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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남자 강성만] 권기영
#1 도시 (밤)
어두운 하늘을 향해 괴물처럼 솟은 마천루들.
빠른 속도로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
익숙한 도시의 야경이다.
그 가운데 한 건물 꼭대기. 사람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드러난다.
실루엣, 목석처럼 서있다.
#2 건물 옥상 (밤)
영화 촬영 현장이다.
조명으로 인해 마치 이곳만 대낮인 듯 환한 가운데
스탭들의 저마다 부산하고 활기찬 준비과정들이 보여진다.
그 가운데 옥상 가에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남자의 뒷모습, 성만이다.
성만, 아래를 내려다본다. 까마득한 땅끝.
순간 현기증이 일지만 내려다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이내 담담해진다.
성만, 문득 옷속의 벨트를 만져본다. 어딘가에 연결된 안전벨트.
성만, 벨트를 만지는 손이 떨리더니 고리를 느슨히 하는데,
재선 (E) 준비 됐어요?
성만 (흠칫 놀라서) 어? 한감독.
재선 긴장하지 말구 리허설처럼만 하세요.
성만 어...
재선 (등 툭툭 쳐주며 농담조로) 실수로 떨어져도 책임 안집니다?
성만 (엷게 웃으며)
재선 (자리로 가며) 자 갑시다.
스탭들, 스탠바이하고.
성만, 헐거워진 고리를 슬쩍 만져보고 단단히 결심한 얼굴로 위치로 간다.
성만, 옥상 입구에 선다. 촬영장 조용해지고 재선의 목소리가 울린다.
재선 (카메라 앞에 앉아서) 카메라. 액션.
조감독 (카메라 앞에서 클립보드의 딱소리와 함께) 씬 112-2.
촬영이 시작되고 성만, 옥상가로 천천히 걸어간다.
난간 앞에 서서 세상에 작별을 고하듯 뒤를 돌아보는 성만.
담담한 얼굴이지만 그 눈빛은 쓸쓸하고 슬프다.
그러더니 이내 마음 다잡듯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본다.
스탭들 성만의 연기를 주시하고 모니터를 통해 성만의 연기를 보는 재선.
성만의 연기는 최고이다.
이제 성만, 조심스레 난간 위로 올라간다.
위태롭게 난간에 선 성만의 머리칼이 바람결에 살랑인다.
성만 (마음의 소리) 채원아, 아빠가 곧 갈게...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는가 싶더니 미련을 뿌리치듯 이내 옥상 아래로
몸을 날린다. 정말 뛰어내렸다.
일동, 너무 놀라서 한순간 침묵했다가 난리가 난다.
어떻게 된 거야? 정말 뛰어내렸어! 비명 소리 등등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재선이 선배님, 하며 달려가면 그게 신호이듯 스탭들 다들 옥상가로 달려가 난간에 매달린다.
#3 성만의 상상 (밤)
소란스러운 소음들이 점점 사라져가며 적막해진다.
공중에서 땅을 향해 내려가는 성만의 시선.
마치 나뭇잎처럼 나폴나폴 춤추는 듯한 시선이다.
점점 땅과 가까워진다.
화면 암전되며 타이틀.
- 미친 남자 강성만 -
씬4 대형 마트 (낮)
마트 내 시식코너.
중년의 여직원이 못마땅한 기색을 간신히 감추고 녹두전을 부치고 있다.
직원의 시선을 따라가면 성만, 히쭉한 얼굴로 전이 부쳐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여직원이 새로 부친 전을 접시에 놓으면 기다렸단 듯 서너조각을 한꺼번에 입에 넣 고는 뜨거운 듯 입 벌리고 손사래치며 씩 웃어 보이는 성만.
그렇게 여기저기 시식코너를 돌며 배를 채우더니 이제는 빈 카트를 쌩쌩 끌며 쇼핑 중이다. 이 물건 저 물건 집었다 놨다 고개를 끄덕이다 내젓다...사뭇 진지한 모습 이지만 정작 카트에 담겨지는 물건은 하나도 없다.
결국 커다란 카트에 달랑 우유 하나만을 담은 채 주희의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는 마냥 좋은 미소로 주희의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성만.
주희, 성만을 보고는 흠칫하지만 이내 얼음처럼 차갑게 외면한다.
성만, 차례가 되자 주희의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우유와 동전들을 꺼내서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주희,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계산을 해주고
성만은 그런 주희에게 뭔가 말을 걸려는데
뒷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여의치가 않다.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우유를 주희 쪽으로 쓱 밀어주고는 아쉽게 돌아서는 성만. 주희는 그런 성만의 행동엔 일별도 주지 않은 채 하던 일을 계속하고...
성만은 아쉬운 듯 연신 주희를 돌아보며 마트를 빠져나간다.
성만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성만이 두고 간 우유를 보는 착잡한 주희.
그런 광경들 위로,
채원 (E) 우리 가족은 아빠와 엄마 그리구 나, 이렇게 세 명입니다. 원래는 서로 사랑하 고 행복한 가족이지만 지금은 아빠랑 엄마랑 싸워서 잠깐 헤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압니다.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도 아빠를 미워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사랑하고 있다는 걸요. 그리구 물론 나도 아빠, 엄마를 엄청 사랑합니다.
#5 영화 촬영장, 한강 다리 밑 (낮)
성만을 비롯한 조폭 차림 남자 여러 명이 각목이니 따위를 들고 폼 잡고 걸어간다. 상대편엔 정의파 남자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달려들어 싸우는 무리들.
그 중 성만이 보인다.
목에 핏줄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대며 오버하며 싸우는 성만의 모습이 유독 튀는데,
그때 캇 소리와 함께 감독(50대 중반)이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감독, 성만에게 다가가고 성만, 자신의 연기가 뛰어나서 그런가 기대감으로 보는데. 감독, 성만의 머리통을 툭 치며,
감독 당신 뭐야? 당신이 주인공이야? 왜 오버해?
민망해서 머리 긁적거리며 쭈뼛거리는 성만의 모습 위로,
채원 (E) 우리 아빠의 직업은 영화배우입니다. 아빠가 출연한 영화만 해두 백편은 넘을 거라고 아빠가 말해줬습니다.
다시금 촬영이 시작되고 있다.
이번엔 주로 맞는 성만.
주연배우에게 정통으로 맞고 고개가 돌아가는 성만. 코피가 주루룩 흐른다.
채원 (E) 나는 아빠의 영화를 한 번도 본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빠가 찍은 영화는 전부 수준이 높은 것들이기 때문에 극장에서 열 살 짜리는 들여보내 주지 않기 때 문입니다.
#6 삼류 성인 카바레 앞 (밤)
사람도 불빛도 휘청이는 거리. 질펀한 남녀가 넘쳐나는 그곳에서 성만이 우스꽝스 런 전구 모자를 쓰고는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사람들 성만의 재롱과 유혹에도 그냥 지나치는데 갑자기 성만의 눈이 번쩍 뜨인다.
저만치 한 남자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가다가 그냥 푹 고꾸라진다.
성만, 얼른 가서 남자를 부축해 나이트클럽으로 데리고 간다.
정신없는 남자는 무방비 상태로 끌려 들어가고.
채원 (E) 그래서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우리 아빠의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아니 그보다 아빠랑 함께 살날이 빨리 오길 기도하 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살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행복할 것 같습 니다.
#7 교실 (낮)
칠판에는 ‘나의 가족’이라고 판서되어 있고 채원이 앞에서 낭독을 하고 있다.
아이들 채원을 보고, 교사, 한쪽에서 보고 있는데.
채원 이상 나의 가족 이야기였습니다. 끝.
아이들 (박수 칠 생각도 안하고 멀뚱이들 보고)
교사 (그런 아이들이 당황스러워서) 박수 안치니?
아이들 (건성으로 박수 치는데)
아이1 (사내아이가 불쑥) 니네 아빠 이름이 뭐야?
채원 강성만이야, 왜?
아이1 영화배우 중에 강성만이란 이름은 없는데?
채원 니가 영화배우 이름을 다 알어?
아이1 텔레비전에두 안나오잖아.
채원 우리 아빤 영화에만 나와. 영화배우니까 영화에만 나오는 게 당연하지, 이 쪼다야.
아이2 어떤 영화에 나왔었는데?
채원 (시침) ...너무 많아서 기억을 못해.
- 사내아이들 몇이 뻥, 구라, 해가며 야유를 한다.
채원 (당황하지만 노려보며) 뻥 아니야.
아이1 한채원은 뻥쟁이래요.
- 한 아이가 노래 시작하자 몇몇 따라 부르고 아이들 키득거리고,
- 당황한 교사가 수습하기 시작한다.
교사 채원이 그만 들어가라. (아이들을 향해) 모두 조용히 해. 조용히 하라구.
- 하지만 아이들 멈추지 않고 신나서 계속 하는데,
채원 (교탁을 쾅 쎄게 두드린다)
- 아이들, 놀라서 멈추고 보고 교사도 보는데,
채원 (주먹을 내밀며) 한번만 뻥이라구 하는 새낀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불만 있으면 직 접 덤벼. 상대해 줄 테니까. 알았어?
교사 (놀라서) 채원아?
- 멋지게 윽박지르고 으쓱해서 자리로 가는 채원.
#8 민식의 집 앞 (낮)
채원과 성만이 원룸빌라의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성만 그래서?
채원 그래서는? 당연히 한방씩 멕여줬지. 나 일곱 살 때부터 합기도 배웠었잖아.
성만 그래두 친구들을 그렇게 패면 안되지.
채원 지난번엔 그딴 녀석들은 줘패두 된다구 그랬잖아.
성만 물론 그렇긴 한데 이왕이면 살살 달래 먼저. 그리구 대화로 해결하는 게 좋아.
요즘은 커뮤니케이션, 즉 대화의 시대거든.
채원 그래두 말 안 듣고 개기면?
성만 음... (정말 고민된다)
채원 거봐.
성만 정 대화가 어려울 땐 얼굴 같은 덴 상처 나니까 그런데 말구 안 보이는데루 때려. 너무 쎄게 때리진 말구.
채원 내 일은 내가 알아서하니깐 걱정 마 아빤.
성만 알았어.
채원 아빤 영화 잘 찍고 있어?
성만 어? 어...
채원 열심히 해야 돼, 아빠. 안 그러면 내가 애들한테 뻥쟁이 되잖아, 알았지?
성만 (끄덕끄덕) 어어...
채원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씩 웃어주고는 현관문을 연다)
#9 민식의 집 (오후)
원룸 형식의 좁은 집.
사발면 용기에 과자 봉지, 옷가지들, 여기저기 흩어진 양말짝, 속옷 등등.
발도 디딜 틈 없는 난장판이다.
그 쓰레기 더미 가운데 짐짝처럼 웅크린 채 자고 있는 민식.
채원, 들어서자마자 한숨 푹 쉬며,
채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성만을 홱 째려보면)
성만 (죄인처럼 얼른 눈에 띄는 것부터 주섬주섬 치우며) 어제 청소했는데...
채원 (들어가 발로 민식을 툭 친다)
민식 (꿈쩍 않고)
채원 (귀에 대고 왁 비명을 지른다)
민식 으으악. 무슨 일이야? (깜짝 놀라 후다닥 일어나면)
채원 (한심하게 보고 서있다) 지금이 몇신데 아직두 자?
민식 (멍해서 보다가) 채원이 왔어?
채원 일어나, 빨랑.
민식 (다시 누우며) 좀만 더 자자 채원아. 아저씨가 밤새 일하구 아침에야 들어왔거든.
채원 (일으켜 세우며) 지금부터 대청소할 거야. 이런데서 살다간 병 걸려서 죽어. 아저씨 죽는 건 상관없지만 울 아빠 죽는 건 싫단 말야.
민식 (눈감은 채 웅얼웅얼) 기집애, 무슨 말을 그렇게 섭하게 하냐?
채원 (버럭) 일어나, 빨리!
시간경과
쓰레기와 옷가지들이 대충 정리되어 있다.
채원은 창가에서 옷을 털고 있고.
성만과 민식은 걸레질을 하고 있다.
민식 (입 잔뜩 나와서) 쟤 저렇게 깔끔 떠는 거 보믄 딱 형수님이야.
성만 응, 나 안 닮아서 다행이야.
민식 형두 닮았어, 무대포 기질.
성만 (좋아서) 진짜? 내가 우리 채원이 닮았어?
민식 형이 채원일 닮은 게 아니라 채원이가 형을 닮은 거지.
성만 (헤헤) 그런가?
민식 근데 집주인은 난데 내가 왜 이러구 있는 거야? 형 공짜루 재워주는 것만으로두 나 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채원 (창가에서) 떠들지 말구 빨랑빨랑 해!
성만 (흠칫해서 입 다물고 열심히 걸레질)
민식 (역시 입 다물고 열심히 하며 소리 없이 궁시렁댄다) ...
씬10 카바레 (밤)
민식이 무대에서 열창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노래엔 아무 관심도 없이 블루스를 추고 있다.
씬11 카바레 분장실 (밤)
민식이 막 들어와 반짝이 자켓을 벗고 있는데 문 벌컥 열리며 지배인이 들어온다.
지배인 (잔뜩 열 올라서) 강성만이 어딨어?
민식 형, 없어요?
지배인 강성만 이 자식, 툭하믄 농땡이야. 그딴 식으로 일하면 국물도 없을 줄 알라 그래!
민식 (조용히 궁시렁) 왜 나한테 소리는 지르고 그래... (하는데)
지배인 당장 수배해서 제자리 박아놔! (가버린다)
민식 (여전히 궁시렁 거리며)
씬12 유흥가 뒷골목 정도 (밤)
현란한 유흥가 뒷골목의 으슥하게 그늘진 곳.
커다란 쓰레기봉투 더미 옆에 쪼그려 앉아 통화중인 호객복장의 성만.
성만 뭐, 벌써 다 찼다구? 아 자식, 그래두 남는 배역이 하나둘은 있을 거 아니냐?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감독이든 누구든 좀 만나게라도 해달라 이거지... 헤딩을 할래두 이 갖다 박을 때가 있어야 자고로 (하다가 전화가 끊긴 듯) 여보세요? 아아-, 어이.
폴더 거칠게 닫고는 답답한 듯 한숨을 푸욱 내쉬는데.
어딘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오는 재선.
어두운데다 쓰레기봉투 뒤에 가려져 있는 성만을 미처 보지 못한 채
마시고 있던 음료캔을 무심코 쓰레기봉투를 향해 던진다.
한숨만 후루룩 내쉬고 있던 성만의 머리에 명중하는 캔.
성만,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는데 재선은 미처 못 듣고
주변의 빌딩들을 올려다보며 걸어간다.
성만, 호들갑스레 머리를 문지르며 상황파악을 하기 위해 일어서는데
사과도 없이 그냥 가는 재선의 뒷모습이 보인다.
열 받아서 재선을 불러 세우려다가 생각이 바뀐 성만.
음료캔을 주워서 재선의 뒷통수를 향해 냅다 던져버린다.
깡! 소리와 함께 재선의 뒷통수에 명중하는 캔.
재선, 놀라고 황당해서 돌아보고 성만도 놀라서 그대로 굳는다.
홧김에 던지긴 했지만 정말 맞을 줄은 몰랐던 성만.
그렇게 서로 황당해서 잠시 마주보는 두 사람.
재선 (침묵을 깨고, 황당해서) ... 지금 뭐한... 겁니까?
성만 (마땅한 말이 없어 쭈뼛대다가 대뜸)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재선 (벙쪄서) ?
성만 그러니까 안 미안하다구. 내가 더 쎄게 맞았어.
재선 예? 멀쩡한 남의 뒷통수 갈겨놓구 뭔 소립니까, 지금?
성만 니가 먼저 갈겼잖아. 그리구 넌 뒷통수지만 난 앞통수야. 앞통수가 뒷통수보다 훨 씬 더 아프다니깐?
재선 (황당해서 혼잣말조로) 미친 거 아니야?
성만 (그 말에 화르륵 열 올라서) 뭐? 미미친 거?
재선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 저으며 돌아서는데)
성만 (쫓아가서 뒷통수를 퍽퍽 때리며) 얌마, 너 뭐라 그랬어? 미친 거, 어? 어디서 대갈 통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른한테 싸가지 없이 (하는데)
재선 아, 진짜. (확 밀치고 주먹을 날린다)
성만 (고개 퍽 꺾이고, 이내 고함을 지르며 재선에게 달려들어 덮친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뒹구는 두 사람.
씬13 구치소 (경찰서 대기실, 밤)
벽이나 바닥에 기대거나 누워 자는 남자들 서넛이 있는 가운데
한 구석에 무릎에 고개를 묻고 있는 재선이 보인다.
성만은 쇠창살에 매달려 경찰을 부르고 있다.
성만 (한껏 상냥하게) 저기요, 경찰아저씨. 잠깐만요.
경찰 왜요?
성만 저기... 거울 좀 볼 수 없을까요? 얼굴이 어떻게 됐나 좀 궁금해서요...
경찰 (어이없어서) 시끄러워요. 거 조용히 잠이나 자요!
성만 (못마땅해서 입 삐죽이고 자리로 가다가 재선에게 시선이 간다)
재선 (엎드려 있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에 퍼뜩 고개를 들어보면)
성만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있다)
재선 (순간 헉 놀라서 뒤로 피하는데)
성만 놀라지말구 내 얼굴 좀 봐봐, 상처 안 났어?
재선 예?
성만 내 얼굴 멀쩡하냐구우?
재선 (얼결에 살피며) 입가가 좀 터졌는데...? 아, 눈도 좀 부었네. 이쪽 눈이요.
성만 (금방 죽상으로) 씨이, 안되는데... 이쪽은? 이쪽은 괜찮구?
재선 (살피고 끄덕끄덕하며) 뭐 이쪽은 그런데루... (하는데)
성만 (대뜸) 책임져. 나 책임져, 임마.
재선 (황당해서) 왜 내가 아저씰 책임져요?
성만 내 얼굴 책임지라구우.
재선 그쪽만 다쳤어요? 나두 다쳤어, 내 얼굴도 엉망이잖아요.
성만 니 얼굴하고 내 얼굴이 같냐?
재선 (불쾌해서) 그건 내가 할 소리죠.
성만 이걸 캭. 영화배우한텐 얼굴이 생명이란 말야.
재선 누가 알았어요? 그렇게 억울하면 영화배우라고 써놓구 다니든가..(하다가 멈칫 놀라 며) 아저씨... 영화 배우...세요?
성만 (여전히 울상으로 노려보며) 왜, 싸인 해줘?
씬14 동 시간경과
사람들 다 잠들어 있고 밖의 경찰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성만과 재선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아까의 적대감은 없고 이제는 죽이 척척 맞는 친구 같다.
재선 그러구 보니까 낯이 많이 익네요.
성만 (좋아서) 그치그치?
재선 (끄덕)
성만 근데 아깝다, 종이랑 펜만 있으면 내 싸인 한 장 근사하게 탁 해주는 건데...
재선 (웃고)
성만 어어? 웃지마. 내가 아직은 별볼일 없는 단역배우지만 앞으론 송강호, 최민식 못잖 은 배우가 될 인재다 이거야. 젊을 적 고생하다가 뒤늦게 빛 본 배우가 깔렸다구. 내가 이날이때까진 빽 없구 운 없어 아직 못떴지만, 두고보라 이거야. 언제간 단역 배우 딱지떼고 충무로를 휩쓸 날이 올테니까.
재선 (묵묵히 들으며) ...
성만 근데 아우님은 하는 일이 뭔가?
재선 (멈칫했다가) 뭐... 그냥 일종의 프리랜서예요...
성만 (다 이해한다는 듯) 프리랜서...대충 짐작이 가네. 인생이 원래 그렇게 고달픈 거야.
재선 단역배우 생활 힘들지 않아요?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닐 텐데...
성만 (단호하게) 노우. 내 인생이 영화, 영화가 곧 내 인생인데, 영화를 포기한다는 건 곧 인생을 포기한다는 소리야.
재선 (본다)
성만 딱 두 개야, 내 인생은. 영화하구 우리 마누라하구 딸. 지금은 사정상 떨어져 살지 만, 뜨기만하믄 젤 먼저 우리 마누라랑 딸이랑 살 근사한 집부터 마련해서 같이 살 거야...
재선 ...
성만 그 동안은 죽어라 고생만 시켰지만 두고 보라구. 나라구 언제까지 쥐구멍만 파란 법 있어? 아니 쥐구멍이든 개구멍이든 나는 상관없어. 근데 우리 주희하구 채원인.. 그러구 살 사람들이 아니야. 왕비마마, 공주마마처럼 살아도 모자랄 사람들인데... 나 같은 인간 만나서 그 고생들을 하구 있으니...(콧날 시큰해진다, 기분 바꾸며 사 진을 꺼내준다. 꼬깃꼬깃 낡은 사진) 봐봐, 예쁘지?
재선 (보며) ...
성만 만지지는 마. 이거 한 장 밖에 없으니까. 닳어.
재선 예쁘네요...
성만 그치? (사진을 어루만지며) ...
씬15 학교 교무실 앞 복도 (낮)
주희가 급한 걸음으로 교무실로 향하고 있다.
문득 발걸음을 멈추는 주희.
그 시선 따라가면 복도에 손을 들고 벌서고 있는 채원이 보인다.
속상한 얼굴로 채원을 보는 주희. 채원은 미안한 얼굴로 주희를 보며...
씬16 교정 (낮)
채원이 가방을 매고 교정 일각에 앉아 주희를 기다리고 있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달랑달랑 발장난을 치던 채원,
흠칫 고개를 들면 어느새 주희가 다가와 채원을 바라보고 있다.
채원 ...엄마...?
주희 (짐짓 엄하게 보며 옆에 앉는다)
채원 (풀 죽어서) 선생님한테... 엄마두 혼났어? 미안해, 나 땜에...
주희 엄마랑 약속했지? 다신 애들하고 싸움 같은 거 안 한다구, 사이좋게 지낸다구 약속 했어 안했어?
채원 했어...
주희 근데? 그래놓구 코피까지 터뜨려?
채원 그치만 대화가 안 되는 걸 어떡해? 말루 정 안되면 때려두 된다구 그랬단 말야.
주희 뭐?
채원 (실수다 싶어서 얼른) 아니, 아빠가 그런 게 아니구... 그게...
주희 (기막히다는 듯 한숨 쉬는데) 허.
채원 (얼른) 있잖아, 엄마...아빠가 애들 때리라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말루는 도저히 안될 때만 얼굴 말구 따른 데 안 아프게 살짝만 때리라구우...
주희 (OL) 너 지금 그걸 말이라구 하는 거야?
채원 (입 다물고) ...
주희 (한숨 쉬듯) 후... 웬수. 징글징글해 정말.
채원 ... 나? 나 웬수야, 엄마...?
주희 (그 말에 피식 어이없는 웃음 나며) 그래, 웬수다. 너나 니 아빠나 둘 다 똑같애. 징글징글한 웬수야.
채원 (귀엽게 웃는다)
주희 웃지 마. 너 정말 한번만 더 애들하고 싸우면 엄마 그땐 정말 화낸다? 엄마 딸 안 해, 알았어?
채원 (얼른 끄덕끄덕)
주희 일어나, 피아노 학원 가야지. (일어나서 간다)
채원 (금새 인상 쓰고는 쫄래쫄래 쫓아가며) 오늘만 학원 안가면 안 돼?
주희 (못 말린다는 듯 보는데)
채원 (손잡으며) 학원 가지 말구 우리 떡볶이 해먹자. 엄마가 해준 떡볶이 먹구 싶어.
주희 학원 갔다오면 해줄게.
채원 안 해, 대신 내일 두배루 열심히 할게, 응?
주희 안 돼.
채원 엄마아아...
그렇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운동장을 걸어가는 모녀...
#17 어느 영화사 (낮)
성만, 야쿠르트 봉지를 들고 들어선다.
사람들, 또 왔군 하는 시선으로 별다른 반응 없이들 자기 일들 계속 한다.
성만, 굽신 인사하고 돌아다니며 음료수를 나눠준다. 잘 지냈어요? 뭐 캐스팅 남는 거 없어요? 인사하며 이것저것 묻지만 사람들 대부분 무응답으로...
성만,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음료수를 돌린다.
#18 어느 길 (낮)
성만, 남은 야쿠르트에 빨대 꼽아 쪽쪽 빨면서 걸어오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성만 예, 영화배우 강성만입니다. (반갑게) 어? 프리랜서 아우?
#19 영화사 (낮)
성만, 사무실에서 혼자 앉아 두리번거리며 긴장해 있는데
재선이 들어오고 뒤이어 직원이 들어온다.
성만 (반갑게 벌떡 일어나며) 어, 동생.
재선 오래 기다렸죠?
성만 아니 오래 기다린 건 상관없는데... 여기 영화사잖아. 아우, 여기 취직했어?
재선 (그대로 미소만) ...
직원 커피 준비해 드릴까요, 감독님?
성만 (감독이란 소리에 놀라서 보는데)
재선 커피 하실래요?
성만 (얼결에 끄덕)
재선 (직원에게) 부탁 좀 할게요.
성만 (놀라서 보고 있다가, 그래도 할 말은 한다) 저기요, 저는 프림 둘에 설탕 둘이요.
직원 우린 원두 밖에 없는데...
성만 그럼 설탕만 둘이요.
직원 (나가고)
재선 (앉으며) 앉으세요.
성만 (침 꿀꺽 삼키며, 앉으며) 저기 동생, 근데... 감독이라니... 무슨...?
재선 저 이번에 입봉해요.
성만 (놀라서) 입봉이라니? 감독으루? (소리치듯) 여영화 감독?
재선 (웃으며) 귀 떨어지겠어요.
성만 아니, 동생 나이가 스물일곱이랬잖아. 그리구 분명히 백수라구...
재선 백수라곤 안했어요, 프리랜서랬지... 그리구 요즘엔 입봉 빨리하는 사람들 많아요. 저보다 어린 사람두 있는 걸요.
성만 (아직 멍한데)
재선 (시나리오를 건네며) 지금 캐스팅 단계에 있어요. 주조연 거의 다 마쳐가고 있는데 역이 하나 남아서 이왕이면 선배님한테 기횔 드리고 싶더라구요. 조연이지만 비중 꽤 있는 역이니까 한번 보세요.
성만 (시나리오 받아들고) ...
재선 물론 연기력이 검증돼야하니까 오디션은 받아야 해요. 좀 무리더래도 오늘 봤으면 좋겠는데 전...시간이 별루 없거든요.
성만 (일어나 자세 백팔십도로 바꾸며 꾸뻑 절한다) 고맙습니다, 감독님. 저기...지난번엔 제가 정말 실례했어요. 감독님인 줄 정말 몰라 뵜습니다. 용서해주세요. (하며 무릎 까지 꿇으려고)
재선 (당황해서 만류하며) 왜 이래요?
성만 (울먹하며) 감독님 제가 이 은혠 평생 안잊겠습니다. 백골난망이 뭔지 제가 확실히 보여드리겠습니다. 제 한평생을 바쳐서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이 뼈가 으스러 져 가루가 될 때까지 모시겠습니다. 감독니임...
재선 (어이없어서 웃으며) 저 한참 어려요. 그냥 편하게 대하세요. 저두 그냥 형님 대접 하면서 편하게 대할게요.
성만 (눈물까지 훔치며 감동해서) 감독니이임...
#20 어느 거리 (오후)
성만, 넋이 빠져 멍하니 걷고 있다.
그러다가 마주 오던 행인과 부딪치고, 행인은 신경질적인 반응인데
성만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자신의 손에 들린 시나리오를 바라본다.
행인은 사과도 않는 성만을 불쾌하게 바라보는데
성만,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행인을 와락 안는다.
감격 어린 포옹을 하고는 벙찐 행인을 뒤로하고 빠르게 걷기 시작하는 성만.
점점 걸음이 빨라지며 급기야 달려가기 시작하는 성만의 얼굴에 희열이 넘친다.
#21 마트 (오후)
주희가 계산대에서 일을 하고 있다.
성만, 들뜬 기분을 애써 진정시키며 주희에게 다가가는데
주희, 어떤 느낌에 고개 들어 성만을 본다.
자기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며 씩 웃는 성만.
주희, 차가운 얼굴로... 머쓱해서 손을 내리며 머리 긁적이는 성만.
#22 마트 계단 참 (오후)
주희와 성만이 조금 떨어져 앉아있다.
주희 (보지 않은 채) 안 그래도 연락하려 그랬어.
성만 무슨 일... 있어?
주희 채원이 학교에 불려갔다 왔어.
성만 (놀라서) 왜? 채원이한테 무슨 일 생겼어?
주희 그 반에서 제일 큰 남자애랑 싸워서 코피까지 터지게 했대.
성만 (휴우 안심하며) 아휴, 난 또. 채원이가 코피 난 거 아니면 괜찮지 뭐.
주희 당신이 그런 식이니까 애가 그러는 거야. 내 자식 코피 나는 건 안 되구 남의 자식 은 괜찮아?
성만 아니, 그게 아니라...
주희 채원이 그렇게 가르친 거 당신이야. 어릴 때부터 맞지 말구 때려라, 말 안들으면 패줘라, 그렇게 주입시켰잖아.
성만 지난번에 만났을 땐 사이좋게 지내라구두 했는데...
주희 지금까진 모르는 척 눈감아줬지만 한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못 만나게 할거야. 그 렇게 알어.
성만 ...잘못했어...
주희 ...
성만 저기 주희야...
주희 내 이름 부르지 마.
성만 채원 엄마...
주희 ...
성만 (비어져 나오는 웃음 참으며) 나 있잖아... (하다가) 당신 심장 튼튼하지?
주희 (불안해서 보며) 왜 그래? 또 무슨 사고 쳤어?
성만 놀라지 말구 들어. 나 있잖아. (자랑스레) 영화에 캐스팅 됐어.
주희 (인상 굳어지며) 그런 얘기라면 지긋지긋해. 십 오년 동안 들었던 말이야.
성만 단역 아니야 비중 있는 조연이라구. 이름도 있어 황정수. 대사두 많구 서른여덟 씬이나 나오는 조연이라구. 서른 여덟씨인.
주희 (놀라지만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영화사가 미쳤나보지? 당신한테 그런 역을 주게?
성만 못 믿는 게 당연해. 나두 아직 아리까리한 걸. 한번 꼬집어 봐. (주희가 반응 없자,
자기가 얼굴을 힘껏 꼬집으며) 아아, 되게 아프다. 꿈은 아니네. 헤헤...
주희 (정말인가 보고)
성만 이제 걱정 마 당신. 내 인생은 이제 고속도로라구. 당신하구 채원이 호강시켜준다 구, 내가.
주희 호강 같은 거 한 번도 바란 적 없어. 내가 당신한테 바랬던 건 그저 남들처럼 평범 하고 성실하게 가장다운 가장 노릇해주는 거였어. 물론 포기한지 이미 오래지만.
성만 그렇게 할게. 가장노릇 한다구. 정말이야, 주희야. 믿어 줘.
주희 글쎄,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일어서며) 들어가 봐야 돼. 자리 오래 비워둘 수 없어. (간다)
성만 (뒤에 대고) 나 정말 열심히 할게. 좀만 기다려, 기다려, 주희야.
#23 마트 계산대 (오후)
주희, 계산대로 온다.
냉정하게 말하고 돌아섰지만 내심 기대와 희망이 생긴다.
자기도 모르게 굳은 얼굴에 미소가 퍼지는데 손님이 온다.
주희, 얼른. 물건 계산한다.
#24 카바레 분장실 (밤)
민식이 한없이 부럽고 존경스러운 얼굴로 성만의 얘기를 듣고 있다.
민식 그래서?
성만 그래선 임마, 한 마디루 내가 감독의 형님이라 이 말이지. 날 형님 대접하겠다잖아.
민식 형, 진짜 운수 대통이다.
성만 마, 운도 실력이 있어야는 거야. 당당히 오디션 통과했다구.
민식 (갑자기 성만의 손을 낚아채 주물럭거린다)
성만 뭐하는 짓이야?
민식 형 운 좀 나눠 받을라구. 나두 이 생활 진짜 지겨워. 이제 슬슬 메이저루 나가야지, 나두.
성만 너 음반 또 내게?
민식 (당연한 듯) 그럼, 2집 내야지.
성만 니 1집 아는 사람들 협박해서 판 거 말군 다 반품됐었잖아. 나두 스무장 넘게 샀었 구만. 근데 또 음반을 내겠다구?
민식 그땐 세상이 아직 날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있었던 거구. 이젠 나두 뭐가 먹힐지 충분히 분석했어. 어쨌든 머릿속에 계획이 다 있으니까 자금만 마련하면 돼.
성만 자금을 어떻게 마련해? 니 반품된 씨디들 장당 오백원씩 팔아두 안 팔릴텐데...
(하다가) 너 설마 또 노름에 손대는 거 아니지?
민식 (당황하지만 얼른 시침 떼고) 노름은 무슨...그리구 형 그게 뭔 소리야? 거저 주면 거저 줬지 난 덤핑은 안하는 주의야. (괜히 지나가는 아가씨에게) 지나야, 오빠가 자필 앨범 한 장 주까?
여자 그거 가져다 뭐에 쓰게? 엿도 안 바꿔줄 걸?
민식 저 눔의 가스나, 싸가지하구는.
성만 (그런 민식을 보며) ...
#25 민식의 집 (밤)
성만, 대본 연습을 하고 있다.
민식은 이불 뒤집어쓰고 짜증나서 자고 있다.
성만 형님, 전화번호가 말입니다, 형님. 공일일에요 형님. 구구삼공에요 형님(하는데)
민식 (이불 확 거두며) 아, 그만 좀 해. 그 놈의 전화번호 타령만 지금 몇 번을 했는 줄 알어? 잠 좀 자자, 잠 좀. 에이씨. (하며 이불 확 뒤집어쓴다)
성만 (머리 긁적이며 미안하지만 그래도 소리 낮춰 계속) 형님... (하는데)
민식 (이불 걷고 무섭게 노려본다)
성만 (쫄아서) ...
#26 아파트 일각 (한밤중)
경비가 손전등을 들고 아파트를 순찰하고 있다.
놀이터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경비, 소리 나는 쪽으로 가면 점점 커지는 소리.
성만 (E) 잘못했어요, 형님.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경비, 갸웃거리며 조심스레 놀이터 쪽으로 간다.
#27 놀이터 (한밤중)
성만, 리얼하게 연기하고 있다.
갑자기 아악, 비명을 지르며 뒤로 밀리듯 주저앉는 성만.
성만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때리지 마세요. (하며 흑흑 우는데)
경비 (놀라서 손전등을 비추고 한손엔 곤봉 든 채 마치 경찰처럼) 손들어! 꼼짝 마!
눈물범벅이 되어 모래에 자빠진 채 놀라서 두 손 엉거주춤 든 성만의 얼굴이
손전등 불빛에 드러나 있다.
경비 (놀라서 다가와서) 괜찮아요? 무슨 일이에요, 누가 이랬어요?
성만 (일어선다) 아무도 안 그랬는데요?
경비 괜찮으니까 말해 봐요. 어디로 도망쳤어요?
성만 정말 아무도 없는데요?
경비 겁먹지 말구 경찰에 신고부터 하자구. (하며 위협하듯 주변을 향해 손전등 휙휙 비 추며 성만의 손을 잡고 가는데)
성만 (끌려가며) 저기 아저씨, 저 연기 연습한 건데요?
경비 (멈춰서 본다) 연기연습?
성만 (시나리오를 내보이며) 네. 연기연습이요.
경비 (어이없어서 버럭) 아 지금이 몇 신 줄 알아? 새벽 세시예요, 새벽 세시. 내 달밤에
체조한단 소리를 들었어도 달밤에 연기연습한단 소린 첨 들었네.
성만 (헤헤) 죄송해요. 연습할 때가 없어서... 저는 조기 빌라 원룸에 사는데요.
경비 (못마땅하게 보다가 호기심으로) 근데... 탈렌트요? 첨 보는 얼굴인데?
성만 영화배우예요.
경비 건 그렇구 대체 뭔 역인데 그렇게 울고불고 발광을 하는 거래?
성만 아, 제가 깡팬데요. 실수를 해서 형님한테 맞는 장면을 연습하는 거거든요.
경비 의사고 변호사고 멋진 역 수두룩한데 하필이면 왠 깡패 역이야?
성만 (헤헤) 그래두 아주 중요한 역이에요.
경비 (보다가 가며) 따라와요.
성만 네?
경비 (돌아보며) 계속 달밤에 발광할 거유, 그럼?
#28 경비실 밖 (한밤중)
불켜진 경비실. 그 안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
경비가 성만의 연기대작을 해주고 있다.
진지한 성만과 책 읽듯 어색하고 경직된 경비의 모습이 창을 통해 보인다.
성만은 깡패, 경비는 보스가 되서.
성만 (E) 형님, 저는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경비 (E) 크음... 그러니까 에...
성만 (E) 에이 아저씨, 그러니까 에란 대사가 어딨어요?
경비 (E) 시끄러.
성만 (E) 다시 하세요.
경비 (E) 에... 니가 모르면 내가 아랴? 그러니까 말루 할 때...
성만 (E) 그러니까는 빼라니깐요.
경비 (E) 나 안 해!
성만 (E) 아저씨이. 알았어요, 그러니까 하세요. 해요, 아저씨이.
경비 (E) 한번만 더 지랄하믄 안 해 나. 알았어?
성만 (E) 네, 다시 하세요.
경비 (E) 에... 말루 할 때 털어놔. 일 터지면... 의리구 뭐구 없는 게 이 바닥이야.
성만 (E) 섭섭합니다, 형님. 형님이 절 못 믿어주시면 제가 누굴 의지하겠습니까 형님.
경비 (E) 에... 그러니까...
카메라 점점 멀어지면 어두운 아파트촌 한가운데 유일하게 불 밝히고 있는 경비실. 그 빛이 마치 등대처럼 따스하다.
#29 영화사 실장실 (낮)
수헌과 재선이 앉아있다.
재선 그럴 순 없어요, 캐스팅 다 끝났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번복해요?
수헌 한 감독, 배우가 그렇게 없어요? 지명도 있고 실력 있는 조연배우들 많잖아요.
재선 강선배 실력 있어요. 기회만 주면 잘해낼 사람이에요.
수헌 우린 영화로 장사하는 사람들이지 자선사업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내 말대로
김남수씨로 갑시다. 그렇게 알겠어요.
재선 실장님.
수헌 이 얘긴 여기서 접죠. 그보다 기자 간담회 날짜가 정해졌는데 가만있자...(서류 뒤 적이며) 어, 여깄네. 내달 초예요.
재선 (맘 안 좋아서) ...
#30 학교 운동장 (낮)
초등학교 점심시간 운동장 풍경.
아이들 뛰노는 가운데 어느 구석 벤치에 성만과 채원이 앉아있다.
채원 정말 잘됐다.
성만 채원인 아빠가 영화배우하는 거 안 싫어?
채원 응.
성만 왜?
채원 왜냐면 아빠가 영화배우 하는 거 좋아하잖아.
성만 (감동) 고마워, 채원아.
채원 아빠 나는 있잖아. 합기도 학원 다니는 게 좋은데 엄마는 자꾸만 피아노 학원 다니 라 그러거든? 그래서 피아노 칠 때두 막 합기도 하는 생각하면서 친다? 그러면 선 생님이 막 손을 자로 때리면서 피아노를 부숴라 부숴, 이래. 하기 싫은 거 하는 거 진짜 싫어.
성만 그래두 채원아, 하기 싫은 것도 해야 돼.
채원 왜?
성만 왜냐면... 어... 안 그럼 아빠처럼 되거든.
채원 아빠처럼 돼?
성만 응.
채원 징글징글한 웬수?
성만 어?
채원 엄마가 그랬거든. 아빠랑 나랑 징글징글한 웬수래. (재밌는 듯 푹 웃고)
성만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엄마가 그래...?
채원 응. 근데 진짜루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너무 속상해하지마. 참, 이거. (사진 을 건네준다) 아빠, 갖구 다니는 사진은 옛날 거잖아. 얼마 전에 엄마 랑 새루 찍은 거야.
성만 (받아들고) 고마워. (입 벌어지며) 디게 예쁘게 나왔다.
채원 그치? 아빠 딸 예쁘지? (E 예비종 소리) (일어서며) 아빠, 나 점심시간 끝났어.
성만 그래.
채원 갈게. (볼에 뽀뽀해주고) 잘 가, 아빠. (교실로 뛰어간다. 가다가 손 흔들고)
성만 (흐뭇하게 보며 손 흔들어 주는데 핸드폰 울린다) 한 감독님?
#31 국밥집 (오후)
성만과 재선 앉아있다. 주인이 국밥 두 개를 놓고 간다.
재선 드세요. 벌써 점심 때 한참 지났는데 배고프겠어요.
성만 한 감독님이야말로 왜 아직...
재선 우리야 뭐 어디 밥 때 정해져 있나요? (씁쓸하게 웃고 먹기 시작한다)
성만 (밥 먹으며 왠지 어두워 보이는 재선의 얼굴을 살피며) 저기 한 감독님 무슨 어려 운 일 있어요?
재선 (본다) 말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성만 (쑥스러운 듯 웃고) 감독한테 반말 같은 거 한 번두 안해봐놔서...그럼 한감독이 불 편하대니까요... 나 진짜 말 놔요.
재서 예.
성만 저기...나두 알건 다 알아요. 영화라는 게 극장에 간판 내걸기까진 모르는 거잖아. 제작에... 차질 있어...?
재선 (그저 밥을 먹는다)
성만 (눈치 보며 밥을 먹기 시작한다)
재선 (숟가락 내려놓고 어렵지만 단숨에) 제작사 측에서 선배님 캐스팅에 딴지를 걸어요
성만 (밥을 한가득 막 넣다가 그대로 입 벌리고) ...
재선 지명도 있는 배우를 쓰자구요.
성만 (벙했다가 정신 차리고) 감독님 저요. 정말 잘할 자신 있거든요? 그러니까..(하는데)
(E) 재선의 핸드폰 벨.
재선 잠깐만요. (받으며) 어, 그래. 알았어. 곧 갈게.
성만 (간절하게 본다)
재선 (차마 시선 못 마주치며) 죄송해요. 제가 감독이래지만 힘이 없어요. 다음에 기회되 면 모실게요. 먼저 일어납니다. (미안한 듯 일어서 나간다)
성만 (일어서며) 감독님. 한 감독.
재선 아줌마, 계산이요.
- 서둘러 계산 마치자마자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는 재선.
- 성만, 스르르 자리에 앉는다.
#32 길 (낮)
성만, 멍하니 걷다가 갑자기 이를 앙물며 뭔가를 결심한다.
성만, 반대방향으로 가기 시작한다.
#33 영화사 실장실 (오후)
수헌,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수헌 그래요, 김기자. 응, 알았어. 들어가요.
- 전화를 끊는데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린다.
비서 (E) 안된다니까요, 실장님 지금 자리에 안계세요.
수헌 (일어나 문가로 가며) 무슨 일이야?
- 하는데 비서의 만류를 뿌리치고 성만이 들어온다.
- 수헌, 잠시 놀라서 보지만 이내 냉정한 얼굴로 돌아간다.
비서 죄송합니다. 안 계신다는 데도 막무가내로...
수헌 알았어, 나가봐요. (성만은 쳐다도 보지 않고 자리로 간다)
- 비서 나가고 수헌과 성만만 남는다.
성만 (구십도로 인사 꾸뻑하며) 강성만입니다.
수헌 (앉으며 차갑게) 알아요. 근데 무슨 일이시죠?
성만 실장님, 저 정말 잘할 자신 있어요. 벌써 대사두 다 외웠구요. 저 연기도 잘해요. 정말이에요.
수헌 (서류 등에 시선 주고 성만에겐 일별도 주지 않는데)
성만 (망설이다가 결심하고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 야 이 새끼야!
수헌 (자기한테 그런 줄 알고 황당해서 보는데)
성만 (연기를 하는 중이다) 내가 깡패자식이라구 사람으로도 안보여, 그래? 니 눈엔 내 가 개만도 못 해 보이냐?
수헌 (그제야 연긴 줄 알고) ...
성만 (더 열심히) 웃기지마. 나 황정수, 사람 새끼야. 니 놈 발치에 치이는 똥개새끼가 아니라 사람 새끼라구!
수헌 (OL) 됐어요.
성만 (본다)실장님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우리 딸하구 아내두 저만 믿구있구요 그리구..
수헌 (OL) 이미 결정된 일이에요. 다음에 기회 있으면 같이 일합시다.
성만 (애원한다) 다음은 없어요. 저한텐 다음 같은 건 없어요. 그런 건 모른다구요, 전...
수헌 이미 다른 배우 캐스팅 끝났어요. 우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성만 (울먹이며) 우기는 게 아니라요...우씨...그러니까 제 말은..(엉거주춤 허리 굽히며) 저 좀 살려주세요...
수헌 (전화벨 울리고 받는다) 네, 장수헌입니다. 박사장님. 예. 하하 그렇죠.
성만 (부들부들 떨며 그런 수헌을 보며)
수헌 (성만은 아예 무시한 채) 예? 칭찬이 과하신데요? 그럼요...
성만 (급기야 살기를 띄고 수헌을 보며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34 엘리베이터 앞 (오후)
재선이 급하게 달려온다.
버튼을 누르고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비상계단으로 뛰어간다.
#35 실장실 (오후)
재선이 뛰어들어오면 성만이 유리 꽃병을 들고 있다.
직원들,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웅성웅성 서있다.
수헌 (침착하게 앉아서 일손 놓지 않고) 뭐해? 끌고 나가.
- 한 직원이 주춤주춤 다가가는데,
재선 (직원 만류하며 얼른 나선다) 내가 할게요. 형, 한감독이에요. 왜이래요?
이러지 마요. (하면서 천천히 다가가는데)
성만 가까이 오지 마. 죽어버릴 거야, 차라리 죽어버릴 거라구. (수헌에게) 당신 각오해. 당신 때문에 불쌍한 한 영혼, 이 세상 하직했다구 낼 신문 일면에 날거니까 그렇게 알어!
수헌 (그래도 냉정하다) 당신 같은 사람 죽어도 일면에 안나. 착각하지 마.
성만 (꽃병을 확 내려친다)
- 산산조각나는 꽃병.
성만 (유리 조각을 꽉 쥐고 목에 갔다대는데 손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 혈관을 잘못 건드린 듯 출혈이 심한데...
- 그 바람에 사람들 웅성웅성 놀라고, 수헌도 고개 들어본다.
재선 (놀라서) 형, 그러지 마요. 얼른 놓라구요.
성만 (계속 위협하며 슬쩍 자신의 손을 본다. 무섭고 아프다) 씨이..죽어버린다구..죽는다 구...(하다가 무서워서 울먹이며) 한감독 어떡해 봐. 피가 안 멈춰. 어떡해...나 정말 죽어... 죽는다구... (하며 스르륵 주저앉는다)
- 수헌을 비롯한 직원들, 벙쪄서 보는데...
재선 (달려와서 유리를 치우고 직원들에게) 수건 같은 거 없어요?
여직원 (손수건을 얼른 건네고)
재선 (손수건으로 지혈을 해준다) 대체 이게 무슨 꼴이에요? 왜 이렇게 무식해, 사람이?
성만 (울먹이며) 아파... 아파서 죽을 거 같애...
재선 (어이없어서) 이 정도로 안 죽으니까 일어나요, 병원가게... (일으켜주고)
성만 (울면서 손 호들갑스레 치켜들고 일어선다)
- 재선이 성만을 데리고 나가면, 직원들 틈의 수헌 그런 성만을 보며...
#36 병원 복도 (오후)
성만이 손을 꿰메고 붕대를 감고 나온다.
재선 (기다리고 있다가 일어서며) 다 꿰맸어요?
성만 (끄덕끄덕)
재선 그러게 그런 무식한 짓은 왜 해요?
성만 (씩 웃으며) 대신 배역 얻었잖아. 비록 이름 없는 역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두 다섯 씬이나 나와. 대사두 있구.
재선 (어이없어서 아예 웃음이 나온다) ...
씬37 민식의 현관 앞 (저녁)
성만, 붕대 감은 손으로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오는데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씬38 민식의 집 (저녁)
성만, 놀라서 들어오면 난장판인 집.
민식의 씨디들도 망가져서 뒹굴고 있고...
성만, 집안을 둘러보며 기가 막힌데, 핸드폰이 울린다.
성만 (발신번호 확인하고) 야, 너 어디야? 집에 도대체 왜 이런 거야?
#39 여인숙 (밤)
성만, 씨디박스와 짐들을 끙끙대며 들고 온다.
성만이 들어서면 카운터에서 졸고 있던 주인이 본다.
성만 저기 이민식이라구...
주인 (귀찮은 듯 고개로 어느 방을 가리키고)
씬40 여인숙 방 (밤)
성만, 들어서면 민식이 아가씨 둘과 고스톱을 치고 있다.
성만, 한심하고 어이없어 보는데,
민식 어, 왔어? (하고 여자들에게) 이제 그만하자, 언니들. 담에 가르쳐줄게.
- 아가씨들, 궁시렁대며 일어난다.
아가씨1 이제 물오르는 데 가라냐, 재수없게? (하며 나가는데)
민식 (잡으며) 돈은 주고 가야지.
- 아가씨들, 재수 없다는 듯 뿌리치고 나가고.
민식 (그 뒤로) 그럼 담에 갚어, 외상으로 해줄 테니까.
성만 ... 미친 놈.
민식 갖구 왔어?
- 성만, 씨디박스를 탕 내려놓는다. 그 바람에 망가진 씨디들이 구른다.
민식 (보며 놀라서) 개새끼들, 나쁜 새끼들. (눈물 그렁해서)
성만 어떻게 된 거야?
민식 알 거 아니야.
성만 그러게 다신 노름 같은 거 하지 말랬잖아. 안한다고 약속했잖아.
민식 첨엔 끝발 좋았단 말야. 근데 그 새끼들이 짜고 몰 멕인 거였어.
성만 그걸 몰랐어, 병신아?
민식 누가 노름이 좋아서 했어? 아무리 궁리해봐도 돈 나올 구멍이라곤 이거밖에 없잖 아... 그렇다구 나 같이 재수 옴붙은 놈한테 로똔지 뭔지가 당첨될 리도 없구. 그냥 이거 딱 한탕 해서 더두 덜두 말구 음반 한 장만 낼라 그랬단 말야. 형은 저 혼자 잘나간다구 나한테 관심두 없었잖아. 근데 무슨 자격으로 간섭이야, 재수 없게?
성만 (씁쓸하게) 나두 별루 안 잘나가.
민식 (보며) 왜, 무슨 일 있어?
성만 배역 바꼈어. 이름 없는 역이다. 미친 남자 역이야.
민식 ... (맘 아프지만) 형한테 딱 맞네. 형 원래 미친놈이잖아.
성만 건 그래.
- 두 사람, 씁쓸히 마주 보다가 어느 순간 피식 웃음이 나더니
뭐가 웃긴지 쿡쿡 웃어대기 시작한다.
서로의 인생이 가슴 아프지만 그렇게 웃을 수밖에 없는 두 남자...
씬41 몽타주
- 영화 촬영장 (오전)
어느 공터에 돼지머리 고사상이 차려져 있다.
‘천국 가는 길 크랭크인’ 플랜카드도 걸려있고.
감독과 수헌, 주연배우들 절한다.
기자들은 그런 광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고
그 주변으로 관계자와 구경꾼들이 빙 둘러 서있다.
그 둘러싼 띠 뒷켠에서 성만, 까치발을 하며 고사를 지켜본다.
초라한 양복을 차려 입은 성만은 뒤에서 지켜보는 것만도 마냥 신이 난다.
- 영화 촬영장 (다른 날 낮 한강변 정도)
주연배우들 리허설 중이다.
재선과 스탭들, 배우들의 동선을 지정해주며 분주한 가운데 그들로부터
동화도 소외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의 성만. 구경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시나리오를 보며 중얼중얼 연습하고.
성만의 시나리오는 다 헤져 있다.
시간경과
어두워지고 있다.
재선은 주연배우들과 시나리오를 보며 뭔가 상의 중이고
성만은 조금 떨어져 인내심 있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경과
완전히 어두워졌다.
성만,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졸고 있다가 흠칫 잠에서 깨면
스텝들, 장비를 챙기며 철수 중이다.
성만,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워 보다가 이내 가서 스탭들을 돕기 시작한다.
- 세트장. 어느 사무실 풍경.
조폭 차림의 남자 둘이 대사를 주고받고 있다. (성만과 경비가 주고받던 대사들) 촬영장 한구석에서 성만이 촬영장면을 바라보며 입모양으로 대사를 따라 읊고 있다
아이처럼 고개를 쑥 빼고 촬영을 지켜보는 성만의 얼굴에 간간이 쓸쓸함과 아쉬움 이 묻어나지만 다시금 실실 웃어대는 성만.
성만은 이렇게 촬영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하다.
씬42 학교 복도 (낮)
채원과 사내아이들이 싸우고 있다.
여자아이들 몇은 말리는 형국이고 채원은 사내아이들을 쥐잡 듯 잡는데,
채원 (사내 아이 하나를 발로 차며) 한번만 더 뻥이라구 우기면 정말 가만 안 둬.
아이1 (맞으면서도 지지 않고) 그럼 증명해 봐.
채원 뭘?
아이1 니네 아빠가 영화배우라는 거 증명해 보라구.
채원 그걸 내가 어떻게 증명해?
아이2 에이, 거봐. 거짓말이잖아.
채원 알았어, 내 말 뻥 아니면 니들 각오해.
씬43 촬영장 (오후)
성만, 전화를 받고 있다. 난감한데...
성만 어, 알았어... 그래, 채원아... 어...
- 전화 끊고 성만, 의자에 앉아 코디한테 다리 마사지를 받고 있는 여배우와
시나리오 검토 중인 남배우에게 쭈뼛쭈뼛 간다.
성만 저기...
- 남배우, 여배우, 본다.
성만, 어렵게 그들을 보며... 그러다 특유의 웃음으로 씩 웃으며...
씬44 촬영장 앞 (오후)
성만, 아이들 기다리고 있으면 채원과 친구들이 온다.
채원 아빠. (달려와 안긴다)
성만 (안아주고, 아이들에게 폼 잡고 의젓하게) 어, 우리 채원이 친구들이구나?
- 아이들, 안녕하세요? 인사한다.
성만 (머리들 쓰다듬어주며) 예쁘게들 생겼네. (아이1을 보고는) 넌 얼굴에 심술이 덕지 덕지하다, 야.
아이1 (못마땅해서) 아저씨, 정말 영화배우 맞아요? 영화배우가 뭐 그렇게 생겼어요?
성만 거 이상한 놈일세. 영화배우는 뭐 눈이 세 개구 입이 두개냐? 이거 머리 되게 나쁜 놈이네.
채원 응, 안 그래도 얘 머리 되게 나뻐, 아빠.
성만 그치? 딱 그렇게 생겼네.
아이1 씨이.
씬45 촬영장 (오후)
성만이 폼잡으며 채원과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
아이들, 주연배우들을 보고 우와, 누구다. 진짜야. 등등 호들갑 떠는데.
성만 (으쓱하며 배우들에게) 늬들 일루 와서 인사해. 내 딸하구 친구들이야.
- 배우들, 못마땅하지만 다가와 애써 상냥하게 인사한다.
여배우 선배님, 딸이예요? 예쁘게 생겼네...
아이1 정말 이 아저씨가 누나랑 형 선배님이에요? 영화배우 맞아요?
남배우 응, 선배님이셔. 영화배우 맞구.
성만 야 임마, 존경하는을 뺏잖아.
남배우 (어이없지만) 예... 존경하는 선배님...
성만 (아이1의 볼을 꼬집으며) 너 쪼끄만 게 벌써부터 사람 의심하는 버릇들이면 인생 고달퍼진다. 똑바로 살엄마.
아이1 (고분고분해져서) 네.
성만 (배우들에게) 뭐하냐? 애들한테 싸인이라도 해주지 않구?
- 배우들과 뒷편의 스탭들은 그런 성만을 어이없게 보며...
동 시간경과
- 한켠에서 아이들이 배우들에게 싸인을 받고 있다.
- 조금 떨어져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채원과 성만.
채원 (좋아서) 난 있잖아, 아빠. 아빠가 정말 이렇게 훌륭한 배운 줄은 몰랐어. 사실은 애들한테 뻥치는 거 맨날 찔렸거든? 근데 뻥이 아니었어.
성만 그러엄.
채원 아빠, 짱짱짱 멋있어. 짱 자랑스러워.
성만 (흐뭇해서) ...
씬46 촬영장 앞 (오후)
채원과 아이들, 싸인을 소중하게 들고 나오며 들떠서 떠든다.
아이2 나는 세장이나 받았다. 집에 가서 형한테 자랑해야지.
아이3 나두 많이 받았어. 나보군 이쁘다구 오빠가 뽀뽀도 해줬다?
채원 (흐뭇하게 보며) 늬들, 이제 알았지? 한번만 더 개기면 죽을 줄 알어.
아이들 (동시에) 어.
채원 늬들끼리 집에 갈 수 있지? 왔던 데루 버스 타고 가면 돼.
아이1 너는 안가?
채원 나는 아빠 기다렸다가 같이 갈 거야.
씬47 촬영장 (오후)
채원, 좋아서 폴짝폴짝 뛰어 들어오다가 우뚝 선다.
성만, 굽신거리며 배우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성만 정말 고마워.
여배우 됐어요.
성만 저기 커피 한잔 뽑아다줄까, 냉커피루다? 조 앞에 맛있는 커피집 있는데.
남배우 커핀 됐구 가서 담배나 좀 사다줘요.
성만 담배? 아휴, 그거 몸에 안 좋은데 웬만하면 끊지.
남배우 신경 끄세요.
여배우 전 에스프레소요.
성만 알았어, 기다려. 금방 갔다올게.
- 돌아서다가 놀라는 성만.
- 채원이 눈물 그렁해 보고 있다.
성만 ... 채원아...
채원 ... (눈물 쓱 닦으며 씩 웃는다) 아빠랑 같이 가려구. 기다려도 돼지?
성만 ...
씬48 테이크 아웃 커피점 앞 (오후)
성만과 채원이 커피를 한 아름 사 가지고 나와서 걷는다.
둘 다 말이 없다. 성만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채원... 성만을 향해 씩 웃어 보인다.
성만, 그런 채원이 고마워서 울컥해 보는데,
채원이 성만의 손을 잡는다.
그렇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부녀.
씬49 촬영장 (늦은 저녁)
성만이 재선에게 다가가 사정을 하고 있고
채원이 구석에 앉아서 그런 성만을 보고 있다.
성만 저기, 한 감독. 나 먼저 촬영하면 안 될까? 딸이 기다리고 있어서...
재선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안 그래도 주연 배우들, 스케줄 때문에 빨리 끝내고 가야 한다고 성화들이에요.
성만 그래...
- 성만, 힘없이 돌아온다.
- 채원, 그런 성만을 보며...
씬50 버스 정류장 (밤)
채원과 성만, 버스를 기다리고 서있다.
성만 아빠가 데려다 줘야 되는데...
채원 괜찮아... 나 혼자서두 잘 왔잖아.
성만 미안해.
채원 내가 애기야? 뭐가 미안해.
- 버스가 도착한다.
채원 아빠, 나 갈게. (미소로 인사하고는 뛰어간다)
성만 채원아, 조심히 가. 전화할게, 아빠가. (그 사이 채원은 이미 버스에 오르고)
채원 (버스 뒤쪽으로 와 창문을 열고) 아빠, 힘내. 나한텐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배우야.
성만 (감동으로) 채원아...
채원 아빠 영화 개봉하믄 내가 젤 먼저 보러갈게, 알았지?
성만 (끄덕끄덕)
채원 (손으로 하트 만들어 보이며) 아빠, 사랑해...
- 하는데 버스 출발한다.
- 성만,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보며 오래도록 손을 흔든다.
씬51 도로 (밤)
채원,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속력을 내며 달리는 차들 때문에 엄두가 나질 않는다.
차가 뜸해지자 도로로 발을 내딛는데 그 위로 덮치는 강렬한 헤드라이트.
끼익 울리는 파열음.
씬52 촬영장 구석 (밤)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한껏 헝크러뜨린 성만이 분장사에게 분장을 받고 있다.
성만 (간지러워 쿡쿡거리며) 나는 분장받을 때 간질간질한 게 기분 되게 좋드라.
분장사 (웃음 나며) 움직이지 마세요.
성만 (아이처럼) 네, 입 꾹 다물고 있을게요. (하는데 핸드폰이 진동으로 울린다, 분장사 에게) 잠깐만요. 어, 채원 엄마. (놀라며) 왜 그래? 채원이가 왜? 울지만 말고 말을 해! 알았어, 당장 갈게. (전화를 끊고 허겁지겁 나가려는데)
스탭 (잡으며) 금방 촬영 시작할 건데 어디가요?
성만 저기, 급한 일이 있어서...
스탭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두 그렇지 촬영 중에 가면 어떡해요, 스케줄 꼬이잖아요.
재선 (오며) 무슨 일 있어요?
성만 (멍한 채) 어? 무슨 일? 아니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아무 일도 아닐 거야.
재선 근데 어딜 간다는 거예요? 오늘 밖에 시간 없어요.
성만 금방 올게, 금방 갔다 온다구.
재선 (성만이 심상찮음을 보고) 알았어요. 뒤로 돌려 놀 테니까 바로 와야 돼요.
성만 (끄덕끄덕 하고는 달려 나간다)
씬53 병원 로비 (밤)
엘리베이터로 달려가며 성만, 채원아, 괜찮을 거야...
주문을 외듯 중얼중얼거린다.
씬54 수술실 앞 (밤)
성만, 달려오면 주희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앉아있다.
성만 어떻게 된 거야?
주희 (일어나서 마구잡이로 때린다) 왜 애를 혼자 보내? 왜 왜? 왜 혼자 보냈냐구 왜애..
성만 (망연히 서서) ...
주희 (울면서) 우리 채원이 잘못되면 가만 안둘 거야. 너 죽여 버릴 거야.
성만 (그저 서서) 채원아...
- 시간경과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 성만과 주희.
성만의 핸드폰이 울린다. 성만, 난감한 얼굴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는다.
성만 어, 한 감독. 어... 그게... (한숨 쉬며) 알았어. 그래.
주희 (그저 앉아있는데)
성만 (어렵게) 수술 얼마나 걸린댔어?
주희 몰라.
성만 나... 잠깐 촬영하구 올게. 수술 끝나기 전에 올 거야.
주희 (놀라서 보며) 미쳤구나?
성만 나 땜에 오십 명도 넘는 스탭들이 기다리고 있어.
주희 (기막혀서 악다구니를 쓰며) 스탭? 영화? 그래, 좋아. 좋다구. 그럼 우리 채원이는? 우리 채원인 저기서 저러구 사경을 헤매구 있는데 안중에도 없니? 그래? 너한텐 우 리 채원이보다 그따위 영화가 중요하냐구!
성만 (간절하게) 그런 게 아니야. 나두 이러구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구.
주희 그래, 가. 가 이 나쁜 새끼야. 대신 다신 오지마. 다신 나하구 우리 채원이 앞에 나 타나지 말라구!
성만 (일어서며) 금방 올게... 간단한 씬이니까 금방 끝날 거야.
주희 (악에 받쳐서) 나쁜 놈... 너 같은 건 아빠두 아니야, 이 나쁜 놈아...
성만 (주희의 악다구니를 들으며 무거운 마음으로 수술실 앞으로 걸어가 문에 기대선다) 채원아..아빠, 금방 올게. 그러니까 채원이도 힘내..아무 일 없을 거니까 겁먹지 말 구... 힘내고 있어, 알았지? 아빠... 금방 올게... (그렁해 말 마치고는 무겁지만 빠 른 걸음으로 떠나는 성만)
주희 (눈물 흘리며 그런 성만을 원망스레 보며) ...
씬55 택시 안 (밤)
성만, 눈물 훔치면서 전화를 받고 있다.
성만 다 왔어. 어... (끊고) 아저씨, 빨리 좀 가주세요. (이 악무는 성만)
씬56 야외 촬영장 (까페 앞 정도, 밤)
살수차가 대기해 있고 스탭들이 촬영준비를 하고 있다.
성만이 급하게 도착하며,
성만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서둘러 위치로 간다)
씬57 수술실 앞 (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채원이 이동침대에 실려 나온다.
주희, 채원아, 부르며 달려간다.
씬58 야외 촬영장 (밤)
영화촬영중이다.
살수차가 물을 뿜어대고, 성만이 미친 사람처럼 풀린 눈으로 해죽해죽 웃으며 사내 들 뒤에 달라붙으면 사내들 중 하나가 성만의 얼굴을 후려친다.
마음이 약해 제대로 때리지 못하는 배우.
재선 엔지! (하는데)
성만 (상대 배우의 팔을 잡아서 자신의 얼굴을 퍽퍽 때리며) 그냥 쎄게 때리라니까.
몇 번을 말해! 이렇게 때리라구, 이렇게!
- 배우와 스탭들, 그런 성만을 벙쪄서 본다.
씬59 중환자실 (새벽)
지친 기색의 주희가 채원의 손을 잡고 있는데 채원의 손이 살짝 움직인다.
주희 (놀라서) 채원아.
채원 (힘겹게 눈을 뜬다)
주희 (울컥 울음을 터뜨리며) 고마워, 채원아... 고마워... 엄마 알아보겠니? 어?
채원 (눈물 그렁한 눈으로 애써 웃어 보이고는 누군가를 찾는다)
주희 (알아채고) 아빠 찾는 거야?
채원 (그렇다는 듯)
주희 아빠, 금방 올 거야. 중요한 촬영이 있어서 잠깐 갔다가 다시 온댔어.
채원 ...
씬60 야외 촬영장 (새벽)
계속 촬영이 진행 중이다.
사내들에 의해 빗속으로 패대기쳐지는 성만. 빗물에 얼굴이 처박힌다.
그때 남자주인공이 사내들 틈을 헤치고 나와 성만을 일으켜주고...
엉망인 몰골로 아이처럼 천진한 미소로 남자주인공을 올려다보는 성만에서
재선이 오케이를 외친다.
재선의 싸인이 떨어지자마자 성만, 무섭게 촬영장을 빠져나간다.
스탭들, 황당해서 왜 저러나 보고. 재선도 무슨 일이 있나, 걱정으로 보며...
씬61 중환자실 (새벽)
심장박동모니터의 그래프가 불규칙해진다.
의사들이 응급처치를 하고, 주희는 울면서 지켜보고 있다.
씬62 병원 앞 (새벽)
엉망인 몰골의 성만, 택시에서 내려서 달려간다.
씬63 중환자실 (새벽)
성만, 허겁지겁 들어오는데 채원의 위로 시트가 덮어지고 있다.
주희는 거의 실신상태로 넋 나가 있다.
성만 (놀라서 우뚝 섰다가 달려오며 시트를 걷는다) 무슨 짓이야? 이게 뭐하는 짓이야?
주희 (정신을 차리고 성만을 본다)
성만 (주희에게) 채원 엄마, 주희야. 우리 채원이 왜이래?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구?
말해 봐아! 말 좀 해 봐아! (발악하는데)
주희 (성만의 뺨을 때린다)
성만 (보는 위로)
주희 (낮지만 무섭게) 가.
성만 (그렁해서 채원에게 매달린다) 채원아... 아빠 왔어. 아빠 왔어, 채원아.
주희 (미친 듯 성만을 끌어대며) 너 채원이 볼 자격 없어. 가. 채원이가 얼마나 널 찾았 는 줄 알어?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야! 가란 말이야, 가! 가라구!
성만 (눈물을 흘리며 밀려난다)
주희 (채원을 지키려는 듯 채원에게 몸을 기대 끌어안는다)
성만 (망연히 서서 그 모습을 보다가 털썩 주저앉는다)
씬64 강가 (낮)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주희가 채원의 유골을 뿌리고 있고 성만은 그저 감정 없는 얼굴로 옆에 서있다.
주희, 유골을 다 뿌리고 성만을 본다.
주희 용서 안할 거야, 당신.
성만 ...
주희 (차갑게 보다가 돌아서 간다)
- 주희가 가자, 뒤에서 울면서 지켜보던 민식이 절뚝이며 성만에게로 온다.
- 민식은 맞아서 엉망인 얼굴에 다리에 깁스까지 한 상태다.
민식 형...
성만 (보며) ...어떻게 된 거야?
민식 별거 아냐, 빚 안 갚는다구 몇 대 얻어맞았어.
성만 괜찮아?
민식 괜찮아, 이까짓 거... (하며 아이처럼 성만을 끌어안고 꺽꺽대며 운다) 형, 난 괜찮 은데 우리 채원이 불쌍해서 어떡해... 형, 불쌍해서 어떡해...
성만 (무감한 얼굴로 민식에게 몸을 맡긴 채) ...
씬65 동 시간경과
민식도 가고 이제는 성만, 혼자다.
멍하니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성만. 그 위로
채원 (E) 징글징글한 웬수?
- 플래쉬컷
채원 엄마가 그러거든. 아빠랑 나랑 징글징글한 웬수래.
성만 엄마가 그래...?
채원 응. 근데 진짜루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너무 속상해하지마. 참, 이거. (사진 을 건네준다) 아빠, 갖구 다니는 사진은 옛날 거잖아. 얼마 전에 엄마 랑 찍은 거야.
성만 (받아들고) 고마워, 되게 예쁘게 나왔다.
채원 그치? 아빠 딸 예쁘지? (E, 예비종 소리, 일어서며) 아빠, 나 점심 시간 끝났어.
성만 그래.
채원 갈게. (볼에 뽀뽀해주고) 잘가, 아빠. (교실로 뛰어간다. 가다가 손 흔들고)
- 성만, 강가에 앉아있다.
- 플래쉬 백
채원이 눈물 그렁해 성만을 보고 있다.
성만 ... 채원아...
채원 ... (눈물 쓱 닦으며 씩 웃는다) 아빠랑 같이 가려구. 기다려도 돼지?
성만 ...
- 강가. 성만,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 플래쉬 백
채원 (버스 뒤쪽으로 와 창문을 열고) 아빠, 힘내. 나한텐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배우야.
성만 (감동으로) 채원아...
채원 아빠 영화 개봉하믄 내가 젤 먼저 보러갈게, 알았지?
성만 (끄덕끄덕)
채원 (손으로 하트모양 만들며) 아빠, 사랑해...
- 강가. 성만, 꺽꺽 오열하고 있다... F.O
씬66 건물 옥상 (저녁)
스탭들이 촬영준비를 하고 있다.
조감독 (핸드폰을 걸다가 통화가 안 되는지 답답한 얼굴로 재선에게) 아직두 연락 안 되는 데요. 강성만씨 촬영 펑크내는 거 아니에요?
재선 (착잡한 얼굴로) ...
조감독 어떡해요, 형? 불안한데 일단 이씬 제끼기루하구 철수할까요?
재선 아니, 올 거야. 오늘 촬영인 거 아니까 꼭 올 거야.
조감독 (미심쩍은 얼굴로) ...
씬67 시외버스 (저녁)
성만, 초췌한 몰골로 뒷자석에 앉아 빵을 먹고 있다.
그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해 허기가 졌다.
목이 막히자 우유를 벌컥벌컥 마신다. 얼굴에 흘러내리고.
옆 좌석에 앉은 할머니가 참견을 한다.
할머니 천천히 먹어요, 멕혀. 원 삼일은 굶은 사람 같네.
성만 (입 한가득 우유와 빵 문 채 손으로 흘린 우유 쓱 닦으며) 사일 굶었어요.
할머니 쯧쯧, 어쩌다?
성만 우리 딸이 죽었거든요. 근데요...근데두 배가 고프구요 울다가두 오줌 마렵구 그러 네요. (큭큭 웃으며) 할머니, 울면서 오줌 싸봤어요? (큭큭 웃다가 그렁해지며)
할머니 아이구, 그랬구먼. 그래..그래서 사람 모질다고 하는 거야. 그래두 어쩌겠어 따라 죽 지 못할 바에야 살아야지. 살라면 뒷간도 가고 밥두 먹어야지.
성만 (흐르는 눈물을 쓱 닦아내고는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서 보여준다) 우리 딸이에 요, 되게 이쁘죠? 근데 이쁘다구 만지지는 마세요, 닳아요.
할머니 아휴, 곱기도 참 곱다... 이렇게 고운 걸 어찌 보냈누? 어찌 가슴에 묻었어...
성만 가슴에 안 묻었어요. 안 묻었어요, 할머니...(혼잣말처럼) 내가 만나러 갈거거든요... 내가 우리 채원이한테 갈 거거든요... (그렇게 멍한 시선으로 창밖을 보며) ...
씬68 건물 앞 (저녁)
성만이 건물 앞에 도착해서 건물을 올려다본다.
그 얼굴에 어떤 비장함이 살짝 스치는 듯도 싶다.
씬69 건물 옥상 입구 (저녁)
성만, 모습을 드러내면 조감독 벌떡 일어나 다가가며 뭐라 한마디 하려는데
재선 (버럭)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에요! 죽었다 살았다 연락도 없이 이게 무슨 경우 없는 짓이냐구요, 대체! 안 그래도 이것저것 머리 터져 죽을 지경인데 선배까지 왜 날 돌게 하냐구요, 왜!
성만 (순순히) 미안해... 잘못했어, 한감독...
재선 (뭐라고 더 말하려다가 누르며) 됐어요, 시간 없으니까 빨리 준비해요.
씬70 건물 옥상, 씬2의 (밤)
옥상 가에 혼자 우두커니 서있는 성만, 아래를 내려다본다. 까마득한 땅 끝.
순간 현기증이 일지만 내려다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이내 담담해진다.
성만, 문득 옷 속의 벨트를 만져본다. 어딘가에 연결된 안전벨트.
성만, 벨트를 만지는 손이 떨리더니 고리를 느슨히 한다.
재선 (카메라 앞에 앉아서) 카메라. 액션.
조감독 (카메라 앞에서 클립보드의 딱소리와 함께) 씬 112-2.
촬영이 시작되고 성만, 옥상가로 천천히 걸어간다.
난간 앞에 서서 세상에 작별을 고하듯 뒤를 돌아보는 성만.
담담한 얼굴이지만 그 눈빛은 쓸쓸하고 슬프다.
그러더니 이내 마음 다잡듯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본다.
스탭들 성만의 연기를 주시하고 모니터를 통해 성만의 연기를 보는 재선.
성만의 연기는 최고이다.
이제 성만, 조심스레 난간 위로 올라간다.
위태롭게 난간에 선 성만의 머리칼이 바람결에 살랑인다.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는가 싶더니 미련을 뿌리치듯 이내 옥상 아래로
몸을 날린다. 정말 뛰어내렸다.
일동, 너무 놀라서 한순간 침묵했다가 난리가 난다.
어떻게 된 거야? 정말 뛰어내렸어! 비명 소리 등등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재선이 선배님, 하며 달려가면 그게 신호이듯 스탭들 다들 옥상가로 달려가 난간에 매달린다.
씬71 옥상 난간 (밤)
스탭들 저마다 난간에 매달리면 안전벨트를 두 손으로 꽉 잡고 있는 성만.
성만 살려줘, 살려주세요. 나 안 죽을래, 채원아. 미안해...아빤..아직은 벌레처럼 더 살래, 채원아... 구차하게 더 살래...
- 눈물범벅이 되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성만. F.O
씬72 어느 거리 (낮)
경비 아저씨가 영화 포스터를 보고 있다.
주변을 살피다가 잽싸게 포스터를 뗀다.
씬73 경비실 (낮)
포스터가 붙어있다.
씬74 강가 (낮)
성만, 강가에 영화 티켓을 띄운다.
성만 (담담한 미소로) 채원아, 꼭 봐줘. 아빠, 열심히 했어...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영화티켓...
씬75 극장 앞 (낮)
사람들, 줄 서서 티켓을 끊고 있다.
주희가 극장 앞에 와서 선다.
잠시 망설이다가 티켓을 사는 주희.
그 옆으로 축하 받으며 환한 얼굴로 들어가는 재선과 주연배우들이 보인다.
씬76 극장
영화상영이 막 끝났다.
디 엔드 뜨고 만든 사람들, 자막 올라간다.
극장에 불 켜지고 사람들 부산스레 일어서 나간다.
사람들 거의 빠져나갈 무렵 한 켠에 앉아있는 주희가 보인다.
그 얼마쯤 뒤에 민식이 앉아있다.
화면엔 이제 배우들 이름이 올라가고 있다.
그들은 모두 성만의 이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주연과 조연들 이름이 올라간 후 ‘미친 남자 강성만’ 오른다.
성만, 맨 뒷자리 구석에 앉아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는 걸 보고 있다.
성만의 얼굴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엔딩
씬77 에필로그 (빛바랜 사진들)
- 병실. 갓 태어난 아기(채원)을 안고 행복해하는 성만과 주희(20대)
- 채원의 돌상이 차려져 있다.
주희는 연필을, 성만은 돈을 들고 채원의 시선을 끌고 있다.
- 채원의 첫걸음마. 성만은 채원을 향해 두 팔을 쭉 벌리고 있고,
채원은 뒤뚱뒤뚱 아빠를 향해 첫걸음을 내딛고 있다.
채원의 첫걸음마를 감동으로 지켜보는 성만과 주희.
- 어느 공원. 성만과 주희가 서너살쯤 된 채원의 손을 잡고 하늘비행기를
태워주고 있다. 공중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 채원. (5살)
- 성만과 주희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채원(7살)
- 아빠의 볼에 뽀뽀하는 채원과 그 옆에서 미소짓는 주희,
- 어느 놀이터 정도. 채원이 초코파이 정도에 촛불을 밝히고 성만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다. 성만과 채원은 둘 다 고깔모자를 쓰고 있고.
눈물 그렁해서 촛불을 끄는 성만. 환한 미소로 박수를 쳐주는 채원.
환하게 미소짓는 성만의 얼굴...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