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박판례 마리아님의 장례 미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미사가 고인과 나누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작별의 시간입니다. 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대전성모케어센터에서 음식을 잘 잡수셨기에 어머님을 떠나 보내야하는 유가족의 슬픔이 더욱 클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만큼의 긴 시간을 요양원과 센터에서 보내셨기에 큰 고통 없이 하느님 품으로 되돌아가신 것에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우선 지난 3일(수) 오전에 종부성사를 받고 성체를 모심으로써 전대사를 받아 성사의 은총으로 성화되셨습니다. 그 뒤로 안정을 찾으면서 비록 말로 당신의 생각들을 다 표현하지는 못하셨어도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 자녀들의 마지막 인사를 받으며 기도 중에 임종을 맞이하셨기 때문입니다.
2001년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후에 건강이 악화되어 2006년부터 요양 병원과 케어센터에서 생활하셨던 마리아 어머님은 올해 83세로 1959년 8월 14일에 목동 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으셨습니다. 결혼 초에 시어머니의 유언으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셨고 슬하에 4남 2녀를 두시어 자녀들을 신앙 안에서 잘 키우셨습니다. 남편은 목동 성당에서 총회장과 연령회장으로 봉사하시면서 본당에서 “민 회장님”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셨고 고인은 평생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 덕분에 6남매가 신앙을 바탕으로 직장과 신앙 공동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가족들이 모두 같은 신앙 안에서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느님께 보내드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제가 부임한 이후로 네 번째 맞이한 장례미사인데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임종 전에는 신장에 문제가 생겨 잘 드시지도 못하셨다고 합니다. 병자성사를 드리러 왔을 때에도 숨을 가쁘게 쉬시면서 온 몸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힘겨워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30대 후반부터 병원 진료를 다니셨다고 하니 신앙 안에서 육신의 고통을 받아들이시는 것만으로도 고인에게는 이미 속죄가 다 이루어졌으리라 생각됩니다. 한편 고인의 일생을 온전히 지켜보신 분은 하느님뿐입니다. 남아 있는 우리들이 기억하는 고인의 생전 모습은 평생의 일부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억하는 기억의 단편들이 모아지면 고인의 전 생애가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하나로 엮어질지도 모릅니다. 저는 비록 병자성사를 드릴 때 처음 뵈었고 눈을 마주하며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지만 힘겹게 성체를 모시고 편안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고인의 신앙을 느낄 수 있었고 성사의 은총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니 나만 간직하고 있는 고인과의 추억들을 유가족들에게 많이 들려주세요. 또한 가족들도 어머니와 자신만의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들을 함께 나눠보세요. 하느님 곁으로 보내드리는 일이 그렇게 힘겹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례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그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자주 기도하세요. 우리가 믿는 신앙처럼 한사람의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결국 고인이 하느님의 자비로 천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시기를 청하면서 바치는 우리의 기도가 그분의 영혼 구원에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또한 “모든 성인의 통공”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고인과의 관계의 끈을 이어주면서 언제나 함께하고 계심을 체험하도록 이끌어줄 것입니다.
끝으로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천상 행복의 길에 오르신 고인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마지막 선물은 신앙 안에서의 관계 회복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형태로든 임종을 앞두고 계신 분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기회를 만들어주십니다. 무엇보다도 고인은 육신의 고통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셨을 것이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 임종하면서 가족들과의 관계 회복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중에 만약 고인과의 관계 안에서 풀지 못한 매듭이 있다면 이 미사를 봉헌하면서 모든 앙금을 벗어던지고 치유시켜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죽음을 자주 묵상하며 고인이 우리에게 남겨준 신앙의 유산을 더욱 잘 가꾸어나갈 것을 다짐해야겠습니다.
“주님! 박판례 마리아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그에게 영원한 빛을 비추소서.” “아멘”
첫댓글 다시한번 김대건 신부님의 띠뜻한 배려와 기도에 감사드리고, 슬픔을 함께 나눠주신 교우여러분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