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대 물림
강수남
첫 눈이 올듯 하늘이 내려앉았다. 땅거미가 짙게 깔릴 무렵, 남편은 붕어빵 한 봉지를 내 밀었다. 따뜻한 붕어 머리가 입안에서 달달하다. 붕어빵은 강추위 때 먹는 것이 제격이다.
붕어빵에 얼킨 지난날의 추억을 소환해본다. 꿈같은 신혼생활이 2년 지날 즈음이다. 남편의 월급봉투는 두툼했다. 경제 개념이 없던 그 당시 돈의 가치는 현재와 비교 대상이 아니다. 전산 시스템이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 때다. 신문물에 적응치 못한 남편은 소위 알짜 자리라 인식된 자재 부서를 팽개쳤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지만, 공업용 프레스를 다루는 부서였다. 철거덕 철거덕, 기계의 굉음은 사무실 업무만 처리했던 남편에게 겁을 주었으리라. 손가락이 절단되었다는 등, 사고가 잦았기에 남편은 그 직장마저 접었다.
남편은 평소 운동을 무척 좋아했다. 기회가 닿으면 시골 복숭아밭을 정비해 테니스장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었다. 바로 착공하고 싶었지만, 땅이 얼어붙어 시작할 수 없었다. 수입원이 없어진 남편은 테니스 코트를 완공할 때까지 일거리 찾기에 고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남편은 아파트 입구 마트 한편을 점찍었다. 어렵사리 주인의 승낙을 얻어 붕어빵·군고구마·오뎅으로 전을 펼쳤다. '잘 나가는 직장을 걷어 차버리고 하는 일이 정작 노점상인가.' 따가운 시선을 받은 것은 자명할 터.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를 바라보신 시어머니 마음은 오죽했으랴! 시어머니는 둘째 손자를 업은 채 묵묵히 오뎅 육수를 내렸다. '공부시켜 도회지로 보냈더니 금의환향은 못할망정 고작 붕어빵·군고구마 장사라니.' 내색은 안했지만 시어머니는 명주실처럼 질긴 한숨을 속으로 삭였으리.
모자가 경영하는 군고구마 장사는 입소문을 통해 손님이 줄을 섰다. 흔히 식당에서 회자하는 '천객만래千客萬來' 형국이었다. 그해의 크리스마스 전야였다. 사분사분 내리는 눈꽃송이는 온 천지를 설국으로 만들었다. 이런 날은 매출이 급격히 늘어난다. 언 손 호호 비비며 붕어빵 찾는 행렬이 기차곱배처럼 길었다. 아리바이트를 자청한 나마저 등달아 신명이 잡혔다.
“여보, 오늘 이십 만 원 이상 매상 올리면 청소기 사줄 거지?”
“그래, 당근이지. 허허.” 호기로운 남편. 그토록 늠름한 모습을 본 것은 결혼 후 처음임을 고백한다. 그날 수입으로 '배우자 바람난다.' 며 혼수품 금기로 여겼던 진공청소기를 장만하고 쾌재를 불렀다.
어깨가 축 쳐졌던 남편이 자신감을 갖게 한 그 동안의 과정은 어떠했겠는가.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 아내의 곱지 않은 눈치, 주위의 편견, 이러한 것들은 남편을 주눅 들게 했을 터이다. 이를 무릅쓰고 역경을 감내한 경험은 무형의 자산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는 남편의 현재 생활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테니스장을 개설하여 열악한 시골 생활 체육에 앞장섰다. 아울러 자선단체에 참여하여 봉사활동에 여념이 없다. 오늘의 남편을 있게 한 것은 지난 날 군고구마, 붕어빵 노점상이 가져다 준 인고의 산물이리라.
지난해 겨울이다. 막내딸이 느닷없이 붕어빵 장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 다 큰 처녀가 무슨."
" 아버지도 한 일인데 나라고 못할까 봐." 딸은 나의 만류를 뿌리치고, 여러 날 동안 한산한 길목에서 붕어빵을 굽기 시작했다. 소위 인턴 과정이다. 때론 죽탱이도 만들고, 시커멓게 태우기도 했다. 소위 빵 굽기와 전쟁을 벌인 셈이다. 지켜본 그 모습은 남편 때 이상으로 콧등이 시큰했다. 딸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서서히 자신감이 붙었는지 영업 자세가 야멸차다. 매출 신장 요건은 무엇보다 좋은 목이다. 유동 인구가 많은 버스 승강장 등 다양한 장소를 찾아보았지만, 수월치 않았다. 목 좋은 곳은 이미 다른 노점이 설치되었기에.
'궁즉 통窮卽通‘이라 했던가. 28년 전 남편이 펼쳤던 장소가 떠올랐다. 홈마트 대표를 찾아 딸의 의지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사장님은
"부전여전父傳女傳일세." 마트에 인접한 자투리 공간을 흔쾌히 허락했다. '두드리면 열린다.' 는 것을 새삼 인식한다. 나도 딸의 사업에 시간제 아리바이트로 동참했다. 붕어빵 체인점 물색부터 가스 설치 등, 기반 시설 설치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오픈 시간은 오후 5시 30분. 매 주, 월·수·금 사흘 동안 운영했다. 장사는 언제나 완판이었다. 어느 날은 빵틀에 가스가 새어 큰 화재로 번질 뻔 했지만, 딸은 잘 참아냈다.
" 젊어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 용기 내." 남편도 딸을 응원했다.
" 네 아빠. 현장 체험은 무슨 보화보다 값지다는 걸, 어떠한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걸. 무엇보다 가정에 헌신 하신 아버지의 사랑과 의지를 깨우쳤다는 걸."
부녀 간, 주고받는 진지한 대화에 마음이 울컥하다. 감동의 파문이 가슴에 잔잔히 일렁인다. 부녀가 나누는 끝 간 데 없는 경험담을 들으면서 나를 반추해본다. '과연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를. 예상치 못한 사안에 봉착했을 때 남편과 딸처럼 적극적·긍정적 사고로 대처했는지…. 돌아봐야 할 일이다. 남편·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바람직한 대물림은 가상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