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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기망양(多岐亡羊) : 여러 갈래 길에서 양을 잃었다는 뜻. 학문의 길이 너무 다방면으로 갈리어 진리를 얻기 어려움. 방침이 많아서 도리어 할 바를 모름.
【동의어】망양지탄(亡羊之歎). 【유사어】독서망양(讀書亡羊).
[출전] ‘열자(列子)’의 ‘설부편(說符篇)’.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주장했던 양자(楊子)와 관계되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양자의 이웃집 양 한마리가 달아났다. 그래서 그 집 사람들은 물론 양자(楊子)네 집 하인들까지 청해서 양을 찾아 나섰다. 하도 소란스러워서 양자가 물었다. “양 한 마리 찾는데 왜 그리 많은 사람이 나섰느냐?” 양자의 하인이 대답했다. “예, 양이 달아난 그 쪽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모두들 지쳐서 돌아왔다. “그래, 양은 찾았느냐?” “갈림길이 하도 많아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양을 못 찾았단 말이냐?” “예, 갈림길에 또 갈림길이 있는지라 양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통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양자(楊子)는 우울한 얼굴로 그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한 현명한 제자가 선배를 찾아가 사실을 말하고 스승인 양자(楊子)가 침묵하는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그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큰길에는 갈림길이 하도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고, 학자는 다방면(多方面)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학문이란 원래 근본은 하나였는데 그 끝에 와서 이 같이 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인 근본(根本)으로 돌아가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시고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라네.”
다다익선(多多益善) :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음. 【동의어】다다익판(多多益辦).
[출전]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淮陰候列傳)’.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은 명장으로서 천하통일(天下統一)의 일등 공신인 초왕(楚王) 한신(韓信)을 위험한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계략을 써서 그를 포박한 후 회음후(淮陰候)로 좌천시키고 도읍 장안(長安)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어느 날 한(漢) 고조(高祖)는 한신과 여러 장군들의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한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과인은 몇 만의 군사를 통솔할 수 있는 장수감이라고 생각하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폐하께서는 한 10만쯤 거느릴 수 있으실 것으로 생각하나이다.” “그렇다면 그대는?” “예, 신(臣)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옵니다.” “다다익선? 하하하…” 고조(高祖)는 한바탕 웃고 나서 물었다. “다다익선이라? 그대가 어찌하여 10만의 장수감에 불과한 과인의 포로가 되었는고?” 한신(韓信)은 이렇게 대답했다. “하오나 폐하, 그것은 별개의 문제이옵니다. 폐하께서는 병사의 장수가 아니오라 장수(將帥)의 장수(將帥)이시옵니다. 이것이 신이 폐하의 포로가 된 이유이옵니다.”
다문박식(多聞博識) : 많이 듣고 넓게 공부함. 견문이 넓고 학식이 많음을 말한다.
다사제제(多士濟濟) : 여러 선비가 모두 뛰어남. 훌륭한 사람도 옆에 인재가 많아야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단금지교(斷金之交) : 친구 사이의 사귀는 정이 두텁고 깊은 것. 둘이 마음을 합하면 쇠라도 자를 수 있는 사이.
단기지계(斷機之戒) : 학문을 중도에 그만둠에 대한 훈계. 맹자의 어머니가 짜던 날을 끊어 중도에 그만두면 아무런 공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교훈에서 유래.
단기지교(斷機之敎) :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는 것은 짜던 베의 날을 끊는 것과 같다.
단도직입(單刀直入) : 군말은 떼고 바로 본론(本論)으로 들어감. 홀몸으로 칼을 휘두르며 적진으로 거침없이 쳐들어 감. 요점을 바로 풀이해간다는 말로 쓰인다.
단말마(斷末魔) : 불교용어. 임종시를 말함. 숨이 끊어질 때의 고통. 숨이 끊어질 때 내뱉는 짧은 비명.
단사두갱(簞食豆羹) : ‘단(簞)’은 밥을 담는 그릇. ‘두(豆)’는 국을 담는 완(椀) 같은 것으로 음식의 분량이 적은 것을 말한다.
단사표음(簞食瓢飮) : 대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물. 즉, 청빈한 생활에 만족함.
단순호치(丹脣皓齒) : 붉은 입술과 흰 치아, 즉,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
단장(斷腸) :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 【유사어】구회지장(九回之腸).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의 ‘출면(黜免)’.
진(晉)나라의 환온(桓溫)이 촉(蜀) 땅을 정벌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양자강 중류의 협곡인 삼협(三峽)을 통과할 때 있었던 일이다. 환온(桓溫)의 부하 하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서 배에 실었다. 이 때 어미 원숭이가 뒤따라왔으나 물 때문에 배에는 오르지는 못하고 강가에서 슬피 울부짖었다. 이윽고 배가 출발하자 어미 원숭이는 강가에 병풍처럼 펼쳐진 벼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배를 쫓아왔다. 배는 100여 리쯤 나아간 뒤 강기슭에 닿았다. 어미 원숭이는 서슴없이 배에 뛰어올랐으나 그대로 죽고 말았다. 그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 애통한 나머지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이 사실을 안 환온(桓溫)은 크게 노하여 원숭이 새끼를 붙잡아 매에 실은 그 부하를 매질한 다음 내쫓아 버렸다고 한다.
단장보단(斷長補短) : 긴 곳을 잘라 짧은 곳을 메워 들쭉날쭉한 것을 곧게 한다.
담대심소(膽大心小) : 담대하면서도 치밀한 주의력을 가져야 함. 문장을 짓는 데 경계하는 말로도 쓰인다.
담소자약(談笑自若) : 위험이나 곤란에 직면해 걱정과 근심이 있을 때라도 변함없이 평상시와 같은 태도를 가짐. 【동의어】태연자약(泰然自若).
당구풍월(堂狗風月) : 서당개 3년에 풍월한다.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그 부문에 함께 끼여 오래 있으면 어느덧 영향을 입어 다소나마 알게 된다는 뜻.
당동벌이(黨同伐異) : 도리와는 관계없이 자기와 같은 패의 사람은 덮어놓고 돕고, 자기와 다른 패의 사람은 물리침.
당랑거철(螳螂拒轍) : 제 힘으로 당하지 못할 것을 생각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려 함을 이르는 말. 【동의어】당랑당거철(螳螂當拒轍), 당랑지력(螳螂之力), 당랑지부(螳螂之斧). 【유사어】당랑규선(螳螂窺蟬).
[출전] ‘한시외전(韓詩外傳)’, ‘문선(文選)’.
‘한시외전(韓詩外傳)’의 ‘권팔(券八)’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춘추시대 제나라 장공(莊公)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장공이 수레를 타고 사냥터로 가던 도중 웬 벌레 한 마리가 앞발을 도끼처럼 휘두르며 수레바퀴를 칠 듯이 덤벼드는 것을 보았다. “허, 맹랑한 놈이로군. 저건 무슨 벌레인고?” 장공(莊公)이 묻자 수레를 모는 어자(御者)가 대답했다. “‘사마귀(당랑(螳螂))’라는 벌레이옵니다.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지 물러설 줄을 모르는 놈인데, 제 힘도 생각지 않고 강적에게 마구 덤벼드는 버릇이 있사옵니다.” 장공(莊公)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렇게 말했다. “저 벌레가 인간이라면 틀림없이 천하무적의 용사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미물이지만 그 용기가 가상하니, 수레를 돌려 피해 가도록 하라.”
한편 ‘문선(文選)’에서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이 삼국시대로 접어들기 직전, 진림(陳琳)이란 사람이 유비(劉備) 등 군웅(群雄)에게 띄운 격문(檄文)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조조(曹操)는 이미 덕을 잃은 만큼 의지할 인물이 못 된다. 그러니 모두 원소(袁紹)와 더불어 천하의 대의를 도모함이 마땅할 것이다. 지금 열악한 조조의 군사는 마치 ‘사마귀가 제 분수도 모르고 앞발을 휘두르며 거대한 수레바퀴를 막으려 하는 것(당랑거철(螳螂拒轍)’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당랑재후(螳螂在後) : 사마귀가 참새가 뒤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하고 매미 잡을 욕심에 구멍으로 들어간다는 말. 한갓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덤비고 해를 입을 것을 생각지 않으면 재화(災禍)를 당하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 : 큰 인물이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
【동의어】대기난성(大器難成). 【유사어】대재만성(大才晩成).
[출전] ‘삼국지(三國志)’의 ‘위지(魏志)’, ‘후한서(後漢書)’, ‘노자(老子)’.
‘삼국지(三國志》’의 ‘위지(魏志)’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라는 풍채 좋은 유명한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촌 동생인 최림(崔林)은 외모가 시원치 않아서인지 출세를 하지 못하고 일가친척들로부터도 멸시를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염(崔琰)만은 최림(崔林)의 인물됨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큰 종(鐘)이나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게 아니네. 그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대성(大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너도 그처럼 ‘대기만성(大器晩成)’하는 그런 형이야. 두고 보라구. 틀림없이 큰 인물이 될 테니.” 과연 최염의 말대로 최림(崔林)은 마침내 천자(天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한편 ‘후한서(後漢書)’에 보면,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때 마원(馬援)이란 명장이 있었다. 그는 변방의 관리로 출발하여 복파장군(伏波將軍)까지 된 인물이다. 마원(馬援)이 생전 처음 지방관리가 되어 부임을 앞두고 형인 최황(崔況)을 찾아가자 그는 이렇게 충고했다. “너는 이른바 ‘대기만성(大器晩成)’ 형이야. 솜씨 좋은 대목이 산에서 막 베어 낸 거친 원목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좋은 제목으로 다듬어 내듯이, 너도 네 재능을 살려 꾸준히 노력하면 큰 인물이 될 것이다. 부디 자중(自重)하여라.” 한편 ‘노자(老子)’에서는 ‘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으며,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대방무격 대기만성(大方無隔 大器晩成))는 말이 있다. 큰 인물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동소이(大同小異) : 크게 생각하면 같고 작게 분류하면 다르다.
대분망천(戴盆望天) : 머리에 동이를 이면 하늘을 볼 수 없는데 보려고 한다. 즉, 두 가지 일을 겸행하고자 하나 할 수 없음을 뜻한다.
대서특필(大書特筆) : 특히 드러나게 큰 글자로 적어 표시함.
대의멸친(大義滅親) : 대의를 위해서는 친족도 멸한다는 뜻으로, 국가나 사회의 대의를 위해서는 부모 형제의 정(情)도 돌보지 않는다는 말.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은공삼사년조(隱公三四年條)’.
춘추시대인 주(周)나라 환왕(桓王) 원년(元年)의 일이다. 위(衛)나라에서는 공자(公子) 주우(州沓)가 환공(桓公)을 시해하고, 스스로 군후의 자리에 올랐다. 환공(桓公)과 주우(州沓)는 이복 형제간으로 둘 다 후궁의 소생이었다.
한편 선군(先君) 장공(莊公) 때부터 충의지사로 이름난 대부 석작(石澯)은 일찍이 주우(州沓)에게 역심(逆心)이 있음을 알고 아들인 석후(石厚)에게 주우(州沓)와 절교하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석작(石澯)은 환공의 시대가 되자 은퇴하였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석작이 우려했던 ‘주우(州沓)의 반역(叛逆)’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반역은 일단 성공했으나 백성과 귀족들로부터의 반응이 좋지 않자 석후(石厚)는 아버지 석작(石澯)에게 그에 대한 해결책을 물었다. 석작은 이렇게 대답했다. “역시 천하의 종실(宗室)인 주(周)왕실을 예방하여 천자(天子)를 배알(拜謁)하고 승인을 받는 게 좋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천자를 배알할 수 있을까요?” “먼저 주왕실과 각별한 사이인 진(陳)나라 진공(陳公)을 통해서 청원하도록 해라. 그러면 진공께서 선처해 주실 것이다.” 이리하여 주우와 석후가 진(陳)나라로 떠나자 석작(石澯)은 진공에게 밀사를 보내어 이렇게 고하도록 일렀다. “바라옵건대, 주군(主君)을 시해한 주우(州沓)와 석후(石厚)를 잡아 죽여 대의를 바로잡아 주시오소서.” 진(陳)나라에서는 그들 두 사람을 잡아 가둔 다음 위(衛)나라에서 파견한 입회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했다고 한다.
대의명분(大義名分) : 인류의 큰 의를 밝히고 맡은 바 분수를 지키어 정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대장부(大丈夫) : 남자다운 남자 위대한 남자.
대재소용(大材小用) : 큰 재목(材木)이 작게 쓰이고 있다. 사람을 부리는 데 있어서 제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음을 뜻한다. 역설적으로 큰 재목은 큰일에 쓰여야 한다는 말로도 쓰인다.
덕무상사(德無常師) : 덕(德)을 닦는 데는 일정한 스승이 없다.
덕본재말(德本財末) : 사람이 살아가는 데 덕(德)이 뿌리가 되고 재물(財物)은 사소한 부분이다.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 : 덕스러운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 말로 형상화된 도(道)는 늘 원래의 도(常道)가 아니다.
도규(刀圭) : 가루약을 뜨는 숟가락. 의술.
도량(度量) : 사물을 너그럽게 용납하여 처리할 수 있는 넓은 마음과 깊은 생각.
도로무공(徒勞無功) : 헛되게 수고만 하고 보람이 없음.
도로무익(徒勞無益) : 헛되이 애만 쓰고 이로움이 없음.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 복숭아와 오얏이 천하에 가득하다. 우수한 문하생(門下生)이 많음을 비유한 말이다. 복숭아와 오얏은 그 열매의 맛이 좋아 따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기에 후배를 교육하거나 자식을 가르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도리불언하자성혜(桃李不言下自成蹊) : 복숭아와 오얏은 그 열매의 맛이 좋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그 아래로 많은 사람들이 따먹으러 오게 되므로 자연히 길이 생긴다. 덕행이 있는 사람은 무언으로 남을 심복시킴을 비유하는 말이다. 훌륭한 스승 아래로 우수한 인재가 많이 모이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도미(掉尾) : 꼬리를 흔듦. 끝판에 더욱 세차게 활동함.
도방고리(道傍苦李) : 사람들에게 시달림을 받으며 길가에 서있는 오얏나무. 사람에게 버림 받는 것을 비유한다.
도불습유(道不拾遺) : 나라가 태평하게 잘 다스려지고 풍습이 아름다워서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가지지 아니함.
도외시(度外視) : ①안중에 두지 않고 무시함. ②문제 삼지 않음. 불문에 붙임.
【유사어】치지도외(置之度外). 【반의어】문제시(問題視).
[출전] ‘후한서(後漢書)’의 ‘광무기(光武記)’.
후한의 시조 광무제(光武帝)때의 일이다. 광무제 유수(劉秀)는 한(漢)나라를 빼앗아 신(新)나라를 세운 왕망(王莽)을 멸하고, 유현(劉玄)을 세워 황제로 삼고 한(漢)나라를 재흥하였다. 대사마(大司馬)가 된 유수(劉秀)는 그 후 동마(銅馬)와 적미(赤眉) 등의 반란군을 무찌르고 부하들에게 추대되어 제위에 올랐으나, 천하통일(天下統一)을 향한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이윽고 제(齊) 땅과 강회(江淮) 땅이 평정되자 중원(中原)은 거의 광무제(光武帝)의 세력권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벽지인 진(秦) 땅에 웅거하는 외효와 산간오지인 촉(蜀) 땅의 성도(成都)에 거점을 둔 공손술(公孫述)만은 항복해 오지 않았다. 중신들은 계속 이 두 반군의 토벌을 진언했다. 그러나 광무제는 이렇게 말하며 듣지 않았다. “이미 중원은 평정(平定)되었으니 이제 그들은 ‘문제시할 것 없소(도외시(度外視))’.” 광무제는 그동안 함께 많은 고생을 한 병사들을 하루 속히 고향으로 돌려보내어 쉬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도원결의(桃園結義) : 유비(劉備)와 관우(關羽), 장비(張飛)가 복숭아밭에서 의형제를 맺음.
[출전]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전한(前漢)은 외척(外戚)에 의해 망했고, 후한(後漢)은 환관(宦官)에 의해 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한(後漢)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황건적(黃巾賊)의 봉기에서 찾을 수 있다. 문란한 국정과 거듭되는 흉년에 백성들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여 태평도(太平道)의 교조 장각(張角)의 깃발 아래로 모여 들어 누런 수건을 머리에 두른 도적떼가 되었는데, 그 수는 무려 5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를 진압하기 위한 관군(官軍)은 이들 난민들 앞에서는 너무도 무력했다. 당황한 정부에서는 각 지방 장관에게 의용병을 모집해서 이를 진압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유주(幽州) 탁현에서 의용군 모집 공고문을 본 유비(劉備)는 나라 걱정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때 유비(劉備)를 끄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장비(張飛)였고, 그 다음에 관우(關羽)를 만났다. 그들 셋은 주막에 가서 술을 마시며 서로 나라 걱정을 하다가 의기투합(意氣投合)하여 나라를 위해 함께 일어서기로 결심을 했다. 장비의 요청(要請)으로 그의 집 후원 복숭아밭에서 세 사람이 의형제(義兄弟)를 맺고 천하를 위해 일하기로 맹세를 했다. 이어서 세 사람은 3백 명의 젊은이들을 이끌고 황건적 토벌에 가담하게 되었으며, 그 후 제갈공명을 군사로 맞아들여 촉(蜀)나라를 세우게 되었다. 이렇게 조조(위(魏)나라), 손권(오(吳)나라)과 함께 삼국시대가 펼쳐지게 되었다.
도원경(桃源境) : 속세를 떠난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
도주지부(陶朱之富) : 최고의 부자.
도증주인(盜憎主人) : 도둑은 주인이 밉게 마련이다. 즉, 자기와 반대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미워지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감정이다.
도처선화당(到處宣化堂) : 가는 곳마다 대접을 잘 받음을 이르는 말이다. ‘선화당(宣化堂)’은 관찰사가 사무를 보는 ‘정당(政堂)’을 말함.
도청도설(道聽塗說) : 길거리에 떠도는 뜬소문. 【유사어】가담항설(街談巷說), 구이지학(口耳之學), 유언비어(流言蜚語).
[출전] ‘논어(論語)’의 ‘양화편(陽貨篇)’, ‘한서(漢書)’의 ‘예문지(藝文志)’.
공자(孔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것(도청이도설(道聽而塗說))은 덕을 버리는 것이다(덕지기야(德之棄也)).』 길거리에서 들은 말(도청(道聽))을 마음에 간직하여 자기 수양의 양식으로 삼지 않고 길거리에서 바로 다른 사람에게 말해 버리는 것(도설(塗說))은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좋은 말은 마음에 간직하여 자기 것으로 하지 않으면 덕을 쌓을 수 없다는 말이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고, 천도(天道)를 지상(地上)에서 행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던 공자(孔子)는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스스로 억제하고 인덕(仁德)을 쌓으며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덕을 쌓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르고 있다.
후한시대, 반고(班固)가 엮은 ‘한서(漢書)’의 ‘예문지(藝文志)’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대체로 소설(小說)의 기원은 임금이 하층민의 풍속을 알기 위해 하급 관리에게 명하여 서술토록 한데서 비롯되었다. 즉, 세상 이야기라든가 길거리의 뜬소문은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도청도설(道聽塗說)’ 무리가 지어낸 것이다.』 소설이란 말은 이런 의미에서 원래 ‘패관소설(稗官小說)’이라고 일컬었으나 나중에 그냥 ‘소설(小說)’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순자(荀子)’의 ‘권학편(權學篇)’에는 다언(多言)을 이렇게 훈계하고 있다.
『‘소인배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 곧바로 입으로 흘러나오고(구이지학(口耳之學)’ 마음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귀와 입 사이는 불과 네 치(구이사촌(口耳四寸)’이니 이처럼 짧은 거리를 지날 뿐이라면 어찌 일곱 자(칠척(七尺)) 몸을 훌륭하게 닦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 학문을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닦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배운 것을 금방 다른 사람에게 고하고, 자기를 위해 마음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군자의 학문은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하지만 소인배의 학문은 인간을 못 쓰게 망쳐 버린다. 그래서 묻지 않은 말도 입 밖에 낸다. 이것을 ‘잔소리’라 하며, 하나를 묻는데 둘을 말하는 것을 ‘수다(요설(饒舌))’라고 한다. 둘 다 잘못되어 있다. 참된 군자(君子)는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도 오른쪽 귀로 들은 것을 왼쪽 사람에게 털어놓는 수다쟁이 정보통이 많다. 더구나 그 정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사이에 점점 꼬리를 끌게 마련이다. ‘이런 무리는 해가 있을 뿐’이라며 공자(孔子), 순자(荀子)는 경계하고 있다.
도탄지고(塗炭之苦) : 진구렁이나 숯불에 빠진 고통. 몹시 고생스러움, 몹시 곤란한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도행역시(倒行逆施) : 거꾸로 행하고 거슬러 시행함. 곧 도리(道理)에 순종하지 않고 일을 행하며, 상도(常道)를 벗어나서 일을 억지로 함을 뜻한다.
독목불성림(獨木不成林) : 홀로 선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 여럿이 힘을 합쳐야 일이 된다는 의미.
독서망양(讀書亡羊) : 책을 읽느라 양을 잃어버렸다. 마음이 밖에 있어 도리(道理)를 잃어버리는 것. 다른 일에 정신을 뺏겨 중요한 일이 소홀하게 되는 것.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意自見) : 책을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으면 뜻은 저절로 알게 됨.
독서삼도(讀書三到) : 독서를 하는 데 세 가지 행위에 이르러야 한다. 독서는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 깨우쳐야 함.
독안룡(獨眼龍) : ①애꾸눈의 영웅 또는 용맹한 장수. ②애꾸눈의 고덕(高德)한 사람.
[출전] ‘오대사(五代史)’의 ‘당기(唐記)’, ‘당서(唐書)’의 ‘이극용전(李克用傳)’.
당(唐)나라 18대 황제인 희종(僖宗)때의 일이다. 산동(山東) 출신인 황소(黃巢)는 왕선지(王仙芝) 등과 반란을 일으킨 지 5년 만에 10여만의 농민군을 이끌고 마침내 도읍인 장안에 입성했다. 그리고 스스로 제제(齊帝)라 일컫고 대제국(大齊國)을 세웠다.
한편 성도(成都)로 몽진(蒙塵)한 희종(僖宗)은 돌궐족(突厥族) 출신인 맹장 이극용(李克用)을 기용하여 ‘황소(黃巢)토벌’을 명했다. 당시 4만 여에 이르는 이극용의 군사는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사정없이 맹공을 가했기 때문에 반란군은 ‘갈까마귀의 군사가 왔다!’며 심히 두려워했다고 한다. 19대 황제인 소종(昭宗)이 즉위한 이듬해 마침내 반란군은 토멸되었고, 황소(黃巢)도 패사(敗死)하고 말았다. 이극용은 그 공에 의해서 농서 군왕(郡王)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극용은 숙적 주전충(朱全忠)과 정권을 다투다가 패하고 실의 속에 세상을 떠났다.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주전충(朱全忠)은 20대 황제인 애종(哀宗)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후양(後梁)을 세웠으나 16년 후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李存泗:후당(後唐)의 초대 황제인 장종(莊宗))에게 멸망했다. 맹장 이극용에 대해 ‘오대사(五代史)’의 ‘당기(唐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극용은 젊고 효용(驍勇)했는데 군중(軍中)에서는 이아아(李鴉兒)라고 일컬었다. 그의 눈은 애꾸눈이었다. 그가 귀한 자리에 오르자 일컬어 ‘독안룡(獨眼龍)’이라고 했다.』
돌불연불생연(突不燃不生燃) :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 동쪽 집에서 음식 먹고 서쪽 집에서 잠을 잔다. 즉, 유랑생활을 하다. 걸식하다.
동가홍상(同價紅裳) : 값은 값이면 다홍치마.
동공이곡(同工異曲) : 같은 기술과 재주를 가졌더라도 표현된 형식이나 맛은 서로 다름. 표면은 다른데 내용이 같다는 뜻으로 경멸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동근연지(同根連枝) : 같은 뿌리와 잇닿은 나뭇가지. 즉, 형제자매(兄弟姉妹)를 일컫는 말이다.
동기상구(同氣相求) : 기풍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은 서로 동류를 찾아 모인다.
동동촉촉(洞洞屬屬) : 매우 공경하고 삼가 하여 조심스러운 모양.
동량지재(棟梁之材) : 기둥이나 들보가 될 만한 인재로 집안이나 나라를 맡아 다스릴 만한 인재.
동문동궤(同文同軌) : 천하를 통일하는 것을 뜻함. ‘동문(同文)’은 문자를 통일하게 하는 것이고, ‘동궤(同軌)’는 법을 같게 한다는 것이다.
동문서답(東問西答) : 물음과는 딴판인 엉뚱한 대답.
동병상련(同病相憐) : 같은 사정에서 서로 걱정하는 것. 과부 설움은 동무 과부가 안다.
【유사어】동기상구(同氣相救), 동류상구(同類相救), 동악상조(同惡相助), 동우상구(同憂相救), 동주상구(同舟相救), 오월동주(吳越同舟), 유유상종(類類相從).
[출전] ‘오월춘추 합려내편(吳越春秋 闔閭內篇)’.
전국시대인 기원전 515년, 오(吳)나라의 공자(公子) 광(光)은 사촌동생인 오왕(吳王) 요(僚)를 시해한 뒤, 오왕 합려(闔閭)라 일컫고 자객을 천거하는 등 반란에 적극 협조한 오자서(伍子胥)를 중용했다. 오자서는 7년 전 초(楚)나라의 태자소부(太子小傅) 비무기(費無忌)의 모함으로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있던 아버지와 역시 관리였던 맏형이 처형당하자, 복수의 화신이 되어 오나라로 피신해 온 망명객이었다. 그가 반란에 적극 협조한 것도 실은 유능한 광(光, 합려(闔閭))이 왕위에 오름으로써 초(楚)나라 공략의 길이 열릴 것이며, 초나라를 공략해야 부형(父兄)의 원수를 갚을 수 있으리라는 원려(遠廬) 때문이었다.
그 해 또 비무기(費無忌)의 모함으로 아버지를 잃은 백비가 오(吳)나라로 피신해 오자 오자서는 그를 오왕 합려(闔閭)에게 천거하여 대부(大夫) 벼슬에 오르게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오자서는 대부 피리(被離)에게 힐난을 받았다. “백비의 눈길은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호랑이와 같으니(응시호보(鷹視虎步)), 이는 필시 살인할 악상(惡相)이오. 그런데 귀공은 무슨 까닭으로 그런 인물을 천거하였소?” 피리(被離)의 말이 끝나자 오자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뭐 별다른 까닭은 없소이다. 하상가(河上歌)에도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말이 있듯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백비를 돕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요.” 그로부터 9년 후 합려(闔閭)가 초(楚)나라를 공략하여 대승함으로써 오자서와 백비는 마침내 부형의 원수를 갚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오자서는 불행히도 피리의 예언대로 월(越)나라에 매수된 백비의 모함에 빠져 분사(憤死)하고 말았다.
동분서주(東奔西走) : 동쪽으로 뛰고 서쪽으로 달린다.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님.
동상이몽(同床異夢) : 한 침상에 누워 다른 꿈을 꿈. 같은 처지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함.
동선하로(冬扇夏爐) : 겨울의 부채와 여름의 화로. 아무 소용없는 물건을 말한다.
동성상응(同聲相應) :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여 어울린다. 의견을 같이 하면 자연히 서로 합치게 된다는 의미.
동성이속(同性異俗) : 사람의 성질은 본래는 같으나 습관에 따라 변함을 뜻함.
동이불화(同而不和) : 겉으로는 동의를 표시하면서도 내심은 그렇지 않음.
동주상구(同舟相救) : 사람은 알건 모르건 친하건 미워하건 상관없이 위급한 경우를 함께 하면 서로 도와주게 된다는 의미.
동호직필(董狐直筆) : 죽음을 무릅쓰고 역사를 사실대로 기록한 동호의 곧은 붓. 곧, ①정직한 기록. 기록을 맡은 이가 직필하여 조금도 거리낌이 없음을 이름. ②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적어 역사에 남기는 일.
【동의어】태사지간(太史之簡).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선공이년조(宣公二年條)’.
춘추시대 진(晉)나라에 있었던 일이다. 대신인 조천(趙穿)이 무도한 영공(靈公)을 시해했다. 당시 재상격인 정경(正卿) 조순(趙盾)은 영공이 시해되기 며칠 전에 그의 해악을 피해 망명길에 올랐으나 국경을 넘기 직전에 이 소식을 듣고 도읍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사관(史官)인 동호(董狐)가 공식 기록에 이렇게 적었다.
『‘조순(趙盾), 그 군주(君主)를 시해하다!』 조순(趙盾)이 이 기록을 보고 항의하자 동호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대감이 분명히 하수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감은 당시 국내에 있었고, 또 도읍으로 돌아와서도 범인을 처벌하거나 처벌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감은 공식적으로는 시해자(弑害者)가 되는 것입니다.” 조순(趙盾)은 그것을 도리라 생각하고 그대로 뒤집어쓰고 말았다.
훗날 공자(孔子)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호는 훌륭한 사관이었다. 법을 지켜 올곧게 직필했다. 조선자(趙宣子)도 훌륭한 대신이었다. 법을 바로잡기 위해 오명을 감수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국경을 넘어 외국에 있었더라면 책임은 면했을 텐데…”
두남일인(斗南一人) : ‘두남(斗南)’은 북두칠성의 남쪽. 즉, 온 천하에서 제일가는 현재(賢才)를 의미한다.
두문불출(杜門不出) : 집 속에서만 틀어 박혀 세상 밖에 나가지 아니함.
두소지인(斗筲之人) : 한 말 두 되 들이의 대그릇 같은 사람. 즉, 사람의 식견이나 그릇이 좁은 것을 비유한다.
두점방맹(杜漸防萌) : 애당초 싹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는다. ‘점(漸)’은 사물의 처음, ‘맹(萌)’은 싹, 곧 좋지 못한 일의 조짐이 보였을 때 즉시 해로운 그것을 제거해야 더 큰 해(害)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두찬(杜撰) : 저술(著述)한 것에 틀린 곳이 많아서 믿을 수 없는 것을 일컫는다.
득롱망촉(得壟望蜀)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동의어】망촉지탄(望蜀之歎), 평롱망촉(坪壟望蜀). 【유사어】거어지탄(車魚之歎), 계학지욕(谿壑之慾), 기마욕솔노(騎馬欲率奴), 차청차규(借廳借閨).
[출전] ‘후한서(後漢書)’의 ‘광무기(光武紀)’, ‘삼국지(三國志)’의 ‘위지(魏志)’.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劉秀)가 처음으로 낙양에 입성하여 이를 도읍으로 삼았을 무렵의 일이다. 당시 전한(前漢)의 도읍 장안을 점거한 적미지적(赤眉之賊)의 유분자(劉盆子)를 비롯하여 농서의 외효, 촉(蜀)의 공손술(公孫述), 수양(睡陽)의 유영(劉永), 노강(盧江)의 이헌, 임치(臨淄)의 장보(張步) 등이 할거(割據)하고 있었는데, 그 중 유분자(劉盆子), 유영(劉永), 이헌(李憲), 공손술(公孫述) 등은 저마다 황제를 일컫는 세력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그 후 외효와 공손술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무제에게 토벌되었다. 외효는 광무제와 수호(修好)하고 서주상장군(西州上將軍)이란 칭호까지 받았으나 광무제의 세력이 커지자 촉(蜀) 땅의 공손술과 손잡고 대항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성(成)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하는 공손술(公孫述)은 외효의 사신을 냉대하여 그냥 돌려보냈다. 이에 실망한 외효는 생각을 바꾸어 광무제와 수호를 강화하려 했으나, 광무제가 신하될 것을 강요하므로 외효의 양다리 외교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건무(建武) 9년, 광무제와 대립 상태에 있던 외효가 병으로 죽자, 이듬해 그의 외아들 외구순(氓寇恂)이 항복했다. 따라서 농서 역시 광무제의 손에 들어왔다. 이때 광무제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만족할 줄 모른다더니 이미 ‘농을 얻고도 다시 촉을 바라는구나(득롱망촉(得壟望蜀))’.” 그로부터 4년 후인 건무 13년, 광무제는 대군을 이끌고 촉(蜀)을 격파하고 천하 평정의 숙원(宿願)을 이루게 되었다.
광무제 때로부터 약 200년 후인 후한(後漢) 헌제(獻帝)말 즉, 삼국시대가 개막되기 직전의 일이다. 헌제(獻帝) 20년, 촉을 차지한 유비(劉備)가 강남의 손권(孫權)과 천하 대사를 논하고 있을 때, 조조(曹操)는 단숨에 한중(漢中)을 석권하고 농(壟) 땅을 수중에 넣었다. 이때 조조의 명장(名將) 사마의(司馬懿:진(晉)나라를 세운 사마염(司馬炎)의 할아버지)가 진언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진격하면 유비(劉備)의 촉도 쉽게 얻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자 조조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란 만족할 줄 모른다고 하지만, 이미 농을 얻었으니 촉까지 바라지 않소.” 이리하여 거기서 진격을 멈춘 조조는 헌제 23년, 한중으로 진격해 온 유비의 촉군(蜀軍)과 수개월에 걸친 공방전을 벌이다가 결국 '계륵(鷄肋)'이란 말을 남기고 철수하고 말았다.
득어망전(得魚忘筌) : 목적이 달성되면 목적을 위해 사용한 도구를 잊는다.
득일망십(得一忘十) : 한 가지를 얻고 열 가지를 잃어버림. 기억력이 좋지 못함을 뜻한다.
등고자비(登高自卑) : 높은 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낮은 곳부터 밟아야 한다. 일을 하는 데는 반드시 차례를 밟아야 한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스스로를 낮춘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등루거제(登樓去梯) : 누상(樓上)에 오르게 하여 놓고 오르고 나면 사다리를 치운다. 즉, 처음에는 남을 기쁘게 해놓고 뒤에 가서는 괴롭게 한다.
등용문(登龍門) : 잉어가 오르면 용(龍)이 된다는 전설, 즉, 사람이 영달하는 관문. 곧, ①입신출세의 관문을 일컫는 말. ②영달의 비유. ③주요한 시험의 비유. ④유력자를 만나는 일. 【반의어】용문점액(龍門點額), 점액(點額).
[출전] ‘후한서(後漢書)’의 ‘이응전(李應傳)’.
후한(後漢) 말 환제(桓帝)때 정의파 관료의 지도적 인물에 이응(李應)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청주자사(靑州刺史)와 촉군태수(蜀郡太守), 탁료장군(度遼將軍)을 거쳐 하남윤(河南尹)으로 승진했을 때 환관의 미움을 받아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후 유력자의 추천으로 사예교위(司隸校尉)가 되어 악랄한 환관 세력과 맞서 싸웠다. 그러자 그의 명성은 나날이 올라갔다. 태학(太學)의 청년 학생들은 그를 경모하여 ‘천하의 본보기는 이원례’라 평했으며, 신진 관료들도 그의 추천을 받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알고, 이를 ‘등용문(登龍門)’이라 일컬었다.
【주】‘용문(龍門)’은 황하(黃河) 상류의 산서성(山西省)과 섬서성(陝西省)의 경계에 있는 협곡의 이름인데 이곳을 흐르는 여울은 어찌나 세차고 빠른지 큰 물고기도 여간해서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단 오르기만 하면 그 물고기는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따라서 ‘용문에 오른다’는 것은 극한의 난관을 돌파하고 약진의 기회를 얻는다는 말인데 중국에서는 진사(進士)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입신출세의 제일보라는 뜻으로 ‘등용문(登龍門)’이라 했다. 등용문에 반대되는 말을 ‘점액(點額)’이라 한다. ‘점(點)’은 ‘상처를 입는다’는 뜻이고, ‘액(額)’은 이마인데 용문에 오르려고 급류에 도전하다가 바위에 이마를 부딪쳐 상처를 입고 하류로 떠내려가는 물고기를 말한다. 즉, 출세 경쟁에서의 패배자, 중요 시험에서의 낙방자(落榜者)를 가리킨다.
등태소천(登泰小天) : 사람은 주어진 지위에 따라 보는 눈이 달라진다.
등하불명(燈下不明) : 등잔 밑이 어둡다. 가까운 데 있는 것을 도리어 잘 모름.
등화가친(燈火可親) : 등잔불을 가까이하여 책을 보기에 좋은 때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