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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이는 카이스트 와서울대에 선택중에 서울대에 입학 못한것을 아쉬워 하는것 같았다
서울대 생명공학과는 사실 공부하기도 어렵고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카이스트는 2학년때 과를 선택해서 갈수있는 시스템이라서 자기가 좋아하는 바이오뇌공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1학년때 부터 나는 화진이에게 의대진학을 은근히 언급을 하곤했다 당시에는 의전원이 생기고 과도기적인 과정이라 의전원TO가 많이 주로 한시적으로 의전원을 준비한 수험생에게 기회를 주는 3년정도 의대편입제도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경쟁률은 엄청 세고 힘든추세였다 의전원이 없어지고 의예과를 뽑기위한 빈공간에 의대생을 뽑기위한 한시적인 제도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아들에게 그 희망을 걸었다 동근이는 의대들어 갈 기회가 희박했다 남녀공학 고교인지라 내신성적이 불리했고 의예과 모집인원이 엄청 적었다 수의과에 입학하길 원했지만 힘들었다 그래서 동근이는 공대에 진학했다 우주항공공학과.
그래서 아빠는 딸이 의대를 택해서 의사로서 사회에 나오는 것을 은근히 희망했다 하지만 카이스트에 진학을 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한가닥 희망의 길이 보인것이다 이제 딸의 마음만 바꾸면 시도할 수 있는 뭔가 될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 금방입학한 딸에게 너무한것 아니냐 ? 둥 불만을 표시했고 그때는 신경질적으로 반응을 했지만 2학년을 마치는 즈음 심경의 변화가 온걸 눈치챘다 졸럽한 선배들의 연구원의 미래를 본것이다 사실 카이스트에 들어갈 정도의 사람이면 국가가 미래를 위해 배려해주고 안심을 주는 계획들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계약직으로서 안정은 둘째 치고라도 먹고사는 데 지장을 줄정도로 보장이 미흡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모임에서 그런 선배의 자조적인 말을 듣고서..
화진이는 여름방학을 서울에 올라가서 학원을 다니며 토플공부를 했다 강남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학원수업을 해가며 남들이 놀때 나름대로 의대진학을 위해서 2년반을 노력을 했던것이다 한번은 강남에서 지내다가 목에 디스크증상이 와서 고개를 숙이면 팔이올라가는 기이한 증상이 와서 병원에서 진단 치료하는 일을 겪었다 내신을 위해서 학교성적을 관리하고 토플준비를 위해 노력하고 면접에서 치는 이과계 시험을 위해서 학원을 서울에서 방학동안 다녔던 것이다
카이스트에도 의대진학을 위해서 카톡방을 운영하며 스터디를 거치고 벌써 부터 그네들의 정보를 공유하며 노력하는 집단이 있었던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뛰어난 집단에서 미래를 위한 첨단과학에 힘을 쏟아붇지 않고 의대를 가기위한 노력을 한다는 것이 국가경쟁력에 마이너스 역할을 한다는 씁쓸한 마음은 있지만 미래가 조금이라도 더 보장되는 직업을 갖기위한 개인의노력은 막을 수 없는 시류였다
부산대 1차시험은 서류전형으로 통과되었다 27명모집에 160명이 와서 80명이 뽑혔다 학교 내신 학점 토플시험성적 으로 서류1차를 마치고 80명중에 27명이 남는 2차시험이 남아있었다 2차시험을 치루는 날 그때가 11월인가 양산 부산대 병원캠퍼스에 갔다 진료를 마치고 밖에서 기다리는 데 많은 학부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대 생명공학과 졸업생인데 2번째 시도하는 아들의 아버지였다 학교성적도 좋고 토플 면접을 착실히 학원에 다니면서 준비했는데 걱정이 된다는 아버지의 나이는 나와 비슷했다
마침 면접과 이론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화진이의 얼굴은 그런대로 밝았다 동료 카이스트 학생과 나오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난 화진이를 안아주었다 시험이 어려워서 빈칸이 많았다고 아쉬워 했다 순간 아차 ! 떨어졌구나 !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표를 내지않고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들은 어떻게 치루었다고 하더노 ? 같이 나오는 동기는 잘쳤다고 하더라 ! 하면서 자기가 빈칸을 몇개 비워놓은것을 아쉬워하며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힘들었다고 했다 나는 모든것을 맡기고 이제 잊어라 진인사 대천명이다 가자 하면서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로 차를 몰았다 오랜만에 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화진이는 제발 합격만 시켜주면 열심히 다니겠다고 한다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진주로 오는데 꽤 긴 시간이었고 피곤했지만 딸과 함께 한 시간이 좋았다 27명을 뽑는데 160명인가 왔던 학생들을 보았다 면접을 보러 2층을 올라가는 데 정장차림의 학생들은 다 똑똑한 선남선녀였다 여기서 뽑히기가 어려운 생각이 들었다 화진이가 시험을 못봐서 하지만 딸이 답안을 쓴 문제들을 어떻게 적었는지 알길이 없는 나는 그저 신께 결과를 맡길 수 밖에 없었다
2주간 발표를 기다리는 데 참 많이도 떨었다 마치 내가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꿈에 내가 다시 부산의대를 졸업했는데 다시 입학시험을 치루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아니 졸업을 했는데 왜 또 시험을 보라는 것인가 꿈에서도 이상한생각이 들어 시험을 봤는데 결과는 떨어지는 꿈이었다 기분도 어지간히 나쁘고 안좋아서 꿈의 이야기를 딸에게 하며 꿈은 반대란다 기다려 보자꾸나 ! 는 말을 했다
2주일간 찬송가가 입에서 절로 나왔다 새벽기도를 거의 하지않았다 대학다닐때 몇번은 한것 같았으나 사회에 나와서는 거의 하지 않은 내가 새벽기도를 가게 되어 나 스스로 놀랬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합격시켜 달라고... 발표 당일 날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헬렌피셔의 '아베마리아'를 듣게되었다 독일의 가수 가 부르는 간절한 기도가 영혼을 울리고 있었다 결국에는 이렇게 기도소리가 나왔다 '하나님 저의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진료를 하는 가운데 화진이한테서 최종합격문자가 왔다고 연락이 왔다 순간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감격이 더해 가슴이 터질것 같은 기쁨이 왔다 아빠가 다녔던 의대에 합격을 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떨어질 것 같았던 2차 필기시험에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화진이가 남겨둔 빈칸이 다른 답안에서 충실한 답안을 했거나 자신이 못친 시험이 실은 똑같은 조건이라서 결과는 열어봐야 아는 것이었다 그 기다리는 시간들이 나를 성숙한 인간이 되게 하는 인내의 시간이었다
아주의대의 1차경쟁률은 12명을 뽑는데 무려360명이 와서30대1의 경쟁이었다 1차에 48명을 뽑게되었는데 기적적으로 합격했던 것이다 정말 기대도 안했던 아주의대였다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부산대에 최종합격했으니 2차 필기시험을 보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않았다 48명이 남았고 여기서 12명을 뽑는것이었다 아주대의 면접은 특이했다 '시험을 보러가는 데 교통사고가 난 환자를 발견했다 이 환자를 옮기면 당신의 시험시간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당신은 어떤 결정을 할것인가 ?' 내신 학교학점이 들어가고 토플시험성적과 함께 필기시험과 면접이 치루어지고 2주뒤에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합격통지가 날아들어왔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을 하다니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경외감이 들었다 하나님께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나의 그동안의 신앙생활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하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찬송가가 절로 나왔다
12월의 추운 기운이 감도는 한달동안 나는 많은 찬송가를 부르게 되었고 기도를 하게되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것을 감사함으로 구하라...' 이렇게 시작되는 에베소서 구절은 내과 레지던트 4년차일때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엄마가 뇌종양으로 입원을 하고 치료하는 가운데 그 환경속에서 오로지 전문이 시험공부에 성경구절을 외며 의지하던 그때를 떠 올리게 했다
다행히 시험에 합격하고 난뒤 엄마를 찿으니 그 투병중에 엄마는 ' 그래 내가 얼마나 가슴 졸이며 시간을 보냈다 너가 시험잘 치루길' 당신은 그렇게 힘든 투병중에서도 자식 걱정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지난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감사했다 이렇게 화진이를 2곳에 합격시켜주시니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당연히 화진이는 아빠를 따라 부산의대에 가길 원했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보니 벌써 어디에 가겠다고 정해놓았다는 걸 알게되어 적이놀랬다 벌써 과별로 전공의 티오도 확보해 놓고 아주대와 부산대의 장단점을 비교분석한 화일을 보여주면서 카이스트 카톡방에서 공유하던것이라며 ... 그리고 면접볼때 벌써 두학교의 분위기를 알고 마음의 결정을 했다고 한다 오히려 설득을 하려는 아빠를 딸에게 설득당하고 있었다 그래 너마음먹은 대로 하거라 그러나 너가 개업을 하던지 병원에 취직을 하려면 아무래도 경남 부산쪽이 아빠가 힘을 써줄수 있는 기회가 많단다 어쩔래 ? 딸은 의지가 확고했다 아주대로 가기로
화진이의 의대진학을 두고 나에게 신앙의 은혜를 입는 기회가 되었다
안하던 새벽기도를 가게 되었고 찬송가를 입에 틈이있을때 마다 흥얼거리게 되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앞으로 그 기쁨이 얼마나 가게 될지 모르지만 나는 그때의 감동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인간이 시련을 당하게 되면 인내하게 하고 간구하게 하면서 연단시켜 성숙한 인간으로 만드는 계획을 경험한 것이다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2곳의 의대에 합격한 경우를 두고 입학하는 항상 화진이게 말을 한다 ' 하나님께서 널 인도하셨으니 걱정하지 말고 의사로 만들어 주실 것이니 열심히 공부하라고'
해마다 겨울 12월 말이 오면 난 그때를 잊을 수가 없어서 그때 들었던 찬송가를 스마트폰에 옮겨 몇박 몇일을 놀러가면 새벽에 일어나 산책을 하면서 듣곤한다 그때의 은혜를 생각하며 희미해진 나의 신앙을 체크한다 그 감동으로 일하면 못할 일이 없을것이다 라고...그때 받은 감동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면 내가 못 할일이 없을것이라고...
하지만 우리 인간은 나태해지기 쉽고 자만하기 쉽고 지난 날의 교훈을 잊기쉽게 되어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것이 내가 잘한일이라고 자위하기 쉽고 또 일상생활에 파뭍혀 매너리즘에 빠진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이 인간은 고통과 권태속에서 다람쥐 채 바퀴 돌듯이 방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경험을 통해 신의 영역에 맡겨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진인사 대천명 ; 사람이 할수 있는 일을 다 한후에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명언은 생활의 자세로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는다 딸이 어려운 의대를 입학하려는 뜻을 가질 때 부터 치열한 경쟁률 앞에서 머뭇거리면서 두려움과 긴장감속에서 나날들을 보낼때 우리 인간은 의지한다 신에게 그리고 간절히 ...그리고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잘살았는가
잘살고 있는가 내가 왔던길이 잘못 걸어온 길이 아닌가 ! 지금은 ?
살아가면서 우리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영역으로 돌려서 기도할 때가 있다
그것이 여러 형태로 나타 날수가 있다 그리고 경험하고 경외를 표할 때가 있다 아 그럴때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하고 우리인간의 길을 인도하시는 구나 느낄 때가 있다 축복을 주시기에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욥처럼 고난과 핍박이 와도 경외하고 기도를 드리니 그는 이렇게 말을 했다 '주신 이도 하나님이요 가져 가실 이도 하나님이라 ' 나에게 시련이 와도 그것은 연단을 위한것이요, 연단은 소망을 이루려 하신다는 말씀을 가슴속에 담으며 언제나 고난이 오더라도 욥처럼 기도하는 자세를 가질것을 자신에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