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가지불과 빛과 소금
2011. 2. 6
마태5:13-20
1.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두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십니다. 미래가 아니고 현재 빛과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금이다. 우리는 빛이다 라고 말한다고 해서 자신이 빛과 소금이 되지 않습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은 내면의 성품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덟가지 성품만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을 보고 곁에 있는 사람이 ‘저 속에서 빛이 나오는구나’ ‘저 속에서 소금과 같은 것이 일어나는구나’고 느끼는 것입니다.
소금은 썩는 것을 방지하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소금은 또 맛을 냅니다. 또 소금은 언제나 조용히 소리없이 스며들어 변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소금은 적은 양으로 큰 덩어리에 막대하고 결정적인 영향력을 줍니다. 소금이 큰 덩어리에 영향력을 미치는 방법은 침투라는 방법으지 압력이나 비판의 방법이 아닙니다.예수님은 우리를 비판하라고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비교해 보면 소금은 은밀하게, 조용하게 역사하는 반면 빛은 분명하게 공공연하게 누구나 다 볼 수 있게 나타납니다. 소금은 안에서 녹으면서 역사하지만 빛은 밖에서 힘있게 역사합니다. 빛은 숨겨질 수 없습니다.
인간은 별로 훌륭한 존재가 아닙니다. 가만히 자신을 돌이켜보면 선은 없고 죄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들마다 못된 것들입니다. 욕심과 잘못된 구조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이 선행으로 천국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공중권세 잡은 사단이 세상의 임금들을 조종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신론적인 물질주의자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세상은 최초의 에덴동산이 아닙니다. 빛이 필요한 곳이요 소금이 필요한 곳은 바로 이 세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세상으로 하여금 썩지 못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은 부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2.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여기에 지금 전깃불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나가면 전깃불은 우리와 상관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태양은 내가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간다 해도 나를 따라서 부산에 갑니다. 내가 가는 대로 태양이 움직여 줍니다. 또 바로 그 순간에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는 사람이 태양r을 보면 그 사람을 따라 서울로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태양이 전깃불하고는 비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에, 내가 처해 있는 시간과 공간보다 크기 때문에, 우리 각자를 다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태양은 내가 지하실에 들어가면 못 따라옵니다. 태양이 서산으로 지고나면 태양은 우리와 같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태양보다 더 크신 영입니다. 그 분은 태양같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워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태평양을 건거 미국에 가면 하느님은 우리를 따라 미국으로 가시고, 아프리카로 가면 아프리카로 가시고 나와 함께 동행해 주십니다. 지하실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나화 함께 하십니다. 영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아무리 전구가 좋다고 하더라도 전원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또 아무리 전원에 잘 연결되어 있다 하더라도 전구가 깨지거나 그 안에 필라멘트가 끊어지면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빛이 근원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빛을 주실 때에만 우리는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빛은 예수님의 생명 속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 빛이 있고 생명이 있는 곳에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는데 바로 이것이 빛입니다. 죽음과 어두움을 깨시고 부활과 빛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더 이상 어두움에 다니지 않고 빛의 자녀답게 산다고 하셨습니다.그리스도인은 어두움에 함께 동참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두움을 분명하게 노출시키는 사람입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은 내면의 성품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덟가지 성품만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서 빛이 나오고 소금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닮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3. 댓가의 지불
조봉암 선생은 강화도사람입니다. 공산당이라는 누명을 쓰고 사형이 집행되었던 사람입니다.조봉암선생은 집례 목사에게 예수님이 빌라도의 법정에 섰을 때의 성경 구절을 읽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냐? 나는 이 사람에게서 사형에 처할 죄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러니 이 사람을 매질이나 해서 놓아 줄 생각이다” 하고 말하였으나 무리들은 더욱 악을 써가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소리질렀다. 마침내 그들의 고함소리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겠다고 선언한 다음’(루가 23:22-24)
이렇게 사형당한 조봉암 선생이 50년만에 대법원에 의하여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두운 세상에서 삶의 표준을 제시합니다.삶의 우선 순위가 다른 사람과 다릅니다. 시간을 사용하는 법, 돈을 쓰는 법, 하느님과 사람을 섬기는 법, 교육관이나 직장관 등이 다릅니다.진짜 신앙은 다른 사람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부모를 당황하게 만들고 친구나 직장동료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만큼 충격을 줄 만큼 남들과 다른 질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아브라함이라고 한다면 갈등이 많을 것입니다. 남의 얘기를 듣는 것은 좋습니다.그러나 그것이 내 얘기요 하느님이 내게 주신 명령이라고 할 때는 내가 구체적으로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통스럽습니다. 진실로 소금의 역할은 고독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90% 헌신한 백 명의 사람보다 100% 헌신한 열 사람이 세계를 변화시킵니다. 교회가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헌신된 사람이 없어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세상은 더 이상 밝아지지도 않고 썩어지는 것이 더 이상 막아지지 않습니다. 주님은 바로 우리를 빛과 소금으로 부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