ㄲ 연가
부제:까투리 연가
가슴에 불씨 품어 늘 그리워 꿔이뀌이
볼품 없는 내 초라한 모습에 용기 잃어 꺼이꺼이
일탈 할 수 없는 사무침에 심장이 오그라들어 조막만 꺼이꺼이
눈부신 색실로 짜낸 망토 걸친
정녕 전설 속 왕국의 왕자님 꺼이꺼이
머리에 관 빨간 베일 하얀 목도리 눈이 부셔
가까이 다가 갈 수 없어 꺼이꺼이
왕자는 귀머거리 꺼이꺼이
산 기슭 시냇물로 목욕하고
산 지천에 꽃가루 모아 연지 곤지 찍고
산 백합 향수 뿌리고 소리쳐야 돼!
꿔이꿔이
꿩 꿩 장서방 어디어디 사니?
이산 넘어 저산 넘어 낙락장송 아래 내 집일세
한번 비상飛翔에
너는 까투리 나는 장끼 알에서 나온 꺼벙이
우리는 ㄲ의 연가
능소화
고경숙
늘상 일터에 앉아 눈을 들면
황폐한 심상을 능소화가 미소로 쓰다듬네
땅을 불사를 것 같은 칠월
이전엔 기억 없는 맹열한 폭염에도 개의치 않고
나팔 같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조신한 꽃 짓은
숨죽인 바람이 스치는 까닭이라
부질없이 하늘을 기어오르고 뛰어넘고 싶은
작렬하는 욕망 때문에
이 대지가 이렇게 뜨거운 것인가?
진정 그리운 그 무엇이
닿을 수 없는 궁창 너머에 있어서인가
하늘을 넘어서려는 집요한 그리움 때문에
능소화가 피고 지고
다 떨어져 바닥에 누울 때까지
더운 숨을 들어 쉬겠네
망부가亡夫歌
고경숙
나는 잃었어요 붙잡을 수 없어서
나를 위해
슬픔을 노래하지 말아 주세요
내가 더 서러워져
가슴이 타 숯가루 먹빛이 되니까요
나의 슬픈 노래를 스스로 부를게요
그대 두 눈 속에 가득 담겨 넘칠 것 같은
애처런 눈물은 나를 더 아프게 하니까요
나의 먹빛 가슴을 들키고 싶지 않아요
내 노래가 망부가로
몰래몰래 눈물 마르는 날을 기다릴게요
살아 있음이 숨 쉬는 식물처럼
덤불로 흐드러져 찔레 향기 나는 미소로
언젠가 건너갈 강물에 남루한 몸 띄워 흘러
애증愛憎의 편린片鱗들 흔적의 의미도 사라진 천상에서
재회의 망부가를 부를게요
시 심사평
언어예술인 시 창작활동에 열중해온 고경숙 시인이 보내온 3편의 시는 기성 시인 못지 않는 수준높은 작품이다 습작기의 꾸준한 땀방울이 엿보인다
<ㄲ 연가>는 꿩의 울음 소리 꿔이꿔이 꺼이꺼이의 의성어의 시어구사로 시의 낯설기 작법의 묘미를 잘 보여 준다 장끼 수꿩과 까투리 암꿩의 외양묘사 암수 두 꿩의 연가
심리도 내포적 언어구사로 시가 잘 승화되어 미적 감동을 환기시켜 준다 한글 된소리
<激音>5자 가운데 첫된소리 ㄲ음절 소리시늉말 시어로 암수 꿩이 새끼 꿩 꺼벙이를
낳기까지의 시의 이미지 전개가 알맞게 엮이어 시의 구조가 튼튼하고 정감이 아름답다 시작품 연구별의 절제 있는 균형미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능소화>는 갈잎 덩굴나무로 가정에서 관상용으로 키우고 있다 시적자아가 바라본 능소아의 조신한 인격미와 하늘 넘는 소망의 내면적 이미지를 의미 있게 외양과 함께
정서적으로 미적 감동을 환기시켜 준 창작솜씨가 능숙해 보인다
<망부가>는 신라 충신 박제상의 아내가 남편 바라보다 경주 치술령고개 망부석이 된 이미지를 연상시켜 준다 우리 문학의 보편정서인 기다림 그리움의 사상과 감정이 “숯가루 먹빛”“찔레 향기”같은 감각적 언어구사로 수준 높은 시로 잘 엮었다 정서적으로미적 감동이 환기되는 수준작 작품이다
독일의 릴케는 시는 체험이라 했다 고경숙 시인은 창의적 상상력과 적절한 언어선택
기발한 표현력 등의 시창작 세련미로 보아 모윤숙 노천명을 능가하는
큰 시인이 되리라 믿는다 꾸준한 정진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