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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장자권!(18) : 장자여! 행복한 가족으로 살라!”
+ 본 문 : 시 편 128편 1절 - 6절 (구약성경 898쪽)
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아멘!
서로 축복 / “나는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의 근원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복의 근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장자 – 하나님의 자녀가 가지는 권세를 회복하고, 그 권세를 누리며 살아갑시다.
지난주일 예배의 말씀으로 “장자여! 100% 강점을 활용하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저를 따라 선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인 나는 / 하나님이 주신 / 강점으로 살리라! 아멘!”
오늘 주일은 “장자여! 행복한 가족으로 살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저를 따라 선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장자인 나는 / 행복한 가족으로 / 살아가리라! 아멘!”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것이 있다면, 서로가 만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항상 같이 있어 평소에 많이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떻게 저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고,
한 집에서, 한 이불 덮고, 한 솥밥 먹고, 지지고 볶으면서, 그렇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신기하지 않습니까?
저 분이 내 어머니, 아버지가 되고, 저 아이들이 나를 닮은 아들, 딸이 되었는지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 많은 사람 중에 그가 한 부모를 둔 내 형제가 되고, 내 자매가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신비합니다.
미국의 조산한 쌍둥이 이야기입니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는데, 한 아이가 자꾸만 아파 죽어갑니다.
간호사의 제안으로 인큐베이터에서 두 쌍둥이를 꺼내서, 나란히 서로 바라보도록 눕혀 놓았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건강한 언니가 아픈 동생을 끌어안더랍니다. 동생이 살아났어요.
무엇을 말합니까? 가족의 사랑입니다. 이들이 서로 가족인 것은 알았을까요? 그럴리가 없습니다.
아직 간난아이라서 서로를 몰랐어도 둘이 함께 있어서 서로 힘이 된 것입니다.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족은 신비한 관계입니다. 그리고 신비한 관계인 가족이 함께 더불어 사는 가정도 신비입니다.
피를 나눈 가족만이 가족이 아니라, 입양된 가족도 위대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대학의 한 한국인 교수가 미국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자녀가 없어,
한국에서 여자 아이를 입양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전혀 듣지를 못합니다.
이 아이를 고쳐주기 위해서, 부모가 오랫동안 기도하다가 아이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여자 아이에게서, 바이올린을 하면서 숨겨진 천재성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7살 때 예루살렘 심포니와 협연을 할 정도였고, 12살 때에는 미국 카네기홀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에 와서도 KBS와도 협연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울컥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이유는 그 아이의 바이올린 실력보다는, 그 아이를 데려다 가족으로 키운 부모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입양되지 못해 가족이 없었더라면 버려졌을지도 모르는 아이, 그러나 그에게 가족이 생겼기에,
천재적인 바이올린 연주자로서의 그가 가진 잠재력이, 그의 가족의 사랑으로 꽃을 피게 되었잖아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게 바로 가족입니다. 그리고 가족으로 인한 놀라운 기적의 신비입니다.
오늘 가정의 달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하여, 가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대한가를 깨닫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가정의 축복은 무엇일까요? 가족은 우리에게 무엇이고,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인 시편 128편은 가족이 무엇이고, 가족의 축복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가정의 핵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1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아멘!
여호와를 경외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므로 복을 받기를 원하는 성도의 가정은,
과연 어떤 가정이어야 할까요?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복되고 형통하게 되는 복, 여호와께서 시온,
곧 교회와 가정에서 주시는 복을 받고, 평생에 번영을 보며, 자식의 자식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며,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의 복을 받는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가족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함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2절, 3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아멘! - 함께 하는 가족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사랑의 가장 좋은 특징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도 함께 있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결혼식 때 서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랑, 신부가 서약할 때, 대부분 주례자가 이렇게 묻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 아플 때나 건강할 때, 늙거나 병들 때에도 항상 함께 하겠습니까?”
그러면 함께 하겠다는 고백으로 “예!” 라고 대답합니다. 여기 결혼한 분들 다 그렇게 서약했습니다.
우리 해남중앙교회에 속한 부부들은, 모두 다 서약한 대로 항상 함께 잘 살아가고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서약문을 각자 씁니다. 어떤 젊은 부부가 혼인서약을 이렇게 썼습니다.
주보 뒷면에 올려놓았으니, 집에 가서 아내와 남편 각자가 이 서약문대로 다시 서약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아내가 남편에게 한 서약입니다. “우리 결혼하면 당신이 양말을 뒤집어 벗어놔도 뭐라 하지 않을게요.
대신 뒤집힌 채로 빨테니까 뒤집어서 신어요. 쉬는 날 당신이 늦잠 자고 있을 때에 일부러 깨워서,
쓰레기를 버리라고 심부름 시키진 않을께요. 대신 잠에서 깨면 밀린 집안일, 설거지는 도와줘야 해요.
바쁜 직장생활이지만 취미생활 하나 정도는 같이 하도록 해요. 또 백화점을 백 바퀴를 돌지언정,
충동구매는 하지 않을께요. 맘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절대 핀잔 주지않고 항상 존경께요. 사랑합니다.”
또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서약했습니다. “우리 결혼하면 치약은 중간부터 눌러서 안 짜고,
꼭 아래쪽부터 짤게요. 같이 외출할 때 당신이 화장하고 옷 입느라 시간이 걸려도 짜증부리지 않으며,
쉬는 날 당신이 오전 내내 자느라고 밥 안주면, 난 알아서 짜장면 시켜먹든지, 라면 끓여 먹을께요.
양말 두 켤레 사느라 백화점을 백 번 돌아도 화내지 않을께요. 또 술 먹고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절대 바람 피는 짓은 안 할께요.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이 괜히 결혼했다고 짜증부리면서 화를 내도,
맞받아 화내기보다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실천하며, 항상 배려하며 살께요. 사랑합니다.”
바로 남편과 아내의 서약을 딱 압축해서 요약하면, 언제 어디서나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다.
함께 있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함께 먹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체합니다. 어느 가정에서 초등학생 아들이 크게 잘못해서 아빠에게 눈물이 나도록 혼났습니다.
마침 식사 시간이 되어, 아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아빠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오늘 잘못한 것도 있고 하니, 네가 기도해라.” - 아들이 갑자기 기도하려니 생각이 안 났습니다.
그러다가 아들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원수와 함께 밥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식사는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장 외로운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요즘 말로 “혼밥” - 혼자 밥 먹는 사람입니다.
혼자 밥을 먹으면 맛도 없고 건강에도 안 좋습니다. 우리 노인대학에서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혼자 밥 먹는 게 싫어서입니다.
혼자 먹으면 밥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음식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는 음식입니다.
밥상을 차리느라 수고는 했지만, 그 속에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집밥이 좋은 것입니다.
주부 여러분! 수고스럽지만 힘들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가족들을 행복하게 하는 수고임을 아십시오.
그렇습니다. 사랑과 정성과 수고가 담긴 밥상에 둘러 앉아, 함께 먹는 식탁이 최고의 밥상입니다.
보십시오. 집나간 탕자가 돌아오자, 아버지가 제일 먼저 한 것이 송아지를 잡아 밥상을 차렸습니다.
그 동안 함께 밥을 먹지 못했던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당연히 아들을 씻기기 전에 밥상부터 차렸습니다.
식구가 뭡니까? 밥 食, 입 口,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 식구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말입니다.
외식보다는 온 가족이 함께 둘러 앉아 손을 잡고 머리 숙여 기도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읍시다.
그러나 함께 있는 가족은 다만 먹기 위해서만 함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화가 필요합니다.
가족이 함께 마음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대화가 밥상머리에 있어야 합니다. 대화가 있어야 가족입니다.
좀 오래 됐습니다만, 텔레비젼 개그 프로그램에 “대화가 필요해!” 라는 재미있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셋이 밥상머리에 마주 앉아 밥을 먹습니다. 아버지가 말합니다. “밥 묵자.”
그리고 침묵이 한참 이어집니다. 아버지가 말합니다. “동민이 너, 요즘 너 어디 갔었어? 통 안보이데.”
아들이 말합니다. “아버지에, 수학여행 다녀왔슴더.” 아버지는 아들이 수학여행 것도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대화를 많이 합니까? 부부의 30%는 거의 이야기를 안 하고 산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초등학생 3분의 1, 세 명 중에 한 명은 방과 후 집에 가도,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여성가족부에서 낸 통계인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녀와 하루에 많아야 30분 정도 대화를 한답니다.
대화의 내용도 문제였습니다. 대화의 내용은 주로 “밥 먹었니? 밥 먹어라. 옷 입어라. 학원 갔니?
학원가라. 공부해라. 숙제는 했니?” - 하는 일상생활의 대화요. 대화도 단답형 대화가 전부랍니다.
생각해 보면, 함께 살아가는 자녀들,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하면 부모 품을 떠나 살아가게 됩니다.
저도 아이들을 결혼시켜 떠나보내면서 제일 아쉬웠던 것이, 많은 시간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더 많이 같이 있어 주고, 더 많이 이야기를 들어 주고,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함께 있을 때 더 많이 같이 있어주고, 더 많이 사랑의 대화를 나누십시오.
그렇습니다. 가정은 가족이 함께 있으면서, 사랑도,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함께 나누는 곳입니다.
너무 슬플 때, 가정에서 조차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면, 도대체 우리는 세상 어디에 가서 울어야 할까요?
가정에서 함께 파안대소하며 웃지 못한다면, 세상 어디에서 기뻐할까요? 가족은 함께 있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가족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서로서로 돌보아 주는 사람들입니다.
가족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말해 주는 에베소서 6장 1절부터 4절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자녀들아! 주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아멘!
“순종하고, 공경하고, 양육하고” - 이 모든 말들은 한마디로 가족은 서로 돌보아 준다는 것입니다.
요즘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하는 가정파괴는, 밖에서보다 가정 안에서 더 심각하게 일어난 일들입니다.
부모의 사업실패는 자녀와 함께 동반자살로 이어지고, 부부관계의 파경은 고스란히 자녀 폭행으로,
자녀 폭행은 결국 자녀 살인으로, 자녀 성추행으로, 아니면 자녀들의 가출로 이어지는 것을 봅니다.
왜들 이러는지 상상이 안 갑니다. 누가 부모는 하늘이 보낸 천사라고 했는지 이해가 안갈 정도입니다.
물론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의 돌봄을 받고 자랍니다. 부모의 돌봄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보호하고, 사랑하고, 양육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는 우리를 안고 업고 얼러 주셨습니다.
핏덩이 때 부모는 24시간, 365일, 정말 힘들게, 한 순간도 한 눈을 팔지 않고 우리를 돌보았습니다.
자라면서 우리가 나쁜 친구와 사귀는지. 나쁜 일, 나쁜 습관,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돌봅니다.
요즘은 아이들을 적게 낳아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아이를 많이 낳았을 때는 먼저 태어난 형이나,
누나들이 동생들을 먹이고, 달래고, 가르치고, 업어 키웠습니다. 그래서 우애가 더 돈독했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아, 교회는 이렇게 가정처럼 돌봄이 있는 곳이로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먼저 저 같은 목회자는 성도 여러분들을 돌보는 돌보미입니다. 말씀으로, 기도로, 심방으로 돌봅니다.
그리고 먼저 믿는 사람, 특별히 항존 직분자들인 장로님, 권사님, 안수 집사님들도 돌보미들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목회자들이 성도들을 말씀으로 먹이고, 달래고, 가르치고, 기도로 업어 키우는 곳이요.
우리 항존 직분자들이나, 먼저 믿는 사람들이 나중 믿는 사람들을 업어 키우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나중 믿는 믿음 약한 사람들이, 먼저 믿은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을 보면서 자라게 됩니다.
“아. 예배는 저렇게 드리는 것이구나. 아, 저렇게 기도하는 것이구나, 아, 저렇게 십일조 하는구나.
아, 믿음의 남편은 아내에게, 믿음의 아내는 남편에게 저렇게 대하고, 믿음의 부모는 저러는구나.”
새벽마다 정말로 애절하게 기도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하도 살려달라고 애절하게 기도해서, 저는 그분 가족 중에 누군가 죽을 병에 걸린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셀 목장의 목원들의 영혼을 살려 달라고, 그토록 애절하게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런 셀 목자를 보면서 알았습니다. “아, 저게 바로 셀 목원들을 업어 키우는 목자의 심정이구나.”
여러분! 이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영적 가정이라고 부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먼저 믿는 분들, 특별히 우리 항존 직분자들이신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그리고 셀 목자, 부목자 여러분, 그리고 교회학교 교사 여러분! 물론 우리 교역자 여러분도 포함됩니다.
여러분이 업어 키운 믿음의 동생들, 믿음의 자녀들이 지금 우리 교회 안에 몇이나 됩니까?
여러분이 등에 업고 고생 고생해서 키워 믿음이 자라고, 세례 받고 집사 된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그렇습니다. 교회는 영적 가정이요. 교인들은 영적 가족입니다. 가족은 서로 돌봅니다. 그러면서 자랍니다.
셋째로, 가족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서로 격려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가족은 서로 격려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4절을 보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그렇습니다. 가족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 격려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말로 하는 격려가 정말로 중요합니다.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씀합니다. 잠언 16장 24절 말씀입니다. “선한 말은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잠언 25장 1절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여러분! 아멘입니까?
그렇습니다. 격려는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할 수 있다고 믿어 줄 때 훨씬 더 잘 합니다.
사람이 무슨 힘으로 사는지 아십니까? 밥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격려의 힘으로 삽니다.
미국 와싱톤에 가면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있습니다. 거기에 에이브러함 링컨이 암살당하던 날 지녔던,
개인 물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링컨” 이라고 수놓인 작은 손수건, 연필 깎기, 칼, 면실로 짠 안경집,
5달러짜리 지폐가 있었고, 특이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링컨을 칭찬하는 신문 기사 조각입니다.
이런 내용의 신문조각이었습니다. “링컨은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치가 중의 한 사람이다.”
왜 링컨은 호주머니에 그 낡은 신문조각을 가지고 다녔을까요? 링컨도 격려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대를 이끌면서 많은 비난과 협박을 받았던 링컨에게도 격려가 필요했습니다.
사람으로서의 가치와 존엄, 인정을 받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탁월한 격려자였습니다. 투박하기만 하고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베드로에게,
“시몬아! 너는 게바다. 반석이다. 베드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초대교회의 반석이 되었잖아요?
제자 요한을 보고는 무엇이라고 격려했습니까? “너는 우레의 아들이다.” - 요한은 그 말씀대로,
밧모섬에 귀양갔으나, 거기서 하늘로부터 우레와 같은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쓴 책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이외에도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격려한 대로 됩니다. 축복하고 선포한 대로 됩니다.
제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리고 오래 목회하면서 발견한 세 가지 격려의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참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나쁜 일이 생기면 항상 “나 때문이야.” 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항상 “우리 때문이야.” / 정말 좋은 일이 생기면 “당신 때문이야.”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래서 한 번 복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나쁜 일이 생기면 “나 때문이야.” / 좋은 일이 생기면 “우리 때문이야.”
정말 좋은 일이 생기면 “당신 때문이야.” /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면 아무 문제가 안 생깁니다.
덧붙여 늘 이렇게 말하며 선포하십시오. “아빠! 감사해요. 엄마! 고마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여보! 같이 살아줘서 감사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러면 웬수 같은 인간도 좋게 보입니다.
“아이들아!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감사하다. 고맙다. 사랑하다.” 그러면 자녀들도 성공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와서 저를 만나면 “목사님! 제가 이렇게 은혜 받고 사는 것은 목사님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을 만나면 이렇게 웃으며 인사합시다. “같은 교회에 다니 것을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아멘!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므로 복을 받기를 원하는 여러분의 가정에,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형통하게 되는 복, 여호와께서 시온 - 교회와 가정에서 주시는 복,
평생에 번영을 복을 받고, 자식의 자식들이 잘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의 복이 가정과,
교회 안에서 돌보며 격려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