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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2:13 | |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
드디어 출애굽기의 심장 부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2장의 핵심은 유월절 양이 죽임을 당하여 흘린 “피”에 있습니다.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하십니다. 이 피가 뿌려져 있느냐의 여부를 따라 이스라엘 집과 애굽의 집(신자와 불신자)이 “구별”(11:7)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구별만 해준 것이 아니라 피가 뿌려져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생(生)과 사(死)가 갈라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기를 원하신 “한 가지 표징”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명심해야할 점은 이스라엘 집에서도 죽음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어린양이 대신하여 죽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6:12에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하셨는데 어린양으로 대신 죽임을 당케 하신 이것이 “구속”의 방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 장의 주제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심”이 될 수가 있습니다. 12장은 핵심 장이며 그래서 가장 긴 장이기도 합니다. 이를 여섯 단원으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첫째 단원(1-2) 새로운 시작
둘째 단원(3-14) 피를 볼 때에 넘어가리라
셋째 단원(15-20) 무교절을 지키라
넷째 단원(21-28)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다섯째 단원(29-36)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여섯째 단원(37-51) 여호와의 군대를 인도하여 내심
첫째 단원(1-2) 새로운 시작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2).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달은 민간력으로 7월에 해당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래서 종교력으로는 출애굽한 달이 정월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를 가나안식 이름으로 아빕월(바벨론식 이름으로는 니산월)이라고도 말합니다. 어찌하여 “이 달로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① 구속함을 받기 이전의 삶이란 “허물과 죄로 죽은”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장에는 가인의 계보가 나오고 5장에는 셋의 계보가 나옵니다. 그런데 셋의 계보에는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다는 연대가 나옵니다만 가인의 계보에는 이 연대가 없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기”(엡 4:18) 때문입니다.
② 그들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얻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났기(거듭남) 때문입니다.
③ 그리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이점을 신약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자상하신 하나님이십니까? 형제에게도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는 전환점이 있었겠지요?
둘째 단원(3-14) 피를 볼 때에 넘어가리라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양을 취하되”(3).
3-20절까지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달하신 명령입니다. 여기가 출애굽기의 심장부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를 앎으로 비로소 복음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심도 있게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본 단원은 3-14까지의 내용입니다. “이 달 열흘에 각 가정마다 흠이 없는 일 년 된 어린양을 취하여 십 사일까지 간직하여 두라”(3-5)고 명하십니다.
흠 없는 어린양을 간직하여 두었다가
① 그 기간(10-14일까지)동안 “흠이 없는가” 살펴보라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양은 흠이 없으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② 그 기간동안 어린양이 자신들을 위하여 죽어야 함을 마음 깊이 인식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③ 궁극적인 의미는 우리가 구속함을 얻은 것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간직하여 두셨다가)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벧전 1:18-20)를 계시하기 위함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임기응변으로 되어지는 일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간직하여” 두셨다가 때가 되면 이루시는 것입니다.
해 질 때에
“해 질 때에” 하고 시간을 지정하십니다. 어찌하여 “해 질 때”에 잡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성경적으로 볼 때 “해 질 때”란 하루가 끝나는 시간이요 새로운 날의 시작이 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규례도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레23:32)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 질 때”란 1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난날을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구약시대를 마감하고 신약시대가 시작되는 “해 질 때에” 오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 1:2), 그리하여 주님은 율법의 마침이 되시고 복음의 시작이 되셨습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역사를 기원전과 기원 후로 나누는 분기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양을 잡고
“양을 잡으라”고 명하십니다. “간직하여” 두었던 어린양은 죽어야만했습니다. 성경은 “한 몸(그리스도)을 예비하셨도다”(히 10:5)고 말씀하고 있는데 “간직하여” 둔 것만으로 구원이 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만으로 구원이 임한 것도 아닙니다. 교훈으로, 기사와 이적으로 구원이 가능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롬 5:6-10)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피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7)고 명하십니다.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13) 하십니다. 어떤 면에서 표적이 될까요?
① 이 집은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집이라는 표적입니다. 즉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자손을 구별하여주는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표적만의 의미라면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구태여 양을 죽여서 피를 뿌려야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② 그러므로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집에서는 이미 죽음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집에서도 죽음은 있었습니다. 그것을 “뿌려진 피”가 말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간직하여 두었던 어린양이 대신 죽었을 따름입니다.
③ 왜 이처럼 피(죽음)로 표적을 삼으셔야만 했을까요? 성경은 대답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롬 3:25, 5;9).
④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22) 하십니다. 피 뿌린 집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언약” 밖으로 나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곧 그리스도 안에서 이탈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위험천만한 것입니다. 안전을 보장받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밤에 먹으라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으라”(8)고 명하십니다. 또한 먹는 방법까지 지시하셨는데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11) 하십니다. 여기에 담겨있는 구속사적 의미가 무엇일까요?
①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라는 뜻은 주님이 받으실 고난과 관련이 있습니다.
② “무교병과, 쓴 나물”은 유월절에 참여하는 자의 자세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무교병처럼 누룩이 없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19절에서는 “칠 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 하십니다.
이점을 신약에서는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고전 5:7)고 말씀합니다. “쓴 나물”의 의미는 애굽에서 받은 고난을 잊지 않게 하시려는 뜻이 있겠습니다만 보다더 유월절에 참여하는 자는 주님의 고난에도 참여해야함을 나타냅니다. 이점을 신약에서는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고 말씀합니다.
③ 너희는 “먹을지니”(11상) 하셨는데 그렇다고 아무나 다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먹지 못하리라”(45)는 구별이 있습니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유월절 어린양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제 즉 화목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나”(43) 하시는 것입니다.
④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하십니다. 이는 매우 긴박한 상황을 나타내는 묘사인데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는 만반의 자세를 갖추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이점은 출애굽 당시에만 해당되는 말씀은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눅 12:35)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의 주를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처음 난 것을 다 치리라
“내가 그 밤에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처음 난 것을 다 치겠다”(12)고 말씀합니다. 왜 처음 난 것, 즉 장자를 치시겠다고 하시는가?
① “장자”란 대표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1장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 앞에서는 “다 죄 아래”(롬 3:9) 있고 그러므로 “온 세상이 심판 아래”(롬 3:19)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를 치심은 장자 안에서 모두가 죽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②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표하여 죽으심으로 우리 모두가 죽은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 8:2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넘어 가리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13하) 하십니다. 이 부분이 핵심 중에 핵심입니다. 이스라엘도 “죄 아래, 심판 아래” 있기는 예외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①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하십니다. 그냥 넘어가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피를 볼 때에”, 이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집 안에 있는 자들을 “피를 통하여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② 피를 통하여 본다는 것은 그 집안에 있는 자들도 죽은 것으로 여겨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와 관련이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곧 이 때(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를 볼 때)에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5-26), 하나님은 “넘어 가실지라도” 그 피를 보심으로 자기의 공의를 지키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③ 그러므로 피를 통해서 보신다는 말은 “죄 아래, 심판 아래”가 아니라 “은혜 아래”(롬 6:14)있다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있다는 뜻인 것입니다.
셋째 단원(15-20)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너희는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15).
무교병을 먹으라
유월절과 무교절은 하나이면서도 둘입니다.
① 유월절은 14일 저녁 하루뿐입니다. 이는 유월절 양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얻는 것은 “단번에”(히 10:10) 이루어진 사실임을 나타냅니다.
② 그러나 무교절은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칠일 동안, 다시 말하면 계속되어야만 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단번에 이루어지나 성화의 삶은 평생을 계속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③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20) 하십니다. 이점이 유월절과 다른 점입니다. 성경은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유월절 제사는 오직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신 16:5-6) 즉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구원의 근거가 오직 갈보리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없음을 강력하게 시사해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무교병은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먹을지니라” 하십니다. 성화의 삶은 삶의 현장에서 살아 가야할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상(둘째와 셋째단원)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바요 그토록 보여주기를 원하셨던 마지막 표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월절과 무교절”로 요약이 됩니다. 구원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가능하여졌고, 구원 얻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심같이 무교절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일에 교회로 모여서 유월절만을 지키고 집에서 준수해야할 무교절은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넷째 단원(21-28)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21-22).
본 단원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장로들에게 전달하는 내용입니다. 요약해보면
① 유월절 양을 잡으라(21).
②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라(22상).
③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22하).
④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그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사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라(23).
⑤ 유월절을 규례로 삼아 영원히 지키고 자녀들이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24-27).
자, 모세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①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28하) 합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증거입니다. 믿고 감사했습니다. 경배를 드렸습니다.
②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28) 합니다. 그들은 명하신 대로 “순종”을 했습니다. 이점에서 중요한 요점은 믿음은 순종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음은 믿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서 복음을 전파한 목적은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롬 1:5) 하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믿음과 순종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백성들이 한 일이란 “믿어 순종”한 일 뿐이었습니다. 성경은 이와는 반대의 경우도 경계하는 뜻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 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 4:2)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멘” 하고 돌아가 그대로 행하지 않았다면 “들은바 말씀이 유익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듣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안다고 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전하여 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화합하여 “머리 숙여 경배하고,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그들은 유월절 양을 잡아 그 피를 대문에 뿌리고 한 사람도 집 문 밖에 나가지 않고 그 안에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심판이 시행되는 두려운 밤에 유월절 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고 있었습니다.
여기 중요한 요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요동함이 없이 평온한 가운데 잔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① 어떤 체험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② 심지어 뿌려진 양의 피도 그들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피는 “내가 피를 볼 때에” 라고 하나님이 보시기 위해서 뿌려진 것임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무엇이 주어진 것입니까?
③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13)는 약속의 말씀뿐이었습니다.
④ 그들은 그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직 믿음”입니다.
다섯째 단원(29-36)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29).
바로가 비로소 항복합니다.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서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의 말대로 너희의 양도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31-32) 하고 “너희의 말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다시 강조합니다만 그동안 하나님의 능력이 약했기 때문에 바로가 항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이라는 핵심적인 표징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모든 초점을 여기로 모아가고 있었음을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 3:15)하고 선언하셨는데 무슨 방도로 뱀(바로, 사탄)의 머리를 상케 하셨는가를 명심, 또 명심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사역자들은 이를 증거하여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이를 잊지 않게 해주기를 열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재촉하였던지 발효되지 못한 반죽을 옷에 싸 가지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는 대로 주었습니다. 이점은 이미 ① 아브라함에게 예시하신 바요(창 15:14), ② 모세에게도 두 번(3:22, 11:2)이나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③ 하나님은 저들이 구하기 전에 자기 백성들의 필요를 아셨습니다. ④ 그들이 수고한 보상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⑤ 하나님을 섬기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36).
여섯째 단원(37-51) 여호와의 군대를 인도하여 내심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 만 가량이요(37).
“중다한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다” (38)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 삼십 년이라 사백 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다”(40-41)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구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신 이들을 가리켜 “여호와의 군대”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절에서도 “그 같은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5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들의 신분과 목적이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는 바로를 위하여 종노릇하였으나 이제부터는,
①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동시에 “여호와의 군대”라고 말씀합니다.
② 이는 이들이 싸워야할 싸움이 “여호와의 싸움”(삼상 25:28)임을 의미합니다.
③ 여호와의 싸움이란 여호와의 이름과 영예를 위한 싸움인 것입니다. 구속사역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과 명예가 걸려있는 것입니다.
④ 하나님께서 구속하여주심은 이제부터 여호와의 군대가 되어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싸우라는 소명(召命)임을 의미합니다. 이점을 신약에서는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롬 14:7-9)고 말씀합니다.
이상에서 상고한 대로 구약성경도 복음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중심에 와 있습니다. 신약성경이 아니라 구약성경, 그것도 율법인줄 알았던 모세 오경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복음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찬양 받으시기에 너무나 합당하십니다. 신실하신 여호와를 찬양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