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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봄 야유회 나들이
2015.4.8
38명이 참가한 금년도 오상회 봄 나들이가 4월8일(수)에 있었다. 멀리 경북 안동지역이라 보통 때보다 이른 아침 7시30분에 압구정에서 출발하였다. 버스 안에서 회장단이 미리 준비해준 김밥과 물 그리고 과자간식으로 아침식사 해결. 의외로 안동지역 관광이 처음인 동문들이 많았다. 고향이 경상도라서인지 필자는 안동 지역 관광을 여러차레 많이 가서 오늘 가는 지역 말고도 역사탐방이나 풍경이 좋은 곳도 많다. 이번 야유회 장소가 안동으로 된데는 아무래도 요즘 KBS사극드라마 "징비록"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드라마는 잘 안보지만 사극은 이상하리만치 열중하는 필자는 처음부터 계속 보고 있다. 주인공이 풍산류씨 선조때의 명재상 류성룡 대감이라서 그런지 친구들 중에 풍산류씨 후손들의 은근한 시청압력(?)도 있는게 사실이다.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서영교동문이 앙드레류의 아일랜드공연판을 구해서 보여주었다.
커피집 카페베네에서 문막휴게소
안동댐과 월영교다리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를 거쳐 3시간반만에 안동댐에 도착하였다. 안동댐은 가문 탓인지 물이 턱밑까지 닿아서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비록 여행에는 다소 지장이 오더라도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다. 월영교까지 걸어서 가는 도중에 안동 야외민 속촌을 꾸며 놓아 갖가지 추억이 담긴 풍물을 볼 수 있었다. 월영교까지 가서 거기서 다리를 건넌다. 월영교(月映橋), 무척 낭만적인 이름이다. 이 월영교 다리에 얽힌 전설이 있다. 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이 간직되어 있는 나무다리인데 먼저간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을 뽑아 한 켤레의 미투리를 지은 지어미의 애절하고 숭고한 사랑을 기념하고자 미투리 모양을 담아 다리를 지었다고 한다.
월영교 다리는 2003년에 개통이 되었고 길이 387m 너비 3.6m로 국내에서 제일 긴 목책 인도교이다. 긴 다리 가운데에 쉬어가며 호수를 감상할수 있게 월영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건너오니 月映橋라는 멋진 한자이름이 시선을 끈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바로 우리가 찾는 식당이 보인다. 이름이 너무 특이하다. 까치구멍집이다. 헛제삿밥의 원조격이라는데-- 주위에 헛제사밥집이 많다. 경상북도 대구이상 북부지방에서는 제사에 돔배기가 필수이다. 전라도의 잔치나 제사에 홍어가 필수이듯.
돔배기란 무엇인가? (백과사전을 찾아보자. 상어고기를 염장해서 숙성한 것. 제사의 경우 찜, 탕요리를 하거나, 넓은 절편만으로 꼬치산적을 굽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냥 날것이나 제사때 사용한 쪄낸 돔배기를 전을 데우듯이 프라이팬 등에 기름을 두르고 구워서 일종의 찜구이 형태가 되기도 한다. 돔배기는 생물이 없고 냉동된 돔배기만 존재한다.)필자의 경우 제사 때나 명절 때 꼭 돔배기를 구하는데 예전엔 노량진시장에 단골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영천(대구인근)시장이 유명한 돔배기 전국보급지가 있어서 택배로 배달해 온다. 우리 헛제삿밥에도 당연히 돔배기와 탕국이 나왔다. 소고기 산적,간고등어도--마치 제사상처럼 놋그릇에다 밥과 나물이 나와서 한결 제삿밥 분위기이다. 헛제사밥이란 또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있게 마련--예전 사대부집에는 제사가 많다. 고기굽고 나물, 전굽는 낸새가 진동을 하니 못사는 하층민들은 부잣집 제사가 있을 때 이밥과 맛있는 음식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빈민 하층백성을 규휼하는 훌륭한 마음으로 제사가 아니면서도 제사음식을 만들어 배급하니 이름하여 '헛제삿밥'이 되었다. 이제 안동지방의 명품 음식이 되었다.
헛제사밥에 P동문이 준비해온 와인이 푸짐하다. P동문의 건배로 헛제삿밥에 와인의 멋진 콤비가 이루어졌다. 박호전동문의 와인 스폰서에 고마움의 박수를 보낸다.
안동댐 민속마을로 이육사 시비 월영교 민속마을의 정자
월영교 다리 위 월영정 정자에서 월영교 단체사진
까치구멍집 건배
헛제삿밥
돔배기(상어) S와 서영교
나 귀엽죠?/필자가 자주 갔던 하회마을 입구의 헛제삿밥집 환영 프라카드
영국여왕 방문전시관 특이한 안동지방의 음식으로 배를 불린후 본격적이 관광스케쥴로~ 하회마을로 버스를 타고 먼저 영국 여왕(에리자베스)방문전시관을 찾았다. 영국 여왕이 지난 1999년 이곳 안동을 찾아서 충효당 사랑채와 너른 마당이 있는 류시원 집(담연재)에서 생일잔치상을 받았다. 그리고 봉정사를 방문했다. 그때의 사진들을 볼 수 있어서 당시의 생생한 현장을 보는 듯 생동감이 났다. 에리자베스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너도나도 사진을 남기느라 정신없다. 꼭 어린아이들 같다. 순수한 마음으로 변한다.
방명록에 영국여왕이 서명하다
샤틀버스로 이동, 오늘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하회별신굿탈놀이전수관(傳授館)으로 향했다. 전에는 못보던 건물이 잘 지어져 있었다. 예전엔 소나무 숲에서 탈놀이를 본일이 있다. 양반과 하인들이 탈을 쓰고 익살스러운 연극을 벌이는 것이었는데 과연 오늘은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다.
하회별신굿탈놀이공연 마당의 관람석엔 방석을 깔고 앉안은관객이 상당히 많아졌다. 먼저 하회탈 이야기--- 하회마을 하면 '하회탈'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하회마을에 가장 먼저 들어와 살았던 김해 허씨(고려시대 중기)가 살았을 때에 마을에 재앙이 돌면서 우환이 계속된 때에 마을에 사는 허도령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14가지 탈을 쓰고 한 판 놀이를 하면 모두 물러갈 것이다. 단 100일 안에 만들어라, 아무도 안 보인데서 만들어야 한다. 만일 누군가 엿보게 된다면 부정이 타서 '너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꿈을 꾼 후 허도령은 탈을 제작하였는데 백일이 다 되어 오는 날 마을에서 허도령을 사모하는 처녀가 보고픈 마음에 탈 만드는 허도령의 모습을 엿보고만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허도령이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허도령이 마지막으로 제작하던 탈은 이매탈로 턱이 없다. 턱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게 되어 미완성의 작품으로 전한다고 한다.
사물놀이와 피리소리로 전주가 있고 차례로 마당극이 시작되었다. 각시탈,양반탈,선비탈,부네탈,초랭이탈,바보인 이매탈,파계승인 땡중탈,백정탈 등 주인공마다 해학적인 대사와 동작으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백정탈을 쓴 자가 소간과 불알을 떼내어 팔러 관중석으로 다닌다. 우리 이윤달회원이 만원어치를 그리고 조상희회장이 이천만원이라며 이천원과 만원을 내어 관중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40분간 이어진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중요문화재 69호로 800년을 이어온 신명나는 탈춤마당극으로 마을굿의 일환으로 연행되어오고 있다. 상민들에 의해 이어진 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하여 주기적으로 열렸던 별신굿탈놀이이다. 모처럼 웃음을 짓게한 탈춤놀이에 개운한 마음이다.나온 주인공들이 탈을 벗고 인사를 한다. 전혀 다른 인상들이다.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하회탈과 병산탈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된 민속공예류의 장신구 문화유산이다.종류는 원래는 14점인데 3종은 유실되고 현재는 11점이다.
이어서 하회마을 관광이다. 해설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설명이 이어진다. 하회마을에는 고려말 지금부터 700여년전 처음으로 김해 허씨가 들어왔고 이어 광주안씨가 살았다고 한다. 그뒤 600년전 풍산류씨의 입향조인 류종헤씨가 풍산을 떠나 이곳 하회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후손과 가문이 번성하여 그 후손들이 류종혜를 기리면서 만든 공적비가 마을 입구에 서 있다. 안동지역은 양반고장, 대학자 선비의 고장으로 불천위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47위나 된다. 또 안동지역은 왕건을 도와 3태사 즉 안동장씨,안동김씨,안동권씨의 공덕으로 고려를 탄생케하였다.삼태사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태사묘가 있다.
하회마을 개괄 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제 122호)은 풍산류씨가 600여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와 초가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고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형국상으로 태극형 연화부수형, 행주형에 해당하며, 마을이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327m의 화산(花山)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고, 수령이 600여 년된 삼신당 느티나무가 있는 지역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중심부에 해당한다. 마을 중심부에는 류씨들의 집인 큰 기와집이 자리잡고 있고, 원형이 잘 보존된 초가집들이 그 주위를 둘러 싸고 있다. 마을 앞쪽에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멋드러지게 깎아지른 부용대,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울창한 노송숲이 절경을 이루며, 지금 한창 절정을 이루고 있는 벚꽃도 큰 구경거리이다. 부용대로 건너가는 나룻배는 3,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지금은 버스로 둘러서 입구까지 갈 수 있다.
탐방한 고택을 요약한다. 입암고택,양진당 양진당(養眞堂)은 현재 풍산류씨 겸암파의 대종택으로 보물 제306호이다. 양진당은 조선 명종 때 황해도 관찰사를 지낸 입암(立巖) 류중영과 그 맏아들 겸암 류운용이 살던집 이다. 류중영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랑채는 고려시대 안채는 조선시대 건축물로 고려와 조선의 건축양식이 공존하는 6칸대청의 고택 이다.북촌고택의 대표류형이다. 사랑채 안팎에 걸린 입암고택(立巖古宅) 현판이 확~ 눈에 들어온다.힘있게 쓴 해서(楷書) 안진경체의 당호글씨가 마음을 끈다.立巖古宅,養眞堂 글씨체는 한석봉 글씨이다.
충효당(忠孝堂) 보물 제414호인 충효당은 서애의 문하생과 삼림들이 장손 류원지를 도와서 지었고, 증손자 류의하에 의해 확장된 조선시대 사대부 양식의 고택이다.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이 별도로 건립되어 서애 선생의 저서와 유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바깥마당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기념식수(구상나무)가 있다. 수년전 친구부인인 김용자씨(여류수필가)와 충효당을 필자가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차종부였던 최소희씨(경주 최부자 둘째딸)와 인사를 하였는데 고구마와 차를 대접받은 기억이 난다. 최차종부가 멀리 경주에서 가마타고 여기까지 시집온 이야기,가난하였던 학자집의 살림살이도 설명 해 주었었다. 영국여왕이 오셨을 때 여왕이 대청마루로 올라오면서 구두를 벗고(최초) 손잡이줄을 잡고 오르셨다는 얘기도 들려주었다. 그 며칠뒤 90세로 시어머니 종부께서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보았고 차종부 최여사가 14대종부가 되었다. 작년 8월31일 14대종손 류영하옹(최여사 남편)께서 별세하여 충효당 사랑채는 짚으로 여막을 치고 있었다. 문패는 여전히 류영하로 달려 있었다. 사랑채의 충효당(忠孝堂)이라는 전서체의 글씨가 너무 아름답고 전서의 글씨 풀이가 재미 있었다. 예로 孝는 늙을노(老)자 밑에 아들(子)자로 아들이 어버이인 노인을 업고 있단다.이 글씨는 허목이 썼다고 한다. 이어서 영모각으로 이동했다. 영모각 앞 만지송(萬枝松)은 13대 종부가 심었다는데 가지가 만가지로 뻗어그 위용에 압도되었다. 영모각에 급히 들어가 몇점의 사진을 찍었다. 교지와 징비록 사본도--영모각 현판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글씨라고 한다.
담연재(澹然齋) 담연재는 신축된 전통양식의 저택이며,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 때 이곳 앞마당에서 여왕의 생신상을 받은 곳이며 하회탈춤 공연이 펼쳐졌던 곳이다. 탤런트 류시원의 부친 소유의 저택이다.문패에는 류시원의 명패가 있다. 한류로 일본관광객이 필수적으로 찾는 곳이기도 하다. 대문 옆 담에는 손을 겨우 넣을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필요한 약간의 노자돈을 넣어두고 꼭필요한 경우에 가져가라는 의미로-
삼신당 (參神堂) 신목 (보호수) 풍수지리상으로 마을의 혈(穴), 행주형(行舟形)인 하회마을의 돗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삼신당은 하회마을에서 가장 중앙에 위치해 있다. 안동 하회마을 입향조 류종혜가 심은 수령 600여년 된 느 티나무가 꼿꼿하게 서서 하회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나무를 잘못 건드리면 동티(재앙)를 입는다' 는 토속신앙이 마을에 전해오고 있다. 이 곳에서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하여 소원댕기가 수없이 많이 꽂혀 있다.
유세한다는 말 유서통은 임금의 명령을 넣어서 전달하던 통이다. 유서통을 운반하는 사람은 아무도 범접할 수 없어서 흔히 제멋대로 하려는 사람을 보고 유세통(유서통이 와전되어)을 짊어졌나 하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유세한다. 유세부린다가 여기서 나온 말인듯.
북촌 소나무 보호수 부용대로 가면서 양쪽으로 벚꽃가로수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마치 벚꽃축제에 온 착각을 일으킨다. 왼쪽 강변 사장에는 오래된 소나무숲이 장관이다. 에전에 여기서 탈춤공연을 본 기억이 난다. 북촌을 가리킨다. 어마하게 큰 마치 분재를 한듯한 소나무가 서 있다. 바로 뒤에 건축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만송정 만송정 (萬松亭) 천연기념물 제473호이다. 조선 선조 때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용이 강 건너편 바위절벽 부용대의 거친 기운을 완화하고 북쪽의 찬 기운을 막기 위해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었다고 하여 만송정이라고 한다.
부용대(芙蓉臺)와 옥연정사(玉淵精舍) 부용대 (芙蓉臺)는 태백산맥의 맨 끝부분에 해당하며 '부용대'라는 이름은 중국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한다. 처음에는 '하회 북쪽에 있는 언덕'이란 뜻에서 북애 (北厓)라고 불렸다고 한다. 부용대에 올라 물굽이가 회돌아치는 하회마을을 내려다 본다. 부용대 절벽이 깎아지른듯 가파르게 직각으로 높이 서 있어서 감히 가장자리로 다가서지 못한다. 위험 표시가 되어 있다. 멀리서 보는 하회마을은 파노라마처럼 휘어서 보인다. 카메라에 한장으로 담기가 어렵다. 부용대 아래에는 형 겸암이 거처하던 겸암정사와 동생 서애가 거처한 옥연정사가 떨어져 있어 우애스럽게 건너다녔다고 한다. 겸암정사는 시간이 없어 가지 못하고 징비록을 집필했다하여 유명한 서애 류성룡의 옥연정사(玉淵精舍)는 달리다시피하여 현장사진을 담았다. 종군기자정신으로 -- 옥연장사에는 노부인이 살고 있었다. 요즘 징비록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세계문화유산 별신굿탈놀이 전수관 공연장에서 공연구경
출연팀 부용대도 보인다. 공적비 벚꽃길
명자나무꽃과 개나리꽃
목련꽃 담구멍으로 아녀자들이 세상구경을 한다. 널뛰기도 담넘어 구경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삼신당
소원성취 학녹정사 양진당 입암고택 입암고택 영국여왕이 심은 구상나무 충효당 대문 충효당 사랑채 여막 전서 충효당 충효당 안채 영모각 앞 만지송 영모각 교지 징비록 담연재 유시원 문패 담연재 담구멍 유세통 벚꽃너머 솔밭 그너머가 부용대 꽃놀이 봄소풍이다 북촌의 보호수 소나무 벚꽃길을 걸으며 벚꽃이 부용대를 가린다? 부용대는 배로도 차로도 갈 수 잇다 부용대에서 본 하회마을 옥연정사 이 방에서 징비록을 집필했다
옥연서당 현판과과 옥연정사 안내판
바쁜 스케쥴로 안동 관광일정을 마쳤다. 예정보다 다소 시간이 늦어져 바로 이천으로 향한다. 국도와 고속도로를 거치면서 조용히 잠을 자거나 옆지기와 담소로 즐겼다. 서쪽으로 지는 해를 보며 차는 달린다. 이천에 드디어 도착했다. 이천쌀밥집이다. 청목한정식집이다.회장이 준비해온 구룬디히 위스키(2L) 두병으로 회식을 한다. 양주가 독하다고 막걸리를 택하는 동문들도 있다. 밥상을 미리 차려서 밑에 상위에 엊는 특별한 방 식의 상차림이다. 양재역의 산들해와 같은~처음 보는 동문들은 신기한듯~푸짐한 반찬에 배를 불리고 마지막 귀경길에 올랐다. 버스에서는 S동문이 준비해온 락음악을 들으면서-- 평일이라 고속도로가 전혀 밀리지 않아 죽전 간이정류장에 예정시간에 도착했다.
저녁식사
식당/버스에서
오늘의 즐거움을 고맙게 여기며 서로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이른 아침부터 멀리 안동까지 다녀오느라 몸은 비록 힘들었을지 몰라도 심신이 힐링이 되어 새로운 삶의 활력소가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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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옛날에는 참 자주 갔었는데...... 못 간지 꽤 오래 된 듯 하네요. 오랜만에 선생님 올려주신 이야기 따라 하회마을 구경 잘 했습니다.
도산서원,병산서원,하회마을,봉정사 등이 많이 알려진 곳이구요, 그외 안동지방은 워낙 조선시대 양반고을이라 종택들이 많습니다. 안동댐,임하댐으로 수몰지구가 되어 종택이 이전된 곳도 있구요--군자마을은 광산김씨촌이구요.학봉 김성일의 종가 의성김씨종택도 안동에 있습니다. 안동북부에 있는 용수사도 가볼만한 곳이더군요.
저는 글 솜씨 사진솜씨가 없어서 어디 가도 소개를 못하는데 미전의 사진과 해설을 보면 제가갔다온 것같은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아는사람 몇분 보이네요 특히 군기반장얼굴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군기반장이야 어딜 가나 인물이지요. 보배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