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는 완장 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월공스님(함양시민연대 공동대표, 영선사 주지)
**아래 기고글 중 이슬람교에 관한 부분은 원고가 길어
함축적으로 줄여서 소식지에 나올 예정입니다....
이슬람교에 대한 기고는 거짓 없이 정확합니다.
여성들은 정말로 긴장하셔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여성 차별이 있다고들 불만들이 많은데요..
이슬람교 국가들에서는 여성에 대해 상상초월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입에 담기도 어려운 야만적인 행위들이 여성들에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행여라도 이슬람에 대해 환상 가지실까봐 글을 줄이지 않고 놔둡니다..**
현재 지구상에서는 수많은 끔직한 폭력들이 횡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IS(‘Islamic State’의 약칭, 의미는 ‘이슬람 국가’)라고 불리는 집단이
가장 극악무도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이 이처럼 상상할 수 없는 폭력을 쓰는 이유는 본래 호전적인 인종적 특성과 함께
처음부터 성장 발전까지 그리고 현재까지도 전쟁과 폭력으로 커 왔던
이슬람교의 폭력성이 만난 결과다.
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슬람교는
창시자인 ‘무함마드(마호메트, 모하메드라고도 하는데 이는 무함마드를 영어로 쓴 것을 번역한 표현으로
무함마드가 맞는 표현이다)’로부터 순전히 전쟁으로 시작해서 전쟁으로 크고,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고 당연히 폭력적 종교다.
다만 그런 이슬람교도 긍정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아랍부족의 통일이 그것이다.
무함마드 당시의 아랍은 부족마다 각각의 다양한 종교로 나뉘어 단결이 되지 않았다.
그런 아랍민족을 무함마드는 이슬람을 내세워 종교로서 통일하여 민족적 통일을 일궈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매우 이슬람은 미개한 종교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박박 우기지만
이슬람의 역사를 보면 순전히 칼로 찌르고 암살하는 피바람의 연속이었다.
도대체가 배울만한 점은 전~혀 없다.
본래 부족을 정치적으로 통합하기 위한 것이다 보니 종교적 근간도 상당히 취약하다.
진정한 진리라면 처음 말과 끝말이 같아야 하는데
이 종교의 논리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by-case)다.
즉 그 때 그 때마다 새로운 논리가 만들어지고 대응한다는 것.
위대하다 여기는 ‘코란’은 그렇게 계속 말을 바꿔가며 만들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랍을 떠난 이슬람교의 정체성이다.
이슬람은 아랍의 민족 통일을 위한 종교인데
처음에 아랍을 벗어난 것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이슬람교도들은 아랍과 아랍 외의 사람으로 신분이 다른 계급이 생겼다.
이슬람에 대해 치를 떨어야 할 사람들,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사람들은 ‘모든 여성’들이다.
이슬람은 여성들을 극악하게 통제하고 노예화 시킨다.
이런 것이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신도를 보유한 종교는 이슬람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무지하다.
알고 보면 통곡할 일인데도 그들은 아랍을 넘어서까지 이슬람을 받아들이고
독실하게 믿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모 유명인사가
이슬람교 입종 검토에 대한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더구나 그 사람은 여성이다.
나는 지금 종교적 편견으로 이런 글을 적고 있지 않다.
어디까지나 명확한 펙트를 알려드리고 있다.
조금만 공부해보면 그들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어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인지.
이슬람의 칼리프(제사장이면서 왕)들 중 온전하게 수명 마친 사람은 거의 없다.
거의 다 암살로 칼에 찔려 죽었고 미래에 대한 대비도 전혀 없었다.
창시자인 무함마드 급살을 맞고 후계자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이 죽었다.
이 정도인 이슬람이 무슨 세계종교로서 가치가 있단 말인가?
갑자기 이슬람 이야기를 하니 불을 토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의감의 발로다.
옳지 못한 것을 보고 어찌 그냥 넘어가겠는가?
본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IS(그 이전에는 탈레반)가 그런 극악무도한 짓을 하는 것에는
전술했듯이 유전적인 인종적 폭력성과 폭력을 정당화한 이념과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른 무지에서 기인했다.
이중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이념이다.
이슬람에서는 종교적인 것이 이념이 되었다.
이 이념들에 의해 또는 법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을
세칭 ‘완장주의’라 부른다.
완장(腕章)이란 ‘자격이나 지위 등을 나타내기 위하여
천이나 비닐로 만들어 팔에 두르는 띠’를 말하는데
이런 유형의 완장 외에 무형의 완장이 이념이나 종교다.
그 무형 완장의 폐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범위를 좁혀 우리는 어떨까?
우리 주변에 무수한 완장이 있었고 현재도 분명히 존재한다.
종교의 완장, 지역주의의 완장, 진보 보수의 완장,
세대갈등의 완장, 자본의 완장, 학력의 완장, 외모의 완장...
그 완장들로 우리는 끔직한 폭력을 경험했다.
가까이는 일제하 36년의 지옥,
해방 이후의 좌우익 대립,
제주 4.3사건, 6.25, 4.19, 5.16, 월남파병,
유신독재(維新獨裁), 군부독재, 광주항쟁....
저렇게 끔직한 일을 겪고도 우리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IS의 폭력? 제주 4.3사건에서 벌어졌던 폭력이 그만 못할까?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자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내면을 보면 IS 보고 욕한 것이 민망할 정도로 끔직한 폭력이었다.
더구나 그 사건은 일제하의 노예를 벗어난지 얼마 안 되어 터진 사건이다.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벌어진
국가권력의 끔찍한 폭력 사건)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후로도 지금까지 누군가 완장을 휘날리면
대다수 우리는 다시 그 완장 밑으로 모인다.
도대체 왜 그러세요?
이렇게 완장에 휘둘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심성 교육의 부재에서 찾아야 한다.
사람답게 대접하고 사람답게 대접받고 살아야 하는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지 않았고 배우지 않아서 생긴일이다.
또 더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점이 없어서다.
완장의 옳고 그름은 어떻게 판단되어야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공존공생(共存共生-더불어 살기)’의 원칙에 부합하느냐다.
이 사회는 ‘내’가 있고 ‘남’이 있다.
이들을 합치면 ‘우리’가 된다.
모든 완장주의는 이 기준으로 봐야 한다.
나와 남을 분리하면 언제나 갈등 구조다.
모두가 행복하려면 ‘우리’가 행복하면 된다.
그 ‘우리’를 위협하는 완장은 모조리 없애 버려야 한다.
이것은 폭력이 아니라 정의다. 이 원칙을 명심하자.
그래야 완장에 휘둘려 너와 내가 죽어 나가는 꼴을 면할 수 있다.
대선이 코앞인데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은 모조리 솎아 내야 한다.
그런 것을 말하는 자들은 사람취급도 하지 말자. 그래야 우리가 산다.
완장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놈들의 무식한 본성을 살펴보자.
지역 완장주의. ‘○○도 놈’. 이게 그렇게 낙인 찍을 일인가?
거꾸로 올라가보자.
특정 지역에 산다고 하여 우리 스스로는 특정 지역으로 뭉쳐진 순혈주읜가?
특정 지역이 어딨나 다 섞였지. 모조리 섞여 있다.
그러면 지역주의로 어느 지역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어머니를, 할머니를, 아버지를, 할아버지를 욕하는 극악무도한 놈이 되는 거다.
도대체 그런 짓 왜 하세요?
기가찬 것은 그 말도 안 되는 논리에 놀아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