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목사
한신대학교, 한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버밍햄대학교 Selly Oak대학에서 수학하였다. 현재 한국신학연구소 연구교수, 월간 <살림> 편집장, 계간 <신학사상>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그 목수―느낌이 있는 성서 읽기1>이 있다.
고기뷔페, 핸드폰, 선악과
창세기 2장 4절 - 3장 24절을 통해서 보는 인간 욕망의 역사
핸드폰
지난 3월말에 겪은 일이다. 갑자기 핸드폰 업소에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신문을 보니 4월 1일이 되면 핸드폰을 살 때 주는 혜택이 없어져서 무려 15만원인가를 소비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3월말까지 핸드폰에 가입하려는 사람이 줄을 선 것이라고 한다. 그러려니 하고 집으로 왔는데, 수원에서 사는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늘 핸드폰을 한 대 샀다는 것이다. 순간 나만 못 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꼭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면서 집안 식구들과 살까 말까 의논하다가 '사지 말지 뭐' 하는 식으로 적당히 정리하고 출근을 했는데, 출근하자마자 화제가 또 핸드폰이다. 오늘 중으로 사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한번 가보기나 한다고 해서 그저 따라 갔는데 그가 계약을 한다고 하니 나도 덩달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결국 계약을 하고 말았다. 전화기는 무료로 주고 가입비도 아주 저렴한데 그나마 1만원씩 분납을 하면 된다고 했다. 그저 한 달에 2-3만 원 쓸 각오를 하면 얼마나 세상이 편해지고 멀리 있는 이들이 더 가까워질 것이냐 하는 상상에 갑자기 행복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계약을 하고 나오는데 꼭 공짜로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전에는 그렇게 비쌌다는 핸드폰을 돈 한 푼 안들이고 받아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다달이 얼마씩 내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당장 돈 한푼 안 들이고 핸드폰을 손에 넣는다는 것이 여간 흐뭇하지 않았다. 그런 재미 때문인지 그곳에는 은행원들, 중·고등학생들로 북적였다. 큰 대목을 보는 모양이고, 그곳에 가기 전에 들른 다른 업소들에서는 이미 물건이 달려서 팔지 못한다고 했다.
같이 핸드폰에 가입한 이와 함께 걸어오면서 ‘이게 자본주의 사회가 주는 편리함이군요’ 하고 웃었다. 이런 재미로 그렇게들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예전에는 부자들이나 중요한 인사들이나 쓰던 핸드폰을 이제는 빈손 들고 들어가서 받아 올 수 있는 사회, 전에 무슨 노래 가사처럼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는’ 곳이 이곳이 아니고 뭔가.
집에 돌아왔더니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자기들 것도 아닌데, 집안에 그런 게 하나 생겼다는 게 기쁜 모양이고 부모와 이제 어느 때나 통화할 수 있으니 가족간에 정도 더 느낀대나. 전화벨이 울려서 받으니 과천에 사는 여동생의 목소리이다. 핸드폰 샀느냐고 한다. 샀다고 하니, 자기는 어디 가서 가입비도 무료로 하고 샀다 한다. 그러면서 어머니 것까지 샀다고 한다. 아차, 어머니까지는 생각을 못했는데, 역시 딸이 어머니를 잘 챙기는구나, 하였다. 그러니까 우리 집안만 해도 핸드폰을 무려 네 대나 신규로 가입한 것이다. 이틀 사이에!
제일 갖고 싶은 것
언젠가 사회과학 공부를 한다고 모여서 토론도 하고 그러는 모임이 있었는데, 그때의 분위기가 자동차나 아파트 같은 것은 자본주의에 젖은 좀 타락한 사람들이나 밝히는 것인 양했다. 순진하게 그런 것을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것이 없이 사는 것을, 능력이 없어서 못 가졌을지언정, 긍지를 느끼고 있었다. 그때 배운 이른바 사회과학 이론은 그런 것을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 소시민적인 삶이며, 사회과학의 이론상으로나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부동산 투기가 한창일 때 일단 아파트만 당첨이 되면 한 달에 1백만원도 오르고 그 이상도 오르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 그때 ‘사회과학으로 무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온 이가 아파트를 샀다고 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그런 것 따위에는 관심을 가질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유는 충분했다. 그때 안 사면 나중에는 돈을 더 지불해야 하고 그러려면 결국 남에게 의지하거나 교회에게 부담을 주거나 해야 하니 지금 사는 것이 두루두루 좋다는, 그러면서 정식으로는 사기 어려워서 무슨 편법을 써서 싸게 샀다고 아주 좋아하는 것이었다.
전에 사회과학 이론을 정연하게 설명하던 그의 모습과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혼동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데 역시 사회과학으로 무장한 친구인데 하루는 무심코 그에게 뭐가 제일 갖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날 지그시 바라보면서 진심어린 표정으로 차를 갖고 싶다고 하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차가 막 대중화되던 단계라 아직은 그리 많이 갖고 있지 않은 때이다. 그후 몇 년이 지나서 너나 할 것 없이 차들을 사기 시작했다.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하고, 아이들 등교를 시켜야 한다는 둥, 출퇴근에 필요하다는 둥, 버스비와 택시비 생각하면 오히려 싸게 먹힌다는 둥….
이미 그때에는 ‘사회과학으로 무장한 사람’이 차를 사기를 머뭇거리는, 그런 ‘촌스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물론 그렇게 차를 갖고 싶어했던 그 친구도 새 차를 샀다. 잠시 혼동을 느꼈던 나까지도 그런 비슷한 이유를 들어 차를 샀으니….
자동차, 아파트 앞에서, 그런 것을 사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어떤 무력감 같은 것을 느꼈는데, 이번에 이렇게 핸드폰을 사면서 그런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가게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잠재적으로 그런 것을 갖고 싶어했나를 느낄 수 있었다. 다들 그것을 사고 싶었던 것이다. 그저 참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잠재적인 고객이었으나, 돈을 절약하려고, 혹은 명분이 없어서 참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달부터 오른다는 것이 어쩌면 그들에게 그것을 살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거리를 걸으면서 사람들의 분주한 얼굴을 보면 다들 뭔가를 사고 싶어서 애쓰는 잠재적인 고객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차를 사고 싶고 바꾸고 싶고, 컴퓨터를 사고 싶고 바꾸고 싶고, 집을 사고 싶고 더 좋은 집으로 옮겨가고 싶은 사람들이 거리를 분주하게 뛰어 다닌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든다. 그들이 그렇게 갖고 싶어하는 그런 것들은 다 부질없는 것들일까? 그런 것들을 추구하면서 열심히 사는 삶은 적당히 타락한 것일까? 그러나 그런 것을 다 부정해버리고 나면 무엇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삶의 동기와 원동력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차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차가 있어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사람이 가고 싶은 곳을 가고 행복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 핸드폰이 없어도 살 수야 있겠지만, 그것을 가짐으로써 부부, 부모와 자식,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더 친밀한 정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과연 낭비인가. 더 나아가 앞으로 핸드폰 하나로 지금 데스크탑 컴퓨터에서나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을 발명해 내고 만들어내는 정열이, 그런 것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와 구매력이 없이 어떻게 나올 수 있겠는가. 그런 소비의 욕구가 한편으로는 문명의 발달을 촉진하고 경제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사용하는 것을 낡은 시대의 윤리로 정죄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