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 집현전학사를 지냈으며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모의에 참여했던 김질의 밀고에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박팽년의 6신이 참혹하게 처형되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형님 아우 그리고 3 아들 등 3대 7명이 처형되고
어머니 처 제수 등도 대역부도의 가족으로 노비가 되었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
그리고 세조에게 올리는 문서에 臣이라는 글자 대신에 巨라는 글자를 썻으며,
녹봉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모아 두었다 하니
정말로 놀랍고도 義가 깊고도 뚜렸한 할아버지셨다.
삼촌(수양대군)이 조카(단종)를 힘으로 억압하여 왕위를 선위 받은게 합당하다고 본 모양이야.
천륜을 거역한 패륜이 미화되고 영월에서 사사되어 시신도 거두지 못하게 한 처사가 옳았단 말인가 ?
목숨을 겁내지 않고 몰래 시신을 장사지낸 영월호장 엄흥도의 의거는 무었으로 찬해야 한단말인가
역사는 이 모두를 묻어두고 지내왔다.
19대 숙종 때 모두 신원되어 관작이 회복되었으며, 영조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정조 때 어정배식록에 올랐으며, 장릉 충신단에 배향되었다.
비문에는 4글자만이 쓰여져 남아 있으니 정말로 아름답다.
朴氏之墓
(忠臣不事二君---박팽년)
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金이 남녀
玉出崑崗이라 한들 뫼마다 玉이 날쏜야
암으리 思郞이 重타 한들 님님마다 좃츨야.
(임을 향한 일편단심---박팽년)
가마귀 눈 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夜光明月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향한 一片丹心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첫댓글 슬픈 역사속에 강직하게 살다가신 할아버지와 고난의 세월을 살아가신 가족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립니다.. 숭고한 정신 항상 새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