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냉면 먹고와서
태조 이성계는 '조정인재(朝廷人才) 반재영남(半在嶺南), 영남인재(嶺南人才) 반재진주(半在晉州)'라고 했다. 이런 내고향을 나는 항상 서울 출신 아내에게 자랑 해오던 차였다. 그래 6월1일 큰맘 먹고 아내와 진주로 갔다.
양반은 그 집 음식을 보면 안다. 우선 냉면집부터 찾아갔다. 진주는 맛고장이다. 냉면과 육회비빔밥 유명하다. 지리산과 남해안에 신선한 재료가 많기 때문이다. 진주냉면의 특징은 교방요리란 점이다. 교방요리란 기생집 요리를 말한다. 진주 기생은 평양기생과 함께 조정의 큰 잔치에 초대되던 전국 제일급 기생이다. 시서화는 물론 가무 기예에 통달한 예술가다. 냉면은 한양 풍류객들이 천리길 멀다않고 찾아와 기생들과 놀다가 이슥한 밤에 야참으로 잡숫던 별미다. 서민이 즐긴 평양냉면 함흥냉면과 출발이 다르다.
'잡으시오 잡으시오. 이 술 한 잔 잡으시오. 불노초로 술을 빚고 신선이 사는 연못 복숭아로 안주 삼아 만수무강 하십시오'. 권주가다. 그때 연주한 악기는 사용한 재질에 따라 8 종류가 있다. 쇠(金)로 만든 것은 '편종' '요' '탁 '정' '순' '방향' '향발' '동발'이 있고, 나무(木)로 만든 것은 '부' '축' '어'가 있다. 돌(石)로 만든 것은 '경'(12매)이 있고, 실(絲)로 만든 것은 '금' '슬' '현금' '가야금' '월금' '해금' '비파' '대쟁'이 있다. 대(竹)로 만든 것은 '소' '약' '관' '적' '지' '당적' '퉁소' '대금' '중금' '소금' '당필률' '태평소'가 있고, 바가지(匏)로 만든 것은 '생' '우' '화'가 있다. 흙(土)으로 만든 것은 '훈' '상' '부' '토고'가 있고, 가죽(革)으로 만든 것은 '진고' '뇌도' '응고' '대고' '소고' '교방고' '장고' '세요고' 가 있다. 이를 팔음(八音)이라 하니, 팔음은 순임금 때부터 사용된 말이다.
술잔은 고풍스런 분위기에서 돌아갔고, 그런 전통 가진 진주는 일제시대까지 기생조합이 있었다. 기생은 품계가 있어 품계에 따라 일급 기생 불러 주연을 열라치면, 인력거를 보내서 데려오고 인력거로 모시어 보냈고, 보수는 일반인 수 십 배 였다고 한다
다행히 진주에는 냉면 전통 살아있는 집이 두어군데 있다. 이현동 <하연각>이란 집에 가니 빌딩도 크거니와 상 차림도 기품 있다. 묵직한 놋그릇 맘에 들고, 멸치와 바지락, 홍합, 해삼, 전복 등 짭조름한 해산물로 맛 낸 육수 맛 있다. 냉면 양대산맥은 평양과 진주다. 평양은 돼지고기 편육을 내지만, 진주는 다르다. 소고기육전은 기름기 적은 우둔살로 만드는데 계란 입히고 기름에 부쳐낸다. 쫄깃하고 고소하다.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다. KBS 7 TV에서 취재를 나와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길래, 아내 앞에서 한번 걸쭉하게 진주 냉면 역사를 풀어주었다.
냉면은 수원 나혜석 거리에도 박군자 진주냉면집 있고, 서울 송파 분당에도 있고, 대구 구미 울산 김해에도 있다. 비빔밥도 유명하다. 진주 중앙시장에 제일식당 천황식당 있다. 천황식당은 박정희 대통령이 진주 올 때마다 들린 곳이다. 부드러운 나물에 올린 소고기 육회 맛 있고, 선지 들어간 소고기 무우국 시원하다. 식사 후 반드시 청해서 먹어볼 음식은 석쇠 불고기다. 진주 육회비빔밥 맛 제대로 내는 곳은 서울 영동대교 옆에도 있다. '새벽집'이란 그 집은 시설은 물론 맛까지 본점을 무색케 하는 곳이다.
다음 날 아침 진주성 올라가니, 총구 사이로 보이는 물안개 핀 남강 운치있다. 강 건너 대숲은 봉황 먹이인 죽실(竹實) 열리라고 만든 숲이다. 촉석루의 촉석(矗石)은 돌이 삐죽삐죽 솟은 모양을 말한다. 의암(義岩) 둘러보고 서장대 가는 길 너무 아름답다. '고향의 푸른 언덕'이란 노래가 맘에 사무쳐 온다. 절벽 덮은 고목 사이에 아침 햇살이 금실 수놓는다. 프랑스 다녀온 사람 하는 말 들은 적 있다. 쎄느강이 한강 보다 초라하더라고. 나는 라인강 고성도 진주성과 비교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디가 논개같은 충절의 여인을 가졌을까. 공원 안 산책하는 사람이 한 없이 부럽다. 나는 무지개를 찾아 떠난 소년이었던가.
진주 중앙시장은 '중 상투와 처녀 불알 빼곤 다 있다는 곳'이다. 아침 식사는 시장 옆 오교장 집에서 했는데, 부인의 음식솜씨 좋다. 죽순요리 뽈래기 구이가 천하별미다. 진양호 가는 길 인사동 거리엔 돌절구 맷돌 불상 돌탑 등 석물 많다. 습지원에 들러 창포와 붓꽃 구경했다. 물버들 드리운 잔잔한 강물에 놓여진 꼬부라진 화강암 징검다리 그림 같다. 수련 밑으로 오리가 헤엄친다. 푸른 산빛 강 건너 절벽을 가리웠고, 한가로이 거니는 것은 하얀 해오라비다. '진주가 이렇게 좋은 곳인 줄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아내가 감탄하길래, '저 절벽 아래 낚싯배 하나 띄우고 그냥 여기서 삽시다.' 맞장구 쳐줬다.
청보리 피는 철, 습지원 산책길엔 뽕나무 많다. 오디 따먹다 진양호 올라가니, 산길은 화사한 벚꽃이다. 노란 인동초, 하얀 자스민꽃 보인다. 오교장 아파트 울타리에도 이 자스민꽃이 보였다. 내고향에 이리 아름다운 꽃이 많았나. 전망대에서 커피 시키고 바라보는 호수 아름답다. 하늘은 흰구름 품었고, 물결은 굴곡 많은 섬 품었다. 연초록 신록 흔드는 바람 싱그럽다.
섬에 산책길이 보인다. 가로등도 보인다. 밤이면 물에 비친 불빛 낭만적일 것이다. '다시 한번 그 얼굴을 보고 싶구나. 몸부림 치며울며 떠난 사람아' 진주 옛노래를 속으로 불러보았다.
(2013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