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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21
건강한 자는 의원이 쓸데없지요. 그러나 항상 건강한 자는 없어요. 사람의 삶에서 문제없는 자 없고, 아픔 없는 자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우리에겐 구원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삶의 한계를 넘어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며 살 수 있을까? A lawmaker is useless for a healthy person. But no one is always healthy. There is no one without problems and pain in a person's life. Crucially, no one overcame the limit of death. We need salvation. How can we live beyond the limits of our lives and experience the salvation of the Creator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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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남달랐어요. 로고스(말씀)가 말씀을 전하니 티-칭이 남다를 수밖에요. 다른 누구를 의지하여 권위를 세우지 않았고, 말씀의 본래 의도대로 시대에 맞춰 설명하셨습니다. 가버나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입추에 여지없이 모여들었고 예수는 치유 사역 대신에 사죄 선언을 하셨습니다. The Galilee mission of Jesus, the Son of God, has begun. His teachings were extraordinary. Logos told me that the tee-ching was extraordinary. He did not rely on anyone else to establish authority, and he explained the words according to their original intentions. Countless people gathered in Gavernaeum and Jesus declared an apology instead of a hea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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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율법 전문가 서기관들이 발끈했어요. 제사장이 아닌 사람이 사죄를 선언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이라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귀신을 쫓아내시는 본문 때문에 각양각색의 적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뒤이어 등장하는 귀신축출 이적과 이어지는 베드로의 장모 치유 사건은 단순한 치유 이적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도래가 불러온 현상 가운데 하나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This angered law experts. A man who is not a priest declares an apology because he is the word God. I think there are various applications because of the text that drives out ghosts. The transfer of ghosts and the subsequent healing of Peter's mother-in-law that followed the teachings of Jesus Christ was not just a healing transfer, but a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You have to understand it as one of the things that you've br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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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래드가 말한 대로, 성경은 역사 속에서 사람의 말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각각의 책들은 그것을 본래 기록할 당시의 언어와 시간과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두 지평(성경의 영원한 타당성과 역사적 특수성)의 긴장 관계에서 부득불 해석학의 필요성이 제기 됩니다. As George Red said, the Bible is the word of God in history, given in human words. That is, because each book is a product of the language and time and culture at the time it was originally recorded, there is an inevitable need for interpretation in the tension between the two geographies (the eternal validity and historical specificity of the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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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서 모든 성경 본문은 원래 독자들이 들은 대로 들어서 성경말씀의 본래 의도(Text 2.1역사적 의미)를 밝힌 다음, 현재의 나에게 적용하는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가버나움에서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었기 때문에 현재 큐 티 하는 내가 귀신을
꾸짖는 것은 역사적 의미를 생략한 채 곧바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In other words, all the Bible texts should be listened to by the original reader, expressed the original intent of the Bible speech (Text 2.1 historical meaning), and then taken steps that apply to the present me. But because Jesus scolded the ghost in Gavernaeum, I, who is now Q-T, scold the ghost immediately, omit the historical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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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초 신자나 어떤 본문은 문자적인 적용을 해도 상관이 없지만 귀신 축출 본문을 이런 식으로 적용하게 되면 해석학이 흐트러질 뿐 아니라 큐티의 핵심이 자기 부정인데, 거꾸로 예수님의 권세를 빙자한 자아가 살아날 소지가 다분하게 되므로 저는 귀신을 향하여 “잠 잠 하라.”고 꾸짖는 빈야드 운동을 반대합니다. Of course, it doesn't matter whether the beginner or any text is literal, but this way of applying the body of the exorcism not only disinterpretations are disorganized, but the core of the Q-T is self-denial, which, on the other hand, is a self-denial, which means that the ego under the guise of Jesus will come to life, so I oppose the ghost-calling mov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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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울 주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시는 도중에 해변을 지나가시다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이윽고 찾아간 회당은 때마침 예배 중 이었습니다. 교회가 아직 형태를 갖추기 전에는 회당장이 집례를 하고 시편과 토라를 낭독하는 정도의 예배였는데 울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회당에 오신 것을 보면 아마도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인 사이트를 제공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On our way to Capernaum yesterday, the Lord called Peter, Andre, James and John as he passed by the beach. The synagogue was just in time for worship. Before the church had yet to take shape, the synagogue leader had to officiate and read poems and toras, but the fact that the Lord had intentionally come to the synagogue suggests that he might have provided a human site about the kingdom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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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갑자기 귀신들린 사람이 일어나서 예수님에 대하여 언급하자 주위가 어수선해 졌는데 곧바로 울 주님께서 권세 있는 말씀으로 사태를 진정시키셨습니다. 물론 저 역시 다양성의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지금도 성령의 사역처럼 귀신들의 역사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음을 다시 밝힙니다. 제가 반론을 제기한 부분은 다양성과 관련한 귀신 축출의 목적은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주‘이심을 나타내기 위한 상황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 예수가 빠진 귀신축출은 진위를 면밀히 살펴야 하고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Then suddenly a demon got up and spoke about Jesus, and it became chaotic around him, and immediately the Lord calmed it down with his powerful words. Of course, I also recognize the God of diversity. I reiterate that I believe that the history of ghosts can happen, just like the Master of the Spirit. My counterargument is that because I believe that the purpose of the exorcism regarding diversity can only happen in situations where Jesus is intended to represent the Lord, which is sent by God, the Ghosts without Jesus must be looked closely at the truth and must be care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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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펄시 콜레 이후로 한국의 모 기도원의 원장이 적잖은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 귀신 론을 가지고 재미를 본 이단이 김 귀동 아닙니까? 저는 귀신논쟁이 나올 때마다 유치하게 생각해서 들어보고 자시고 하지도 않았었는데 몇 년 전에 베니 힌(Benny Hinn)이 여의도 S교회에 와서 집회를 하고 간 후에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영향을 받았던지 제가 아는 집사님이 베니
힌(Benny Hinn)의 성령 론에 대하여 제게 강청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In fact, it is true that the head of a Korean prayer center has caused quite a bit of trouble since Percy Cole. Isn't it Kim Gwidong who enjoyed the fun of the ghost Ron? I used to think of it childishly every time there was a ghost argument, so I listened to it and slept, but a few years ago, after Benny Hinn came to the S church in Yeouido and held a rally, I knew how many saints were affected by Benny. I've come to the point where you're going to ask me about Ron, the Holy Spirit of Benny H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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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론 중에 가장 설득력 있는 부분이"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입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가 귀신을 쫓은 사건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저도 그것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이것(이적)이 현재에도 연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목적 인식에 대한 소치라고 생각합니다. The most persuasive part of their theory is, "If I drive out demons by the Spirit of God, then the kingdom of God has already taken on you(마12:28)." Of course, I admit it because it is clear that fanfare, which marks the beginning of the kingdom of God, was an event that pursued ghosts. But I think it's a sense of purpose that this (transfer) needs to be continuous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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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1차 독자에게 이적(귀신을 쫓는 것)은 하나님 나라, 혹은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입증(하나님나라의 통치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라는 통로를 통해 효과적으로 이 땅에 드러내려는 의도)이 목적이었던 것처럼 현재의 이적도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인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왜 예수님은 안식일에 하필 회당에서 가르치셨을까? 하나님나라의 구원에 어떻게 참여해야 할까? At least for the primary reader, the transfer (the pursuit of ghosts) was intended as proof of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or of the Messiah (the intent of the reign of God to effectively expose this land through the passage of Jesus teaching and healing). I think the purpose of the current transfer should be clear. What do you think? Why did Jesus teach in the synagogue on the Sabbath? How should I participate in the salvation of the kingdom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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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와 예수의 가르침(21-22)
하나님 나라와 축귀 이적과 반응(23-26)
베드로의 장장모를 고치심(29-31)
병든 자들과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하는 예수(32-34)
- 하나님나라의 구원에 어떻게 참여해야 할까?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 가니라(21a)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21b)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2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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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22a)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22b)
권세 있는 자와 같고(22c)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 일러라(2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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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저희 회당에(23a)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23b)
소리 질러 가로되(2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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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렛 예수여(24a)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24b)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24c)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24d)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2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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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25a)
잠잠하고(25b)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2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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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귀신이(26a)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26b)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2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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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27a)
이는 어찜이뇨(27b)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27c)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27d)
순종하는 도다 하더라(2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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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소문이(28a)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2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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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에서 나와(29a)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29b)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2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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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30a)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물어 본대(3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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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사(31a)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31b)
열병이 떠나고(31c)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3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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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해 질 때에(32a)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32b)
예수께 데려오니(3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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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동네가(33a)
문 앞에 모였더라(3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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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34a)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34b)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34c)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3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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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권세 the power of Logos
귀신도 인정하는 권세 a power recognized by ghosts
병을 고치는 권세 the power to cure a dis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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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지배와 얽매임에서 자유하게 하셨고 상처받은 나를 고치셔서 온전케 하심으로 새 창조의 대열에 합류시키신 구속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해결할 수 없는 죄와 깊은 죄책의 그늘 속에 있던 저를 시몬의 장모처럼 벌떡 일으켜 주신 주님, 말씀의 치유와 축귀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가 사단의 나라를 이기고 이 땅에 출범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나이다. 그러나 주님 아직도 온전하지 못 한 내 모습 때문에 긴긴 좌절과 아픈 상처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있습니다. 원하기는 내 온전한 구속을 통해 나와 연결된 우리의 교회가 더욱 더 빛나도록 나를 만져주시고 고쳐주소서. 특별히 우리의 싸움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싸움인 것을 직시하고 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갈 때 기도의 씨름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시고 높아지고 싶고 쾌락을 누리고
싶은 자아와의 싸움을 끝까지 포기치 말게 하옵소서. I am grateful for the grace of the restraint that freed me from the control and bondage of the division, healed me, and joined me in the ranks of new creation with all my heart. The Lord, who raised me up like Simone's mother-in-law in the shadow of unresolved sins and deep guilt, the healing of words and the ministry of blessing are proof that the kingdom of God has defeated the kingdom of the division and was launched into this land. However, there are times when the Lord is struggling in long frustrations and painful wounds because of my still incomplete appearance. Please touch and fix me so that our church, which is connected to me through my full restraint, shines even more. Especially when we face up to what our fight is with me, not outside, and when we overcome our own limitations, let us discern God's will through prayer wrestling and give up the fight with the self who wants to increase and enjoy pleasure until the end.
2024.2.10.sat.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