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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 이야기 /조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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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부터 나는 균형에 대해 생각해왔다. 그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선호한다는 대칭적인 외모에 관한 것도 아니고 평균대 위에 올라가 한 발을 든 채 다음 동작을 생각해야 하는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균형도 아니며 지극히 개인적인 한 사람의 일상, 뭔가 꾹 참고 있는 듯한 표정을 한 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내 일상의 사소한 리듬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의 외삼촌이 함께 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해왔을 때 오래 생각하지도 않고 덜컥 결정해버릴 수 있었다. 다만 생각을 통제할 것인가 환경을 통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하룻밤 고민했을 뿐이다. 나는 한 번도 혼자서는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혼자 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내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만 내 자신답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꼭 가족이 아니어도 되었다. 그러나 나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고 벌써 여러 달째 혼자 살고 있었다. 이제 내 가까이에서 나를 들여다봐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외삼촌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긴 했다.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었다. 내가 균형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필시 누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일 것이다. 말로 내뱉으며 스스로 비열해져버리는 감정들이 있다. 생전의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것이 있다면 말을 하는 것의 어려움과 말을 내뱉고 났을 때의 책임감 같은 것일 게다. 무슨 말인가 마구 쏟아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수치스럽지 않은가? 죄책감에 빠지지는 않는가? 후회하지 않는가? 하는 거대한 목소리가 볼륨을 최대한으로 틀어놓은 음악처럼 쿵쿵쿵 들려오는 듯하다. 말을 하는 대신 나는 굴러가는 실타래를 쫓아가듯 여러 개의 동작들, 이를테면 정해진 시간에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유리 조각을 치우는 일을 되풀이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나의 일상을 장악해버렸으며 곧 리듬이 되어버렸고 그것은 마치 내 생의 가장 중요하며 꼭 필요한 하나의 가치처럼 느껴지게까지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의 행위에는 일정한 순서와 그걸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당위성 같은 게 있다. 그 행위는 나에게 마술처럼 강력한 적응의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행위를 하고 있는 순간에는 일시적으로나마 불안과 긴장이 완화되는 것을 느낀다. 나는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걸 나는 균형이라고 알고 있었고 사람들은 강박관념 혹은 과장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강박장애라고까지 말했다. 하긴 사람들은 즐겁고 유쾌한 생각이나 행동이 머릿속을 사로잡고 있을 때는 그걸 강박관념이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유리 조각을 치우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어디에나 널려 있으므로 걸레를 들고 닦고 또 닦아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 나는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꼼짝 않고 드러누워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극도의 불안과 긴장이 더는 참지 못할 두려움과 갈망으로 변해 내 몸을 찌르기 시작했다. 내가 같은 행동을 반복해서 하지 않으면 일어날 여러 가지 극단적인 상황들, 집 안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는 유리 조각들 때문에 발바닥에 상처를 입을 거고 금방 피투성이가 돼버릴 것이며 결국 나는 걷지도 기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릴 거라는 등의 걱정들은 사실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불안이 극에 달할수록 강박적인 반복 행위는 계속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아주 어렸을 적에도 외삼촌과 함께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 외삼촌이 오갈 데가 없는 신세였을 것이다. 삼촌이 보기엔 아마 지금 내가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나는 실직한 지도 너무나 오래되었고 다시 취직이 된다는 아무런 보장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제 여덟 살이 된 사촌과 함께 지내는 것도 아주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2
나에게는 누군가 꼭 필요하지만 그 이유에는 석연치 않은 데가 있다. 누군가 함께 있을 때라야만 내 자신답다는 건 어쩌면 함께 살기 위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은 이사를 하기 전날 밤 문득 든 생각이다. 누구나 다 완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비합리적이며 비이성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려 하기보다는 익숙해진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불안을 감소시키려고 한다. 그건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한사코 문제를 직면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내가 꼭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하는 한 가지 이유는 때로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 그 행위를 수행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저기에 분명히 유리 조각이 하나도 없죠? 라거나 내가 가스 밸브를 잠그고 나온 게 정말로 맞는 거죠? 라고 반복적으로 확인을 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유형의 사람이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예전에 나는 무엇이든 강박적으로 수집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한 사람을 알고 지낸 적이 있다. 집 안은 곧 쓰레기 더미로 가득 찼고 그는 그 안에서 평화로우나 다소 지친 듯한 모습을 한 채 발 디딜 틈도 없는 공간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우리는 이따금씩 얼굴을 잊지 않을 정도로만 만났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다시 그의 집에 가보았다. 발을 뻗고 잘 수 있을 만한 좁은 공간도 없이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남루한 옷을 입은 채 쓰레기 더미 속에 서 있었다. 그는 여기서는 더 살아갈 수가 없노라고 말했다. 그 말을 하던 순간의 그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따뜻하고 온화한 날이었는데도 그의 입에서는 차갑고 흰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 역시 특별한 고통을 겪은 적이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그를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 데로 떠나기 위해서 필요한 물건을 찾기 위해 우리는 그 쓰레기 더미 속을 헤집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남들이 보기엔 낡고 가치 없어 보이는 물건들에 대한 집착으로 온 방 안에 그 엄청난 더미를 수집해놓았지만 그 속에서 그는 정작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은 결국 찾을 수 없었다. 그날 그가 찾던 것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얇고 납작하며 어두운 녹색의 여권이었다. 그 뒤로 그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는 떠났을까. 몇 번인가 그의 집 앞을 서성거린 적이 있다. 한 시절 그와도 함께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끝내 그러지 않았다. 지금 나는 내 앞에 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보고 있다. 정말로 내가 찾고 싶은 게 있어도 정작 찾지 못하게 만드는 크고 검고 단단한 덩어리를 말이다. 딱딱한 부채로 누군가 내 어깨를 탁, 하고 내리치는 느낌이 들었다. 균형에 대해 집착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나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다. 그것은 혼자 살아서는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환경을 열어두는 것. 그것이 아마 내가 이사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3
집안 분위기는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외숙모가 집을 나간 게 3년 전이라고 들었다. 나는 외숙모가 집을 나간 장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친지들은 모일 때마다 그 이야기를 했으므로 내가 직접 본 것 마냥 떠올릴 수가 있다. 그 사람은 정말 외숙모였을까. 언젠가 시내의 한 커다란 건물에서 막 빠져나왔을 때 흰 눈이 펑펑 쏟아지며 어둠이 몰려오고 집으로 가는 버스는 좀체 오지 않고 인적은 끊기고 있을 때의, 뭔가 극적인 것을 요구하는 듯한 어느 금요일 저녁에 그 눈보라 속을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는 한 여인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몸매랄 것도 없이 키도 작고 마른 편이었던 외숙모가 집을 나가면서 유일하게 챙겨들고 나간 물건이 바로 이불이었다. 외숙모는 맨발에 외삼촌의 고무 슬리퍼를 꿰어 신고 무거운 이불을 머리에 인 채 뒤뚱뒤뚱거리며 골목을 내려갔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해준 사람은 동네의 세탁소 주인이었다. 세탁소 주인은 이불을 들고 걸어 내려오는 외숙모가 자신의 가게로 오는 거라고 생각해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앞을 무연히 지나쳐버리는 외숙모를 불러 세울 수가 없었노라고 했다 한다. 그랬을 것이다. 외숙모는 오른쪽 어깨에 작두를 둘러맨 심정으로 어떤 망설임도 없이 한 방향만을 보고 걸어갔을 테니 말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이불 속에 통장과 금괴를 숨겼을 거라고 했고 어떤 이는 그 이불 속에 내연의 남자를 둘둘 말아 감췄을 거라고도 했다. 외삼촌은 외숙모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이불을 들고 나갔으니 어디 한곳에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오래된 북의 내부처럼 외삼촌도 그리고 누구도 외숙모가 집을 나간 영문을 알지 못했다. 단지 할 수 있는 일만을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외숙모에게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 마음이 나는 쓸쓸하고 피곤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키가 훌쩍 커버린 사촌을 나는 오랫동안 응시했다. 점점 커가는 사촌을 위해 외삼촌이 내 손을 빌리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틀렸다. 사촌의 얼굴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붉은빛으로 상기되어 있었고 눈동자는 까맸으며 말투는 온순하고 부드러웠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위험에 빠져본 적이 없는 그런 얼굴을 어린 사촌의 얼굴에서 읽었다. 어머니를 잃고도 이 세상에는 아직 제가 겪어보지 못한 수많은 경이들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믿고 있는 듯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 얼굴 앞에서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 목이 메어왔다. 그건 뭔가 내내 꾹 참고 있는 듯한 내 표정과 다를 것이 없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날 저녁, 외삼촌은 정종을 마시고 같은 노래를 되풀이해 불렀다. 난 해변에 쓰러져 있었고 눈을 떴지. 당신이 탄 검은 돛배는 밝은 불빛 속에 너울거리고 당신의 두 팔은 지쳐서 흩어지는 것 같았어. 뱃전에서 당신이 내게 손짓하고 있는 것을 보았지. 그러나 파도는 말하고 있었어. 당신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4
한 사람을 보면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아버지는 7초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저 사람은 아마 야생 동물들 속에서 자란 사람일 거다, 혹은 저 사람은 찬사와 기대 속에서 자란 사람일 것이다, 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건 아버지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지만 찬사와 기대 속에서 자란 사람들도 때로 합심하여 아버지를 궁지에 몰아넣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는 정작 궁핍과 굶주림 속에서 자랐고 나는 한숨 속에서 키워졌다. 그래서 아버지 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한숨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며 그건 외삼촌도 마찬가지다. 중국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된 지 벌써 30년이 가까워오지만 외삼촌에게도 역경은 자주 찾아왔다. 아이엠에프 때인가 외삼촌은 다니던 식당에서 사직당한 뒤 한강에 나가 살기 시작했다. 먼 훗날 외삼촌이 세상을 떠나 만약 내가 그를 기억할 만한 공간을 찾게 된다면 거기가 바로 한강일 것이다. 한강은 왜가리가 살고 흰뺨검둥오리와 물총새가 살고 달맞이꽃 망초 개망초가 피는 평화로운 땅이 아니라 내게는 가을과 겨울, 어느 한 시절 헐벗은 나의 외삼촌이 살던 장소다. 외삼촌은 거기서 하루에 서른 마리도 넘는 붉은귀거북이를 잡았다. 성격이 온순한 토종 생물인 남생이가 급격히 불어나는 외래종 붉은귀거북이에게 생존의 위협을 받던 때였다. 그때 한강에는 외삼촌 말고도 전문적인 거북이잡이들이 십여 명 더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잡은 거북이를 애완용이나 약재용으로 팔아넘겼다. 불법은 아니었지만 외삼촌은 그때 어쩐지 내내 쫓기는 듯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외래종 거북이라고는 해도 거북이를 잡는 것은 붕어나 누치 쏘가리를 잡는 것하고는 좀 다른 데가 있었을 것이다. 하루의 절반을 외삼촌은 축축한 모래톱에 방수포를 깔고 누워 있었다. 그러고는 집에 두고 온 자신의 국자에 대해 생각하곤 하였다.
외삼촌의 책장에서 나는 특이한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국자의 기능과 개량에 관한 연구』 『개량 국자의 제조방법 및 그 능력』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라기보다는 복사본을 묶어놓은 묶음집들이었는데 읽어보지 않았지만 모두 국자에 관한 것이었다. 국을 퍼 담거나 휘저을 때 쓰는 국자 말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외삼촌이 우리 집에서 함께 살던 시절에 그가 나를 때린 적이 한번 있었는데 그때 나를 때린 도구가 바로 국자였던 것이다. 중국 요리를 하는 외삼촌에게 국자는 오른팔, 아니 자신의 몸이나 마찬가지다. 하루에 열 시간도 넘게 주방에 서 있어야 하는 외삼촌은 한순간도 손에서 국자를 놓을 새가 없다. 다른 요리와 달리 특히 중국 요리는 뜨거운 불 위에서 순식간에 요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재료를 볶을 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양념의 양을 재거나 갖은 재료를 팬에 섞는 그 모든 순간에 국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니 계량저울이나 비커, 계량스푼 같은 것들은 필요가 없었다. 국자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외삼촌에게는 30년 가까이 써온 국자가 하나 있었다. 그 국자는 외삼촌의 선배 요리사가 물려준 것이고 선배는 선배의 스승이었던 요리사에게서 물려받았다고 했으니 외삼촌조차 그 국자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동네 중국집 요리사였던 외삼촌을 호텔 중식당 주방장으로까지 만들어준 그 국자를 나도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저 약간 길고 날렵해 보이는 손잡이가 달린 평범한 스테인리스 국자였으며 목 부분에 수차례 땜질한 자국이 남아 있고 볼 끝이 닳아서 청결해 보이지도 않는 그저 그렇고 그런 국자였다고 기억된다. 하지만 외삼촌은 새것을 구입하거나 주방에 남아도는 다른 국자를 사용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언젠가 외삼촌은 국자를 새것으로 바꾼 일이 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골손님들조차 발길을 끊기 시작했다. 음식의 맛이 바뀌었던 것이다. 손에 맞지 않는 새 국자를 버리고 그 이후로 외삼촌은 낡고 오래된 그 국자만을 사용하고 있다. 그게 벌써 20년이 훨씬 더 지난 일이 되었다. 책이나 음악, 자동차 혹은 축구공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삶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듯 세상에는 흔해빠져 보이는 국자 같은 것 없이는 삶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외삼촌을 통해서, 그의 집에 들어가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외삼촌은 자신의 한결같은 맛을 지키는 것만큼 자기 생에서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국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곧 외삼촌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느 일요일 오전인가 맨손체조를 하느라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그의 몸에서 오른쪽 팔 하나가 국자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국자는 부드럽고 유연한 동작으로 삼촌의 어깨에서 흔들거리며 아침 햇살 속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경이로운 눈으로 나는 외삼촌과 국자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그 국자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었다.
축축한 모래톱에 누워 국자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문득 외삼촌은 벌떡 일어났다. 이 고통은 견딜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스쳤고 그 순간 외삼촌 자신도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의 강렬한 의지를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외삼촌은 너는 믿지 못하겠지만, 이라면서 수줍게 덧붙였다. 그 사실을 말해준 건 바로 자신의 오래된 국자였다고 말이다. 어쨌거나 외삼촌과 내가 모두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유독 한강에 나가 살던 시절의 외삼촌을 기억하는 것은 그 시절에 외숙모가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그 가을, 붉은귀거북이가 한강을 잠식하던 무렵이었다. 그 후로 한동안 나는 거북이가 거북이를 덥석 잡아먹는 꿈을 꾸곤 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건 붕어가 붕어를 잡아먹는 꿈하고는 좀 다른 데가 있었다.
5
방금 막 내가 지나온 거리의 풍경에 대해 사촌이 물어왔을 때 운동화를 벗다 말고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밖에 나갔다 온 것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 가장 불편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촌은 내가 나간 지 세 시간이 되었고 그동안 창밖은 어두워졌으며 자신은 빨래를 개었다고 말했다. 세 시간. 장갑을 벗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땀을 흘리며 걸어왔다는 걸 명백하게 말해주려는 듯 구겨진 두 짝의 검은 장갑에는 아직도 내 체온이 남아 있었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고 날마다 걷고 있으며 스스로 정한 반환점을 돌아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걷고 있을 때조차도 내 눈은 밖을 보지 않고 뒤를 향해 있었다. 사촌은 일기를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밖의 거리에 대해 알고 싶어했으나 나는 아무것도 본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말해줄 게 없었다. 반환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려 했으나 그것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디까지 걸어갔다 온 것일까. 반환점은 처음부터 없었는지 모른다. 앞을 보며 걷고 있다는 생각은 틀렸다. 눈을 뒤에 두고 걷는다는 것은 목적지를 향해서 걷는 게 아니라 목적지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행위이며 그것은 결국 정점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걷는다는 것은 이제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나 나는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거리의 사람들과 풍경들, 10미터 앞의 거리를 내다보며 걷는 것을 연습했다. 나는 사촌에게 내가 본 것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밖엔 온통 유리 조각들뿐이다, 라고 그 아이에게 말해줄 수는 없었다. 붉은 것을 붉다, 어두운 것을 어둡다, 라고만 나는 말해왔다. 내가 밖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 앞에 흩어져 있을지도 모를 유리 조각들에 대한 걱정만 했을 뿐이다. 걷는다는 행위는 내 의지를 시험해보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처음에 나는 집밖에 나가는 것에 대해 극심한 공포를 갖고 있었다. 거리엔 온통 유리 조각들 투성이였다. 내 눈에는 그토록 많이 띄는 유리 조각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비닐봉지를 들고 나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유리 조각들을 주웠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최선의 적응이었다.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거리를 활보했다. 설령 유리 조각을 밟고 서 있어도 그걸 얼굴에 드러내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내게 깨닫게 해주려는 듯이. 아이가 입을 꾹 다문 채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말투가 부드럽고 온순하다는 느낌은 말수가 유독 적은 데서 온 느낌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상처가 밖으로 드러나는 걸 극도로 주의할 줄도 알고 있었다. 술에 취해 침울해진 외삼촌이 잠든 사촌의 등허리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내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내가 듣기에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었지만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외삼촌은 과장이라는 걸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외삼촌의 국자 이야기를 내가 곧이곧대로 믿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사촌을 내려다보며 때때로 나는 질문했다. 그 질문은 누워서 쏜 화살처럼 곧장 내게로 날아왔다. 힘겹게 입을 열어 나는 사촌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는 왜 통 밖엘 나가질 않는 거니?
사촌과 나는 우리가 본 것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볼 것에 대해 더 정확하고 정교한 언어로 말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우리가 외삼촌과 그의 국자를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테니까.
6
세탁을 하거나 음식을 만드는 일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인 사촌의 준비물을 챙겨주는 일이었다. 실내용 슬리퍼, 털실, 색종이, 주사위, 고깔모자같이 용도를 짐작할 수 있는 것 외에 바늘, 거울, 말린 꽃, 밀가루, 옥수수수염 같은 것들은 어디에 쓰이는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사촌은 그런 것들에 대해 일일이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묵묵히 챙겨주었다. 집에서 구하기 힘든 것은 멀리까지 나가서라도 사다 주었다. 이틀 뒤에 필요하다며 사촌이 내민 준비물들을 읽어내려가다가 ������눈알������이라고 씌어진 것을 발견했다. 준비물이 적힌 종이를 꼼꼼히 다시 읽어보았다. 눈알 밑에는 찰흙, 나무젓가락, 철사, 물감 같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역시 눈알뿐이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나는 내일모레까지 눈알이라는 걸 구하러 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느 날인가는 버스를 타고 재래시장에 가 좁쌀, 팥, 보리, 검은콩, 흰콩을 사온 적이 있었다. 준비물엔 각각 약간씩, 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나는 낡은 옷을 잘라 오자미처럼 만든 조그만 주머니에다 곡류를 가득 채워서 들려 보냈다. 나는 사과가 한 알 필요하다면 세 개를 싸주었고 열 가지 색 색연필이 필요하다면 스무 가지 색이 든 색연필을 준비해주었다. 아무래도 사촌에게는 다른 것이 필요할 테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며칠 뒤 사촌은 커다란 도화지 위에 그린 시계를 내게 보여주었다. 아라비아 숫자가 큼직큼직하게 씌어진 둥근 시계였고 숫자의 면은 연노란색의 좁쌀과 붉은색의 팥과 검은색, 흰색의 콩으로 각각 메워져 있었다. 우유부단하나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고 실수에 대한 염려가 큰 사촌이 만든 시계는 입체적이고 정교해 보였다. 나는 그 종이 시계를 거실 벽에다 붙여두고 오고 갈 때마다 숫자 3, 오후 세시에 붙어 있는 흰색 날콩을 하나씩 뜯어먹기 시작했다. 시계에서 세시가 사라진 날은 이상한 적막감이 하루 종일 집 안에 가득 맴돌았다. 검은콩 5시를 그리고 붉은팥 9시를 뜯어먹었다. 내가 살고 있는 장소의 시간은 한동안 오후 세시부터 밤 아홉시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에 쓰이는지 짐작하기도 힘든 준비물을 챙겨주는 일은 곤혹스럽긴 했으나 매번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하였다.
처음에 나는 ������눈알������이라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동네 문구점 주인은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지금은 눈알이 다 떨어지고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럼 눈알을 어디서 살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어디긴요. 문구점 주인은 말했다. 눈알이란 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는 투였다. 세 정거장을 걸었다. 고양이의 눈, 개의 눈, 곰의 눈, 사자의 눈, 독수리의 눈, 공룡의 눈을 상상하며 이웃 동네 초등학교 앞 문구점으로 갔다. 거기엔 눈알이 있었지만 내가 상상했던 탁구공 모양의 완전한 원형과는 좀 다른 것이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편편한 아랫면과 볼록한 윗면 속에 검은 동자가 굴러다니는 그런 눈알이었다. 크기는 일 원짜리만 한 것부터 오백 원짜리 동전보다 약간 큰 네 종류의 것이 있었고 나는 그중에서 가장 큰 눈알을 샀다. 그러나 내가 원한 건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눈알이 아니라 야구공만큼 크고 위협적인 눈알이었다. 사촌은 이것으로도 크고 튼튼한 공룡의 눈을 만들 것이다.
그날 저녁에 사촌은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식탁 의자에 앉아서 일기를 썼다. 문득 뒤를 돌아다보았다. 의아스러울 만큼 이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찻물을 올려놓았고 곧이어 쉭쉭거리는 뜨거운 김이 주방 가득 번졌다. 홍차를 타서 커다랗게 후르륵 소리를 내면서 마셨다. 오늘은 유리 조각을 줍지도 않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불안이나 나쁜 결과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다. 집 안은 따뜻하고 고요했다. 자정 무렵, 외삼촌이 들어왔다. 여느 때보다 한 시간쯤 늦은 귀가였다. 나는 잠든 사촌의 등허리께를 긁어주고 있었다. 불을 끈 사촌의 방문을 천천히 외삼촌이 열었다. 어둠에 반쯤 가린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주 작은 사건이기를 바랐다. ……아무래도 어딘가 유리 조각들이 나뒹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외삼촌은
국자가 사라졌다,
라고 말했다. 외삼촌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는 국자가 없어졌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외삼촌의 국자는 정말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7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무리 속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고 말수가 많은 것도 아니었으며 실수를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주의해서 눈여겨보지만 않는다면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처럼 보였을 것이다. 되레 너무나 평범해 보여서 그가 자리에 없어도 사람들은 그가 없는 줄을 몰랐다. 그가 자리에 있을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다른 데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완벽한 대칭과 균형에 대해 집착했다는 사실이었다. 물건들은 늘 일정한 자리에 대칭이 되도록 놓아야 했으며 오른손을 사용할 때는 꼭 왼손도 함께 사용했다. 그는 물을 마실 때도 왼손과 오른손에 두 개의 잔을 쥐고 마셨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자신조차 알지 못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땅이 갈라져버릴 것만 같은 심한 불안감에 휩싸이곤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집에 가장 많은 건 사물들이 대칭으로 놓였는지 어느 각도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거울들이었다. 거울들 속에서 그는 자신 또한 사물들처럼 정확한 균형과 대칭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것은 타인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견디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를 가운데로 몰아놓곤 원을 그리며 빽빽하게 둘러섰다. 자, 한번 돌아보라고. 그들은 말했다. 어딜 봐도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을 거야. 두려움에 질린 그는 왼쪽 뇌가 마비된 실험용 쥐처럼 한 방향으로만 빙빙 돌았다. 이제 좀 편안해지는가? 쥐몰이를 하듯 사람들은 그를 향해 더욱 좁혀들며 조롱했다. 나는 그가 곧 고함을 치거나 울음을 터뜨리거나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멈춰 섰다. 그러곤 최선의 방법을 찾아낸 듯 눈을 꾹 감아버렸다. 어쩌면 그는 그때 감은 눈 속에서 자신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완벽한 균형과 대칭의 세계를 발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툭 말을 던졌다.
그런데 말야, 자네 얼굴만큼은 대칭이 아니구만.
……그때 나는 내 발밑에 떨어져 있는 수많은 유리 조각들을 발견했다. 그 문장은 이미 완곡한 유머를 넘어서는 말이었으며 그것은 꼭 그들이 그를 향해 뱉어놓은 침처럼 더럽고 되돌릴 수 없으며 탐욕스럽고 맹목적이며 위험한 파편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흩어졌다. 그는 자신의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문을 밀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짐 가방은 오른손에만 들려 있었고 늘 오른손과 똑같은 것을 쥐고 있었던 왼손은 주머니에 꽂혀 있었다. 그는 정말로 육체적 균형을 잃는 사람처럼 금방이라도 비틀거리며 쓰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가 지금 넘어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다시는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후 그는 문을 걸어 잠그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오른쪽 눈썹은 왼쪽 눈썹보다 이마 쪽으로 살짝 치켜 올라갔고 귀밑 아래로 내려와 있는 머리카락과 턱수염 또한 대칭이 아니었다. 이걸 이제서야 발견하다니.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놀라움은 곧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으로 이어졌고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칼로 눈썹과 머리카락과 수염을 모두 밀어버렸다. 인간을 포함한 많은 척추동물들의 심장과 위는 왼쪽에, 간과 맹장은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외모는 균형 잡힌 대칭성을 추구하며 진화해온 반면에 그 내면은 비대칭성을 지향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끝까지 그 사실을 몰랐던 걸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나는 망설여진다. 이윽고 그는 만족한 듯 웃음을 지으며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웃음을 멈추곤 두 입술을 수평으로 꾹 다물어버렸다. 대머리가 된 자신의 두상이 좌우 대칭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고는 마치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문장에 힘껏 밑줄을 긋듯이 오른쪽 두상보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왼쪽 두상에 깊숙이 칼을 찔러 넣었다.
8
내 예감은 빗나갔는지도 몰랐다. 나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건 외삼촌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때의 나는 하나로 살려면 둘이 필요한 것처럼 나의 모든 것이 외삼촌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친밀감하고는 약간 다른 감정이었다. 외삼촌은 국자를 찾아 나서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했다. 주말에는 나 대신 밥을 짓거나 사촌과 함께 동물원에 다녀오기도 했다. 사촌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에 나는 걸레질을 하는 대신 외삼촌을 보고 배운 대로 맨손체조를 하였다. 국자에 관해서는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국자를 잃어버린 외삼촌은 국자를 잃어버리기 전의 외삼촌과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외삼촌이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평범한 남자들 중 하나로 보였고 그것은 나에게 생각보다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국자를 잃고도 긍지와 긍지보다 더한 그 무엇을 잃지 않았다면 그 국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외삼촌과 한 몸이었던, 그것이 없으면 외삼촌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던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망감과 동시에 나는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외삼촌에게는 있으나 나에겐 없는 것이 바로 그 국자였으니까. 나는 싱크대나 변기를 닦는 일, 장을 봐 오는 일 같은 걸 외삼촌에게 시키기 시작했다. 장을 봐 오면 오래된 두부를 사 왔다거나 상한 바지락을 사 왔다며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국자가 없는 한 그나 나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나는 경멸에 가까울 만큼 외삼촌을 무시했고 그는 정말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걸 인정이라도 하는 듯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만약 거실 바닥에 개처럼 엎드려 내 귀를 핥으라고 명령해도 아무런 저항도 느끼지 않고 그렇게 할 무력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촌도 달라져갔다.
이사를 온 첫날, 나는 사촌의 얼굴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위험에 빠져본 적이 없는 자의 얼굴을 보았고 그것은 나를 슬픔으로 내몰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사촌은 더는 감출 것이 없다는 듯 여덟 살짜리 여느 평범한 아이로 되돌아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울음을 터뜨리거나 떼를 쓰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가 있기 일쑤였다. 불안을 경이로 두려움을 성숙함으로 자신을 겨우 가려주고 지탱해주던 가면을 어느 날 아주 작심을 하고 돌연히 벗어버린 듯한 태도였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결핍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 있는 사촌의 얼굴이 나는 지긋지긋해졌다. 간식을 잘 챙겨주지도 않았고 준비물도 챙겨주지 않았다. 아이는 점점 더 풀이 죽은 얼굴이 되었고 한때 금방 터질 것 같은 양배추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던 뺨에는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떠나질 않았다. 학교에서 면담을 요청하는 전화가 한 번 왔으나 나는 가지 않았다. 그 사실을 외삼촌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변하지 않은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이 변했다는 걸, 나는 뒤늦게야 깨달은 셈이었다. 외삼촌의 무력감은 국자를 잃어버리고 난 뒤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또한 말이다. 내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옷자락에 가려 있던 손을 보지 못한 것이다. 살아 있어도 이미 죽은 사람들이 있다. 외삼촌이 그러했다는 걸 나는 너무나 뒤늦게 깨달았고 그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9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몸이 둘로 쪼개지는 것만 같은 통증이 왔다. 무릎에 얼굴을 묻곤 약간 흐느껴 울었다. 통증 때문이 아니라 이제 내가 목도해야 할 불운한 일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항할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식탁 의자에 외삼촌이 반듯하게 고개를 세운 채 앉아 있었다. 그 앞에 다가가 마주 앉았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려 하지 않았고 보려고 애써도 그 농밀한 어둠 때문에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만 같은 말들에 대해서도. 그러나 나는 여전히 말하는 것엔 서툴렀고 말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나와주지도 않을 것이므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수밖엔 없었다. 어둠 속에 있지만 반짝이며 벌어진, 젖어 있는 그 눈. 돌연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외삼촌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을, 나는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언젠가 외삼촌과 사촌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다녀오던 날 근처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전골 그릇 옆에 따라 나온 국자가 눈에 띄었다. 그 플라스틱 국자가 눈에 띈 건 여느 국자처럼 테이블에 눕혀져 있는 게 아니라 앞접시처럼 작은 접시에 받혀진 채로 반듯하게 서 있기 때문이었다. 사촌은 장난삼아 국자를 손끝으로 건드려보았다. 국자는 바닥으로 기울었다가 오뚝이처럼 벌떡벌떡 일어서곤 했다. 외삼촌은 우리에게 그게 오뚝이 국자라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어? 쓰러져도 자꾸만 일어서네 하면서 외삼촌의 몸의 일부인 국자를 생각하며 웃었다. 외삼촌도 웃었고 쓰러졌다 자꾸만 황급히 일어서는 국자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던 사촌도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때는 국자에 대한 농담을 하면서도 웃을 수가 있던 시절이었다. 외삼촌의 국자를 잃어버리기 전이었으니까. 나는 그때가 떠올랐다. 다시 한 번만.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외삼촌은 웃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지금은 웃을 수가 없다. 우리는 한 번도 그렇게 마주 앉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처럼 긴 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둠 속에 어둠만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말해질 수 없는 것,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거기엔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고 그건 내가 미처 알지 못한 한 세계였다. 갑자기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내가 느끼고 보았던 것들에 대해 사촌에게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외삼촌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또 내려다봤다. 이제 그를 마주 볼 용기가 없었다. 그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차가운 식탁 유리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곤 황급히 울음을 멈추었다. 그 방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아 나는 중국식 단추가 달린 청결한 흰색 가운을 입을 그가 뜨거운 불 앞에서 요리하는 모습과 그가 헐렁한 파자마를 입은 채 한 손으로 엉덩이를 북북 긁으면서 자는 모습을 더는 볼 수가 없겠지만, 나는 벌거벗은 몸으로 누군가 내게 던지는 얼음 조각들을 고스란히 맞고 서 있는 심정이 되었지만 결코 그의 이름을 불러 세울 수가 없다. 그가 원치 않을 것이었다.
외삼촌이 국자를 잃어버린 그 직후에 내가 완벽한 대칭과 균형에 집착했던 한 남자를 떠올린 것은 그의 이야기가 마치 내게 하나의 경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10
잠든 사촌의 등허리를 쓰다듬어보았던 것도 너무나 오래된 일 같았다. 나는 사촌이 앉아 있었을 책상을 쓰다듬고 있었다. 내가 학교에 불려 온 것을 사촌은 모른다. 그게 얼마가 되었든 당분간은 그래야만 한다는 암묵 속에서 사촌과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그건 생각만큼 그렇게 불편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밤이면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나는 잠을 설쳐야만 했다. 아이는 소리를 내지 않고 우는 방법을 다 잊어버린 것 같았다. 사촌이 학교에 가고 빈 집에 나 혼자 있을 적에도 아이의 방 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사촌은 학교에 가지 않고 하루 종일 벽장에 숨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촌의 방에 들어가볼 수가 없다. 어떻게도 그를 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실을 돌아나오려다 말고 교실 뒤편에 있는 장식대를 쳐다보았다. 긴 뿔을 가진 사슴, 코가 제법 날카로워 보이는 코뿔소, 갈기를 휘날리고 있는 사자, 코끼리, 큰곰, 그리고 공룡들. 아이들이 찰흙으로 빚어놓은 동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물들 얼굴에는 언젠가 내가 산 것과 똑같은 공작용 눈알이 박혀 있었다. 장식대 앞으로 다가갔다. ……누가 말해준 것도 이름표를 붙여놓은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한눈에 내 사촌이 만든 작품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농구공이나 축구공만 한, 정말 실물 크기의 고양이만큼 커다랗게 만든 다른 아이들의 찰흙 덩어리 속에서 그 아이들이 만들다 잘못 떨어뜨린 동물의 귀나 꼬리의 일부분처럼 겨우 내 중지만 한 크기로 장식대 맨 귀퉁이에 간신히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기묘한 형태였다. 눈알을 사주면서 내가 기대했던 사자나 독수리 곰이나 공룡처럼 크고 힘센 동물이 아니라 머리엔 조그만 뿔 같은 것이 달려 있으며 다리는 세 개밖에 없고 꼬리는 짧고 뭉툭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토록 작은 짐승의 이마엔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눈알이 두 개 붙어 있었다. 몸통에 비해 눈알만 압도적으로 큰,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짐승처럼 보였다. 나는 실망했다. 어떻게 보아도 그걸 동물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차라리 부화하지 못하고 썩어가는 하나의 알처럼 보였다. 손끝으로 툭 쳐보았다. 불완전한 세 개의 짧고 가는 다리로 지탱하고 있던 그 볼품없는 짐승은 무기력하게 툭 교실 바닥으로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실망은 분노로 변했다. 누가 내 얼굴에 차가운 물을 뿌려대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걸 만든 건 내가 아니잖아. 애원하듯 나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나는 연회장의 다 녹아버린 얼음 조각처럼 순식간에 쓸모없고 하찮고 불필요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을 생생히 느끼고 있었다.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와 교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 어디선가 사촌이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몰려왔다.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분노가 지나간 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참고 있는 나를 말이다. 분노 뒤에 찾아온 슬픔 때문에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슬픔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두려움이나 공포 혹은 실망이나 배신, 상처에 관해서만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슬픔은 지금껏 내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강렬하며 가장 고통스러운 감정으로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이 슬픔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고통이나 공포처럼 일시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감정일지도 모를 테니까.
11
나는 그날 밤 외삼촌이 앉았던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말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질문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이제는 대답을 들을 수도 없는 질문들. 그러나 나는 어둠 속에 앉아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날 외삼촌과 나 사이에 흘렀던 침묵은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언어였기 때문이다. 세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사촌의 방문을 열어보았다. 잠든 척하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눈물 자국이 말라붙은 채로 아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는 경이도 기대도 사라진 쓸쓸하고 고단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그 얼굴은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볼 때처럼 내겐 가장 익숙해진 얼굴이기도 했다. 두꺼운 점퍼를 입히고 아이를 데리고 옥상으로 나갔다. 나는 아이에게 그날 내가 어둠 속에서 보았던 것, 어두운 것 속에 존재하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사촌한테 이해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곧 저녁 내내 북쪽 하늘 지평선 아래에 숨어 있던 북극에 가장 가까운 별 북두칠성이 동쪽에서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었다. 추위 속에서 덜덜 떨고 있는 사촌을 뒤에서 덥석 안아버렸다. 아이는 몸을 뒤틀다가 포기하듯 멈췄다. 팔백만 광년이나 떨어진 멀고 먼 거리였다. 나는 이등성의 어둡고 반짝이는 별들이 많은 북쪽 하늘에서부터 기린자리, 용자리, 카시오페이아자리, 케페우스자리를 지나 큰곰자리와 북극성을 안고 있는 작은곰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켜주었다. 거기에 일곱 개의 별 모양이 희미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저게 북극성이다.
나는 사촌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꼬리에 못이 박힌 것처럼 등대처럼 항상 그 자리를 돌고 있어야 하는 별자리다. 내 목소리는 너무나 작아서 어쩌면 사촌에게까지 들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촌은 등을 그대로 내 품에 기댄 채 고개를 들고 서 있었다. 멀고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간 배들도 저 별을 보고 배의 방향을 잡았단다, 하늘을 날던 비행기도 저 북극성으로 제가 가야 할 길을 알았고 그리고 얘, 육지를 걷던 사람들도 저 별을 보고 길잡이를 삼았단다. 사촌과 나는 동시에 북극성을 쳐다보고 있었다. 별들은 동쪽으로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별들을 따라 사촌과 나도 동쪽으로 몸을 틀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도 뚜렷이 보이는 저 별들과 그 별과 우리가 떨어진 수억 광년의 거리와 우리를 정면으로 향해 커다란 나선형의 모양으로 움직이는 은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 안에서 보잘것없이 작고 초라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내부와 외부의 힘들 사이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한 인간, 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 곁에 가깝게 있는 주목의 열매처럼 붉고 환한 지붕 위의 불빛과 어디든 갈 수 있는 휘어진 길들과 예측할 수 없는 땅의 굴곡들. 사촌은 순간,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거기엔 일곱 개의 별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저거, 국자 모양이다.
나는 다시 동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일곱 개의 별 모양은 정말로 국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사촌은 자신이 찾아낸 국자 모양의 별자리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웃고 있었다. 오랫동안 실추를 거듭하던 끝에 어쩌다 한 번 멀리 도약한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웃음이었기 때문에 나 또한 사촌을 따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곁에 누가 없어도 사촌이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나는 다시 국자 모양의 별들을 따라 별자리를 말해주었다. 네가 혼자일 때라도 이건 잊지 마라, 일단 국자 모양의 별을 발견하면 그게 큰곰자리인 거다, 저기 국자 손잡이 반대편에 있는 별 두 개를 따라가면 보이는 저 별이 북극성이고 북극성 손잡이 끝에 달린 작은 국자 모양의 별자리는 작은곰자리고 북극성에서 아까 네가 발견한 큰 국자 반대쪽으로 조금 더 가면 네모난 집과 지붕 모양의 별자리가 있지, 그건 케페우스라는 자리야, 거기서 다시 지붕 꼭대기에서 조금 더 가면 W자 모양이 보이지? 그건 카시오페이아자리라는 거다. 그러나 사촌의 눈은 여전히 작은곰자리, 북극성을 이루고 있는 국자 모양의 별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사촌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가 내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추위와 별들 속에서 우리는 분리되기 이전의 몸처럼 하나로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격렬한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사촌이 한숨과 슬픔 속에서 성장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사촌은 언젠가 내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라고 불렸던 적이 있는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사촌은 아직도 국자 모양의 별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사촌은 저걸 제 아버지의 별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별을 지표로 삼아 성장해나갈지도 모른다. 그 별은 또 어쩌면 일곱 겹의 소가죽으로 만들어져 어떤 창으로도 뚫리지 않는 아이아스의 방패처럼 사촌을 지켜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외삼촌이 잠든 사촌의 등을 긁어주면서 읊조리듯이 말한 내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라는 말은 혹시 사촌이 아니라 외삼촌의 국자를 두고 한 말은 아니었을까. 혹시 너는 아니? 그새 죽순처럼 키가 커져버린 사촌을 더 힘껏 껴안았다. 그리고 나는 꼬리를 바짝 치켜들며 네 발로 버티고 있는, 북두칠성을 안고 있는 큰곰자리가 순간 번쩍, 빛나는 것을 흐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수년 동안 내가 벗어나지 못했던 균형에 대해 생각했다. 내 삶의 정교한 하나의 의식이라고 생각해왔던 그것은 일시적인 정렬일 뿐이었으며 또한 내 자신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힘든 투쟁에 대한 역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침이 오면 사라지는 저 밤의 별들처럼 이제는 나를 지나가버릴 것이다. 나는 내가 누구보다 의존적인 존재이며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가며 내가 균형이라고 믿고 있었던 강박 행위를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믿고 의지하며 기댈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다. 나의 삶은 그것으로도 이미 한 세계이며 나의 의지가 그 세계를 관통하리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찾아낸 하나의 가치 때문이다. 우리는 어둠과 혹한으로 뒤덮인 밤의 하늘 밑에서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점 하나로 아침이 올 때까지 서 있었다. 그날 새벽 사촌에게 그리고 나에게 일어난 변화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전의 나에게는 다만 국자 같은 게 없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