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가을.
“인문열차 삶을 달린다”를 신청하기 위해서 여러 번 시도를 하였으나 접속도 하지 못하고 매번 실망 속에 포기를 하고 지내다가 올해의 마지막 인문열차를 타보겠다는 일념으로 이광세 선생님과 서로 동행자로 신청을 하기로 하였다. “내 문학 속의 음식 열차”라는 주제로 ‘7년의 밤’ 저자인 정유정 작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서 년 중 계획서를 보고 다른 것은 몰라도 이번만은 꼭 가겠다고 다짐을 하고 정해진 날 9시를 기다렸지만 나는 접속도 못하였는데 마침 이광세 선생님이 미국에 있는 손주가 접속을 하여 천만다행으로 선착순으로 선정이 되어서 어렵게 동행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버스를 타고 다였지만 인문열차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나서는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이라서 새로운 맛이 있었다. 2015년 10월 17일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을 깨워 이 선생님을 만나서 서울역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사람이 거의 없고 우리가 제일 먼저 온 것 같았다. 책자와 물, 스카프를 받아 근처 의자에서 쉬고 있으니 김옥란 선생님이 와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기다리다가 기차를 타기 위해서 플랫홈으로 내려갔는데 기차가 7시54분 출발시간이 되어도 오지를 않다가 죄송하다는 방송을 하면서 8시10분경에 출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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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s-train이라는 관광열차로 우선 색깔부터가 여느 기차와는 좀 달았다. 기차 안에도 이름에 걸맞게 의자와의 간격이 넓고 까페와 휴식공간도 넓으며 여자 직원의 진행으로 신청곡도 보내주고 각 객실의 모습을 비춰주는 등 관광열차 다운 모습이었다. 천안과 서대전을 거쳐서 익산에서 호남선과 전라선으로 갈라진 기차는 곡성, 순천을 지나서 1시6분에 여수엑스포역에 도착하였다. 새롭게 단장된 여수엑스포역은 깔끔한 현대식 건물로 세월 따라 많은 발전을 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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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의 전망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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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앞에 기다리고 있던 관광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우선 돌산도로 건너가서 돌산 갓김치 공장에서 직영을 하는 식당에서 뷔페로 허기진 배를 든든히 채우면서 역시 여행에 먹는 것이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한 다음 순천만 갈대 숲 주차장으로 가는데 1호차를 놓친 우리 2호차는 길을 잘 못 들어서 한참을 돌아오는 바람에 공룡열차를 타지 못하고 갈대숲을 감상하면서 한참을 걸어서 김승옥 문학관과 정채봉 문학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아오던 문학관과는 겉모습부터가 달랐다. 자그마한 초가가 서너 채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여느 시골 집 같았다. 정감이 느껴져서 좋았고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순천을 중심으로 쓰여 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화작가인 정채봉은 글이 너무 재미있고 친근감이 드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문학관을 둘러보고 문학관역에서 4,6km를 sky큐브를 타고 꿈의 다리를 건너서 국가정원으로 가니 몇 년 전에 조성될 때만 해도 엉성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제법 나무와 잔디가 어울리고 건물들도 자리를 잡아서 그런지 볼만하였고 주말이라서 사람들과 차가 엄청나게 많았다. 동문으로 나오니 무대를 설치해 놓아서 무슨 행사냐고 물어보니 가수 나윤선의 공연이 있다고 하여 입장료가 얼만지 알아보니 4~10만원이라고 하였다. 시골 행사장의 공연으로는 너무 많은 입장료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음 월요일 일간신문을 보니 흙집에서 나온 손학규 씨가 행사 주체자의 초대를 받고 참가를 하였다는 기사를 보고 입장료가 그럴 만하구나 하고 혼자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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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의 어느 식당에서 짱뚱어탕으로 저녁을 먹었는데 짱뚱어는 갯벌을 지느러미 두 다리로 달리듯이 단거리 선수처럼 달려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밑반찬도 젓가락을 댈 것이 별로 없어서 음식열차라는 주제가 부끄럽다는 말을 혼자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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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포 낭만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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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는 보성 율포해수욕장에 있는 다비치 리조트로 가서 312호실에 3명이 입실을 하였다. 조용하고 넓어서 좋았다.
다음날은 순천시 송광면 우산리의 고인돌 공원으로 갔다. 고인돌은 크게 세 가지형태로 되었는데 먼저 탁자식은 일명 북방식으로 잘 다듬어진 돌을 3개나 4개로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어서 만드는 책상모양의 고인돌이다. 기반식 즉 남방식은 판돌을 세우거나 자연석으로 쌓은 무덤방을 만들고 그 주위에 4~8개의 돌을 놓고 덮개를 덮어 마치 바둑판같은 형태의 고인돌이며 개석식은 지하에 만든 무덤방 위에 바로 덮개돌을 덮는 것으로 고인돌 중에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다. 고인돌 공원을 둘러보고는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7년의 밤” 배경으로 세령호로 거듭나게 된 주암호를 찾아가서 전망대에서 주암호를 내려다보며 정유정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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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배경인 주암호
“7년의 밤”의 줄거리는 댐관리 팀장으로 부임한 최현수는 교통사고로 수목원 집 딸을 죽인 다음 호수에 유기하지만 그때 댐에 수몰된 마을을 보려고 잠수를 하던 중에 시체를 목격하게 되는 회사원. 딸의 아버지는 범인을 잡아서 복수를 꿈꾸고 그 복수로부터 아들을 지키려는 아버지와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수호천사처럼 소년을 돌보는 댐직원. 그러나 복수의 날이 되어 아들은 세령호 가운데 소나무에 묶어있고 댐의 물이 점점 불어나는 중에 성하지 못한 몸으로 수문을 열어 마을은 물에 휩쓸리고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 된 아버지는 7년 후에 감옥에서 사형에 처해지고, 이날을 노려 아들에게까지 복수하려는 딸을 잃은 아버지, 한바탕 뭄 싸움과 두뇌 싸움 끝에 소년과 수호천사는 살아남는 이 모든 이야기는 수호천 직원이 소년 아버지에 대한 의리로 소설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서 전국의 팔당댐을 비롯하여 남강댐, 보령댐, 장성댐 등 크고 작은 댐들을 둘러보았지만 찾지 못하다가 모 방송국에서 촬영한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호수 밑바닥에 마을은 물론 무너진 집과 지붕, 벽널, 경운기, 유모차까지 버려진 그대로 남아있다고 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순천과 승주 사이에 있는 주암호였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날 오후 퇴근한 남편을 앞세우고 주암호를 찾아가서 비가 오는 저녁 7시경에 도착하여 어둠이 내린 주암호를 보면서 바로 작가가 찾던 소설 속의 세령호를 만났다고 하였다. 가시박이 집어삼킨 아카시아 나무 아래 서서, 주암호를 바라보며 음산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작가는 작품의 배경으로 주암호를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작가는 원래가 맑고 화창한 날씨보다는 구름과 안개가 끼고 스산한 날씨를 좋아하며 사람이 버린 폐가나 음산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취향과 바로 맞아 떨어지는 곳이었던 것이다.
한참을 돌아보고 어둠이 짙어진 저녁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돌아 나와서 순천으로 가야하는 길을 잘 못 든 덕분에 섬진강변의 압록이라는 동네에서 먹은 매운탕이 너무 맛이 좋아서 단숨에 시래기 한 가닥 남기지 않고 다 먹었는데, 바로 그 매운탕에는 방아잎이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먹지 않던 방아잎이 든 음식을 그때부터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히려 지금은 방아잎이 겁나게 많이 든 매운탕을 한 번 먹어보라고 권하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 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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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부자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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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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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
마지막 코스로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벌교를 찾았다. 먼저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가니 현대식 고급 건물로 그 규모나 외형이 작은 시골도시와는 괴리감이 느껴졌다. 제석산 아래에 위치한 옹석벽화는 김원이 설계하고 일광 이종상 화백이 만들었다고 한다. 백두대간의 시발점인 지리산에서부터 금강산까지, 다시 만주에서 백두산까지 가면서 4만개의 돌을 채취하여 벽화를 오방색으로 완성했다는 것이다. 문학관의 1층은 무덤, 2층은 부양, 3층은 옥외광장으로 모두 어우러져 통일을 이루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조정래의 사진과 작품원고, 그동안 지은 작품과 활동 내역 등이 상세하게 전시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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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의 대장 김범우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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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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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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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다리
문학관에서 나와서 실제 배경이 된 곳 중에 제일 먼저 간 곳은 현부자집이다. 시대적으로 보면 아주 잘 사는 부잣집으로 대궐 같은 기와집이 그때의 배경을 말해주는 듯하고, 소화네 집과 김범우의 집도 그런대로 잘 보존이 되어있었다. 벌교 시내를 걸어서 처절하게 전쟁이 벌어졌던 소화다리와 토벌대의 집합장소인 남도여관, 그리고 금융조합과 홍교를 거쳐서 별교초등학교 교정에서 3행시 발표를 끝으로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 문학 속의 음식 열차’라는 주제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음식을 찾아간 것이 없고, 겨우 벌교의 꼬막정식이 유일하게 제 맛을 느끼게 하였을 뿐이다. 그리고 매달 행사가 있었지만 인테넷에 접속도 되지 않고 마감이 되었다는 글자를 보는 순간에 이것은 아닌데 하는 마음으로 화가 나기도 하였다.
2015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문열차를 타게 되어서 나는 몹시 행복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행복 싣고 달리는 인문열차는 계속 달리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문열차를 타게 되어서 그나마 한 해 동안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고 많은 위로가 되었다. 새해에는 보다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2015. 10. 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