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에 나타난 기독교적 세계관
朴大山 목사
청교도문학(淸敎徒文學)을 말할 때에 시(詩)에서 밀턴을 꼽는다면, 산문(散文)에서는
17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존 버니언’(1628~1688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국의 가난한 땜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겨우 초등학교 교육밖에 받지 못했지만,
영국 명설교가로 이름을 날렸고, 성경 다음으로 널리 읽히는 소설 「천로역정」
(天路歷程, 1678년작)을 집필했습니다.
천로역정의 원제는 ‘한 순례자의 현세로부터 내세로 가는 전진’이란 긴 제목이었습니다.
한 신자가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해 겪게 되는 영적 고난의 편력을, 꿈 이야기를 빌어
상징적으로 표현한 내용입니다. 비유법을 사용해 자칫 지루하기 쉬운 것을 버니언은
그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이야기를 활기차게 전개해 나갔습니다.
이 작품의 특색은 세가지입니다.
첫째, 알레고리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미덕 ․죄 ․사랑 ․욕심 ․악마 등의 추상적인
개념을 의인화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엄숙하고 종교적인 감정으로만 일관하지 않고, 인간적 어리석음에 대한 풍자로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 줍니다.
셋째, 이 책 속에 전개되는 거의 모든 사건 하나하나에 대해 사건의 의미와 결부되는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해박한 지식과 당당한 논리를 전개한 신학의 대 저술들이 뿌리내린 영국의 정신풍토에서,
버니언의 책이 기독교 신자들의 사상과 감정을 뒤흔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추상적인
이론을 통해, 신자의 영혼이 고투하는 보편적인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 속엔 유머, 상식, 비애도 있고 실패와 절망도 있지만, 결국 올바른 신앙의 길을 걷고자
하는 영혼을 위한 격려가 골격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존 버니언은 60년의 생애에 12년간의 옥중생활을 했고, 60여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는 완고하며 성미가 급한 사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까지는 삶의 에너지를 현실을
비판하고 저주하는 일에 모두 쏟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순간 개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자 그는 삶의 에너지 전부를 복음전파에 사용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의 인생 유전처럼….
그는 곳곳에서 종교 집회를 통해 수많은 대중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영국에서는 비국교도가 종교 집회를 갖는 것은 불법 행위요, 반역 행위로
주했습니다. 오직 국교 외의 다른 종파 설교를 않겠다는 선서를 한 자에게만 설교권이
주어졌습니다.(1660년, 찰스 2세) 그러나 이 같은 선서를 거부한 채 성경의 영감 넘치는
메시지만을 전하기로 각오했던 번연은 그 즉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비록 감옥에
갇혀 있었으나 자유를 사랑했던 그는 결코 절망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감옥에 갇힌 몸으로 있으면서도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성경을 통해 매일
매순간 살아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감격을 맛보았으며, 그는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죄인의 두목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풍부한 은총'(1666년)이라는 자서전을 집필하기까지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12년 동안 베드포드(Bedford) 감옥 생활 동안에도 구두끈을 만들어 밖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책임감 있고도 강인한 삶을 살았던 그였습니다.
이렇게 절망하지 않으며 강한 정신력과 생활력을 잃지 않았던 것이 그 혼자만의 힘이었겠는가?
결코 그는 날마다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늘상 하나님이 더불어 계셨으며 바로
그 하나님께서 실망과 좌절의 현장에 처한 그에게 용기와 격려를 북돋아 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후원은 그가 1675년 재차 감옥에 갇힐 때에도 여전했습니다.
그는 국왕의 채찍을 오히려 그리스도 증인의 확실한 증표로 삼고 하나님께 대한 지고한
신앙의 심지를 더욱 돋우웠던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불타는 신앙심으로 인해 기독교 신앙을 더욱 널리 더 효과적으로 증언하는
역설(paradox)의 기적을 창출했으니, 그게 바로 「천로역정」이란 불후의 명작입니다.
「천로역정」은 수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독교 신앙을 전하는 데 있어 대중적이고
효과적인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습니다. 번연의 이같은 위업은 바로 그의 삶 중심에 늘상
거하셨던 크신 하나님의 격려의 덕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로역정」은 그 당시
문학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채, 18세기 내내 순수문학의 반열에 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낭만주의 운동이 끝난 후에야 선천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그의 설교체 산문이 청교도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