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들 블라디보스톡에서의 하루!
자원활동가들이 러시아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 지역 현장에 대한 이해와 전망을 공유하여 상호간의 유대와 친목을 도모하고 향우 발전적인 사업을 모색해 보기 위해 준비한 자원활동가 교육 워크샵은 지난 동북아평화신화전 당시 김봉준 화백님과 함께한 비공식 강연을 시작으로 그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번 블라디보스톡 방문은 연해주 역사 현장 및 관광지 정보를 사전 조사하고 현장 답사하여 공부하는 프로그램으로 그 일정이 짜여졌다.
이른 아침 일어나 담배를 피기 위해 솔빈 문을 열고 나가니 지난 며칠 간 따뜻한 날씨에 몸이 적응했는지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려왔다.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며 씻기 시작했고 부지런한 여성 동무들은 아침을 챙겨 먹고, 게으른 남성 동무들은 씻자마자 출발해야 했다.
설레임을 가득 안고 우리 8명(김 선생님, 은영씨, 윤구 형, 정우 형, 평록 형, 윤진, 소연, 태희)은 도요타에 몸을 맡겼고 몇 명은 지난 밤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잠을 청했다. 블라디보스톡 가는 길은 우스리스크가와 마찬가지로 도로 사정이 좋지 못했다. 뒷자리에 앉은 나와 윤구형, 소연이는 가는 내도록 돌출이나 구덩이를 지날 때 마다 깜짝 놀라야만 했다. 몇 번의 블라디 왕복을 경험한 김 선생님은 제한 속도 40Km인 곳은 어느새 감으로 느끼고 계셨고 우리는 한번도 경찰에 잡히지 않고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자마자 극동대학교 부속 건물에 있는 한국어교육원을 찾아갔다. 교육원장님은 문 앞에 이미 나와 계셨고 원장님의 바쁜 일정으로 초스피스 안내로 20분 만에 모든(?) 설명을 듣고, 교육원장님과 함께 블라디보스톡에서 유일하게 한국어를 필수로 하는 28 스꼴라를 찾아갔다. 그곳은 한국어 경연대회가 한창 이었는데 대부분이 러시아 아이들로 한복을 입은 러시아 소년, 소녀들이 너무 이뻐 보였다. 대회장 안에는 "우리는 한국어를 배웁니다."라는 큰 글씨에 괜히 한국인이라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워졌다. 고려인으로 보이는 선생님들이 있어 여쭤보니 한분은 조선족, 한분은 한국에서 오셨는데 선교사로 3년간 활동하시다가 현재 28학교에서 교사로 근무 하신다고 한다.
28학교를 떠나 점심 식사를 위해 가던 도중 진이가 '서태지가 공연한데'라고 하자 누군가 '정말? 언제?? 언제??' 라고 반문 했다. 일순간 다들 웃음이 터져나왔고 다시 누군가 서태지가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했던 곳이라고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스테이크 하우스'라는 식당에 도착했는데 한국어 메뉴판에 한국어 음식이 가득한 이곳에서 우리는 배불리 먹고 다음 일정을 고민해야 했다. 1박 2일로 꼼꼼히 돌아보려 했으나 잘 곳이 마땅치 않아 결국 하루 일정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식사를 마치고 블라디보스톡 역 앞 광장에서 레닌을, 역 안에서는 소연이가 준비한 설명을 듣고 플랫폼으로 들어갔다.(개방형 역이라 무료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기차와 함께 사진을 찍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 곳은 블라디보스톡 항이었다. 영화 태풍에서 이정재와 장동건이 만났다는 다리를 건너편 다리에서만 보고 여객 터미널로 들어가 항구를 바라보니 부산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전략적 요충지라는 느낌이 팍 드는 군함들이 눈에 띄었다.
다음 장소는 혁명광장으로 날씨가 추워서 인지 황량한 느낌이 들었다. 부산의 용두산 공원과 같은 닭둘기들만 잔뜩 있었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세계 대전 당시 무적의(?) 잠수함 C-56을 보러갔다. 그곳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과(하지만 꺼질때도 있다고 한다) 전쟁 당시 전사자들의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불꽃 앞에서는 신혼부부들이 웨딩사진을 찍고 있었다. 러시아 결혼식에는 접시를 깨트린다고 들었는데 접시 깨트리는 것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조금 걸어가니 개선문이 보였고 아르세니예쁘 박물관 별관이 있었다. 건물 외벽에는 2002년 한국민족문화실 행사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건물 앞에는 알 수 없는 비석이 있었다.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들어가기에 대단한 것이 있나 보다 하고 우리도 입장료를 내고 들어 갔더니...어쳐구니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안에는 온통 보석을 파는 곳이었다. 구매자에게 돈을 받고 입장을 시키다니 이해할 수 없는 장소 였다. 마지막 탐방 지역으로 신한촌을 방문했다. 신한촌 기념비를 살펴보고 이제 하나 남은 신한촌 옛 거리와 건물을 보기 위해 이동했다. 집 간판에 선명하게 씌여 있는 서울쓰카야(?) 2번지.
잠시 쉬어가기 위해 해변가로 갔다. 꽁꽁 얼어있는 바다와 그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을 보면서 참 세상은 넓구나 라는 것을 느끼는 동시에 해변가 옆에 있는 놀이터에서 시소를 보고 타려다 넘어져 엉덩이가 돌 구덩이에 쳐 박혔다. 어찌나 아프던지...일어나니 건너편에서 러시아 사람이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끄러워 안 아픈척 걸어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떠나기 전 해변가 상점에 들어가 맥주 한잔과 닭고기, 샤슬릭을 먹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러시아 친구들이 어찌나 많은 관심을 보이던지 말도 안 했는데 우리 테이블에 앉아 합석을 했다. 분주함에 우리는 일어났고 다시 우정마을로 돌아왔다.
숨가쁜 일정 속에서, 준비를 잘 하지 못한 일정 속에서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 부끄러웠다. 사실 부끄럽다는 감정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흥분의 감정이 더 앞섰던 거 같다.
누군가 그랬다. 진정한 배움의 여행은 그 시간, 그 장소의 민중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얼마나 소통하려 노력했고, 소통을 이루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겠다.
첫댓글 아~ 교육원도 갔군요... 예전에 블라디보스톡 간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글 잘봤습니다. ^^
good
다시한번 블라디보스톡에 가보고싶어요~~ㅎㅎ
와우! 오야행님이네... 무지 반가워요. 저 오늘 가입했어요. 새한이는 벌써 다녔갔네....6월 기대됨...그럼..건강하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