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백 남 경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그곳은 지형부터 가관이 아니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대개 하늘은 높고 산은 낮은 편이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긴 거꾸로였다. 산은 높기만 했고 하늘은 허리를 반으로 접은 듯 잔뜩 웅크려 앉아 있었다. 산들은 큰 산을 등에 업고도 앞에 있는 작은 산을 품은 캥거루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산들로 인해 뒤에서 등을 떼밀려 배를 쑥 내민 듯 산계곡이 협소하여 서로 맞닿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거기다가 자투리 땅 같이 각진 하늘은 떡하니 내려다보며 곧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았고, 또 어찌 보면 유리천장 같이 뚝 잘려 우리 집 마당을 금방이라도 와장창 쥐어박을 듯이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런 형색들을 무턱대고 얕잡아볼 일은 아니었다. 단지 하늘, 땅, 산이라고 생긴 것이 숫제 그런 모양을 하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문제된 것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나 같은 아이들에겐 더 없이 단조롭고 따분하기만 했다는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마당에 기어 다니는 개미나 꾸물꾸물하는 지렁이 따위와 마주해야 했고, 병아리나 송아지 같은 걸 물끄러미 쳐다보는 게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 곳은 날아다니는 것, 헤엄치는 것, 죽은 듯 있다가도 건드리면 꿈틀하는 것, 그런 생물체들이나 살기에 적합할 뿐이었다. 이 쪽 논에서 제비나 까치, 까마귀, 참새 등 날짐승들이 노래하면 저 쪽 밭에선 꿩이나 뻐꾸기 같은 게 빨랫줄을 타듯 비행했다. 살아있는 것이라면 모두 꿈틀거림에 나서야 해서 그런 상설 공연이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봄이 오면 마을 사람들이 보리논 사이에서 못자리를 만들거나 땅을 일구는 일은, 사방에서 동시동작으로 일어나는 일상의 아우성이요 그림이었다. 처음엔 쑥이 돋고 개나리, 목련, 살구꽃, 찔레꽃 같은 것으로 이어지며 어떤 질서나 순서에 따르는가 싶다가도 어느 샌가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그 동네의 봄은 왁자하게 그런 식으로 왔다. 아버지가 소를 이끌어 밭고랑을 타고 어머니가 씨앗을 뿌리는 모습도 그런 것의 일부였다.
그 그림의 한 페이지가 내 손에 잡힐 듯 가장 선명하게 펼쳐진 곳은 ‘도둑골밭’이었다. 내게 일상의 놀이터이기도 한 우리 집 마당에서 시선을 떼면 파아란 물빛을 한 하늘에서 일단 멈춘다. 그리고는 바로 그 아래 큰 산 가지에서 똑같은 속도로 출발한 능선과 계곡이 미끄러져 만난 지점에 그 한 페이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러니까 그 밭은 내가 애써 시선을 두지 않더라도 우리 집 마당과 마주한 탓에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내 시야를 가렸다.
하루해가 기울어 산들이 크고 긴 타원형의 그림자를 겹겹이 계곡에 담그면 이랑과 고랑의 조합이 완성되었다. 한데도 그런 그림이 나의 따분함을 온전히 씻어주지는 못하였다. 결국 나는 또 다른 놀이터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고, 그 장소는 죽으나 사나 실개천이나 도랑이었는데, 그긴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외부 방문객의 눈에는 실개천, 도랑, 큰 도랑이 그게 그거로 비칠지 몰라도 각기 구별되는 장소다.
이를테면 산 계곡을 따라 폭이 좁고 깊이가 얕아 물이 흐르는 둥 마는 둥 하며 가재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라면 실개천이다. 마을 옆을 흐르면서 유량이 제법 많으면 도랑에 해당하는 데, 다만 동네 아주머니들이 세제로 빨래를 한 때문인지 물고기들이 살지 않는 게 흠이었다.
마을 앞 저만치 아래 도랑과 실개천이 만나는 곳이 큰 도랑인데, 그 곳은 언제든 멱을 감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재이외도 피라미, 붕어 같은 웬만한 물고기들을 만날 수 있어서 더 없이 좋았다. 다만 처음부터 좋아서 좋아한 건 아니다. 그 즈음에 내가 진실로 간절히 바라마지 않았던 건, 오늘날로 치면 내 상상이 닿는 대로 무엇이든 만들어 지는 레고브릭이나, 아무데나 나다닐 수 있는 장난감 자동차 같은 것이었으므로.
어른들은 서로 오가다 마주치면 으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요?” 하며 인사를 나누곤 하였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도 입 밖에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형편이었다. 최소한 큰 도랑에서만은 한 눈 팔지 않고 정신을 집중해야 했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자세가 요구됐기 때문이었다.
큰 도랑에서 가장 즐겨 한 놀이는 피라미 잡기였고, 그 일은 도랑물을 일단 옆으로 돌린 뒤 웅덩이의 물을 퍼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병아리 엉덩이를 치켜들어 뜰채를 담그거나 수중에 두 손바닥을 펼쳐 모은 손으로 기다리다 보면 급기야 손이 물이 되고 물이 손이 된다. 어느 순간 녀석들이 내 손 안으로 들어온다. 녀석들은 성질이 급하고 직선적이어서 상당한 주의가 필요했는데, 그럴수록 꿈틀하고 미끌하던 그 순간의 스릴도 컸다.
그렇듯이 큰 도랑은 나의 따분함을 잊게 해주는 것으로는 특효약이었다. 그렇지만 평화로운 시간만 허락하지는 않았다. 한 번은 피라미가 내 손으로 들어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숨을 죽이고 있는데, 몸집이 가늘고 긴 물체가 물소리인 듯 바람소리인 듯 나타났다가는 눈 깜짝할 새 사라져 버렸다. 내가 민감하게 대처한 것 중 하나가 지렁이나 거머리였고 뱀은 말할 것도 없는 상대였다. 그것들은 소름이 돋을 만큼 징그러운데다가 독을 가지고 있어 섣불리 다루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독사는 맹독이 있어 더 위험하고 공격적인 상대다. 나는 호기심 반에 여차하면 한번 맞붙어 볼 생각 반으로, 토끼발로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맞붙어보기는커녕 금세 내 몸이 가죽 끈 같이 뻣뻣해져 물러서야만 했다. 아기 뱀, 형 뱀, 누나 뱀, 어머니와 아버지 뱀 같은 것들이 마치 방분돼 있듯 군데군데 모여 있는 게 아닌가. 느닷없는 인기척에 그것들은 일제히 각도를 내 쪽에 두었다. 오싹했고 서릿발 같은 소름이 돋았다.
큰 바윗돌 뒤 버들강아지가 축 늘어진 모래톱이었다. 더 이상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죽어라 뛰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한동안 물아일체가 되어 물고기들을 잡고 즐긴 나의 놀이터인 그 웅덩이 바윗돌 뒤가 뱀 가족의 주둔지였다니! 논두렁을 거쳐 밭두렁을 질러 오르는 동안 생각할수록 머리끝이 쭈뼛쭈뼛 섰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더욱이 우리 집 아궁이에서 타다 남은 땔감 같은 잿빛을 띤데다 몸을 넥타이처럼 풀며 공격 자세로 나온 품새로 보아 맹독을 가진 독사임이 분명했다.
동네가 빤히 보이는 산등성이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걸음이 멈춰지며 안도의 숨이 나왔다. 나는 길섶에 털썩 주저앉으며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한데, 차를 피하면 포를 만나는 법인가. 하필 이번엔 내가 앉은 자리가 ‘땅벌 집’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손에 든 나무 꼬챙이로 바닥에 나 있는 밤톨 같은 데를 슬쩍 건드려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럴 수가?
그 땅바닥 구멍으로, 불판에 놓인 땅콩이 제 스스로 껍질을 벗는 듯한 움직임으로 땅벌들이 몸을 구르며 속속 나오더니 내 전신을 까맣게 휘감아 버렸다. 나는 숫제 걸어 다니는 벌집이 되어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땅에 바짝 엎드려도 보았다. 뿐만 아니라 손으로 가리고 비비고 털고 할 수 있는 모든 동작으로 몸부림도 쳐 보았다. 그러나 조족지혈이었고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또다시 뛰었다. 그 방향은 도랑 쪽이었다. 도랑을 건너면서는 벌들의 공습 대상이 된 나의 몸뚱어리가 저주스러워 이판사판 한동안 물웅덩이 깊숙이에 빠트려 버렸다. 이러다가는 벌들이 죽기 전에 나부터 질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야 물 밖으로 솟구쳐 나왔다. 그리고는 다랑이논을 단숨에 박차고 올라 마을 어귀까지 다다랐다. 나의 몸은 육지와 바다를 오가며 해병 훈련하듯 극한의 몸부림을 쳤지만 독한 녀석들은 거기까지도 달라붙어 있었고, 더 독한 것들은 내 살갗에 독침을 꽂아 넣기도 했다. 강조하건대, 내가 행한 것이라곤 제 집 입구를 슬쩍 건드려 본 것이 전부다. 몇 번을 곱씹어 보아도 그것은 고의가 아니라 과실이다. 그렇다면 그럴 수가 없었다. 어이없이 당한 일이라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갔고, 어머니는 그 몰골을 보시고는 경악하며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는 욕을 육두문자로 퍼부었다. “내, 이것들을 그냥, 간을 끄집어내어도, 반분도 못 풀겠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크게 화를 돋우며 심한 욕을 하시는 건 처음 보았다. 그런데도 그 욕이 경우에 맞지 않거나 지나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고 오히려 반 푼어치나마 속을 풀어 주었다. 내 앞은 이미 뜨겁고 희미한 세상으로 접어든 뒤였다. 두 눈은 붕어빵처럼 부풀어 올랐고, 온 몸은 불에 덴 듯 화끈거렸던 것이다.
황막한 도시의 잿빛 아파트 공간, 날아다니는 것도 헤엄치는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긴 그때의 그 궁산벽촌 같으랴. 아파트 단지 안을 산책 삼아 몇 바퀴 걷는다. 고무칩 바닥 놀이터에서 뛰놀고 있는 개구쟁이 아이들을 보노라니, 시간의 저편에서 역류한 유년의 편린들이 분수처럼 한번 크게 솟구쳐 올라 허공으로 퍼진다. 놈들에게 당하고 놀란 일들을 생각하면 중년이 된 지금도 벌침에 쏘인 듯한 유감이 일지만 한편으로는 씨익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렇게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쫓긴 날들이 유년의 둠벙에서 자맥질한다. 찌든 내 영혼을 씻는 기억으로 환류하는 것이다.
꿈틀대는 것들에겐 천국이었고 나 같은 아이들에겐 한 권의 위대한 자연책이었다. 되돌아보니 너무 멀리 도망쳐 왔다. 게다가 너무 오래됐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2019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수상작>
첫댓글 기똥차게 멋지게 줄줄 엮어 부렸네. 어찌 거리 잼나게 뱀과 벌을 상대 해서 글을 맨글었을까.
올해의 작품상 충분하고 몇번이고 눈을 떼지 않고 읽고 싶은 나의 과거와 경험인기라...
백선생님 머릿골이 더욱 빛나 보입니다. 이작품으로 관광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축하 합니다.
배종은 부회장님
귀한 칭찬, 고맙습니다 ^♡^
우와! 정말 놀랍습니다. 이 작품은 그야말로 대작입니다. 남경샘 같은 문우님이
우리곁에 계셔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작품상 진심으로 축하드림니다.
'꿈틀대는 것들에겐 천국이었고 나 같은 아이들에겐 한 권의 위대한 자연책이었다' 아직도 그 동네에서 자연 공부 하는 사람들을 문학광장으로 불러 내고 싶습니다.
'도망치다 붙잡힛당께, 여기가 천국이여, 씰대없는 소리 말랑께. 도망자여 돌아오라...등의 제목을 단 명품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질 듯....꿈은 이루어진다. 나 돌아 갈래~~~~!
정말 감동적인 글입니다.
누구에게나 유년의 추억은 있지만 이렇게 맛깔스러운 글로 탄생하기는 어렵지요.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을 넘어 대한민국 최고의 수필이 되고도 남겠습니다.
백남경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순환하는 계절에 기지개를 펴는 휴일 아침
선생님 글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물아일체가 되는 놀이터는 아마도 스마트폰이거나 게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무칩 바닥으로 만들어 놓은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있는 개구쟁이 아이들을 보면서 유년시절 역류한 편린들을 분수처럼 솟구쳐 허공에 퍼뜨린 글 멋집니다. 유년의 둠벙에서 자맥질 하며 찌든 내 영혼을 씻는 기억으로 환류 시킨 작품처럼 이제는 수필로 물아일체가 되는 선생님의 새로운 놀이터이길 바라봅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관심과 호평,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