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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꿈을 펴보려고 2006년에 썼던 소설입니다. 2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감상해 보십시오.
그때 그 시절 서울거리에 함박눈이 오면, 우리는 영화 '닥터지바고'에 나오는 '라라의 테마'를 듣고 '썸훼어 마이 러브 Somewhere my love'를 흥얼거렸지요. 그 낭만을 알면 쉰 세대이거나 더 쉰 세대입니다. 눈의 신사 닥터지바고를 대관령 선자령으로 모셔 왔습니다. 그의 연인, 눈이 큰 라라도 같이 모셨습니다. 두 꼭지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닥터 지바고의 일기 첫날
2006년 1월 15일 (일)
인간에게 있어 대리만족이란 가능한 것인가? 어떤 사람이 치열하게 겪은 체험이 그의 친구나 연인에게 또는 부모 형제에게 그 치열함 그대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인가? 또는 과거에 내가 겪었던 사실들을 몇 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회상한다면 그때의 즐거움이나 고통 또는 절실함이 지금도 내게 유효할 수 있는 것인가?
오늘 모처럼 선자령 눈길을 걸으며 시베리아의 겨울 그 사랑의 기억은 다시 치열하고 생생하게 그 때처럼 내 몸속을 흐르고 있음을 볼 때 위의 질문은 내게 있어 긍정일 뿐 아니라, 귀중한 과거의 추억이 내겐 언제나 생생하게 현재에도 머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생생함이 나의 친구나 친지들에게 내가 느끼는 만큼의 생생함을 가지고 전달될 수 있을까? 사실은 의문이다. 그러나 이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케이스를 일기로 남긴다.
너무나 비극적이고도 가슴 아픈 추억이기에.....
혁명의 와중에서 붉은 군대를 탈출한 나는 라라와 극적으로 재회했고 다시 극적으로 헤어져야 했다. 라라와 보냈던 그 몇일 간의 얼음궁전에서의 생활은 일생동안 나를 붙들어 매고 그 추억이 아직도 나를 묶어 놓고 있다. 차라리 그 사랑이 없었다면 나는 좀 더 자유스러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지금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순백의 눈과 같은 사랑이었고 눈을 배경으로 할 때 더욱 그 원래의 치열함을 유지할 터였다. 그 사랑은 세상이 백설에 뒤덮여 온갖 추한 것들이 덮여지고 순결한 원시로 돌아갈 때 더욱 빛을 발하고 절실해진다.
현재 눈앞에 보이는 사실로 재현시키지 못할 과거의 추억에 매달려 일생을 낭비하는 자가 있다면 바로 나 닥터 지바고일 것이다. 한국에 귀화한 이래 그 추억을 다시 체험하기 위해 겨울에는 난 언제나 순례자처럼 러시아와 비슷한 풍경을 가진 대관령 부근을 찾아 눈 속을 걸었었고 오늘도 그러한 순례의 한 페이지를 적는 중이다.
눈의 세계 속에서 과거의 내가 살아나고, 살아난 나는 그녀와 사랑의 언어를 다시 나누고 우리를 탄탄하게 연결했던 진실 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그 탄탄함의 변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하루의 시간이 낭비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시간이 나를 살리는 역설의 순간인 것이다.
올해도 엊그제 강원도에 눈이 왔고 순례자의 연례행사처럼 나는 오늘 선자령의 눈을 보기 위해 S산악회의 1호차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보는 시인 마뇽과 정답게 인사를 하고 같은 자리에 앉았다. 7시10분경 버스는 동쪽으로 달려 대관령 주차장 산행 들머리에 정차한다. 오늘은 버스가 네 대나 출동하였다. 1,2,3,5호차다. 눈에 굶주린 사람들의 집단의 크기가 버스 네 대로 나타난 것이리라.
(버스는 산객들이 산행을 끝내고 오는 순서대로 서울로 오는데 보통 5,3,2,1호차의 순서를 취한다.)
오전 10시쯤 대관령에서 산행이 시작되었다. 하늘은 약간은 음습하게 흐려있고 바람이 세지는 않다. 오늘 산행은 비교적 평탄한 고원지대를 걷는 것이기에 힘이 적게 들고 시간도 절약될 것이다. 그러나 가야할 길은 24km 이상이기에 아주 쉬운 산행은 아니리라. 보스(산악회 회장)가 준 시간은 산악회의 유인물에는 7시간 반, 버스내에서 보스가 산행 설명시 수정 제시한 시간은 시속 5km에 5시간도 가능하다고 유혹한다. 그러나 시속 5km는 내 발걸음으로는 무리이다. 험하지 않은 길이라면 시속 4km로 갈 수는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선자령에서 노인봉으로 가는 길에 눈은 내가 기대한 만큼 많이 내려주지는 않았다. 눈보라와 광풍이 휘날려 나를 무릎 꿇게 할 정도까지도 나는 기대를 했었다. 그런 극한상황 속일수록 나의 과거는 더욱 강렬하게 내 속에서 살아날 것이고 나는 그토록 바라던 마음의 정화, 카타르시스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날씨는 온화하고 내린 눈은 적은 편이나 두발로 눈을 계속 밟으며 갈 수 있고 눈에 덮인 광야를 볼 수 있기에 내 향수의 원천인 고국 러시아의 겨울과 거기에 뿌리했던 내 사랑을 회상하는 데에 나는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
눈길은 제법 미끄러워 조심해야 할 정도이다. 옅게 쌓인 눈 밑에는 먼저 녹았던 눈이 얼어서 얼음이 되어 있기에 미끄러운 것이다.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 반반 쯤 되는 것 같다. 나는 가끔 아이젠을 착용했다가 발이 불편하면 다시 풀기를 반복하다가 반 쯤 지나가서는 한쪽 발에만 아이젠을 신고 운행하게 되었다. 반쯤은 해방되고 반쯤은 속박된 엉거주춤한 자세가 미끄러짐 방지와 발의 자유라는 타협의 산물이듯이, 러시아와 한국에 반쯤 걸쳐져 있는 현재의 내 처지도 그러한 신세였다.
산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군중 속에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무심히 걷다보니 벌써 한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해발 1,157m의 선자령에 도착하였다. 배낭을 벗어놓고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간편하게 찍던 똑딱이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고, 배낭 속에 넣어 왔던 좀 더 큰 카메라를 꺼내 풍경을 담아 본다. 오늘따라 어쩌면 이곳에 다시 오지 못할 것 같은 비장한 느낌이 들기에 내려다 보이는 경치에 오래 눈길을 주어 본다. 물도 한 모금 마셔 본다.
아무도 동행이 되지 못하는 고독의 걸음을 나는 다시 걷는다. 나를 앞으로 맹목적으로 이끄는 것은 내 속의 잠재의식 뿐이다. 그 잠재의식은 오랜 역사로 오버랩된 것이고 과거와 현재, 러시아와 한국, 라라와 하마부인, 의사와 사업가, 시인과 생활인이라는 극명한 대비 속에서 숙명과 운명을 이루고 나만의 리듬으로 나를 재촉하는 것이다.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종국에는 어두움이 있을 것이다. 혁명의 나라에서 혁명을 피해 시인으로 남고자 망명을 했던 나에겐 볼셰비키 혁명에 의해 그 시의 원천이 무너지는 아픔을 맛보았기에 그 후의 인생은 덤에 불과하고 그 끝은 결국 어둠에 항복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지금의 어두운 전망일 뿐이다.
언덕을 내려가 좀 더 가다보니 ‘선자령나즈목’이라 써붙인 팻말이 나온다. 내가 가는 방향인 곤신봉과 우측 보현사로 가는 우측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을 동에서 서로 넘기 쉬운 곳이 ‘령’이라면 이곳이 넘기에 적당한 곳이기에 원래의 선자령으로 생각되는 곳이라는 설명을 이미 들었었기에 지명이 약간은 친숙한 듯이 느껴진다. 시계를 보니 11시 31분이다.
약간 언덕이 져 있는 임도를 따라서 다시 걸음을 빨리 한다. 12시45분쯤 매봉에 도착했다. 매봉에선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산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나도 배가 고프기도 하다. 그러나 내 감정은 아직 홀로 있기를 원한다. 혼자만의 걸음 속에서 혼자만의 상념을 이어가기 위해 나는 그들에게 간단한 목례만 한 후 약간의 내리막길을 지나고 철조망을 우측으로 두고 사람들과 단절되어 계속 걸어간다. 한 쪽은 그래도 숲이 무성하다. 그때의 러시아라면 기병대가 숨어 있을 만한 곳이다.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10분이다. 드디어 나는 길옆 돌 위에 주저앉아 점심으로 가져 온 빵과 귤을 먹는다. 배고픔을 더 이상 참는 것도 아집이다. 식사를 먼저 했던 산객들이 부지런히 앞질러 가고 있다. 나도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들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나무들은 눈을 뒤집어쓰고서 나를 반겨준다. 이런 풍경 속에 묻힐 때 나는 행복을 느낀다.
그 숲속 어디선가 숲을 좋아하는 여인 라라가 튀어나올 것 같다. 야트막한 언덕길이 위로 향하고 있다. 이때 산악회를 리드하는 여인인 김대장이 나를 앞지르려 한다. 김대장은 선글라스를 끼고 머리카락은 서양사람처럼 노랗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하이맛님, 반가워요.’
‘김대장님, 저도 반가워요. 그런데 가르쳐 주신다던, 눈위에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아이젠 말고 좋은 방법이 뭐였지요?’
지난 번 카페 글에서 내가 아이젠 때문에 고생한 이야길 썼는데 그걸 읽은 김대장이 이번 산행에서 그 처방을 밝히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아.. 그건 아이젠 안 하는 거예요. 넘어지면 이렇게 엉덩이로 받치면 돼요. 푸하하하.’
하면서 나를 앞질러 간다.
‘엉덩이라.’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 풋풋한 젊음이 좋다. 그녀는 이미 나를 지나 사라지고 나는 힘겹게 소황병산의 언덕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간다. 가끔 보이는 자작나무와 지천으로 깔린 신갈나무들이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어디선가 내가 그토록 찾던 라라의 모습이 나타날 것만 같다. 특히 시베리아에서 흔한 나무인 자작나무를 보면 더욱 그녀를 떠올리게 된다. 페치카에서 ‘탁탁’ 소리를 내며 자작나무 장작이 탈 때 우리는 사모와르에서 끓고 있는 물소리를 듣고 그 물에 홍차 잎을 넣어 차를 우려내서 마시곤 했었다.
소황병산 정상은 뭉툭하고 널찍하여 시베리아의 툰드라를 더욱 생각나게 하였다. 오대산쪽 노인봉을 조망하며 길을 가는데 아까 앞질러간 김대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여기서 좀 쉬세요.’
‘왜 먼저 가시지 않고,,,’
‘뒤에 오는 다른 사람들을 안내해야 할 것 같아요.’
십여미터 앞에 서있는 그녀의 자태가 서쪽에서 비추는 햇빛의 역광에 빛나며 나를 눈부시게 한다. 이때 갑자기 그녀의 가녀리고 탄탄한 몸매와 얼굴에 번지는 순수한 웃음은 내가 꿈에도 그리던 라라의 모습을 그대로 쏙 빼놓은 게 아닌가?
‘그럴 리가... 주여!’
‘왜 그러세요. 하이맛님,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오, 김대장, 선글라스 좀 벗어 보세요.’
‘왜요? 또 농담해서 놀리시려고요.’
‘그게 아니오, 난 지금 라라를 찾고 있소.’
‘라라라니요? 제 이름을 어떻게 아셨죠. 저 사실은 러시아에서 귀화했어요’
‘아니 이럴수가...’ (그 라라가 죽었다가 이렇게 젊게 다시 태어나다니.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본명을 말해 보시오. 나도 귀화인이오.’
‘전 쁘띠 라라 김이예요. 작은 라라인 셈이지요. 저의 이모님 이름이 라라였죠.’
‘그 분은 어디 있소.’
‘엊그제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잡혀 가셔서 지금 평택인가 어디에 억류되어 계셔요. 불법체류 혐의래요.’
‘그 사람이 라리사 표도로브나가 맞단 말이오. 뻬제르부루그 태생에 역사교사였던...’
‘그래요. 그런데 하이맛님은 누구세요?’
‘난, 내 이름은 독토르 지바고. 아니, 본명은 유리 안드레예비치요, 이모께서 내 얘기 안하시던가요?’
‘아아, 하셨어요. 의사이시며 시를 쓰시던 늘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던 그분? 그런데 시베리아 어느 전투에서 돌아가셨을 거라고 하시던데요.’
‘아니요. 난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오, 당장 라라를 만나야겠소.’
사실 나도 라라가 살아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었기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 게다가 이 척박한 나라에서 같은 공기를 숨쉬고 있다니…….
‘독토르 지바고,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난 붉은 군대를 탈출해 동쪽으로 가다가 바이칼호 부근 이루쿠츠크에서 다시 그들에게 잡혔소. 루비얀카 형무소에서 2년이나 갇혀 있다가 겨우 도망할 수 있었다오. 동쪽으로 시베리아 대간을 걸어 백두대간으로 해서 이남으로 왔소. 모스크바 대학의 의학박사학위는 레드컴플렉스가 창궐하던 그 시절 냉전 한국에선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았소. 동대문 시장에서 야미 의사로 전전하다가 추방당할 위기에 지금의 하마부인을 만났소. 그때 그녀의 이름은 불여우였지만 난 그녀를 꼬셨소. 나로선 사생결단이었다오. 다행히 그녀가 결혼해 주어서 난 지바고라는 러시아 이름을 버리고 하이맛이란 한국인이 되었지요. 내 이름은 법무부관리들이 멋대로 지어주었소. 본관은 진주, 성은 하씨, 이름은 이맛이라오. 그들은 냉면을 아주 좋아했는데 외국인수용소 주방에서 난 그들을 위해 주로 냉면요리를 했었지. 관급의 염가 냉면일지라도 높은 맛을 지향하라는 그들의 엄명이었고 모범생인 나는 그들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랐오. 나의 냉면조리 솜씨가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 같았소.’
‘생업은 무얼 하세요?’
‘냉면집을 운영한다오. 하마부인도 이북출신인지라 냉면을 잘 만들지. 동대문 밖 예전 서울사대 자리에 있는데 하박사 냉면집이라고 들어보았소?’
‘아, 그 냉면집이라면 하남시에도 분점이 있어요. 그런데 독토르, 이빨은 왜 그래요.’
나는 오른 쪽 손을 들어 입의 왼쪽 위 쯤을 가렸다. 이빨이 네 개나 없었고 숙녀에게 그걸 보여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임플란트 중이라오. 루비얀카 형무소에서 KGB에게 고문당할 때 입을 맞아서 이빨 16개가 부러졌었지. 그 동안 틀니로 버티다가 겨우 최근에 권박사라는 친구를 만나서 임플란트를 심는 중이지요.’
'저런 저런, 너무 고생하셨어요.' 그녀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쁘띠 라라는 어떻게 지내오?’
‘이 산악회에서 대장으로 근무해요.’
‘별이 네 개나? 여자의 몸으로 대단하오.’
‘사람들이 놀라기에 별 계급장은 늘 집에 두고 다녀요.’
‘가족은?’
‘남편이 하남시에서 커다란 등산장비점을 하고 있어요. 저도 귀화를 했고요.’
그때 아주 잘 생긴 귀공자 타입의 젊은이 하나가 검은 노스페이스 복장을 하고 LOWE표 배낭을 멘 채, 양손에 각각 LEKI 라고 찍힌 스틱 두 개를 짚으며 우리들의 대화장소로 길을 가다가 되돌아 왔다.
‘자기야. 인사해. 이 분이 우리 라라 큰 이모가 늘 말씀하던 독토르 지바고 아저씨래. 왜 그 늘 꿈만 꾸고 생활능력은 없다고 하시던…….’
‘아니, 이 사람은 우리 S산악회의 코메디언 하이맛인데.’(제가 가끔 산악회 카페에 재미를 섞어 쓴 글들이 그에게 내가 코메디안의 이미지를 준 듯 했다.)
‘사실은 사정이 있으셨대. 이국생활이 서글퍼서 늘 명랑한 글만 쓰셨대.’
‘그래…….?’
계속되는 젊은 부부의 재잘거리는 대화의 그늘에서 나는 오늘의 이 엄청난 현실을 직시하려고 애써 보았다. 피가 역류하는 듯한 격동 속에서 이성적으로 되기는 이미 틀린 것 같았다. 이제부터 이성의 공든 탑은 감정의 도끼에 산산조각 날 위기의 시간이 온 것이었다.
운명의 수레바퀴에 내가 깔려 죽을 것인지 아니면 그 바퀴를 이제야 내가 내 페이스대로 운행할 수 있을지의 갈림길에 도달했다는 깨달음이 퍼뜩 왔다. 빨리 그녀 곁으로 가야만 했다. 끔찍한 수용소라니, 내가 한국에 와서 겪은 것만 해도 충분했다. 무언가 잘 못되어 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왠지 마음속에서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도 들렸다.
라라는 내가 살아있음을 여인 특유의 예리한 직관으로 감지하였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 해 나를 찾아 이역만리 이 땅까지 온 것이었다. 그 과정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었을까는 가히 상상이 되었다.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을 상상만 해도 이가 갈렸고 이태원에서 밤에 일한다는 러시아 여인들에 대한 소문도 떠올려 보았다.
나는 바람같이 달려 오대산장과 노인봉 고개를 넘어 오후 4시 8분, 산행의 끝자락인 진고개휴게소에 도달하였다. 그래서 도깨비들(발이 빠른 산객들)과 같은 첫 번째로 떠나는 5호 버스로 4시 반에 서울로 출발할 수 있었다. 아직 오리무중을 오고 있을 친구 시인마뇽보다는 1시간 40분이나 이른 출발시각이었다.
오늘 그분께서는 나의 58평생에 걸친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았다. 그러나 기도 응답의 결과는 어쩌면 그 동안 가꾸어 왔고 이제 정리된 모양새가 된 내 주변의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나는 라라를 위해 나설 때라고 직감하였다. 그것만이 나의 과거를 현재와 이성적으로 연결시켜서 내가 온전한 인간이 되는 길인 것 같았다.
해마다 선자령의 눈길을 걸을 때 라라는 언제나 나의 현재진행형이었다. 나는 그길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내 피난민 인생을 그녀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것이 현실에서 가능하게 될 줄이야! 그녀의 조카가 S산악회에서 일하고 있는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나는 라라를 구하러 달려가기 위해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도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과거는 현실이 되어 나를 덮쳤다.
그때 시베리아였다. 나는 라라의 갈비뼈를 들어내서 그녀를 열고자 했다. 숨겨 둔 금고의 자물쇠에 열쇠를 꽂듯이 칼을 꽂아서 갈비뼈를 젖혔다. 그러자 그녀의 영혼 깊숙이 간직했던 비밀이 드러났다. 그녀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동네, 집과 골목들, 그리고 친숙했던 공간들이 마치 영화의 필름이 돌아가듯이 하나하나 눈앞에 펼쳐졌었다.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 그녀는 얼마나 아름다웠든가? 내가 언제나 생각하고 꿈꾸던 그녀의 모습은 항상 그려보던 그대로가 아닌가? 어쩌면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그녀의 아름다움을 말로 다 할 수가 있을까? 아니야, 절대로 안 돼! 그녀는, 우리들의 신인 그분께서 단 한번 붓을 놀려 신성하게 그려낸 걸작으로 이제는 그분에게 영혼을 맡기고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숲, 흰눈, 백두대간, 외국인등록증, 냉면집, 하마부인, 나는 그들과 운명을 같이 하고 있다. 이 무슨 기이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인가? 내 눈앞이 흐려지면서 머리가 혼란되었다. 모든 것이 흔들리며 움직였다. 그때 눈이 내릴 것 같던 날씨가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20층도 넘는 아파트 옆의 어설프게 작은 공원에서 시작하여 하늘로 펼쳐진 광대한 공간속에, 희미하게 하나의 놀랍고도 환상적인 얼굴이 커다랗게 확대가 된 영상으로 허공에 걸려 있었다. 그 환상은 울고 있었고, 이제는 더욱 심해진 빗발이 그 영상에 입 맞추고 시야를 흐려 놓았다.
나는 과거에만 젖어 있을 수는 없었다. 환상을 깨고 나와, 라라를 구하기 위해 현실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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