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머8908
<19머8908>은 내 차의 등록번호다. 기아 로체인데 2007년 9월에 등록했다. 며칠 전 아내를 태우고 미장원에 가려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나왔는데 지상 쓰레기 처리장에 큰 트럭이 쓰레기를 가뜩 싣고 비스듬히 서 있었다. 내가 그 옆을 지나려는데 꽝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그 차의 앞 범퍼를 긁은 것이다. 나와서 보니 그 차는 둔탁한 앞 범퍼가 약간 긁히고 내 차는 약해서 앞 범퍼가 많이 손상되어 있었다. 차의 운전석에 앉았던 젊은이가 나와 난감한 표정을 하고 같이 일하던 친구에게 핸드폰으로 연락했다. 차가 긁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정도로 보험회사의 직원을 부를 생각이 없어 적당히 합의하고 보상하고 싶었으나 호주머니에 현금이 없었다. 그래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현금을 가지러 갔다 돌아왔더니 트럭은 떠나려고 시동을 걸고 내 차 옆을 지나고 있었다. 급히 다가가 5만 원 지폐 하나를 내밀었다.
“뭔데요.”
“흠집을 없애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한 애는 받으려 하는데 다른 한 친구가 극구 반대했다.
“괜찮습니다. 그것보다도 어르신 차가 많이 다쳤던데요.”
“내 차는 내가 잘 못 했으니 내가 고치면 됩니다. 그러나 …”
그러는 사이 그들은 떠났다. 보기 드문 젊은 애들이라고 고마워했는데 아내는 늙으면 그렇게 감각이 둔해지느냐고 나에게 한마디 했다. 아내를 미장원에 데려다주고 곧 자동차 수리공장으로 갔다. 비용이 얼마나 들며 시간이 어떻게 들겠느냐고 물었더니 앞 범퍼가 꾸겨지고 헤드램프에 상처가 났으며, 앞 펜더도 갈아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비용은 100만 원 가까이 들겠다는 것이었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낡았다고 그대로 타고 다니자니 교회의 주차관리원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고 계속 물으면 대답하기 난감했다. 그뿐 아니라 어디 잘 나다닐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들들은 차가 낡았으니 이제는 전기차를 사라고 했지만 90이 다된 내가 얼마나 더 오래 운전하겠다고 새 차를 사겠느냐고 반대했다. 난감해하고 있었더니 공장장은 차 보험에 자차손해 보험도 들어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면 자기 부담금 20만 원만 내고 수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다음번 보험료는 인상되겠지만.
그 길밖에는 별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아내도 차 수리에 동의해 줄 것이고 체면 구기게 꾸겨진 차를 운전하고 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보험회사에 신고 했다. 차 접촉 사고가 났는데 상대방은 상해가 없고 다만 내 차만 수리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내를 미용실에서 픽업한 뒤 나는 차 수리공장으로 갔다. 주인은 차 사고 접수 번호를 적더니 이 차가 오래되어 차량가액(價額)이 수리비에 못 미칠 때는 보험회사는 차량가액 한도 내 보상이기 때문에 그 이상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령 내 차가 14년이 된 노후 차량이어서 차 견적이 50만 원밖에 되지 않으면 그 액수를 초과하는 수리비는 다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차량가액이 높으면 손해액의 20% 부담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4년 전 차를 대대적으로 고친 일이 있다. “끼익, 끼익”하고 마찰음이 나서 차 정비소에 갔더니 후방 브레이크 패드가 다 마손(磨損)되었다는 것이었다. 양쪽을 꽤 돈을 들여 교환하였다. 한 달도 못 되어 또 이상한 소음 때문에 다시 다른 자동차 정비소에 갔더니 전방 브레이크 패드뿐 아니라 주행거리가 십만이 넘어서 타이밍 체인도 갈아야 하며, 오일펌프, 카버 어셈블리도 갈아야 하며, 이 기회에 모든 팬벨트도 갈아야 하고, 파워 스티어링 기름도 갈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이 차는 보험회사 감정가격이 400만 원 좀 넘었는데 수리에 100여만 원을 들여 엔진을 다 들어내고 6시간이 더 걸린다는 대수리를 해야 하나 마라야 하나 망설였다. 그런데 정비소에서는 사람이 중고 인생이 되면 내장이 나빠질 때 잘 달래서 사는 데까지 살다 죽지만 중고차는 겉이 낡아도 내부만 새 기계로 고치면 새 차가 된다는 것이었다. 20만 아니라 45만까지 문제없이 잘 굴리고 있는 차가 있다고 했다. 듣고 보니 이 차를 수리하면 나보다 더 오래 살 것인데, 굳이 새 차를 살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수리를 맡기고 집에 왔다.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수석 웨이스트 라인 몰딩 어셈블리가 다 닳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당장 문제 되는 것은 아닌데 결정해 달라는 것이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새것으로 다 바꾸라고 일렀다. 이제 나와 함께 여생을 같이 할 찬데 모두 고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또 4년 만에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 생겼다. 사실 나는 이차가 내 분신 같아서 누군가 이 차를 폐차장으로 끌고 간다면 그냥 쳐다볼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이 차는 내 삶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내가 지금보다는 젊어서 ‘베드로 선교회’ 회장(나이가 제일 많은 남성도 모임)을 하고 있을 때는 일 년에 한 번쯤은 교회 버스를 빌려 ‘한나 여전도회’(나이가 제일 많은 여성도 모임)와 함께 전국 관광지를 잘 안내하고 다녔었다. 그런데 그 일은 은퇴하자 나는 아내와 단둘이서 생각나면 어디고 여행을 했다. 한번은 TV에서 ‘보령 은행마을’을 소개했는데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에 ‘은행마을’을 치고 찾아간 일이 있다. 아내가 그 길은 아닌 것 같다고 몇 번 말했지만, 나를 믿으라고 우겨서 한 시간 이상 달려 도착한 곳은 충남 예산군에 있는‘은행마을 아파트’였다. 할 수 없이 고개 숙이고 오는 길에 예산군에 있는 수덕사를 덤으로 보고 온 일이 있다. 우리는 호기심이 많은 부부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또 한번은 경남 합천군에 있는 이팝나무는 수령이 1,120년, 수고가 15m, 둘레가 2.8m라는데 안 가볼 수가 없었다. 160km, 2시간이 걸리는 데까지 가서 보고 왔다. 경상남도 천연기념물 134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까이에 철쭉으로 유명한 황매산이 있는데 산 정상까지 승용차가 올라갈 수 있다고 해서 둘러보고 왔다. 이것은 다 내 차만 안다.
봄철에 늘 선교회원들과 잘 갔던 구례 화엄사의 벚꽃도 또 보고 싶어 이제는 둘이서 구례 벚꽃축제, 진해 군항제 벚꽃을 들러 경주에 가서 2박하고 경주 벚꽃을 둘러보고 돌아온 일도 있다. 경주까지 하루에 5시간 반도 더 걸리는 주행이었고, 다시 귀가하는데 2시간 반 이상을 소비했다.
아내는 꽃무릇 꽃 보기를 좋아한다. 내가 회장으로 있을 때는 고창 천운사를 여러 번 갔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 많은 꽃무릇 꽃을 보자며 함평 용천사, 영광 불국사 고창 선운사를 둘러보고 온 일이 있다. 이것이 장거리를 여행한 가장 최근, 2015년의 일이다. 용천사, 불갑사와 길옆에 피어 있는 꽃무릇 꽃을 보며 선운사까지 아마 5시간은 걸렸을 것이다. 선운사의 식당에서 풍천민물장어를 먹었다고 그것이 충분한 보양식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꽃무릇 꽃은 싫건 보고 다시 1시간 반을 달려 귀가했다.
어디 우리와 공유한 역사가 그것뿐이랴. 아내가 대퇴골 골절로 충남대 병원에 입원한 2017년 1월 이후부터는 아내는 내 차 아니고는 어떤 차도 타지 않았다. <19머 8908>은 말을 하지 않을 뿐 우리가 교회를 은퇴하고 대전에서 계룡시로 옮긴 후로 우리와 떨어져 보지 못한 분신이다. 어찌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네가 그 차를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우리를 태우고 다니게 할 수 있겠는가? 어찌 내가 내장을 다 바꾼 너를 나보다 먼저 폐차장으로 보낼 수 있겠는가?
나는 자차 수리를 맡겼고 지금은 흠집 난 차가 말끔한 새 차가 되어 새로 차를 산 순간처럼 더 조심해서 운전하며 주차장에 주차할 때도 다른 차가 긁을까 봐 되도록 주차 공간이 넓은 쪽에 조심해서 모셔 놓는다.
오 사랑하는 내차 <19머8908>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