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동화
하루
차태희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해 주세요.”
달이의 말에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잠들기 전 달이와 엄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엄마가 책을 읽어주시기도 하신다. 그런데 오늘 밤은 별다른 이야기 없이 잠이 들어야만 했다.
달이의 엄마는 어렸을 때 가난하고 외로운 시절을 보냈다. 일찍이 엄마와 아빠가 돌아가시고 이모의 손에서 자랐다. 조카까지 돌봐야 하는 이모는 항상 바빴다. 하지만 달이의 엄마는 언제나 웃음과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달이에게는 최고의 엄마이다.
달이는 엄마에게 그런 질문을 한 것이 미안했다. 잠이 들면서 생각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게 해주세요.’
부은 눈으로 일어난 달이는 거울을 봤다. 그런데 거울 속에는 엄마가 있었다. 달이는 뛰어가서 엄마를 불렀다. 이런! 엄마는 달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와 달이는 모습이 바뀌었다. 달이는 정성껏 요리를 했다. 어설프게 엄마를 도왔던 일들이 도움이 되었다. 엄마를 흉내 내며 차린 밥상을 본 달이 엄마는 놀랐다.
“다, 달이야! 어떻게 네가...”
하지만 오늘 하루가 걱정이 되었다. 달이는 엄마에게 책가방을 챙겨주며 말했다.
“달이야, 학교 늦겠다.”
엄마와 달이는 한바탕 웃었다. 웃고 나니 걱정이 사라졌다. 달이가 먼저 신을 신었다.
둘은 학교 가는 길을 다정히 걸었다.
“우와, 달이야, 넌 엄마가 데려다주기까지 해? 부럽다!”
달이와 엄마는 기분이 좋아졌다.
학교가 끝날 때 쯤 왠일인지 비가 왔다. 달이 엄마는 걱정이 되었다. 그 때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달이가 보였다.
“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 얘, 달이야, 괜찮니? 엄마 온 김에 떡볶이 먹으러 가자!”
달이는 제법 엄마 행세를 했다. 달이 엄마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큭큭, 네! 엄마!”
달이 엄마는 엄마라는 말을 처음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얼떨결에 나온 말이었는데 마음이 이상해졌다.
“나, 청소, 빨래, 설거지 다 했어! 힘들더라고. 하지만 엄마한테 아주아주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 줄 생각에 엄청 열심히 했어. 평소에 공부를 이렇게 했더라면 엄마한테 매일 칭찬 들었을 텐데 말이야.”
언제부터였을까? 엄마의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 달이야, 고마워. 엄마한테 엄마라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달이는 찡 했다.
‘그럼 우리 엄마는 누군가를 엄마라고 부를 기회조차 없었구나. 가엾은 우리 엄마!’
달이는 엄마를 꼭 안았다. 둘은 우산을 들고 꼭 붙어서 떡볶이 집을 나왔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빗소리가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달이는 엄마가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엄마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마음 속으로 백 번도 넘게 말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달이가 엄마에게 말했다.
“이것 밖에 못 해줘서 미안해.”
현관 앞에서 달이는 조심스레 엄마 옷을 털어주었다. 둘이 함께 소곤거리는 밤이 찾아왔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 같은 조용한 밤이었다.
“오늘 하루 즐거웠어. 오늘은 정말 특별하고 멋진 하루였어.”
달이는 엄마 냄새를 맡으며 눈을 감았다. 긴장이 조금씩 풀리며 잠이 쏟아졌다.
“달이야, 태어나줘서 고마워.”
아침은 같은 시간에 찾아왔다. 같은 소리, 같은 냄새가 나는 아침이었다. 달이는 부엌으로 달려가서 엄마를 찾았다. 오늘 아침 식탁에는 달이의 생일날처럼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가득이다.
“엄마, 사랑해요. 세상 무엇보다 더!”
달이와 달이 엄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먹으며 미소를 지었다.
당선 소감문
엄마는 저에게 입버릇처럼 물어봅니다.
“엄마가 있다는 건 어때?”
“엄마가 많이 부족하지?”
저는 예전에는 별 생각을 안 하고 그냥 “어, 좋아” 라고만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글을 쓰기 몇 달 전 저는 엄마가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어릴 때 엄마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제 나이 때 엄마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항상 엄마의 빈 자리가 외로웠다고 했습니다. 엄마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바다와 책 밖에 없었습니다. 엄마는 부산에서 태어나서 바다를 좋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족은 휴가를 대부분 바다로 갑니다. 엄마 덕분에 저도 바다를 무척 좋아합니다.
시간이 흘러 엄마는 진짜 멋있고 사랑스러운 나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이 동화를 쓰기 몇 달 전, 저는 엄마의 어린 시절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집요하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 대해서 물었던 그 날 밤, 저는 그날 펑펑 울었습니다. 엄마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잠이 들었지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제가 엄마를 위해 아침을 해주고 싶어서 설레발을 쳤더니 엄마는 학교나 빨리 가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라는 동화를 썼습니다. 글을 쓰면서 참 감사했습니다. 엄마는 그 때도 시간 아깝다며 잔소리를 하셨지만 저는 글을 쓰는 시간이 무척 감사하고 이 글을 읽을 엄마 얼굴을 떠올리면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매일 감사한 밤이 흘렀습니다. 엄마가 있다는 것에. 그냥 엄마도 아니고 똑똑하고 뭐든지 잘하는 엄마. 나의 하나뿐인 엄마!
글 속에 달이는 엄마를 위해 집안일도 학고 학교에도 마중나갑니다. 저는 엄마가 달이에게 엄마라는 말을 쓰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하는 장면과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하는 부분을 쓰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냥 글일 뿐인데 이렇게 따뜻해지고 소중해지는 것은 어떤 힘일까요? 이 글을 엄마에게 보여 준 아침에 엄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일 년이 흘러 저도 모르게 강원어린이 문학상에 출품을 하셨습니다. 엄마는 혼자보기 아까워서라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이렇게 상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일은 저의 글을 읽고 과분한 심사평을 남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심사평을 읽고 또 읽고 엄마와 저는 새벽까지 기뻐하고 흥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은 바람은 이 책이 엄마가 없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책이 되면 좋겠습니다. 또 엄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는 책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가 쓴 책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니 너무나도 기분이 좋습니다. 제 동화를 뽑아주신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꼭 전하고 싶습니다. 저도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책을 많이,많이 쓰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