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가 SK로 인수된 후 첫 창경궁 봉사활동이다.
현대 그룹에서 문화재청과 협약에 따라 각사가 매년 담당 궁을 맡아 청소봉사를 하는 것인데
작년은 다른 일로 못한걸로 기억한다.
오늘은 평일이라 적은 인원들이 모였다만 많은 부부동반들을 하였다.
궁내 건물 한동을 먼지 터는 일을 하기로 하였다고한다.
먼저 궁 해설가로 부터 궁 안내를 받고 청소를 하는 것으로 되있어 궁내를 돌아보면서 설명들을 들었다.
창경궁을 일본이 침략하여 통치할 때에 이 곳을 찬탈하여 동물원으로 만들어
궁의로서의 위엄을 없애버린 비운의 궁터이다.
광복 후에도 오랜동안 그대로 방치하여 우리 나이또래 사람들이 기억하는게
동물원구경은 물론이고 일본 꽃이라하여 벗꽃을 많이 심어놓고 밤 벗꽃놀이 하던 기억이 있다.
69년도에도 밤벗꽃 놀이한다고 친구와 왔던 추억이 있다.
이 다리고 그 옛날 있던 그대로의 다리이다.
중간에 있는 도깨비 상이 흘러오는 물에 마귀들을 쫓아내는 역활이라한다.
다리 위의 길은 왕이 다니는길이 따로 높게있고 다리 입구에는 들어오는 이들을
감시하는 해태 상이 마주하고, 건너가서도 지켜보게 아쪽 다리 끝의 해태상은 안을 향해 있다.
해설가 아가씨가 자세하게도 알려준다. 올 때마다 다른 이들이지만 사람에 따라 다른이야기까지 알려준다.
궁권의 원래모습들과 그 후에 소실되어 재 건축하고 또 없어져 복원한 이야기들하며.
일제 강점기의 수탈역사도 함께 들을 때면 약소국의 비애를 실감해본다.
언제 우리도 일본을 침략하여 일본 황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놓아야겠단 생각도 해 본다.
한국인들의 온순한 성격이 외세의 침략을 쉽게 받은 이유도 될꺼란 생각도 해본다.
악착같은 마음들이 적다. 요즘 종북좌파들의 하는 행태로 전 국민들이 한다면
아마도 가능 할 꺼다. 종북 좌파들의 악착같은 기세로 물고늘어지고 버티는걸 보면.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북한으로 흡수통일이나 안되면 다행이다.
명정문을 들어서면 왕이 집정을 하던 공식 업무 영역이다.
오른 ㄴ계단의 가운데는 봉황 두마리가 그려진 돌이 새겨져 있다.
왕의 가마가 지나가는 곳이다.
그 옆에는 이런 용 머리가 모든 잡귀를 몰아낸다는 상징으로 양쪽에 서있다.
계단 돌에도 문양이 깊게 새겨져 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왕이 앉는 자리 뒤의 병풍은 음양오행에 기초한 것들이다
오악산이 있고 해와 달이 , 즉 양과 음이 대칭을 이룬다.
정조대왕의 친필이라 한다.
정조대왕과 영조대왕시기가 아주 태평성대의 기간이었다.
이 문 안으로 들어서면 이곳부터는 내궁이다. 여인들이 사는 곳으로서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곳이었다한다.
이 안에 들어오면 언제나 마음이 포근한 느낌을 받는다.
주위 풍경부터 건물들의 배치까지 단아하고 온화한 느낌.
저 안쪽이 창덕궁의 낙선제이다.
고목의 모습하며 잔디가 평화로운 모습이다.
함인정 에서는 장원급제한 이들을 친이 친경하고 연회도 같이 하던 곳이라하는데 그리
성황스럽게 하는 곳은 아닌듯 하다. 그들의 축하하는 만찬 정도랄까.
건물 안의 사면에는 춘하추동을 노래하는 오언절귀들이 걸려있다.
가을날에 비추는 달은 찬란하고 밝다 라는 귀절이 있듯이.
이 통명전은 왕비하고 왕이 합방하는 건물로서 용마루가 없이 지어진 건물이다.
왕자나 공주를 잉태하고 그들이 태어나는 곳이기도하다.
왕이 합방하는 날은 좋은 날을 택해서 정해진다는데 이것 저것 다 빼고나면 한달에 한두날이라하니
다른 날들은 궁녀들과 관계를 맺는게 아닌가 한다.
건물마다 돌아가면서 듣는 것 중에는 사도세자가 뒤지에 갖혀 죽은 건물의 뜰을 바라볼 때는 찹찹하기도 하다.
아들의 잘못을 신하의 이간질로 그대로 믿고는 그 후에 후화하는 짓을 왜 하였을까 하며.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이간질이 참 문제이긴 하다. 그럴 때 판단 할수있는 지혜와 슬기가 있어야.
돌아보는 내내 열심히 설명 해주며 또 열심히 경청들을 한다.
통명전의 모습을 더 가까히 담아본다.
이런곳에서부터 나오는 기라도 좀 받아가면 어떨까 하며.
좋은 기만 골라서, 장희빈이 이 건물 주면에 잡귀를 묻어놓고 저주를 한 곳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한옥의 처마가 너무 멋지다.
언덕 마루에 올라 내려다 보는 전경이 너무도 아름답다,
오원에 푸른 나뭇가지들이 다 나와있으니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시원한 공간과 그 사이의 건물하고 적소나무들.
자연스럽게 휘 감아 오르는 적송들이 눈에 더 들어온다.
저 멀리 남산도 보이고 여기서 보면 어데 산속 같은 풍경이다.
울창한 숲속 영조대왕의 부도를 설명 듣고,
이 연못은 창경원 시절 뽀드 타고 겨울이면 스케이트 장이었다.
외부에서 들여온 유일한 백송이다.
자라기도 힘들다는 나무란다.
연못의 잉어가 한가롭다.
이곳은 왕이 농부들의 농사 어려움을 몸소 느껴보느라 모심기 하던 곳이라 한다.
오늘 고궁 해설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이제는 청소 할 시간이다.
총채들을 받고 장갑도 나누어준다.
건물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먼지를 털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위 아래 할거 없이.
이때 제일 눈에 띠는게 키가 제일 큰 변수 사무총장이다.
키가 크니 높은 곳까지 쉽게 먼지를 턴다.
워낙 깨끗이 관리하니 먼지들도 없다.
오백년의 궁중 역사를 보아온 이 소나무가 그 역사를 알까?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이란 노랫말 같이 소나무 껍질이 철갑같다.
우리나라 적송들은 언제봐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