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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기상외침 06시
노동자 투쟁에 “해”뜨다.
06시다. 맞춰논 알람이 노래부를 틈도 없이 “일어나세요” 외친다. 우라질 것들(나만 그랬나). 비는 안오나.
머리를 감을지 말지 망설이다 그래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우리가 아닌가! 머리 감자. 정신 차리자.
천막바깥 하늘이 인사한다. “해” 떴다.
‘야, 드디어 노동자 투쟁에 해뜰 날 있구나.’ 일단 ‘야호!’다.
곧바로 2010 경북도보순회투쟁단의 화사한 깃발이 모습을 드러내고 단결, 투쟁, 연대, 승리를 새긴 각각의 색깔 펄럭이며 조 깃발도 나타났다. 물론 동지들과 함께. “잘 잤냐” “잘 잤다” 인사는 짧게, 구호는 조마다 길고 짧게 내지르고 첫걸음이 시작된다.
발레오만도 북문을 돌아 대성주유소 사거리다. 해마다 도보순회투쟁단이 빠지지 않고 출근선전전을 벌이던 바로 그 장소. 기사식당도 낯익고 사거리 육교마저 아는 척을 한다.
07시 경주금속 동지들이 함께 하며 80여명을 넘는 대군이 사거리에 포진했다. 윙바디 차량을 중심으로 방송이 준비되는 동안 저마다 현수막과 피켓, 선전지로 무장했다. 이제부터 한시간동안 이 도로는 우리의 장터다.
서있자니 날씨가 너무 신통하다. 회색구름을 밀쳐내고 햇살이 퍼지는 게 눈에 보인다. 봄날이구나.
08시 출근선전전이 끝났다. 아슬아슬하게 공단 고압선을 피해가며 공원으로 돌아오는 길. 발레오만도 담벼락을 지나며 깃발이 자꾸만 공장 담장을 넘어선다. 새피하게 울리는 경보음. ‘짜식 웃기고 있네.’
그렇다. 깃발은 우리보다 먼저 발레오 담장을 들어섰다. 다음은 우리 차례다. 발레오만도에 청춘을 바친 노동자들이 자신의 자리로 들어설 차례다.
08:20 미리 차려진 식탁은 우리를 게걸스럽게 한다. 밥과 국, 김치 한가지라도 즐거웠을건데 무려 7종의 반찬이 가지런하다. 융숭한 식단이 버겁다.
09시 조장+진행팀회의
오늘 일정을 점검했다. 내일 집회가 예정대로 될 것인지 어떤지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어떤 경우라도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그 사이 도보순회를 알리는 보도자료를 냈다.
10시 도보순회투쟁단 출정식
발레오만도 북문 앞이다. 정문, 후문 다 때려막고 자본이 자신의 숨통으로 틔워놓은 구멍이다. 우리가 앉았다. 안은 보이지 않는다. 민주노총 경북본부 배성훈 사무처장의 사회로 집회는 시작되었다.
‘노동탄압 직장폐쇄 즉각 철회하라!’
‘노동탄압 박살내고 현장으로 돌아가자!’
구호는 늘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게 한다.
출정식 컨셉은 <자본에 보내는 독설과 경고, 우리의 각성>이다.
이전락본부장의 출정사다.
“발레오만도 강기봉사장이 상식적 노사관계가 될 때까지 직장폐쇄를 풀지 않겠다고 한다. 상식적인게 노동자 내쫓고 용역깡패로 공장 문 때려막는거냐. 상식적인 자본가가 노조가 무릎 꿇기를 요구하며 공장안에 노동자들 가둬놓고 짐승처럼 부리는거냐. 자본이 요구하는 것은 노조의 깃발이다. 저 담장너머로 노조깃발 그냥 넘기지 않겠다. 사장이 발레오만도에 얼마나 근무할지 몰라도 제가 이 지역에 사는 한 발레오투쟁 멈추지 않겠다. 뻐꾸기는 자기 집이 없다고 한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다른 새가 키우게 한다. 저 둥지, 저 일터를 뻐꾸기처럼 맡겨둘 수 없다.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몸짓으로 되찾자.”
투쟁사업장 동지들의 발언이 계속된다.
한국합섬HK지회 홍기탁 동지는 말한다.
“2005년 정리해고를 분쇄하고 자본가를 무릎 꿇렸지만 2007년 파산으로 공장은 돌아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키고 있다. 우리 투쟁은 너무나 정당하다. 250억이 되는 노동자의 임금이 날아가고 없다. 그러나 기필코 책임을 물을 것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국민혈세를 퍼부었는데 대우차, 쌍용차처럼 민간자본의 주머니 불리는 방식으로 되풀이되어선 안된다. 사회로 이윤을 환원하는 공기업으로 한국합섬을 정상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발레오만도 지회장이 구속되고 그 자리를 책임져온 이상수부지회장은
“직장폐쇄 71일째다. 회유와 협박, 사진찍어서 복귀안시키겠다 협박하고, 간부들 손배가압류, 조합원 고소고발로 많이 힘들어 한다. 그러나 탄압하더라도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 소수가 남았지만 지금부터라도 다시 새롭게 출발한다는 마음으로 힘차게 투쟁하겠다. 회사가 사회봉사 데리고가 정신교육시킨다고 한다. 참회하고 기도해야 할 사람은 강기봉이다. 끝까지 끈질기게 투쟁할 것이다.”
비장하고 서럽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더해진다.
“최근에 읽은 소설책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한 무사가 적과 싸우는데 한 손이 잘리자 남은 손으로 싸웠습니다. 두손을 다 잃자 두발로 싸웠습니다. 두발이 잘리자 입으로 머리로 싸웠습니다. 그 머리마저 날아가자 혼으로 싸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겁니다. 전선에 서면 목숨을 걸고 기필코 이기겠다는 전사의 각오가 필요합니다. 손도 잃고, 발도 잃고, 머리를 잃더라도 혼백이라도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정신이 노동자의 무기입니다. 거기에 부끄럽지 않은 노동자가 있습니다. 죽는 거 빼고 다 해봤습니다. 코오롱 최일배동지입니다”
더욱 비장해진 목소리로 소개받은 코오롱 최일배 동지는 이처럼 예언했다.
“아침 출근선전전을 끝내고 지나오면서 발레오만도 관리자들이 조롱하듯 우리를 비웃으며 손까지 흔들더라. 내가 분명히 말한다. 5년전 코오롱 관리자들이 그랬다. 구조조정만 끝나면 지들 세상이 될 줄 알고 개처럼 일했다. 그런데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 다 줄어들고 나니 회사는 개들이 필요 없어졌다. 장담한다. 오늘 우리보고 비웃던 관리자 분명 후회할 것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6년씩 장기투쟁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유는 자본이 도와주기 때문이다. 개처럼 사는 자들에게 굴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복직의 가능성도 희박해지는데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저들의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기 위해서다. 싸움을 이기지 못할지 모르지만 자본의 계산이 틀렸다는 것을 뼈저리게 보여주겠다. 최소한 코오롱에서 두 번 다시 정리해고는 못하게 만들겠다. 발레오만도 동지들, 투쟁의 승패를 떠나 자존심은 지키자.”
찡하다. 그래, 우리가 뭐 별거 있나. 자본가면 뭐 대수냐. 인간을 지키면 사는거다.
투쟁은 뜨거워지고, 깨달음은 구체적이다. 이 적절한 타이밍에 노래는 힘을 돋운다.
노래로 연대하는 좋은친구들, 민주노총 경북본부 전속노래패, 도보순회 전 기간에 함께 하는 동지들이다.
<돈만 된다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뭐든지 팔 수 있고, 양심도 팔 수 있는 자본가에 맞서 <저항하라>한다.
마지막 발언이다. 포항금속 DKC 황영곤 동지
“민주노총 깃발 하나 믿고, 금속노조 깃발 하나 보고 노조 가입했다. 발레오만도에 너무 미안하다. 회사가 DKC를 예로 들어 교육한다고 들었다. 우리가 좀더 강고하게 싸웠더라면 경주까지 이런 파장이 닿지 않았을텐데. 우리는 2005년 노조만들고 2008년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참 아쉽다. 그때 조합원교육 더 열심히 하고 조합원 조직했더라면 이렇게 직장폐쇄, 단협해지에 밀려 해고되고 쫓겨나진 않았을 것이다. 6명이 해고되고, 8명이 정직, 7명이 감봉당했다. 그러나 이대로 싸움을 접을 수 없다. 그간 싸웠던 과정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없다. 재도약을 위해 현장 조직하면서 투쟁하고 있다. 발레오 보면서 너무 안타깝다. 그러나 정당하기 때문에 싸운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투쟁은 다시 달라진다. 힘내자.”
참 많이도 당했다. 분노로 목젖이 아프다. 배성훈동지가 마지막으로 토한다.
“우리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승리할 때까지 연대해서 당신들의 돈줄을, 숨통을 움켜쥘 것이다.”
한편 출정식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노총 경주지부 비상운영위가 열렸다. 결과는 28일 확대간부 파업, 15시 경주역 결의대회. 바쁘다. 포항으로, 구미로 통신을 띄운다. 내일 확간파업을 조직해 경주로 집결할 것. 이상 없다.
집회 끝나고 돌아서니 밥시간이다.
12시 점심은 도시락. 100여명으로 늘어나 라면도 끓인다. 근데 날씨가 다시 어두워지며 바람이 많이 분다. 춥기까지 하다.
13:20 가두행진과 선전전 - 걷는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도보순회투쟁다운 프로그램으로 들어선다. 걷는다. 몸벽보와 현수막과 선전지를 한아름 안고 걷는다. 방송차를 앞 뒤에 세우고 공단을 출발한 차량과 우리는 황성동 운동장까지 걸었다. 걷는 동안 날씨는 다시 정신줄을 당긴 모양이다. 멀쩡하다. 바람은 여전히 휑한데 덥기까지 하다. 이런 변덕.
황성공원까지 약 한 시간을 촘촘히 걸었다. 잠시 쉰다. 10분. 길가 의자에 앉아계시던 어르신들이 힘드니까 앉아 쉬라며 자리를 비켜주신다. 투쟁우대다.
다시 걷는다. 이제 우리가 걷는 길은 큰 대로가 아니라 아파트 들어선 주택가 도로다. 시장도 있고, 학교도 이다. 유림초등학교 담벼락. 미끄럼 타던 초등학생이 “힘내세요” 외친다. 고맙다. “조국의 미래가 밝구나.” 거리는 때때로 한숨과 희망이 교차한다.
경주 동지가 아니면 누구도 알 수 없는 골목을 따라 걷다 발레오만도 사택과 마주쳤다. ‘아. 이 자리. 가족문화제가 열렸던 그 공원 앞’이다. 이제 천막농성장이 있는 공원이 멀지 않다. 17시에 광진상공, 에코프라스틱, 일진베어링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 서둘러 걸어야 16시에 발레오만도 북문에 도착한다. 힘내자.
재촉한 탓에 여유있다.
16시 발레오만도 북문 앞 정리집회
노동자의 변신은 무죄. 코오롱 최일배동지가 사회다. 그런데 아니다. 민주노총 경북본부 구미지부 조직부장 최일배다. 같은 사람이다. 아침 출정식 때와 다르게 북문 앞은 약간 긴장감이 돈다. 방향만 바꾸었을 뿐인데 용역들이 나섰다. ‘틔워놓은 문 앞으로 집회 방향을 돌리니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역시 사람은 머리를 쓰야 돼.’ 자화자찬하며 집회를 시작한다.
여는 말씀은 울산에서 진짜 연대하기 위해 찾아온 노동자 배움터 강진관 동지다.
“경주투쟁에 함께 하고 싶었다. 방법을 못찾다 경북본부 도보순회투쟁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달려왔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투쟁은 본질적으로 적대적이다. 자본이 노동자를 돈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투쟁은 그래서 힘들고 어렵지만 물러서지 말고 싸워 꼭 이기자.”
우리 사회자, 드나드는 차량과 용역들이 거슬렸던지 기어이 한마디 하신다.
“제가 공부하러 학교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20대 용역들을 만난 적이 있다. 부모님 같으신 분들 멱살 잡을 때 무슨 생각이 드냐고 물었더니 ‘재밌다’고 하더라. 그말 듣고 난 후 난 용역경비를 용역깡패로 부른다. 또 코오롱 정문에 들어왔다 짐싸서 가는 용역을 우연히 만나 왜 가냐고 물었더니 ‘군대가기 전에 선배가 알바 일자리 있다고 해서 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정말 할 짓이 아니다’는 친구도 봤다. 인간이 할 짓과 해서는 안될 짓이 있다”
이 말 듣는 순간 떠오른 구호 있다. “야들아 짐싸라. 엄마가 울고 있다”
말하는게 제일 무섭다는 투쟁 1년차, 재활용선별장 정순자 수석, 기어이 마이크 잡았다.
“노조 가입해 처음 머리띠 묶고 결의문 낭독했다. 그때 머리띠 묶고 아직까지 풀지 못했다. 그때는 머리띠 묶는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이제 머리띠 단단히 매고 경주시장과 끝까지 싸울거다. 경주시장과 강기봉이 가는 걸음걸음마다 압정이라도 뿌려서 더 못나가게 하자.”
오늘 마지막 말씀이다. 진방스틸 동지. 해고된 조합원과 해고안된 조합원이 임금을 같이 나눠 갖는다.
“복귀한 발레오만도 조합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 지회장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들 지회장은 누구 때문에 구속되었는가? 의리가 없으면 노동자가 아니다.” 일갈하셨다.
노래공장 동지는 <약속은 지킨다>며 민중의 세상이 올 때까지 <기름밥 동지>들과 함께 하겠다 한다.
또다시 저녁식사시간이 왔다. 그런데 이번 식사는 설레는 식사다.
처음으로 현장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연장근무를 하는 우리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광진상공, 에코플라스틱, 일진베어링 세곳으로 나뉘었다. 현장에서 제공하는 식사, 단지 재정적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런 작은일부터가 의미있는 연대가 아니던가?
도보순회투쟁에 참가하고 있는 한 동지는 한층 더 발전된 제안을 한다. “현장에 들어와 밥만 먹고 가지말고 우리 조합원들에게도 투쟁을 알리는 선전전을 하자”고 한다. 내일부터 당장 실시하자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하루만에 벌써 달라진 모습들이 보인다.
18시30분 교육시간이다.
도보순회투쟁에 웬 교육? 촛불문화제를 준비했다가 비가 온다는 예보에 급하게 준비한 교육이다. 며칠앞으로 다가온 5.1 노동절의 유래와 의미에 대한 영상 및 강의가 진행된다.
새벽부터의 빡빡했던 일정에 한두명 조는 동지도 보인다. 하지만 15분의 영상에 이은 1시간여에 걸친 오세용 동지 특유의 지루한(?) 교육에도 천막을 꽉채운 50여명의 동지들 대부분은 집중한다.
“노동절에 대해 대충만 알고 있었는데 자세하게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절의 역사와 현재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는 후한 평가가 나온다.
이어 각 조별로는 평가토론이, 준비팀에서도 평가 및 내일 일정에 대한 점검이 진행된다.
평가된 내용은 준비팀으로 모아지고, 준비팀에서 결정된 내용은 각 조별로 전달된다.
점심에 밥은 있는데 국은 없었다는 생존권적 평가부터 비누좀 준비해 달라는 소박한 요구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도보속도가 빨라 선전물 배포시간이 부족했다. 피켓을 앞으로만 들어 도로변 홍보는 부족했다. 앞뒤 대오유지가 안되 뒷대오가 따라잡기 어려웠다”는 등 부족한 부분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할려면 확실히 하자는 사명감으로 뭉쳐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마지막 기다리고 기다리던 단결의 시간.
그러나 주최측의 엄격한 통제로 물량은 부족하기만 하다.
어쩌랴! 내일의 빡빡한 일정을 위해 따라야지...아쉬움을 뒤로 하고 피곤한 몸을 침낭속에 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