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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교실~~ 스크랩 김추자 - 봄비| 노래란? |
능계 추천 0 조회 72 15.03.19 15: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김추자 - 봄비

 

이슬비 나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 주는 봄비
언제까지 나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 주는 봄비
언제까지 나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70년대 초반 우리나라 연예계를 그 독특한 반역의 정염으로 풍미하면서

잠자는 돌부처까지도 술렁이게 만들었던, 위대한 말괄량이, 엔터테이너.
 
대중들의 새 노래 반백년을 통하여 수없이 많은 가수들이
 저마다의 목청을 돋우며 파란도 많은 명멸부침을 거듭하여 왔지만 적어도
필자가 가늠하게 하는 한에서는 그 개별적인 이미지에 있어서
김추자만큼 진한 냄새와 강한 칼라로 대중관심 속에 획을 그었던
여자가 더 있을성 싶지 않다.

  여자노래라고 하면 으례 가냘픈 목소리로 드레스 자락을 하늘거리며
애틋한 사랑사연이나 하소연 하는 것으로 알았던 때, 이게 무슨
 망측스런 변일지, 못보던 웬 신인이 터질 것 같은 몸매에 팽팽항 바지를
꼬여 입고, 머리칼을 온통 한 때의 먹구름인 양 보클려 갖고, 어디 그 뿐인가.
 
오장육부를 훑는 듯한 기괴한 사이키 음향과 가슴 우물 속
 열길 암흑 속에서 터져 나오는 듯한 허스키를 한데 몰고 우리들 앞에 점령군처럼
 나타났을 때, 그 최초의 쇼크는 거의 선혈이었음을 지금도 기억한다.

  반 세기나 변함 없던 스테이지 매너에 최초로 파격의 관능을 도입한
이 별난 가수 김추자는, 노래를 부르는게 아니라 노래를 화염으로 불뿜어
 뽕짝 일변도이던 침체된 대중들의 가요감성에 화려한 폭죽을 터뜨리면서
그 분야 정상을 장악하는데 반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온몸으로 노래를 부르는 그의 슬로 소울은 그의 스승이며 그에게
리듬의 마성(魔性)을 주입시킨 천재 연주가 신중현의 싸운드와
 함께 충돌하면서 고루하게 응집된 관중들의 가슴을 치고 봇물을
터뜨리듯 환호를 끌어 내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데뷰 첫 곡인 「늦기 전에」를 히트시키고 1973년과 74년 리싸이틀을
통해 그 절정의 인기를 확인하면서 75년 12월 5일 마리화나 흡연 관련사범으로
 일거에 몰락할 때까지 「님은 먼 곳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거짓말이야」, 「무인도」 등 3백여곡의 「김추자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김추자는 가수이므로 얘기하자면 먼저 그의 노래를
 정확히 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의 노래를 활자로 어떻게 들을 것인가.
 노래 가사를 옮겨 적을 것인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그 가사의 단어들이 지니는 뜻은 김추자를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못된다.
애초부터 그것들은 김추자를 위한 것이거나 김추자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단어들이라면, 몇십원만 주고도 아무데서나 살 수 있는 싸구려
노래책이나 변두리 여관방의 담벼락 낙서가운데도 얼마든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가사 대신 악보를 적어서도 안된다. 악보대로라면 굳이 김추자를 동원하지 않고
다를 가수나 또는 악기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연주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악보도
 가사도 결국 김추자의 본심과는 무관하다는 얘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김추자의 노래를 귀로 듣거나 눈으로 읽을 수 없다.
  우리는 김추자의 노래와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추자, 그 여자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격정과 만나지 않고서는 적어도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의 신음소리같은 노래를 듣고 있으면 불타는 영혼의 유황냄새로
가슴이 저리는 것이다. 그는 관중을 향해 애소(哀訴)하지 않는다. 신파조의
눈물이나 아픔을 결코 내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의 내공으로 향한 신음소리는 마치 밤안개 속의 기적처럼 어느
것 하나씩은 모두 잃고 사는 우리들 가슴 속 허무의 벽에 와 닿는다.
가수 김추자가 비싼 것은 그 허무의 벽이 위치해 있는 지점의
차원에서 그 인기의 값이 정해진 까닭이다.
트로트 일색이던 60년대 말엽의 가요계에
신중현씨의 싸이키델릭한 맛이 가미된

가요의 도입은 그 당시에 충격으로 받아졌다.

 

미 팔군에서 히피의 에토스를 제대로 포착한

이 위대한 연주자가 키운 김추자라는 가수가 있었다.

신중현씨의 음악 실험에 부합하는 파트너로 선정된

김추자의, 소울풀한 느낌이 약간 가미된 농염한 보이스도

화제가 됐었는데,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였다.

김추자 씨는 노래뿐만 아니라 무대 매너 또한

그 당시 가수로는 드물게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느낌을 선사하며 진보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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