기, 비둘기보다 조금 작고 야윈 듯한, 빨강 파랑 노랑 주황, 그리고 잿빛의 오색 실을 꿈속같이 은은하게 감은 그 새는 앉아 있었다. 새의 크기와 빛깔은 작년에 왔을 때나, 십 년 전에 또는 그보다 더 아득한 옛날에 왔을 때나 변함이 없어 보였다.
“다그르르르…….”
세번째로 내는 소리였다.
스님의 두 눈에는 차츰 야릇한 광채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형언할 수도 없는 황홀한 환희(歡喜)라기보다 차라리 법열(法悅)에 잠기는 듯했다.
취한 듯한 얼굴로 새를 바라보고 있던 스님은 자리에서 가만히 일어났다. 기둥에 붙여 세워두었던 지팡이를 짚고 섬돌 아래로 내려섰다. 순간, 앞산의 벌건 진달래 벼랑이 이날따라 갑자기 스님의 눈앞에 바짝 다가서는 듯했다.
‘오, 가엾은 것…… 이제 나도 따라가야지.’
스님의 마음속에서는 웬 까닭인지 이런 말이 속삭여지고 있었다.
해는 바야흐로 하늘 한가운데 있었다.
지팡이가 앞으로 나아갔다. 지팡이를 따라 스님의 발길은 동구 밖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어린 사미(沙彌)¹ 혜인(慧印)은 절 뒷산에서 진달래를 꺾고 있었다. 적인(寂印)으로부터 저승새가 왔다는 연락을 받자, 손에 쥐고 있던 꽃도 놓아버린 채, 스님 이 계시는 허허당(虛虛堂) 쪽으로 뛰어갔다. 스님에게 이 기쁜 소식을 어서 전해드리고자 해서였다. 스님은 요 며칠 동안 계속 이 복탁새를 기다리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혜인이 허허당 앞까지 달려왔을 때 스님과 스님의 지팡이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보리수 곁에는 산중 스님들이 거의 다 모여 있었으나 만허스님은 보이지 않았다.
‘스님은 어디로 가셨을까?’
혜인은 이렇게 생각하며, 여러 스님들의 야릇한 미소와 눈길들이 쏠리고 있는 보리수 가지 위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하여, 거기 비둘기보다 조금 작고 야윈 듯한, 빨강 파랑 노랑 주황, 그리고 잿빛의 오색실을 꿈속같이 은은히 감은, 일찍이 듣던 대로의 그 새를 발견했을 때, 그의 어린 가슴은 걷잡을 길 없이 뛰었다.
‘오, 저 새는 어디서 왔을까?’
혜인은 왠지 서럽고 아득하기만 했다. 그와 동시, 그의 노스님이 왜 그렇게 여러 날 동안이나 저 새를 기다렸는지도 절로 알아질 것만 같았다. 그의 두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괴었다.
적인이 다가왔다. 그는 혜인의 두 눈에 괸 흔근한 눈물을 보는 순간, 까닭도 모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적인은 약간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스님께서는 벌써 떠나셨나 보다.”
혜인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어디로?”
“샘터로.”
“샘터라고?”
“……”
적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혜인은 왜, 하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왠지 그것을 묻기가 몹시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자 적인 쪽에서,
“스님께서는 전에도 저 새가 오는 날은 꼭 샘터로 가셨어.”
했다.
“그럼 스님께서는 저 새 온 거 보고 가셨을까?”
“그럼. 지금까지 툇마루에서 저 새를 기다리던 스님인데 새를 봤기에 어디로 가셨겠지.”
적인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혜인은 갑자기 적인에게는 아무런 말도 없이 돌아서자 산문 쪽을 향해 걸어가버렸다.
혜인의 뒷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적인은, 그의 뒤를 쫓아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샘터마을이 혜인의 생가(生家) 쪽이라고는 하지만, 절에서 그곳까지는 이십 리도 넘는 길인데 이제 겨우 일곱 살밖에 안 된 혜인이 어떻게 혼자서 찾아가랴, 해서였다. 적인은 혜인보다 다섯 살 위였다.
진달래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이 절을 찾아주는 이 야릇한 새의 이름을, 처음 누가 저승새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 그것은 아무도 몰랐다. 그것은 이 새가 나타나기 시작한 지 오 년인가 지난 뒤부터의 일이었다고 한다.
처음엔 목탁새라고 불렀다고 한다. 다그르르르…… 하는, 이상하게 맑고 투명한 소리가, 목탁 소리 같다 하여 처음엔 그렇게 불렀던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어느 사이 엔지 저승새란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게 된 것이다.
목탁새에서 저승새로 더 많이 불리게 된 까닭도 뚜렷한 것이 없었다. 그저 무엇인지 저승을 느끼게 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것은 동시에 스님들이 그만큼 더 이 새를 그윽하게, 기이하게 생각하게 된 탓인지도 몰랐다.
스님들이 다 같이 이 새를 끔찍이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까닭은 첫째, 이 새가 해마다 같은 무렵에 어김없이 이 절을 찾아온다는 것과, 그 몸이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저승같이 은은하고 신비한 오색 빛깔로 감겼다는 점과, 그리고 어느 거룩한 스님의 무르익은 목탁 소리와도 같은 그 맑고 투명한 다그르르르 소리를 내는 것과, 이 밖에도 몇 가지 더 신기한 점이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 몇 가지 더 신기한 점’의 하나는, 오가는 현황을 포착할 수없는 일이었다. 오는 것은 또 그렇다고 하더라도, 떠날 때의 모습도, 언제 어떻게 사라지는지 아무의 눈에도 보인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이 새의 나이였다. 만허스님 이 절에 들어오신 이듬해에 처음 나타났다고 하니 적어도 삼십오 년가량은 된다고 보아야 하겠는데, 그런데도 이 새의 크기나 빛깔이나, 그 내는 소리나가 다 옛날과 꼭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옛날의 그 새가 삼십오 년 동안이나 살아 있는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새끼, 또는 새끼의 새끼가 대(代)를 이어 이 절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스님이 이 일에 대해서 만허스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 스님은 무어라고 똑똑히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뒤 혼잣말같이,
“새라고 백 년은 못 사는가.”
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님은 오늘날의 저승새가 옛날의 그 새라고 믿고 있는 것임이 틀림이 없다고들 하였다.
다른 스님들도 만허스님의 이 말을 은근히 믿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까닭은 만약 옛날의 그 새가 아니고 그 새의 새끼나 새끼의 새끼라면 한 해 동안에 어떻게 어미새만 한 크기와 빛깔을 지닐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 절의 스님들이 이 새에 대하여 특히 만허스님에게 물어보곤 하는 데는 까닭이 있었다. 우선 삼십오 년 전에 이 새를 이 절에서 처음 발견한 것이 만허스님 이었을 뿐 아니라, 그때부터 해마다 진달래 철이 되면, 으레 이 새가 다시 이 절을 찾아올 것이라 믿고, 미리부터 기다리기까지 하는 이도 이 스님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마다 제일 먼저 이 새를 맞이하는 것도 역시 이 스님이다. 게다가 새를 맞는 만허스님의 얼굴에는 언제나 형언할 수없는 기쁨과 반가움이 넘쳤다.
이 새가 나타나던 첫해에는 스님의 얼굴이 눈물로 젖었다고, 어떤 스님이 슬쩍 비친 일도 있었다. 또 어느 해에는, 다그르르…… 하는 소리를 듣자 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오, 남이’ 하고 불렀다는 것이다. 스님의 귀엔 다그르르르…… 소리가 어느 사람의 목소리로 들리는 모양이라고들 하였다. 그와 동시 스님의 얼굴은 환희로 넘치고, 두 눈에는 눈물까지 흥건히 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누가 듣고 누가 보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옛날부터 그렇게 전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것을 들은 사람도, 본 사람도, 똑똑히 나타나지 않느냐 하면, 언제나 그 새를 제일 먼저 맞는 이가 바로 이 만허스님이었고, 다른 스님들이 보리수 곁으로 모여들 때면, 스님은 어느덧 그곳을 떠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님은 자기의 그러한 거동이나 행색을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 다른 스님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어느덧 산문 밖으로 사라져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사라지면, 어떤 때는 한나절, 혹은 하루 해를 다 넘기고서야 절로 돌아오곤 하였다.
이러한 스님의 거동으로 보아, 스님과 이 새의 사이엔 무슨 남모를 사연이 얽혀 있으리라고, 사람들은 믿게 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스스로 그 사연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누가 비슷한 말을 물어보아도 스님은 못 들은 척하거나, 밑도 끝도 없는 혼잣말을 몇 마디 중얼거릴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도 태어나고, 사람으로도 태어나고……,’ 였다는 것이다. 이 을 두고 여러 사람이 오랫동안 되씹고 한 결과, 사람은 죽어서 새로도 태어나고, 사람으로도 태어난다는 뜻이라고 풀이되었다.
이와 함께 사람들은, 저승새가 나타나는 날 언제나 스님이 산문 밖으로 사라지는 일을 수상히 여겨 그 뒤를 가만히 쫓아간 사람까지 있었는데, 스님이 가는 곳은 언제나 길마재마을 앞에 있는 샘터였다고 한다.
그 길마재마을 앞 샘터는 이 절에서 이십 리도 넘는 꽤 먼 길이었다. 스님은 이 샘터까지 오면, 샘물을 한 쪽박 떠서 마시고는 그 곁의 측백나무 아래 어느 때까지나 가만히 앉아 있다가 돌아오곤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절 사람들은, 스님의 ‘새로도 태어나고’란 말과 이 샘터를 꼬투리로 삼아 여러 가지로 추측도 하고, 알아보기도 하고, 하여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절 사람들에 의하여 은은히 번져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이 든 스님들 사이에서만, 거의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 입에 담아 퍼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만허스님 자신이나, 젊은 스님, 특히 어린 사미동승(沙彌童僧)들에게는 통 유통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만큼 산중 스님들은 만허스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은 그런 이야기가 입에 담아지는 것을 엄숙한 금기같이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세 높은 몇 분 스님들이 알고 있는 어렴풋한 이야기는 대개 다음과 같았다.
만허스님의 본디 이름은 경술(慶述)이었다.
경술이 처음 이웃 동네의 남이네 집 머슴으로 들어간 것은 그의 나이 열아홉 살 때였다. 그해 남이는 열다섯 살이었다.
경술은 그 집에서 일 잘하고 얌전한 총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남이 부모에게서뿐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삼 년째 되던 해 여름이었다. 남이네 큰댁에서는 삼을 익히느라고 법석이었고, 남이네 식구들은 어저께 하다 남은 보리 타작을 마무리짓고 있었다.
보리타작이 대강 끝나갈 무렵, 남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남은 일을 경술과 남이에게 맡긴 채, 큰댁의 삼 벗기는 일을 도우러 갔다.
경술이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은 뒤, 뒷개울에 나가 하루의 땀을 씻고 돌아오는데, 남이는 우물가에서 혼자 등물을 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남이의 새하얀 어깨와 옆구리가 눈에 띄었다. 순간, 경술은 왠지 피가 머리 위로 확 솟아오름을 깨달았다.
그런대도 경술은 거의 본능같이 삽짝 쪽을 향해 돌아섰다. 그러나 삽짝 밖까지 채 걸어 나가기 전에, 그 곁의 보릿짚 가리 위에 픽 쓰러지고 말았다.
아직 잠재워지지 않은 집채 무더기만 한 보릿짚 가리는 그의 몸을 얼싸안은 채 속으로 빨아들이는 듯했다. 그리하여 그의 몸은 차츰 보릿짚 가리 속으로 파묻혀 들어갔다.
몹시 아늑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나이 여남은 살 되었을 때까지, 이 무렵이면 자주 이렇게 보릿짚 가리 속에 파묻혀 놀곤 하던 추억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무렵 숨바꼭질을 하느라고 보릿짚 가리 속에 묻힐 때는 머리까지 온통 파묻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숨바꼭질이 아닐 때는 몸만 묻은 채 얼굴을 밖으로 내어, 지금과 같이 하늘의 별을 세곤 했던 것이다.
경술이 지금도 몸만 보릿짚 가리 속에 묻은 채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어릴 때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이도령.”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이의 떨리는 듯한 낮은 목소리였다.
“……”
경술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왠지 목 안이 얼어붙은 듯 대답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두번째,
“이도령.”
하는 소리가 또 들렸다. 먼저보다 조금 대담해진 남이의 목소리였다.
“……”
경술은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의 가슴은 사뭇 와들와들 떨리기만 했다.
뒤이어, 남이의 보릿짚 밟는 소리가 바스락바스락 들려왔다.
남이는 경술이 누워 있는 앞에까지 오자 그 곁에 픽 쓰러지고 말았다.
두 사람은 보릿짚 가리 속에 가지런히 누운 채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경술은 걷잡을 길 없이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또 아까와 같이 하늘의 별을 쳐다보았다. 삼태성, 좀생이별, 수수떡할머니별 들이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도령.”
남이의 목이 잠긴 듯한 낮은 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절로 끌리기나 하는 듯, 경술은 별에서 그녀 쪽으로 얼굴을 확 돌렸다. 베 치마저고리의 남이가 땋은 머리를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돌린 채 얼굴을 보릿짚 속에 쿡 묻고 엎드려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그녀의 양쪽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허리를 덥석 껴안았다. 남이의 몸뚱어리는 휘영한 밀가루 반죽처럼 부드럽게 그의 품속으로 푹 안겨 들어왔다. 그러나 그다음으로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알 필요도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가슴의 고동이 멎을 만큼 황홀했기 때문이었다.
“남이.”
울음이 섞인 듯한 낮은 소리로 그는 겨우 이렇게 불렀다.
“이도령.”
남이 역시 울음이 섞인 듯한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는 남이를 껴안은 채 다시 보릿짚 가리 속에 쓰러졌다.
“남이.”
“이도령.”
그네들은 먼저와 똑같이 부르고 대답하기를 한 번 더 되풀이했을 뿐이었다.
그의 입술이 가만히 그녀의 입술 위에 가 닿았다. 두번째 닿았을 때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완전히 포개지기 시작했다. 남이의 겨드랑이 뒤를 두른 그의 두 팔뚝은 차츰 더 힘으로 굳어졌다.
남이는 더 견딜 수 없는 듯 두 손으로 가볍게 그의 어깨를 떠밀었다.
그는 두 팔의 힘을 늦추어주었다.
남이는 숨을 두어 번 내쉬고 나서 다시 보릿짚 가리 위에 드러누웠다.
그도 그 곁에 나란히 누웠다. 가쁜 숨을 몇 차례 내쉬고 나서야 그네들의 눈에 별빛이 들어왔다. 삼태성, 좀생이별, 수수떡할머니별…… 늘 보아오던 별들이건만 왠지 이때따라 유독 아름답게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 별들이 모두 각각 자기들의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남이.”
경술이, 먼저보다는 한결 갈앉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응―.”
그녀의 목소리에도 먼저보다 자신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경술의 입에서는 그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이도령.”
이번에는 남이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응―.”
경술의 들릴 듯 말 듯한 낮은 목소리였다.
그네들의 대화는 거기서 더 진전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경술이 결심한 듯, 다시 남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남이는 집에서 좋다 하면 나 따라 살겠나?”
“살잖고.”
남이는 결연히 대답했다.
경술은 남이의 한쪽 손을 자기의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그리하여 자기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그와 동시 남이는 그녀의 얼굴을 경술의 겨드랑이에 갖다 묻었다.
그네들의 숨결은 또 아까와 같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한참 뒤, 경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믄, 그 맘 변치 말고 있어라이.”
“……”
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금 뒤,
“이도령 도…….”
했다.
골목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오시는 기척이었다.
경술은 그뒤부터 더 열심히 일을 했고, 남이의 부모님은 또한 종전보다 더 그를 아끼며 기려주었다.
남이의 어머니는 전에도 몇 차례나, ‘얌전학 사윗감’이니 ‘씨받을 사윗감’이니 하고 뜻있이 말했기 때문에 경술은, 자기가 열심히 일만 잘하면, 언젠가는 자기를 사위로 삼아줄지 모른다고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해 가을부터 남이의 혼담이 있어, 중매꾼들이 몇 차례 들락날락하더니, 늦은 가을엔 갑자기 혼처가 정해지고 말았다.
남이의 혼담이 정해진 지 사흘 뒤였다. 시월 중순이었는데 달이 환히 밝았다. 경술이 두엄 가리 곁에 서서 달을 쳐다보고 있는데 남이가 다가왔다.
“이도령.”
남이의 잠긴 목소리였다. 그 사흘 동안 남이는 무슨 병인지 바리에 누운 채 방 밖 출입이라곤 거의 볼 수도 없을 때였다.
경술은 깜짝 놀라 남이를 돌아다보았다. ‘깜짝 놀라’라고 하지만, 남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경술의 가슴은 불에나 덴 것처럼 싹 오그라들었던 것이다.
“남이.”
그는 갑자기 솟아오르는 울음을 누그리느라고 얕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불렀다.
“한번 꼭 만나려고 했어.”
남이는 이렇게 말하자 뒤를 잇지 못한 채 흑흑 느껴 울기 시작했다.
경술은 고개를 돌려 달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너 시집간다는 거 정말이냐. 나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 너의 부모님은 나에 대해서 끝내 말이 없었느냐.’
이러한 생각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이미 물어볼 필요도 없는 듯했다.
다만 남이의 생각이 어떤 겐지 그것만이 궁금했다.
남이도 이러한 경술의 마음속을 꿰뚫어보기나 하는 듯이,
“나 부모님과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시집가서 죽어버릴란다.”
했다.
그것이, 공연히 해보는 소리라거나, 그에게 미안해서 돌려맞추는 속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그녀의 사람됨으로 보아, 부모님의 명에 거역할 용기까지는 없으리라고 평소부터 믿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부모님과 맞서 싸우라든지, 부득이 시집은 가더라도 제발 죽지는 말아달라든지, 그런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너무나 머리가 어지럽고, 목이 아프고, 가슴이 쓰라렸기 때문이었다.
경술이 넋 나간 사람처럼 어리벙벙해 있는 것을 보자 남이는,
“너무 언짢아하지 말어. 난 죽어도, 죽어도, 이도령 못 잊어. 날 믿어줘.”
했다. 죽어도, 죽어도에 울리는 남이의 목소리는, 아무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그녀의 굳은 결심을 말해주고 있었다.
경술의 흐느껴지는 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날 리 없었고, 그런대로 그냥 고개만 두어 번 끄덕이는데, 남이는 다시,
“그럼 이도령도 마음 변치 말아줘. 나 먼저 저승 가서 기다릴게.”
하고는 돌아서 가버 렸다.
그날 밤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경술은, 이레 만에, 홀어미 밖에 없는 본가로 돌아가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경술은 날이 갈수록 병세가 험해져, 한때는 살아나지 못하리 란 말까지 나돌았다.
그의 어머니는 힘이 자라는 대로 약을 구해 쓰다가, 약만으로는 병을 고치기 어려우리란 말이 있자, 이번에는 절에 가서 부처님께 살려주십사고 기도를 드리기로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부처님이 돌봐주셨는지 차츰 병세에 차도가 나기 시작하여 다음해 이른 여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닐 수도 있게 되었다.
여름이 지나고, 추석이 다가올 무렵, 그는 집에서 오십 리 길이나 되는 길마재마을 앞 샘터에까지 다녀온 일이 있었다. 어딜 갔다 오느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그냥 약물을 먹으러 갔다 오는 길이라고만 대답했다. 남이가 시집가 사는 길마재마을 앞 샘터까지 갔다 온다고는 어머니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뒤부터 그는 사흘에 한 차례씩은 이 샘터엘 다녀오곤 하였다. 그러나 한번도 그 마을 안까지 발을 들여놓은 일은 없었다. 다만 샘터까지 와서, 맑은 샘물을 한 쪽박 마시고는 그 곁의 측백나무 아래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돌아오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샘터에 다니는 동안에, 경술은 그 샘터에서 다시 한 이십 리 남짓 더 가면 운봉사(雲峯寺)라는 옛 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해 추석도 지나고, 김장도 대충 끝나갈 무렵, 경술은 그의 어머니를 보고 갑자기 중질을 가겠노라고 하였다.
그의 어머니도 경술이 지금과 같이 목숨을 건지게 된 것도 순전히 부처님 덕분이라고만 믿고 있었기 때문인지, 경술의 이 당돌한 제의에도 별로 놀라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 서글픈 눈으로 아들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사흘 뒤 그는 운봉사의 부목(負本)²이 되어 들어갔다가, 봄에야 정식으로 계(戒)를 받고 중이 되었다.
그는 본디 그의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 천자문을 겨우 배워두었을 뿐이므로 당분간은 한문 공부를 곁들여 불경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가 큰절(해인사)을 찾아가 참선(參禪)을 시작한 건 다시 그 이듬해 봄, 그 황홀한 목탁새 (저승새)가 나타난 뒤의 일이었다.
그는 해인사의 백련암에서 삼 년간이나 참선을 했으면서도 끝내 그 새를 잊지 못한 채 다시 운봉사로 돌아오고 말았던 것이다.
어린 사미 혜인이 그의 언니뻘인 적인에게 손목을 잡힌 채 길마재마을 앞의 샘터 가까이 왔을 때는 오후 사이참 때나 되어 있었다.
“저거야.”
언덕에 올라서자, 혜인이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적인도 혜인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두 마장가량 떨어진 곳에 가무스름한 측백나무가 보였다.
“저 측백나무 아래 샘이 있어.”
혜인이 말했다.
절에서 여기(길마재마을 부근)까지 오는 길은, 나의 위인 적인이 이끌었지만, 마을 근방에서 샘터를 찾는 것은 본디 그 마을에 살았던 혜인이 나을밖에 없었다.
두 사미는 산기슭의 잔디 위에 앉아 다리를 쉬면서도 눈길은 연방 샘터 쪽으로만 팔고 있었다.
“그렇지만 스님께서 아직도 저 샘터 가에 계실지 모르겠어.”
적인이 혜인을 보고 말했다.
“말했잖아? 스님은 샘터에 계신다고.”
“나도 그렇게 들었거든. 그렇지만 지금까지 계실지 모르잖아?”
두 사미가 이런 말을 나누고 있을 때, 산에서 한 사내가 내려왔다. 턱수염 이 더부룩한, 서른댓 살가량 되어 뵈는 이 사내는 한쪽 손에 술병, 다른 손엔 사발을 포개어 든 채 두 사미 쪽을 잠깐 거들떠 보았다.
두 사미도 약간 겁에 질린 듯한 얼굴로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두 사미 곁으로 다가왔다.
사내를 바라보고 있던 두 사미, 특히 어린 사미 혜인의 두 눈에 공포의 그림자가 어리기 시작했다.
사내는 두 사미, 특히 어린 사미 혜인을 한참 바라보다가,
“늬 영근이 아니가?”
물었다.
“……”
혜인이 대답 대신 잔디에서 일어나며 말없이 사내를 쳐다보았다.
“늬 여기 웬일고?”
사내는 또 이렇게 물었으나, 혜인은 대답 대신 적인 쪽을 바라보았다. 자기 대신 대답을 해달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적인으로서는, 그보다 혜인과 이 낯선 사내가 어떤 관계인지를 알 수 없었다. 혜인이 본디 이 마을에서 살다가 (사미가 되어) 절로 들어왔다는 것은 적인도 일찍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혜인의 태도로 보아 그렇게 가까운 집안 아저씨 같아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적인도 잔디 위에서 일어났다. 그리하여 먼저 혜인을 보고,
“아는 아저씨냐?”
하고 물었다.
“……”
혜인은 이번에도 그냥 고개만 아래위로 끄덕여 보였을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혜인에게 그다지 고마운 아저씨는 아닐지 모른다고, 적인은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여기까지 왔어요. 저기 샘터까지…….”
적인이 대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사내는 적인을 보고,
“한절에 있나?”
하고 물었다. 한절에 같이 지내는 사이냐고 묻는 뜻이라고 적인은 알아들었다. 그는 본디 윗녘 (기호 지방)에서, 저희 스님을 따라 이쪽 절(운봉사)로 내려온 사미였지만, 그동안에 어느덧 이 지방 사투리에도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예에.”
적인은 합장을 올리며 공손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내는 적인의 유순하고 공손스러운 목소리가 마음에 드는지, 먼저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다시 혜인을 보고,
“그렇다면 날짜를 알고 온 게 아니지? 산소에 갈라꼬 온 게 아니지?”
이렇게 물었다.
적인으로서는 무슨 영문인지 짐작할 수도 없는 말이었다.
“……”
혜인은 또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그러자, 사내는 다시 거칠어진 목소리로,
“오늘이 늬 할매 늬 아배 제삿날이다. 안 가볼래?”
“……”
혜인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역시 대답이 없었다.
“아저씨 어디로 가면 됩니까?”
적인이 대신 물었다.
“어디는 어디라? 산소지. 뫼 있는 데 말이다.”
사내는 거친 말씨로 윽박지르듯이 대답했다.
적인은 혜인을 보고 타이르듯이,
“혜인아, 오늘이 너의 할머니와 아버지의 제삿날이라는데 저 아저씨 따라 산소에 가봐야겠구나. 가볼래?”
물었다.
“……”
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사내는,
“늬들 돈 없제?”
물었다.
어린 사미들에게 돈이 있을 리 만무였다.
“그러면 잠깐, 기다려라.”
사내는 이렇게 말하자 아까의 병을 들고 동네 쪽으로 달려갔다. 술을 받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얘, 저 아저씨 누구냐?”
적인이 혜인에 게 물었다.
“일가 아저씨.”
혜인이 비로소 이렇게 입을 열었다.
“근데 왜 모르는 척 했냐? 첨에…….”
“아버지 죽고 저 아저씨한테 가 있었거든.”
“그런데?·…….”
“막 때렸어. 그래서 동네 아저씨가 말해서 날 절로 보내줬잖아?”
혜인의 대답을 듣자 적인도 그들의 관계를 대강 짐작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말야, 아까 그 아저씨 너의 할머니와 아버지의 제삿날이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냐?”
“나도 잘 몰라. 우리 아버진 내가 다섯 살 때 죽었는데, 그날이 옛날 우리 할머니가 죽은 날이래. 그래, 사람들은 우리 할머니가 아버지를 데려갔다고 했어. 그래서 제사도 같은 날이래.”
사내가 돌아왔다. 막걸리 한 병과 마른 명태 한 마리가 사내의 손에 들려 있었다.
“아저씨 술병은 제가 들고 갈게요.”
적인이 술병을 받아 안았다.
산소엔 무덤이 세 상 있었다. 위의 두 상은 혜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무덤, 그 아래 한 상이 그의 아버지의 것이라 하였다.
아래 무덤 앞에는 김치 찌꺼기와 명태 대가리가 버려져 있었다. 이 사내(혜인의 일가 아저씨)가 아까 막 다녀간 흔적인 듯했다.
사내는 할아버지의 무덤부터 시작하여 다음엔 할머니 무덤, 그리고 맨 나중은 아버지의 무덤으로 차례차례 옮겨가며, 사발에 술을 따라놓고, 혜인에게 절을 시켰다. 그때마다 따랐던 술은 자기가 마셔버리곤 했다.
석 잔을 따르고 나서도 술은 꽤 남아 있었다.
사내는 그것을 한 사발 따라 적인에게 주며,
“자, 너도 한잔 마셔라.”
했다.
적인이 못 먹는다고 하자 사내는 두말하지 않고 자기가 또 훌쩍 마셔 버렸다.
술이 얼근해진 사내는 마른 명태를 찢어서 입에 넣고 쩍쩍 씹으며,
“우리 집은 저 할머니 덕으로 망한 거나 같다.”
했다.
적인이나 혜인은 사내의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사내도 그것을 짐작하는지, 위의 무덤 두 상에서 바른손 쪽을 가리켜 보이며,
“저 할매 말이다, 너 한테는 할매지만 나한텐 아주머니 뻘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술잔을 들어 서너 모금 꿀컥꿀컥 마신 뒤,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 할매 시집와서 이듬해에 아들 하나 낳고 이내 죽었지. 그게 느의 아배다. 덕분으로 느 할배는 평생 홀아비로 아들 하나 키우고 살았다. 그런데 그 아들이, 느의 아배 말이다. 느 할배보다도 한 해 앞서 죽었다 앙이가. 그것도 느 할매가 데려간 거란 말이다. 그러니 느의 할배 속이 얼마나 상하겠노? 멀쩡하던 노인이, 아들 죽자 따라 죽다시피 했다 앙이가. 불쌍한 할배다.”
사내는 이야기를 그치고 명태를 한참 쩍쩍 소리나게 씹고 나더니 다시 적인에게 혜인을 가리켜 보이며,
“자(혜인)는 아무꺼도 모를 거다마는, 자 할매 땜에 이 집은 아주 망한 거다. 어째 하필 자기 죽은 날, 아들을 데려가노 말이다. 그것도 독자 아들을. 하도 기가 막혀서 집안 사람들이 무당한테 가서 점을 쳐봤다 안카나. 점을 쳐보니 본디 자 할매가 우리 집에 시집오기 전에 좋아한 남자가 있었다 안카나? 그 남자 땜에 자 할매는 이내 죽고, 아들 하나 있는 거까지 데려갔다 안카나? 그래 굿을 해주먼 원한이 풀릴 꺼락 하지만 인자 자도 절에 가버렸고 아무도 없으니 귀신도 달라붙을 데가 없어졌다 앙이가.”
사내는 이야기를 마치자 또 술잔을 기울였다. 적인도 이제는 사내가 말한 이야기의 윤곽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혜인을 바라보았다. 혜인은 이야기의 내용을 알아들었는지 알아듣지 못했는지 감감스레한 긴 속눈썹이 눈물에 젖은 채, 곧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한 얼굴로 사내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적인과 혜인은 사내를 따라 산에서 내려왔다.
산기슭까지 와서 사내는 마을 쪽으로, 적인과 혜인은 샘터 쪽으로, 각각 방향을 달리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그들이 샘터까지 갔을 때, 스님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적인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웃해 있었다.
적인은 쪽박으로 샘물을 떠서 혜인에게 주었다·
혜인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은 뒤 그것을 받아 마시었다. 그러고는 남은 물을 땅 위에 버린 뒤, 새로 한 쪽박 떠서 이번에는 그것을 적인에게 주었다.
적인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것을 받아 마시었다.
“절로 돌아가자.”
적인은 이렇게 말하며 혜인의 손목을 찹았다.
그러나 두 사미가 절에 돌아갔을 때 만허스님은 절에도 와 있지 않았다. 으레 먼저 돌아와 계시리라 생각했던 스님이 보이지 않자 혜인은 또 주먹으로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이튿날도, 그리고 그다음, 다음날도 스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절에서는 스님이 큰절(해인사)로 가셨거니 하고 있었다. 그러나 큰절에서도 만허스님을 보았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스님이 윗녘으로 정처없이 떠나갔다는 둥, 어느 산중의 벼랑 위에 가만히 앉아서 열반을 했다는 둥, 여러 가지 소문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듬해 봄에도 운봉사의 앞뒷산에는 진달래가 벌겋게 피었다.
그러나 해마다 오던 다그르르르…… 저승새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해에도……
-끝-
2016년 5월 18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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