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이가 들어오면서 가족사랑 더 깊어졌죠"
지난 5일 서울 쌍문동 엄세영(10·창경초등 3년)양 집에선 노래자랑이 한창이었다. 막내 세영이와 동갑내기인 장애인 어린이 박경인양이 애교스런 표정으로 마루를
휘저으며 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경인이에게 세영이 아버지, 어머니는 ‘아저씨, 아줌마’가 아닌
‘아빠, 엄마’였다.
경인이는 정신지체장애인.
여기에 언어장애 3급 판정도 함께 받았다.
세영이네 가족이 경인이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건
3년 전 중학생이었던 태원이가 어머니 이혜경(41)씨와 함께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서울 노원구 하계동 정신지체장애인
생활시설인 ‘동천의 집’을 찾으면서.
경인이는 태어나자마자 보호시설에서 지냈고 몇 년 뒤 ‘동천의 집’으로
오게 됐다.
‘동천의 집’은 정신지체장애인 생활시설로
장애인 120여명과 교사 등 직원 45명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
아이들에게 헌신적인 이혜경씨에게 ‘동천의 집’측에서
“위탁가정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의사를 물었고 이씨는 승낙했다.
경인이는 ‘언어장애’를 앓고 있기 때문에 장애아들 틈에서 말하는 능력이
나아지긴 어려웠기에 일반가정 위탁생활은 교육에 도움이 된다.
경인이는 처음엔 이씨 집 환경이 낯설었는지 정을 붙이기보다 식구들을
괴롭히는 쪽에 가까웠다.
화장실 뒤처리도 할 줄 모르고 자고 있는 태원이를 새벽부터 깨워 놀자며
심통을 부리거나,
같은 말을 수십 번 더 묻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경인이와 가족들은 서로에게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세영이와 친구가 됐고,
오빠 태원이한테 공부도 배웠다.
세영이 아버지 엄종수(48)씨는 동네 도서관에 같이 데려가 책도 골라주고
계곡 여행에도 데리고 갔다. 주말을 이용해 세영이네와 함께 보내던 경인이는
지난 여름방학 때는 거의 세영이네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2년여.
경인이는 현재 장애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언어능력이 상당히 회복됐다.
말이 새고 발음이 가끔 부정확하지만 의사소통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동천의 집 선생님들도 경인이의 발전 속도는 놀라울 정도라고 전했다.
활발한 성격의 경인이는 “여군이 되고 싶다”며 그날 배운 동화책을 줄줄 읽어
보였다.
세영이네 이야기를 들은 다른 어머니들이 속속 위탁가정을 신청해 지난
1년 동안 ‘동천의 집’에서만 열 가정이 참여했다.
이혜경씨는 “남의 아이 키우기도 쉽지 않은데 장애까지 있으니까
걱정 많이 했죠”라며,
“그러나 키워 보니 알겠어요.
우리의 작은 관심이 그 아이들에겐 정말 큰 도움이 될 수 있답니다”라고 했다.
장애를 겪는 우리 이웃을 향한 도움의 손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10일자 조선일보에 장애를 극복하는 오천호군 등 장애 어린이 사연이 소개된
이후 경기도 평택시 동방어린이동산에는 지원금을 보내주겠다는 온정이 답지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 안성시 A씨는 아들 이름으로 후원금을 지원하고,
딸은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A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들이 고등학생이라 시간이 없어 후원금만 약속했다”며
“아이들에게 우리 이웃의 삶을 체험하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