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대표팀은 중국과 치른 A매치에서 한번도 진 적이 없다. 한국은 1978년 12월 17일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 차범근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긴 이래 중국과 26번을 싸워 15승11무의 성적을 남겼다. 의심할 바 없는 한국의 우세다. 중국에서는 한때 '공한증'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경기내용을 들여다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3골 차 이상 벌어진 경기는 한 번도 없었고 2골 차의 경기도 5번에 불과하다. 1997년 4월 23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정기전에서 박건하의 연속골로 2-0으로 이긴 이후 10년 동안 두 팀은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설기현(레딩)은 "중국과 A매치에서 한 번도 안 졌지만 쉬운 경기 역시 단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올시즌 정즈가 찰튼 유니폼을 입었고 덩팡저우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군에 합류하면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중국 선수는 4명으로 늘었다. 박지성(맨유), 이영표(토트넘), 설기현, 이동국(미들스브로)이 활약하는 한국과 같은 숫자다. 이들은 프리미어리그말고도 그동안 A매치에서 수차례 마주쳤던 선수들이다. 당연히 서로를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 프리미어리거들은 한국 프리미어리거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중국 스포츠지 <티탄저우보>의 런던 특파원인 추안싱란을 통해 한국 선수에 대한 중국 선수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정즈 "박지성이 아시아 최고스타"
정즈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중국 선수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고 있다. 산동 루넝에서 뛰다 찰튼으로 임대된 정즈는 지난 2월 11일(이하 한국시간) 맨유전을 통해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했다. 5월 12일 현재 11경기에 출전했다. 3월 18일 뉴캐슬 유나이티드전에서는 후반 8분 골을 터뜨렸고 경기종료 직전에는 페널티 킥을 얻어냈다. 정즈의 활약에 힘입은 찰튼은 2-0으로 이겼다. 영국의 <스카이스포츠>는 정즈에게 평점 8점을 줬다.
정즈는 미드필더 암디 파예의 부상을 틈타 출전 기회를 얻었다. 이 같은 기회를 잘 살린 것은 그의 능력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 직전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지브릴 시세에게 부상을 입힌 선수가 정즈다. 찰튼의 앨런 파듀 감독은 정즈의 경쟁력으로 그의 강력한 투쟁심을 꼽았다.
정즈는 "만약 찰튼이 올시즌 2부리그로 떨어진다면 시즌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중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5월 4일 현재 찰튼의 챔피언십 강등은 확정됐다. 그러나 추안싱란 특파원은 "정즈의 말을 100% 믿을 수 없다. 그는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 곧잘 거짓말을 한다. 그의 진짜 나이도 알려진 27살이 아니다"라고 귀띔한다.
이런 정즈가 박지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얘기했다. "일본의 나카타 히데토시가 은퇴한 뒤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는 맨유에서 뛰는 박지성"이라고.
순지하이 "이동국은 비운의 공격수"
1998-99시즌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23경기를 뛰었던 순지하이는 중국의 다렌 스더로 복귀한 뒤 2001-02시즌 맨체스터 시티로 다시 이적했다. 2002-03시즌부터 2시즌 동안 주전급 활약을 펼쳤지만 최근에는 활약상이 미미하다. 순지하이는 올시즌 12경기 출장에 그쳤다. 선발출전은 9경기에 불과하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 좌우 측면수비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지만 맨체스터 시티의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은 순지하이에게 큰 역할을 주지 않았다. 피어스 감독은 모든 수비 포지션에 대한 백업요원 정도로 순지하이를 활용했다. 중국 언론은 맨체스터 시티와 계약이 끝나는 2008년 여름 순지하이의 중국 복귀를 예상하고 있다.
순지하이는 이동국의 미들스브로 이적을 반가워했다. 순지하이는 "이동국은 중국에서도 관심이 높은 한국선수다. 한국과 중국의 대표팀 경기에서 이동국에게 많은 골을 내줬기 때문이다. (이동국이)지난 두 차례의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사연도 알고 있다. 국적을 떠나 '참 운이 없는 선수구나'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수 차례 난관을 헤치고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만큼 그는 여기서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덩팡저우 "박지성과 친해지고 싶다"
2004년 맨유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덩팡저우는 3년 동안의 벨기에 생활을 정리하고 지난 겨울 올드트래포드로 돌아왔다. 덩팡저우는 벨기에 2부리그에서 뛰면서 뛰어난 골 감각을 보였다. 한때 설기현이 활약했던 앤트워프에서 61경기에 나서 35골을 쓸어 담았다. 맨유로 돌아온 뒤에는 주로 리저브 경기(2군경기)에서 뛰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이 확정된 이후인 5월 10일 첼시전에 선발출전해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인상적인 활약은 없었다. <스카이스포츠>는 덩팡저우의 데뷔전 활약에 평점 5점을 매겼다. 올시즌 공격수들의 부상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맨유가 다음 시즌 공격수를 대거 보강한다면 덩팡저우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설기현은 덩팡저우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설기현은 "유럽에 진출해 첫 번째 팀이었던 앤트워프에서 덩팡저우 또한 몸을 담아서인지 남달리 관심이 갔다"며 "현재보다는 미래를 보고 데려온 선수일 것이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덩팡저우는 한국선수들과 관련해 "박지성과 친해지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덩팡저우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그것도 맨유에서 2명의 동양 선수가 함께 뛰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그와 친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리티에 "한국선수들 적응력 뛰어나"
2002-03시즌 에버튼으로 임대돼 리그 29경기에 뛰었던 리티에는 이듬해 정식 계약하며 프리미어리거로 성공하는 꿈을 부풀렸다. 그러나 2003-04시즌 5경기 출전에 그쳤고 이후 좀처럼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올시즌 셰필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며 분위기 변화를 꾀했지만 이마저도 부상으로 무산됐다. 지난해 9월 20일 칼링컵 버리와의 출전이 올시즌 기록의 전부다.
중국 복귀를 고려해 볼만 하지만 리티에는 요지부동이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국에 8년 체류하면 얻을 수 있는 시민권 때문이라고 한다. 리티에는 한국의 특정 선수에 대한 의견은 피했다. 대신 "프리미어리그에 온 한국선수들이 적응기간도 없이 제 실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새로운 리그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한국선수들의 의지가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