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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4시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위암전문클리닉 4층. 대표적인 위암 전문의로 꼽히는 노성훈(55) 교수로부터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 20여명이 대기 중이었다. 노 교수가 진료하는 환자 수는 하루 평균 80명. 1주일에 3번씩 200명이 넘는 환자들을 진료하고 12~14명의 환자를 수술한다. 벌써 두 달치 수술 예약이 꽉 차 있다.
이렇게 위암 환자들이 몰리는 이유는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들의 5년 생존율이 높기 때문이다. 1987년부터 2002년까지 치료한 8000여명의 환자들의 5년 생존율은 65%였다. 비슷한 시기의 국내 전체 위암 생존율이 55% 수준임을 감안할 때 10%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조기(1기) 발견 시 생존율은 94%에 달하며 말기(4기)의 경우에도 11.5%의 생존율을 기록했다. 노 교수를 비롯한 전문의들의 실력이 뛰어난 데다 내과와 외과, 방사선과 등 협동진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조기 진단과 의료기술 향상 덕분"
보건복지가족부 중앙암등록본부가 21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암 발생은 지난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연간 3%씩 계속 증가했지만 암 조기검진 사업과 의료기술의 향상 등으로 5년 생존율도 2003~2007년엔 57.1%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암·자궁경부암·간암·대장암·유방암의 5년 생존율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면서 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절반 이상이 완치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복지부는 '암정복 2015년 계획'을 만들면서 암 5년 생존율을 2005년 45.9%에서 2015년 54.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그러나 21일 발표한 2007년까지 5년 생존율이 57.1%를 기록해 8년이나 목표를 앞당겼다. 복지부는 목표치를 수정하는 새로운 계획을 작성하고 있다.
조사 기간에 갑상선암 환자는 남성은 24.5%, 여성은 26%, 대장암은 남성은 7%, 여성은 5.3%나 빠르게 증가했고 남성의 전립선암(13.2%)과 여성의 유방암(6.6%) 증가 속도도 빨랐다.
특히 갑상선암 환자가 급증하면서 위암에 이어 두 번째 암으로 떠올랐다. 2006년 암 종류별 순위가 위암·대장암·폐암·갑상선암·간암·유방암이었으나, 2007년에는 위암 환자가 전체 암 발생자 가운데 2만5915명으로 16%를 차지해 가장 많은 가운데, 갑상선암·대장암·폐암·간암·유방암·전립선암 순이었다.
반면 간암은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간염백신접종사업과 B형 만성간염 바이러스 치료제 도입으로 남성은 2.2%, 여성은 1.6% 감소했으며 자궁경부암은 전 국민 자궁경부암 검진사업의 실시에 따라 4.9% 줄었다.
또 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평균수명(남성 76세, 여성 83세)까지 생존할 경우 남성은 3명 중 1명(34.4%), 여성은 4명 중 1명(28.9%)이 암에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0기암'도 발견해 치료
이진수 국립암센터장은 "이제는 '암에 걸리면 죽는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며 "대장 내시경, 위 내시경 등 진단기술이 발전하면서 조기에 암을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다. 대부분이 수술하면 낫고 평생 관리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수술 기술도 좋아져 예전에는 위암이라고 하면 위의 일부분(점막+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내시경으로 미세한 암을 잡아내고 위 점막만 살짝 절제하는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립암센터 박은철 국가암관리사업단장은 "암은 보통 1~4기로 나누는데 위암·자궁경부암 등은 조기진단 발달로 1기도 안 되는 '0기암'을 발견해 치료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대장항문외과 유창식 교수는 "대장암의 경우 국가주도 5대암 조기 검진사업에 들어가다 보니, 대장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경우가 많아진 데다, 수술기법이나 항암제 개발 등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 5년 생존율
암 환자가 암 진단을 받은 후 5년 동안 같은 암이 재발하지 않고 생존하는 비율을 말한다. 5년 동안 별다른 이상이 없으면 일단 완치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암 완치율의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