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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
고희가 되었으니 뭐하는 곳인가싶어 어슬렁 가 봤다. 15층 아파트 건물 아래 1층이다. 관리사무소 바로 옆에 있는 경로당으로 개소식을 한다기에 많이들 왔는가 했다. 노인들은 별로 없고 행사를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좌우 몽골식 천막에는 구경나온 아파트 주민들과 구청 관계자들이 음식을 나눠먹으며 떠들썩하다.
아직 겨울이 덜 지나간 2월 하순이어서 좀 쌀쌀한 날씨다. 그런데 땀을 뻑뻑 흘리며 무희들이 춤을 열심히 추고 있다. 악악 소리치며 마치 보건체조 하듯 단체 태권도 하는 모습이다. 발랄하고 싱싱하게 한바탕 넘어가는 흥겨운 예쁜 처녀들의 춤사위를 넋을 잃고 보았다.
밴드마스터 중에는 기타로 고향의 봄을 느리게 연주하는데 얼마나 정겨운지 돼지 수육을 입에 넣고 씹질 못하고 멍히 듣고만 있다. 노인네들을 즐겁게 할 거라고 노래를 계속 부르는 중년 남자가 있어 저러면 목이 아플 텐데 쓸데없는 걱정도 해 본다. 입주자와 동대표들과 부녀회,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애써 분위기를 맞추려 분주하다.
경로회장이 노래하고 이어서 여러 회원들이 잇따라 부른 뒤 축의금을 내놓는다. 그 쿵작거리는 잔치 음악소리 요란한데도 꿈쩍도 안 하는가 삥 둘러선 아파트 사람들은 왜 이리 시끄럽나 나와 보지도 않는다. 노인들도 꽤 있을 법 한데 얼씬거리지 아니하니 웬 일인가. 아직 나는 갈 때가 아니라고 애써 피하는가.
하기야 나도 지나다 보고 들렀으니 홍보가 덜 되었나보다. 그래도 그렇지 이리 시끄러운데 들앉아 있을 수 있나. 선물도 주고 음료수와 주안상, 과일 등 먹거리가 지천이다. 이곳 국회의원도 오고 기관장들이 와서 너도나도 축하하는데 정작 노인네와 주민들은 썰렁하다. 이래도 되나 어디 가려다가 빠지면 빈 의자가 생길 것 같아 떠날 수 없다.
회장 총무를 찾아 인사하고 경로당을 잘 꾸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방 중에 하나를 탁구나 당구장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싶어서이다. 잘 되리라 여기고 가입비와 월회비를 냈다. 아내는 너무 일찍 가는게 아니냐 한다. 무슨 노인이 이리 젊은가라고.
매달 월례회를 가지면서 봤다. 한 열 명 정도 오는 사람만 왔다. 한 번은 할머니 한분이 앉더니 “참 매정하니더 어찌 명절이 가도 어버이날이 되도 와 보는 사람이 없니껴 내가 다른데 보니 이러잖디더” 하며 했던 말을 또 하고 하면서 시정을 요구했다. 늘 와서 큰 경로당을 지켜주고 점심을 해 먹는데 모두 집에서 갖고 와 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의자를 방에 들여다 놓고 바닥에 앉는 것보다 편하게 지나려니 어떤 젊은 여자들이 달려들어 홱 빼내 거실에 옮겨놓으니 우린 힘이 없어 대항도 못하고 이리 살아요. 하는 말에 측은함이 배어나왔다. 그들은 집에만 있자니 답답해서 또래 친구를 만나 얘기하면서 즐겁게 지나려고 여길 찾은 것이다.
한번은 회장이 만나자 해서 나갔다. 경로당에서 같이 일하자며 권유했다. 부녀회원인가도 둘이나 나와서 사정하는 것이다. 몽골에 갈 일이 있어서 어렵다고 잘라 말하고 자리를 뜨니 좀 미안한 맘이 들었다. 또 한 번은 월례회 때 일이 꼬이다보니 말썽이 생겼는데 어버이날 회식을 하자며 조르다가 안 되고 되레 나댄다는 말만 들었다며 억울하단다.
처음이어서 힘들어 하자 위로의 말을 건냈다. 어디든 임원들을 위로해 주고 따라 주는 일이 중요하다. 회원들을 감싸고 그 말을 들어주려는 노력도 있어야 함을 일렀다. 연말 총회 때 회장 총무가 모두 바빠서 경로당 일을 못 하겠다고 회장을 선출하자며 그대로 내 이름을 호명하면서 짝짝짝 박수를 쳤다. 다 짜여 진 일 같았다.
아들이 수술을 받으면서 가려 했던 외국도 미뤄졌다며 하던 임원이 계속하길 말했지만 막무가내다. 아내가 무얼 그리 빨리 경로당에를 다니는가 뭐라 할 때 그만 둘 걸 생각했다. 그러나 짝짝짝 손뼉치고 밀어붙이는 바람에 꼼짝없이 경로당 일을 보게 됐다.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안 한다는데 내 맘에 조금 있었나 맡아 하게 됐다. 아내도 그럴 눈치가 보였다.
참 매정하니더... 이러잖디더. 말이 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먼저 자주 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부엌과 화장실 모서리의 실리콘 작업부터 했다. 고장 난 데를 하나하나 고쳐나가고 가구와 안락의자 오락 기구며 주방기기들을 협찬 받아 불편이 없도록 채워 나갔다. 집에 쓰지 않는 것들을 무엇이든지 가져오는 회원들이 고마웠다.
매일 열 명 정도 회원들이 찾아와서 갖고 온 음식으로 점심을 해 먹으며 정을 쌓아갔다. 낮으로 기거하던 연로한 분들이 너무 고마워한다. 쥐구멍에 볕들었단 말을 할 때 잘 했구나 생각이 든다. 자고나면 연락이 온다 만나자고... 재미를 붙였는가 하루도 안 보면 견딜 수 없게 됐다. 만나봐야 시금털털한 그 얘기들이 그리 맘에 들었단 말인가.
다들 그 나이에 앉으면 할 말이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해를 넘긴다. 무슨 말인지 여자들끼리 저리 자지러진다. 아내는 배를 잡고 웃을 때마다 오줌이 나오고 기침이 쏟아져서 애를 먹는단다. 그리 자주 만나 말하면 얘기가 바닥이 날 텐데 뭣이 계속 나오느냐니까 끝이 없단다.
구청 노인복지관 임원회의에 총무와 함께 갔다. 구청장이 나와 일일이 손잡으며 좀 지났지만 새해 인사를 했다. 강단에 올라서 지회장으로부터 140개소 경로당 임원들이 강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정중히 등록증을 교부받았다. 가까운 곳 여러 식당에 나눠 점심을 들었는데 버스로 옮겨주고선 가 버리자 차가 있는 데까지 걸으니 빤한 게 왜 그리 멀고먼지.
매월 정한 날짜에 임원회의와 총회, 임시총회, 월례회를 가지며 입회비와 월회비를 받으라 했다. 수시로 쌀을 보내며 냉난방비와 운영비를 지급한단다. 아파트는 관리사무소에서 전기와 수도 도시가스를 지원해 주니 지급할까말까 망설이다가 올 해는 그냥 주기로 했다니 다행이다.
아파트에서 경로당을 근사하게 지어 큰 방이 두 개 거실과 주방이 널찍하다. 보꾹엔 냉난방기가 4개나 설치되어 틀면 따뜻한 바람이 쏟아져 내리고 여름엔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도시가스가 들어와 주방엔 온갖 취사가 가능하고 각방마다 난방을 켜면 따스하게 지날 수 있다.
입주대표회장이 수상기와 냉장고 소파를 들여놓고 여러 회원들이 우선 사용하기 좋은 전기장판과 전기안마기, 혈액정화기 등을 계속 갖고 와 살판났다. 아쉬운 게 없다. 관리소장이 고장 난 곳을 일일이 찾아 모두 고쳐주어서 편리하다. 건축업자가 경로당을 마음먹고 잘 지어 준 것 같다. 화장실이 자동으로 돼 있다.
볼일 보고 나면 저절로 물이 내려가고 손을 대면 수돗물이 나온다. 문을 여닫으면 자동으로 불이 켜지고 꺼진다. 이것이 불편해서 손으로 하던 버릇이 되어 오히려 고쳐달란다. 주방 환풍기가 돌지 않는다 해서 보니 당기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밀면 꺼지고 앞으로 하면 켜지는 것을 몰랐다.
부회장과 감사, 고문을 두라 해서 정했는데 그중 한 분이 못 하겠다 해서 뺄 때 인쇄물을 밤늦게까지 고쳐야 했다. 내일 낮에 임시총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밤새 잠이 오지 않는다. 몇 명이나 올까 생각이 들어서 그만 설쳤다. 맡은 지 겨우 한 달 가까이 됐다. 휴대전화문자에 참석을 부탁하면서 바위고개와 과수원길, 꽃밭에서 노래를 하모니카로 불렀다.
40여 개 승강기에 안내문을 붙여서 홍보도 했다. 당일 아침에 전화를 걸어 오셔요 하니 일터에 나왔다 누굴 만난다 멀리에 있다 풍병으로 나갈 수 없다 등 불참을 말할 때 오늘도 작년처럼 열 명이 채 안 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어쩌나 첫 모임인데 내 꼴이 뭐가 되겠나. 나를 믿고 잘 되겠지 하며 기대를 크게 갖고 있는데 이러면 안 되지.
여태 이리 시들하니 다른 부서에서 경로당을 점령해 자기네 사무실로 쓰고 누구나 들어와 음식을 지어먹으며 잠을 자고 간다. 또 무슨 보따리와 짐들을 아무데나 들여놓아 되게 어설프다. 어찌 이름을 노인정이나 노인회라 칭해서 모두 그렇게 부르고 있다. 자생단체인 다른 회와 같이 임의단체를 잘못 부르고 있다. 혐오시설로도 여기는 것 같아 씁쓸하다.
잘 맡았다 불쌍한 경로당을 이끌어 가야겠다고 마음먹기 시작한다. 마침 아내도 내 일이라면 적극 도와주는데 이번에는 더 따라주었다. 감기기침을 콜록콜록 끝없이 하면서도 청소와 주방일, 회의 자료를 면밀히 살피고 조언을 하며 굿윌을 소개하여 잘 되기를 바랐다. 예산안에서 걱정을 같이 하는 게 나보다 열성이다.
누가 마침 이수도에서 잡은 청어를 많이 보내와 회를 치고, 금방 만든 따끈한 시루떡을 올려 마치면 바로 들 수 있게 근사한 잔치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둘 모여 빙 둘러앉아 정시에 시작했다. 여자 총무가 낭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사회를 보게 됐다고 소개했다. 환호의 박수를 받으며 임시총회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왁자지껄하던 부엌, 똑딱똑딱 칼질하던 도마 소리가 일시에 멈추고 모두 안방으로 들어와 회의에 경청을 잘 해 주었다. 웅성거림도 자리 옮김도 없이 늦게 와 들락거림도 뜸했다. 1,250세대 대단지 아파트의 경로당 임시총회가 열린다. 대상자가 꽤 많을 줄 알았는데 젊은이들이 주로 사는가보다.
입대회장이 와 둘러보고 도울 것이 없냐고 물으며 김치냉장고를 사 주겠다고 약속했다. 젊고 미남인 관리사무소 소장이 찾아와 인사말을 했다. 전 초대 회장도 옆에 앉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보여 쌀쌀한 날 신년 모임을 어여쁘게 이어나갔다. 준비한 회의 자료의 회칙과 연간행사, 예산안을 함께 살피고 협찬 내용을 간략히 말하고 끝냈다.
점심을 막 끝낼 무렵에 밖이 웅성거려서 보니 노인복지관에서 사무국장과 경로부장이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왔다. 옆에 있는 롯데와 극동의 임원들도 함께 왔다. 따로 자리를 만들기도 전에 방으로 들어가 큰절을 넙죽이 하면서 인사말과 함께 지도점검이 이뤄졌다. 듬직한 나이 지긋한 여자 국장이었다.
경로부장도 젊은 처녀 같은 예쁘장한 여자였다. 세 경로당의 점검을 끝내고 진피차를 마시면서 무슨 차가 이리 맛있냐며 더 달라 해서 맛본다. 이어 청어회와 팥시루떡, 과일이 들어와 오늘 풍성한 모임임을 보고 놀란 듯 모범경로당이라 했다. 청어회를 처음 먹어보는 듯 젓가락이 바쁘게 오간다.
다른 데도 사람이 많지 않은 듯 오늘 30여명의 안방 그득한 새해 첫 모임이고 이제 걸음마한 경로당을 보고 깜짝 놀랐단다. 이렇게 많이 모일 줄 몰랐다면서 말이다. 작년 결산을 보고 자꾸 묻고 대답이 궁하자 지원금과 사용액이 같다면서 그만 덮고 잘 했다며 박수쳐 주는 게 참 고마웠다.
남자방의 수상기를 주문하면서 식탁과 의자, 벽시계, 세탁기, 비대도 해 달라 졸랐다. 다 해 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툭툭 무 자르듯 거절하면서 TV만 기록해 갔다. 질문에 대답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그만 싸움이 나고 말았다. 사무국장에게 서로 질문을 많이 하려고 하다가 그만 다툼이 생겼다. 말려도 듣지 않자 두 사람을 떼어놓아 진정시켰다.
지지고 볶고 근 한 달 간 씨름한 경로당 걸음마를 뒤뚱뒤뚱 시키고 끝내니 시원섭섭한 게 어찌 허전한 마음이 든다. 계획대로 잘 굴러가야 할 텐데 저리 찾아와 무얼 갖다주고 잘 되길 바라는 가족들을 위해 지치지 않고 힘써야 할 텐데 생각한다. 낮에 먹다 남은 청어회로 이른 저녁을 먹으면서 달짝지근한 맛에 취한다.
등 푸른 생선이 건강한 몸을 만들어 준단다. 올해는 푸른 양이라 해서 싱싱함과 젊음의 힘이 느껴진다. 몇 차례 소리 없이 밤비가 내려 봄이 빨리 오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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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직은 푸른노인 강선생님께서 노인정회장을 맡으신일이 너무 감사합니다.
저도 그곳에 산다면 그 노인정에 놀러가서 어울려 청어회도 먹고 재밌을텐데 하는부러움이 살짝,
저는 봄마다 온갖 들꽃들과 어울리며 푸른솔과 눈맞춤하며 흐르는 여울물 노래에 어깨춤으로
그렇게 사는 일이 제일 어울리기도 하며 만족하지만
인간세상이 재밌어 보이는 곳입니다. 이글안에는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고 바람같은 흥이 있습니다.
ㅎㅎㅎ 여기는 7학년은 명함도 못 내는데 거의 8학년이 주인데요. 수고 많이 하십니다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로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생활글 느낌대로 잘 써주셔서 감동입니다
저는 아직 노인당 앞을 얼씬거리지 않습니다
좀더 있다 봉사하러 가야겠서요 강샘처럼..
노인을 생각하게하는 글.
회원들에게 띄웁니다. 2월 25일에 발송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