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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임종시의 생각-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여기서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정상적인 상황에서 생각-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살펴보았으니 이제는 그 다음 과제, 즉 죽음을 맞는 순간 생각-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별어려움 없이 추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을 이해함으로써만 우리는 심령적 차원에서 죽음 뒤에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밖의 다른 어떤 방법에 의해서도 재생은 이해될 수 없다.
죽음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
인간은 정신·물리적 유기체 즉 마음과 몸의 결합체[名色, naama-ruupa]다. 몸과 마음은 꽃과 향기처럼 서로 긴밀한 결합상태에서 공존한다. 몸은 꽃과 같고 마음은 향기와 같으며 죽음은 공존하던 양쪽의 헤어짐에 불과하다. 임종의 순간 사람의 몸과 마음(명색)은 무력하다.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 모든 면에서 강했을지 몰라도 바로 죽음의 순간에는 힘이 없다. 왜냐하면 죽음의 순간부터 역산(逆算)한 17번째 심찰나부터 새로운 육체적 기능 작용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자동차 운전자가 차를 멈추기 직전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어내 엔진에 더이상 추진력이 주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업에서 생겨나는 육체적 속성(kammaja-ruupa)'들이 더는 일어나지 못하고, 그 심찰나 전단계까지 존재했던 육체적 속성들은 임종의식[cuti-citta, 死沒心] 찰나까지만 존속하다가 마침내 멈춘다. 더이상 새로운 육체적 속성들이 재생되지 않기 때문에 전체과정은 약해지고 또 약해진다. 그것은 기름등잔의 기름이 떨어지자 사그라지는 불꽃과 같다.
마음과 몸의 결합체가 결합체로서 살아있기를 멈춘다고해서 몸이나 마음이 파괴되거나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결합했던 부분들이 제각각 따로 한 조건, 또는 상태로부터 다른 조건, 또는 상태로 시시각각 간단없이 변화해 나간다. 비록 이제는 두 개의 과정이 제각각 따로이기는하지만. 육체를 구성했던 부분은 한때 사람의 몸에 입혀졌었지만 이제는 버려진 낡은 옷처럼 저 혼자만의 변화과정 즉 천천히 부패되는 과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결코 완전히 소멸될 수는 없다. 물질은 에너지이며 없어지거나 파괴될 수 없다. 앞의 장에서 언급한 대로 육체적 성분들은 그를 구성해온 원소들, 즉 어떤 것은 기체로서 `공기'로, 어떤 것은 유동체로서 `물'로 그리고 나머지들은 광물로서 `흙'으로 변화한다. 이 원소들 역시 파괴되거나 없어질 수 없고 단지 그들의 형태만 바뀔 뿐이다. 인간의 육체 부분에 관한 한 변화의 과정은 이런 방식으로 지속된다.
마음에 대한 죽음의 영향
그러면 정신 부분(naama)은 어떠한가? 정신 쪽 역시 육체 쪽과 마찬가지로, 더이상 육체와는 관련이 없지만 한 조건 또는 상태로부터 다른 조건 또는 상태로 끊임없는 변화를 계속해 나간다. 생각은 물질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이므로 파괴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 앞에서 우리는 마음이 영원한 것도 고정된 것도 아님을 알았고, 하나의 단일체가 아니라 빠른 속도로 생각이 생각을 뒤쫓는, 그래서 영원하고 고정된 것인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생각의 연속적 흐름(santati)임을 보았다. 죽음은 이 연속적 흐름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며, 이 과정을 계속 진행시키는데 장애가 되지도 않는다.
생각생각이 이어져가는 법칙은 죽음과 더불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임종의 마지막 생각-과정 중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mara.nasanna-javana-citta)이라는 마지막 심찰나는, 비록 힘이 없어 혼자서는 생각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강력한 잠재력을 끌어낸다. 왜냐하면 죽어가는 마음의 문턱[識 을 들어서는 세 가지 강력한 생각-대상 중 하나가 그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세 가지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가 나타남
그때 임종자에게는 눈앞에 나타나는 이 세 종류의 생각 -대상에 대해 저항할만한 힘이 없다. 강력하게 나타나는 이 생각-대상들은 틀림없는 죽음의 표시이다. 이에 관하여는 뒤에서 다룰 것이다. 임종자의 마음은 비록 생각을 일으킬 힘이 없지만, 이들 세 가지 강력한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 중 하나가 나타남으로써 강력하게 떠밀리거나 혹은 충동을 얻게 되어 다른 생각이 일어나는데에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이어서 일어나는 생각이 재생의식 혹은 재연결의식이다. 재생의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관하여는 차후에 다룰 예정이다.
임종시의 생각-과정은 반드시 일어난다
죽음을 맞고 있는 사람은 옆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런 의식도 없는 것 같지만 그 내부에선 이 마지막 정신적 과정이 엄연히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은 죽음을 당하는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갑작스럽고 뜻밖에 닥친 죽음일지라도 임종의 찰나에는 반드시 일어난다. 주석서에 따르면 사람을 갑자기 물에 빠트려 직사시킬 경우에도 역시 죽음직전에는 이 마지막 생각-과정이 작용할 찰나가 있다. 모루 위의 파리가 망치에 맞아 순식간에 뭉개지는 경우도 죽음직전 마지막 생각-과정이 작용할 틈새는 있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생각은 에너지이다. 그것도 창조적인 에너지이다. 따라서 어떤 생각이 충분히 강력할 경우엔 어떤 특정상황하에서 능히 창조적 원인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아니라도 앞에서 언급한, 그리고 후에 충분히 설명하게 될 강력한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 중 하나로부터 그 힘을 끌어내는 마지막의 생각-촉진의 마음은 적합한 장소에서 재생의식 혹은 재연결의식을 어렵지 않게 일으킬 수 있다. 그 적합한 곳이 어디인지는 나중에 설명할 것이다.
재생산하는 업
여기에서 언급해둘 것은 이때 나타나는 강력한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가 다름아닌 임종자가 평생동안 한 행위들에 의해 조건지워진다는 점이다. 생각-대상들이란 곧 그 자신이 지금까지 행했던 행위들의 반사 영상이고 재생을 뒷받침해주는 것도 죽어가는 사람의 과거 행위들이기 때문에, 이 중요한 시점에 작용하는 특정 형태의 업은 말 그대로 재생산적인 업이다.이제 임종자의 이 마지막 생각-과정의 추이를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때의 생각-과정에는 앞장에서 검토해본 정상시 생각-과정에서의 여러 단계가 다 포함되지는 않는다.
임종시 생각-과정의 순서
1. 과거의 무의식2. 무의식의 동요3. 무의식의 정지4. 뜻[意]의 문을 향함5. 죽음직전의 생각-촉진 혹은 마지막 생각-촉진의 마음6. 경험의 등록7. 임종의식8. 다음 생에서 일어나는 재연결의식 혹은 재생의식
1. 과거의 무의식단계평상시의 생각-과정을 추적했을 때 했던 것과 동일한 설명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죽음의 과정이 의식단계의 마음에서 가동하기 바로 직전 단계부터 추적을 시작하자. 그것은 무의식상태의 마음으로, 수면 혹은 의식단계 마음에서 하나의 의식적 생각-과정이 멈춘 뒤 다음 것이 시작되기 직전의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에서는 아직 생각-과정이 실제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추적을 시작하는 기점으로 삼기 위해 첫째 단계로 간주하는 것이다.
2. 무의식단계의 동요
3. 무의식단계의 정지정상적인 생각-과정에서 이 두 단계에 대해 했던 설명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여기서도 역시 앞의 단계 즉 무의식의 동요단계는 어떤 자극이 임종자의 마음속에서 흐르는 무의식적의 흐름을 교란시키거나 동요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는데 그친다. 그 다음 단계 즉 무의식의 정지단계에선 자극이 지속됨에 따라 무의식의 흐름이 완전히 저지당한다. 죽어가는 사람은 아직 작용하고 있는 자극을 인식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이 자극은 다름아닌 바로 세 가지 강력한 생각-대상들, 혹은 죽음의 표시 중 하나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게 될 것이다.
4. 뜻[意]의 문을 향함정상적인 생각-과정을 살필 때에 `다섯 감각의 문을 향함'이라는 단계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이 단계는 듣고, 보고, 냄새맡고, 맛보고, 접촉하는 다섯 감각 통로 중의 어느 하나를 통하여 자극이 인식될 수 있을 때 일어난다. 반면 임종시 생각-과정의 경우, 다섯 감각의 문을 향하는 단계는 대개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임종자의 무의식을 교란시키는 자극은 외적인 것이 아니고 생각이나 기억 등, 본성적으로 내적인 것이며 뜻[意]이라는 통로를 통하여서만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계를 여기서는 `뜻의 문을 향함'이라 부른다.
5. 죽음직전의 생각-촉진 혹은 마지막 생각-촉진의 마음이제 생각-촉진이라고 하는 심리적으로 중요한 단계가 온다. 정상적 생각-과정을 살피면서 이 단계에 대해 언급한 모든 것이 여기에도 적용되지만, 임종이 박두했기 때문에 이 단계가 일곱 심찰나를 다 채우지 않고 다섯 찰나만 지속한다는 점이 다르다. 여기서 잊지말아야 할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임종을 맞은 사람은 무력하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생각을 추스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종류의 강력한 심찰나 혹은 죽음의 표시 중 하나가 나타나 무의식의 조용한 흐름을 방해하고 이를 가라앉게 하여 의식단계의 마음이 일어나게끔 유도한다. 이렇게 일어난 의식과정이 방금 기술한 무의식의 동요, 무의식의 정지, 그리고 뜻[意]의 문을 향하는 단계를 거친 다음, 생각-촉진이라는 중요한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제 무능력했던 의식단계의 마음이 자신을 일깨운 자극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추게 되었다.
강력한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에 대한 설명
지금까지 임종자의 마음 문턱에 나타난다고 설명해온 세 가지 자극은 하나같이 강력한 것이다. 이때의 생각-대상은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의 생각-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다음 생의 재연결의식의 생각-대상이 되며, 또한 다음 생의 무의식단계 마음의 생각-대상이 된다. 이 가운데 나중 두 가지의 식의 상태는 의식단계의 것이 아니고 무의식단계의 것이지만 역시 존재하기 위해선 생각-대상을 필요로 한다. 그들은 앞 생의 최종 생각-촉진 때에 품었던 특정의 생각-대상, 즉 세 가지 죽음의 표시 중 하나를 그들의 생각-대상으로 취한다. 그러므로 죽기 전 마지막 의식단계의 생각이 취했던 생각-대상이 새로운 생에서의 첫 생각의 생각-대상이 된다. 그렇게 하여 삶의 과정은 계속 이어지게 되니… 한 생각은 다음 생각을 낳고, 하나의 삶이 다른 생을 낳으며 계속된다. 여기서 잊지 말 것은 생각이 에너지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없어지거나 파괴될 수 없다. 생각은 계속 결과를 낳으며, 그 결과들은 다시 그 자신의 결과들을 낳게 된다. 그것이 반드시 지구상이거나 동일한 차원의 계(界)에 국한되어야 할 까닭은 물론 없다. 이리하여 존재의 연속성은 유지된다.
임종자의 무의식단계를 교란시키며 최종 단계에 나타나는 생각-대상은 우연히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도, 임종자가 선택한 것도 아니다. 이 최종 단계에서는 자기 스스로 생각을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다름아닌 오직 죽어가는 사람 자신이 평생 지은 행위에 의해서 조건지워질 뿐이다. 재생산 업의 작용에 의해, 임종자가 과거에 행한 어떤 강력한 행위의 기억이 마음에 솟구쳐올라 마지막 생각 즉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의 생각-대상을 구성한다. 그 뒤에 이어 일어나는 생각은 이 마지막 생각의 성질에 따라서 결정된다. 의식상태에서건 무의식상태에서건 어떤 생각도 생각-대상 없이는 기능할 수 없다. 죽음의 단계에서 일어나는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는 다음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이다.
(1) 업(kamma)아무리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고, 또 죽는 찰나 아무리 주변환경을 의식하지 못한다 해도 죽음직전에 행한 중요하고 비중있는 행위에 대한 기억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그에게 다가온다. 그런 행위, 즉 죽음이 다가왔을 때 행하게 된 행위는 아싼나 깜마(aasanna-kamma)라고 한다. 죽음의 시간은 미리 알 수 없으므로, 대부분의 경우 죽음이 임박했을 때 아주 선한 행위를 행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죽음직전의 두드러진 선행이나 악행이 없을 경우엔 과거에 습관적으로 해온 행위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 행위가 아찐나 깜마(aacinna-kamma), 즉 몸에 밴 행위 혹은 습관적 행위라는 것이다. 죽음직전의 행위 혹은 습관적 행위를 이행할 때 경험했던 도덕적 혹은 비도덕적 의식이 바야흐로 죽음의 찰나에 새삼스런 의식으로 떠오른다.
(2) 업의 상징(kamma-nimitta)때로는 임종자에게 나타나는 기억이, 앞서와 같이 자신이 지은 행위를 기억하는 형태로서가 아니라 그가 행한 행위를 상징하는 어떤 형상을 기억하는 형태로 떠오를 수도 있다(`깜마'는 행위를 의미하며, `니밋따'는 상징이나 표시를 뜻한다). 그래서 백정의 눈앞에는 칼이, 술고래의 눈에는 술병이, 순례자에게는 사원이 보이는 수가 있다. 이것들은 마음의 눈을 통하여 보여진다. 즉 육체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통로를 통하여 보여진다.
(3) 재생의 상징(gati-nimitta)임종자의 마지막 생각-대상은 그가 다시 태어나게 될 곳에 대한 어떤 징후나 예측일 수 있다. 그러므로 지옥에 태어나게 되어있는 사람의 마음의 눈에는 불이 나타날 수 있으며, 천신의 세계로 갈 사람은 아름다운 꽃이나 아름다운 궁전을 볼 수 있다. W. T. 에반스-웬츠 박사는 「티베트 사자의 서(The Tibetan Book of the Dead)」 주26) 에서 임종시 자신의 장래 운명을 예고하는 환상을 본 사람들의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스리랑카나 그 밖의 지역에서 임종자가 자신이 경험한 그런 환상에 관해 간혹 언급했다는 사실들은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칼루따라(스리랑카)에서 죽어가는 열두 살짜리 소녀가 슬픔에 잠겨 침대맡에 서 있는 부모를 향해 화려하게 장식한 꽃마차가 자기를 데리러 와 있다고 즐거운 듯이 말한 일이 있었다.
6. 경험의 등록`죽음직전의 생각-촉진 마음' 단계 다음에 죽음과정 상의 또 한 단계 즉 `경험등록' 단계가 일어나는데 이 단계 역시 앞서 설명한 그대로이다. 받아들인 인상의 경험을 등록하는데 그칠 뿐이며 심리적으로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경험의 등록으로부터 어떤 결과가 초래될 일은 없다.
7. 임종의식(cuti-citta)이것은 현생에서 경험되는 마지막 생각이다(`쭈띠'는 사라짐 혹은 죽음을 의미한다). 임종자는 이제 마음속으로 죽음을 알고 있다. 이때 죽음을 알아차리는 경험의 주체는 의식단계의 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무의식단계의 마음이다. 이는 금생에서의 마지막 무의식단계 생각으로서, 그 생각-대상은 곧 다음 생에서 첫번째 무의식단계 생각의 생각-대상, 즉 금생과 연결시키는 재연결의식의 생각-대상이 된다. 임종의식 역시 심리적으로 그다지 중요치 않다. 그것은 아무런 업과도 가져오지 않는다. 그것은 죽음을 의식할 뿐이다. 따라서 마지막 생각으로 간주되는 것은 임종의식이 아니라 5항에서 설명한 `죽음직전의 생각-촉진 마음'이다.
8. 재연결의식(pa.tisandhi-vi~n~naa.na)생각-과정의 다음 단계는 (이제는 임종자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지만) 아주 중요한 단계인 재연결의식(relinking consciousness) 혹은 재생의식의 단계다. 우리가 더이상 마음을 영원불변한 것으로 보지 않게 되면, 하나의 생각-과정이 설혹 같은 인격체 내에서가 아니라 해도 다른 생각-과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음을 (실상 그대로) 식의 상태의 연속 혹은 열(列)로 보게 되면, 어떻게 한 생에서의 어떤 식의 상태가 다른 생에서의 다른 식의 상태를 야기시킬 수 있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다음 생에서의 재연결의식을 일으키는 것은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이라 알려진 임종자의 최종 식의 상태이다. 빠띠산디 윈냐나는 항용 재연결의식으로 번역되는데(`빠띠산디'는 글자 그대로 `재접합'을 의미한다), 현생을 내생과 연결시켜주므로 적절한 역어일 듯 싶다. 실제로 양쪽 식의 상태의 생각-대상이 동일한 것은 이 재연결의식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마지막 죽어가는 생각의 생각-대상이, 그 생각-대상의 결과로 초래될 재연결의식의 생각-대상이 되는 것이다. 재생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연결의식을 철저히 이해해야만 한다. 첫째, 재연결의식을 일으키는 것은 임종의식이 아니고 그에 선행하는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임을 이해해야만 한다. 임종의식은 무의식단계의 마음인데 반해 마지막의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은 의식단계의 마음이다. 임종의식이 재연결의식을 일으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옳지 않다. 왜냐하면,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임종의식은 단지 등록하는 역할만을 하고 결과를 가져올 어떤 활동적 기능도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임종과정에서 그것은 마지막 생각이긴 하지만 무의식단계의 생각이다. 그것은 단지 죽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을 등록하기만 한다. 변화의 법칙, 생성의 법칙, 연속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그리고 인력의 법칙에 따라, 마지막의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은 강력한 마지막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 중의 하나를 그 생각-대상으로 받아들이며 방금 언급한 것과 같은 법칙들의 작용에 의해 재연결의식 즉 다음 생의 핵을 구성하는 무의식 형태의 한 생각을 일으킨다.
임종자의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이 재연결의식을 일으킨다고 할 때, 우리는 앞의 식의 상태가 원인적 요소가 되어 뒤의 식의 상태를 일어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그처럼 중요한 결과가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원인적 요소도 그만큼 강력해야 한다. 그 잠재력의 근원을 조사해보자.
마지막 죽음직전 생각의 잠재력
우리는 강렬한 생각은 창조력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앞부분에서 인용했던 『법구경』의 첫구절은 마음의 우월성(manose.t.thaa)과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왔다는 사실(manomayaa)을 말하고 있다. 「생각은 물체이다(Thoughts are things)」라는 책에서 W. W. 애트킨슨은 `창조적 사고'라는 제목에 한 장을 할애하면서 "과학은, 안에 것이 밖으로 드러나려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되려는, 표출되지 않은 것이 표출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생각은 행위로 형상화되려 애쓴다. 생각은 자신을 물체화시키려 끊임없이 애쓰는 것이다."고 말하였다.
생각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고유의 창조 능력은 별문제로 하더라도, 죽음직전의 생각은 임종자로서의 마지막 능동적 생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마지막 생각이 가장 강렬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경주에서, 달리기 선수의 마지막 역주(力走)는 그가 지닌 최대의 힘을 보여준다. 과일 나무가 죽게 되면 그 마지막 결실기에 가장 많은 소출을 낸다고 한다. 어떤 힘이나 능력이 최고, 최대로 발휘되는 것은 마치 죽음을 앞두고 들려오는 백조의 노래처럼 그 자체의 붕괴 소멸이 다가왔을 때이다. 존재에 대한 욕구(ta.nhaa)는 인간의 모든 활동을 받쳐주는 가장 지배적인 동기이므로, 죽음의 찰나에 무섭게 강해져 움켜쥐려는 자세(정신적으로)를 취한다. 부처님의 말씀처럼(이것도 이미 앞에서 인용되었다), 죽음의 찰나 이 지배적인 딴하는 움켜쥐는 힘(upaadaana)이 되어 자신 쪽으로 다른 존재를 끌어당기게 된다. 이 움켜쥐는 힘을 싣고 있는 것이 바로 마지막 생각-과정인 것이다.
심리학에 의하면 잠들기 전 마지막 생각은 매우 강력하여 다음날 아침 깨어날 때의 첫번째 생각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지만 새벽 기차를 타고 싶을 때, 시간에 맞춰 일어날 것을 잠들기 직전에 암시해두면, 아무리 늦잠 버릇이 몸에 밴 사람도 틀림없이 그 시간에 일어나게 된다. 낭시의 유명한 치료자 에밀 꾸에(Emile Coue)가 환자 치료과정에서 자기암시를 통해 긍정적 자세를 가지게 하는데 성공을 거둔 것은 암시요법이 환자들의 취침 바로 전에 시술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이 시간에 암시되는 것은 강력한 효과를 낳는 경향이 있다. 마음은 이 시간이 되면 암시를 아주 잘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콜린스와 드레버(전자는 에딘버러 대학의 강사이고 후자는 동 대학의 교수이다)는 공저 「심리학과 실제 생활(Psychology and Practical Life)」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자연적 피암시성은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증진된다. 넓은 의미의 최면상태(hypnoidal) ― 수면과 각성의 중간상태, 수면상태, 최면상태로 분류되는 모든 상태에서는 피암시성이 매우 높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외과 수술 목적으로 환자 마취에 최면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잠들기 직전은 강력한 무의식단계의 마음이 활동할 시간과 아주 가깝고 뿐만 아니라 마지막 의식적 생각과 잠이 유도하는 무의식단계의 마음 사이에 끼여들 수 있는 것도 거의 없기 때문에, 잠들기 전 마지막 생각에는 거대한 창조적 가치와 창조적 잠재력이 존재한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잠들기 전의 마지막 의식적 생각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첫번째 생각이 되므로, 같은 논리에 따라 죽음의 잠 직전의 마지막 의식적 생각이 ― 최종의 죽음직전 생각-촉진 마음 ― 그가 깨어나게 되는 다음 생의 첫번째 생각, 재연결의식이 된다고 하면 너무 지나칠까?
임종자의 마지막 생각은 순전히 집중된 에너지 덩이인데 그런 에너지가 사람이 죽는다고 사라질 리 없다. 그것은 창조적 에너지로서 어딘가에 그 자신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E. R. 로스트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존재가 죽었을 때, 뇌 속에 갇혀있던, 의식으로 대표되는 모든 힘들은 허공 속으로 사라지지도, 흩어져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 생에서 생명의 개울 속을 의식의 연속이 끊이지 않고 흐르고 있듯, 죽음에도 내내 그 생명의 개울의 흐름이 있다. 또 이 생명의 개울이 기능면에서 직분을 다하자면 존재의 진화선상에 알을 깔 자리를 찾아야 하듯이 주관면에서는 객관적 기반의 형성을 필요로 한다." ―「의식의 성질(Nature of Consciousness)」중에서
이러한 논거를 불교에 적용시켜보면, 앞서 언급한 세 가지의 강력한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 중 하나를 객관적 기반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 유력한 마지막 생각은 이제 엄청난 창조력을 지니게 된 것으로 간주하여 마땅하다. 또 마지막 생각의 기능은 새로운 존재의 준비란 뜻으로 `아비나와 까라나'라고 부른다. 강력한 생각-대상 혹은 죽음의 표시 중 하나가 임종자의 마음 앞에 나타나는 것은 이 준비를 이행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마지막 생각이 이 특별한 생각-대상을 동반으로 삼는 재연결의식이 일어나게 된다. 이 재연결의식은 일종의 정신적인 것이므로, 육체라는 짝과 결합해야만 일어날 수 있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재연결의식은 모태 내에서 일어나게 되는데 ― 아무 어머니의 자궁에 들어가서가 아니라 ― 반드시 알맞은 환경의 알맞은 어머니의 자궁에, 특히 금생에 영위했던 삶의 형태에 어울리는 모태 속에서 일어나게 된다. 사람은 하나의 명색 즉 몸과 마음의 결합체이므로, 다시 태어난 사람 역시 몸과 마음의 결합체이다. 그렇기는 하나 사람이 정신만 있고 몸이 없는 영의 세계에 태어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 경우에도 재연결의식은 일어난다.
이상으로 재생현상을 일어나게 하는 것은 앞의 각 장에서 다룬 기본법칙 혹은 원리들, 즉 변화, 생성, 연속, 인과(因果) 그리고 인력의 법칙들의 복합적 작용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냐나지와꼬 스님이 「쇼펜하우어와 불교」(The Wheel, No. 144∼146, B. P. S.)에서 그 대부분의 견해가 매우 불교적이라고 지적한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들 신비한 힘들은(실제로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이지만) 죽음의 찰나 모두 함께 나와 활동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들 신비한 힘들이란 다름아닌 앞서 언급한 기본 법칙들이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으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때에만 신비한 채로 있다. 재생을 일으키는 것은 그들의 종합적 작용이다. 그러므로 재생은 이들 자연법칙의 작용으로 생기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첫댓글 죽음 직전 3가지의 원인이 재생연결식이 된다고 하는데
1. 살아 있을때 지은업, 2 .살아 있을때의 이미지 .3 태어날때의 이미지중
어떤 것이든 선택을 하게 될것이며 , 그원인은 나와 상관없는 만들어 지고 있었던
조건이 재생으로 연결이 된다고~~ , 그렇지 않아도 이번주 청정도론 시간에 공부 했답니다.
살아있을때,생각과 행위를 잘 해야 한다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