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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 삼손의 힘의 근원
사사기 16장 1-31절 / 1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2가사 사람들에게 삼손이 왔다고 알려지매 그들이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조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 3삼손이 밤중까지 누워 있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 가지고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 4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 17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18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9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20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21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22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23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25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26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27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8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31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사사기는 모두 21장으로 되어 있으며, 이중 사사 삼손을 이야기 해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사사의 활동은 16장까지입니다. 그 이후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떠나 자기들 마음대로 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 제사장직이 이스라엘 마음대로 행해지고 있는 부패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에서 13장 1절은 삼손의 등장에 앞서 먼저 이 당시의 역사적 시대의 상황을 알려 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시니라.” 삼손에 이르기까지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의 상황이 이러했는데, 그러한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하시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사사로 활동하시게 하는 것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그 사사 삼손 마지막 일대기는 16장에서 삼손과 들릴라의 사랑을 통해 '블레셋 사람들을 진멸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다룹니다.
삼손은 레히에서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들을 1천 명이나 쳐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일 후인 어느 날 삼손은 가사로 내려가 한 기생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가사 사람들은 삼손이 있는 곳으로 몰려와 그가 잠들어 있는 집을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을 지켰다가 날이 새면 그를 붙잡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한밤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성문으로 가서 문뿐만 아니라 두 문설주와 빗장까지 모두 뽑아 어깨에 메고 헤브론 맞은편에 있는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삼손이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은 블레셋 사람들을 큰 공포로 두려워 떨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성문은 그 도시의 힘이나 민족의 국력을 상징하는 까닭에(창 22:17; 24:60), 성문을 삼손 혼자서 메고, 그것도 두 문설주와 빗장까지 모두 뽑아 성문 전체를 어께에 메고 갔다는 것은 괴력 이상의 힘을 발휘한 것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공포를 주고도 남는 것으로 두려움에 떨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삼손은 이번에는 블레셋 여인인 소렉 골짜기에 사는 들릴라를 사랑하였습니다. ‘들릴라’란 이름은 ‘매달린 자’, 혹은 ‘약한 자’, ‘약하게 하는 자’입니다. 여인의 이 이름에서 삼손에게 그녀가 어떤 사람일 것인지를 능히 짐작케 합니다. 삼손이 들릴라와 가진 사랑이 무엇으로 있는 일인지는 삼손이 딤나에 있는 블레셋의 딸을 사랑하여 혼인에 있은 것에서 하나님이 삼손을 통해 블레셋에게 펼쳐 나가신 계획을 떠올리게 합니다. 삼손이 들릴라라고 하는 블레셋 여인과의 사랑에 빠지자 블레셋 왕들은 이것을 삼손을 죽일 수 있는 호기로 여겨 그 여인을 이용하여 삼손에게서 힘이 빠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고자 은화 1100개를 줄 것을 약속하여 여인을 매수하였습니다. 이에 들릴라는 관능의 미로 삼손의 마음을 사로잡아 답을 알려줄 것을 애원하여 두 번의 답을 알아냈으나 그때마다 사실로 말해준 것이 아니기에 블레셋 왕들이 삼손을 사로잡기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들릴리는 계속하여 애원함으로 세 번의 실패 후 네 번째의 시도 끝에 마침내 삼손으로부터 그 답을 알아내 블레셋 왕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줌으로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머리에 삭도를 대어서는 안 되는 것을 어기게 되니, 들릴라는 자기의 무릎에 뉘여 잠들어 있는 삼손의 머리카락 일곱 가닥을 잘라버림으로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삼손은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삼손이 힘을 전혀 못쓰게 된 것을 확인한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사로잡아 두 눈을 뽑고 놋쇠줄로 꽁꽁 묶여 가사로 끌고 가서 옥에 가둬 두고는 맷돌을 돌리게 하며 조롱하고 모욕하였습니다. 하지만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삼손의 머리카락은 점점 자랐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면서 괴력의 힘을 상실한 것으로 생각했지, 잘려나간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며, 나실인으로서의 삼손이 지닌 힘은 그의 머리카락에 있는 것이 아닌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심에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사로잡혀 옥에 갇히고 능욕을 당함에 있으면서 그는 자신이 무력한 상태에 있게 된 것이 나실인으로서 머리에 칼을 대지 않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처신에 있은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이 자신에게서 떠난데 따른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28절)라고 말하여 자신에게서 떠난 하나님의 영이 다시 임하여 자신을 강하게 하실 것을 구하는 부르짖음으로써, 삼손은 자신의 힘이 머리카락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강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나실인의 법도대로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 동안은 함께 하셔서 그로 하여금 이적의 힘을 발휘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하셨으나, 삼손이 하나님의 명을 거역함으로 그에게서 떠나 그와 함께 하지 않으시는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그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사로잡힘에 있게 함으로써 이를 통해서 후에 있게 되는 일인 일시에 블레셋 사람들을 멸하실 뜻을 작정하신데 따른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서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머리털이 밀리는 것을 통해 삼손에게 떠나셨으며, 이를 알지 못한 삼손은 전처럼 나가 힘을 쓰려고 했지만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던 것이었기에 이 사실을 가리켜 “자기 머리털이 밀리운 줄 깨닫지 못하였더라”라고 표현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한 삼손은 자기 자신의 힘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다곤 신전으로 끌려나와 신전을 받치고 있는 기둥 사이에 서게 될 때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28절)라고 간구하였습니다. 특별히 22절의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는 표현은 머리털이 자람에 따라 그의 힘이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또 다시 임할 것을 시사해 주려고 눈에 보이는 조짐을 제공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서의 활동에 다시 있게 될 것을 암시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삼손이 옥에 갇혀 능욕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도 그의 머리카락이 자라며 사사로서의 힘을 발휘하게 될 준비에 진행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때가 이름으로 어느 날, 블레셋의 방백(왕)들이 자기들의 신 다곤에게 제사를 드리며 잔치 자리를 벌이는 자리에 삼손을 끌어내어 그를 놀리며 웃음거리로 삼고자 두 기둥 사이에 묶어 놓고서는 자기들의 신에게 노래하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조롱당하는 삼손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어 지붕에 올라가 있는 사람만도 3천 명이나 되었으니, 잔치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 수가 셀 수 없이 더욱 많았습니다. 이때를 기회로 삼손은 하나님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28절)하고 부르짖으며 신전을 버티고 있는 가운데의 두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또 하나는 오른손으로 대고는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30절)하고 외치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있는 힘을 다하여 기둥을 밀어내니 블레셋 왕들과 모든 백성이 무너져 내린 신전 돌더미에 깔려 죽은 수가 삼손이 살았을 때에 죽인 사람보다도 더 많았습니다.
이러한 삼손을 보면서 혹자들은 삼손을 블레셋 사람인 이방 여인에게 눈이 멀어 버린 사람으로 말하며, 그런 그는 결국에는 사사의 활동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블레셋 사람의 구경거리가 된 채 비참한 죽음을 당한 것으로 보아, 삼손을 실패한 사람이라고 평합니다. 삼손, 그는 과연 사사로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실패한 사람인가. 삼손을 이렇게 보며 이해하고 있다면 이는 참으로 사사 삼손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생각은 참으로 그릇된 것입니다. 성경은 사사 삼손을 결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은“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히 11:32-34) 라고 하여, 그를 ‘믿음으로…삼손은’이라고 말해 주고 있어 믿음의 삼손으로 평하고 있습니다.
삼손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 사람인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며 사랑에 빠져 나실인의 본분을 잃고 두 눈을 빼앗기고 우상의 신전 기둥에 묶여 이방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비참한 죽음을 당했는데, 삼손이 믿음으로 사사의 일을 하였다고 그의 일생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은 왜인지 그에 대한 답을 성경은 말씀하여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그 답의 첫 번째가 사사기 13장 1-5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라고 하여, 삼손이 등장하게 되는 역사적 배경에 깔려 있는 하나님의 경륜적 섭리를 알려 주시는 것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그(삼손)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것’이며, 두 번째로는 14장 1-4절에서,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에서 알게 되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사인 삼손이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며 역시 블레셋 여인인 들릴라를 사랑함에 있게 된 것은 삼손이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나실인인 것을 망각하고 사사의 본분에서 떠나 방탕하게 사는 것에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삼손을 사사로 세우시고, 그를 통해서 블레셋 방백(왕)들 및 그 백성들과 충돌을 갖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구원하게 하시는 일로서 하나님이 삼손의 마음을 이끌어 가시는 것으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다른 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선지자 호세아의 경우에서 봅니다. 호세아서는 하나님께서 브에리의 아들 선지자 호세아에게 부정한 여인과 결혼하게 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시작되어 창녀 고멜과 결혼하고 그녀에게서 음란한 자식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를 낳는 호세아 개인적 경험을 다루는 것 같지만,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에 대한 관계를 설명하여 주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보게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부정한 아내(이스라엘)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며, 결국 남편이신 하나님께서 그녀를 사서 축복의 처소로 회복시켜 주심을 보여 주시는 것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호세아서에 나타난 이 하나님의 사랑은 음란한 여인 고멜에게서 나온 음란한 세 명의 자식에 의해서 나타내 주시고 있는 것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하여 떠나 다른 연애하는 자인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스라엘에게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나타내시면서 이스라엘을 데려와 신부 삼으시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 더, 다른 경우를 들어 보겠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차남인 야곱을 하나님의 약속을 잇는 자손으로 이끌고 가시는 것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실 것,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김에 있게 하실 것에서 에서의 장자권을 야곱이 팥죽 사건을 통해서 획득하는 것에서 나타내시고 있는 하나님의 주권적 손길입니다. 혹자는 이 사건을 야곱의 간교한 꾀로 몰아가며,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기 위해서 팥죽으로 눈이 어두운 아버지 야곱을 속인 간교한 꾀를 사용했다는 것으로 몰아가나,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을 동원하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복중에 있는 쌍둥이 에서와 야곱에게 장차 있게 하실 일에 대한 뜻을 알리신 것을 신실히 이루어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자권을 소유한 야곱에게서 하나님의 총회를 이루는 하나님의 장자인 이스라엘이 있게 되며, 이스라엘의 유다 지파를 통해서 다윗 왕국이 세워지게 되며,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기록해 주시고 있는 것이 마태복음을 비롯한 복음서입니다. 이러한 것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의 경륜적 섭리를 사사 삼손이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는가 하면 또한 역시 블레셋 여인인 들릴라를 삼손이 사랑하는 것에 있는 것에서도 보게 되는 것이요 삼손이 그가 사랑한 들릴라에 의해 블레셋 왕들에게 넘겨져 두 눈이 뽑히고 놋 사슬에 몸이 꽁꽁 묶여 어둡고 차디찬 감옥에 갇히는 상태에 이르는 것에서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삼손은 블레셋의 방백들이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23절) 라고 하고 있고, 또한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노래하며 즐거워하면서 삼손과 그의 하나님을 멸시하며 모욕하고 조롱하는 것에서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주었다”(24절) 라고 할 때, 사사 삼손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28절) 라고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여기서 삼손은 하나님께 자신을 생각할 것을 구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사 삼손이 있게 하신 하나님의 경륜적 섭리에 대한 이해를 삼손이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그는 이번만 자신을 강하게 하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자신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할 것을 구하는 것에서였습니다. 삼손이 이처럼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함은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의도하신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할 것’에서입니다. 삼손은 이처럼 자신을 사사로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적 섭리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런 자신에게 주시는 강한 힘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행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신전의 두 기둥을 밀쳐내어 신전을 무너뜨림으로써 블레렛 방백들을 비롯해서 삼손을 보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는 결과에 있었습니다. 신전 지붕에 있는 사람만 해도 3천 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지붕 아래인 신전 안에 모여든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들 모두의 죽음은 삼손이 사사로 활동한 20년 동안 죽인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고 하니, 가히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게 많았습니다.
이렇게 블레셋 방백들과 그 백성들의 죽음은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블레셋의 쇠퇴요 몰락입니다. 그 일을 이스라엘의 참 신이시오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사사 삼손은 그 하나님을 블레셋의 지배 아래 있던 이스라엘에게 나타내 보이심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13:1)에서 보게 되는 사사 시대에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악에 대하여, 그들의 주이신 하나님께 믿음이 있어야 할 것을 말해 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사 삼손을 믿음에서 떠난 사람, 믿음으로 행하지 않은 사람, 믿음에서 실패한 사람, 그런 그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비참한 죽음의 최후를 맞이한 사람 등 등 따위로 말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서 ‘믿음으로…삼손은’, '삼손은 믿음으로 … '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과 전혀 다른 것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사사 삼손은 믿음에 실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믿음으로 산 사람으로서, 그가 두 눈 뽑히고 신전 기둥에 묶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는 처지에 있는 것조차도 그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거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의와 함께 하는 죽임’에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의에 있는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는 것도 그리스도를 위함에 있으며, 죽는 것 또한 그리스도를 위함에서 있습니다. 여기에 조롱당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 수치이며 부끄러운 것이겠는지요.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한즉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광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주와 함께 하는 그분의 나라의 백성으로 있음이 그러합니다. 사사 시대에서 ‘사사 삼손의 일대기’는 이를 말해주고 있는 하나님의 구속사관에 서 있는 역사의 발걸음이요 거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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