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과 꽃반지
큰 아버지는 불암산 밑에 있는 '납대울'이라는 시골 동네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 과묵하신 성격에 농사일로 햇볕에 타서 얼굴이고 손이고 모두 거칠게 까매지셨다. 막내 동생 창섭이 돌잔치에 오셨다가 시골집으로 돌아가시면서 여름방학이라 집에서 빈들거리며 놀고 있는 나를 데리고 떠나셨다. 가시는 길에 동대문 밖, 신설동에 사는 같은 동네 출신의 아는 사람을 만나보고 가신다고 했다. 동대문 시장에서 옷감 장사를 오랫동안 했는데 지금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동대문까지 전차를 타고 갔다. 거기서 얼마를 걸어갔다. 기와집들이 즐비한 골목에 들어서서 그 중에 유독 크고 눈에 띠는 큰 집 대문 앞에 섰다. 식모 아주머니가 나와서 문을 열어 주었다.
얼굴이 퉁퉁하고 후덕하게 생긴 주인아주머니가 큰아버지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황새가 날아다니는 8폭 병풍이 우아하게 펼쳐진 대청마루 끝에 앉았다. 한 여름인데도 대들보가 높다란 이 집에서는 별로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에 가지런히 깎아진 사과와 바나나를 일하는 아주머니가 쟁반에 들고 왔다. 높직한 장독대가 마당 앞에 있고 그 아래 찬광처럼 쓰는 반 지하의 방에서 과일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집 안에 늘 과일을 시원한 곳에 준비해 둔다는 것이 놀라웠다.
“올해 농사는 좀 어떠세요? 납대울 언니도 잘 계시죠?”
주인아주머니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평소에는 먹기 힘든 바나나를 들고 있는 내게도 물었다.
“조카님은 올해 몇 살인가요? 방학이라 큰집에 놀러가는 모양이죠?”
“네, 일곱 살이고요, 국민학교 일학년입니다.”
“아이고, 또랑또랑 하기도 해라. 사과도 많이 먹어봐요.”
어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슬그머니 물러나서 대문 옆에 있는 문간방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기와집 지붕 너머로 하얀 솜사탕 같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넋을 놓고 눈에 보이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내가 살고 있는 영등포 시장 집하고는 너무 차이가 나는 근사한 집이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집에 살 수도 있겠지 하며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하며 앉아 있었다.
오른쪽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났다. 누군가 조금 떨어진 툇마루에 와서 앉는 기미가 났지만 나는 모른 채 앞만 보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간 뒤, 내가 못 참고 옆을 살짝 보았다. 나보다는 한두 살 어려보이는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나처럼 앞을 보고 앉아 있었다. 무슨 말을 할 수도 무슨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는 시간이 흘렀다. 여자아이는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더니 마루 위에 올려놓고 하얗고 가는 손가락으로 내 쪽으로 밀었다. 내가 웃으면서 바라보니까 귀엽게 웃으면서 한 번 더 내 쪽으로 밀었다. 초콜릿이었다. 내가 미처 잡기도 전에 아이는 팔짝 뛰면서 일어났다. 깔깔깔 웃으면서 무슨 큰일이라도 해낸 듯이 보람차게 뛰어갔다.
초콜릿은 일반 구멍가게에서는 살 수도 없는 물건이었다. 미군부대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따리 장사한테 특별히 부탁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자아이가 사라진 뒤에 나는 초콜릿의 포장을 뜯었다. 아마 어디선가는 그 아이가 방문 틈으로 내가 먹고 있는 모습을 엿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입안에 들어간 초콜릿은 스르르 녹아 내리면서 여태껏 먹어보지 못한 황홀한 맛이었다. 세상에 이런 맛있는 과자가 다 있다니! 저 아이는 매일 이런 초콜릿을 먹으면서 살고 있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고 가야한다고 붙잡는 주인아주머니의 권유로 나는 기다란 교자상 한 귀퉁이에 앉았다. 여자아이는 대각선으로 내 앞쪽에 앉았는데 전연 나를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열심히 재잘거리며 맛있는 음식만 먹었다. 나는 밥 먹는 데는 별로 흥미가 없고 그 아이를 힐끔힐끔 보기에 바빴다. 밥 먹는 입도 예쁘고, 웃는 눈도 예쁘고, 젓가락질 하는 손도 예뻤다. 다른 곳을 보다가 다시 그 아이에게 고개를 돌리니까 그 아이도 나를 보고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어른들이 작별인사를 나눈 뒤, 큰아버지 손에 이끌려 집을 나와 다시 전차를 타고 청량리로 갔다. 차창 밖으로 가로수가 지나가고 점포들이 보였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아까워서 남겨둔 초콜릿이 잡혔다. 한 입을 무는데 눈물이 글썽 거렸다.
불암산은 아름다운 바위산이다. 장쾌하게 흘러내리는 물결처럼 배가 부른 바위가 불룩하게 나와 있다. 불암산은 부처가 앉아 있는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흑갈색의 거대한 바위가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였다. 불암산 바위 아래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 ‘납대울’이다. 마을 가운데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마을을 수호하는 장수처럼 우뚝 서 있고 멀리 넓은 벌로 가면서 배나무 밭이 질펀하게 깔려 있다.
나는 여름방학을 맞아 큰 아버지가 사시는 납대울에 온지도 여러 날 되었다. 혼자서 송사리를 잡으러 실개천을 따라 멀리 나갔다가 오후 늦게 터덜터덜 피곤한 걸음으로 배밭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불암산 위로는 하얀 구름이 스치듯이 흘러가고 배나무 사이로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와 코끝을 간질이며 지나간다.
마을을 향해 걷고 있을 때 뒤에서 달구지 소리가 들려왔다. 길 한 쪽으로 비켜서서 달구지가 지나가도록 기다렸다. 할아버지 한 분이 고삐를 잡고 달구지 앞에 앉아 있었다. 달구지가 내 앞에 와서 멈춰 섰다. 할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어디까지 가니?”
“네 저는 납대울 은행나무 있는 데까지 갑니다.”
“그럼 마을 앞에 삼거리에서 내리면 되겠네. 뒤에 타거라 같이 가자.”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나는 신바람이 나서 달구지 뒤로 올라갔다. 달구지 뒤에는 짚단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자아이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어? 이게 누구지?’ 순간적으로 생각도 못한 곳에서 상상도 못한 때에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줄이야! 꿈만 같다고 해야 할까? 아니다, 이건 꿈이다.
나는 말문이 막혀서 말을 못하다가 더듬거리는 소리로 웅얼거렸다.
“나-는 네가 준 초콜릿을 기억하고 있는데..”
“응, 나도 그래!”
당연히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가볍게 말했다. 달구지가 길 위에 패인 곳을 지나며 덜컹거렸다. 길 양쪽으로 배나무 밭이 길게 길게 퍼져 나갔다. 노오랗게 익어가는 배들이 조롱조롱 매달려서 지나는 바람에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네 이름이 뭔지 궁금해.”
“음, 내 이름은 설희야, 박설희. 할아버지가 지어 주셨지. 내가 납대울에서 태어날 때 배밭에 배꽃이 눈이 내린 듯이 하얗게 피어 있었대.”
“정말 멋진 이름이네. 나는 심.한.힘이라고 해. 큰아버지 댁에 놀러 왔다가 모레는 영등포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야.”
지푸라기 하나를 입에 물고 있던 설희는 말했다.
“나도 모레는 집으로 돌아갈 예정인데 여기 집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뿐이라 정말 심심했어. 어디 놀러갈 데도 없고.”
“그래? 그러면 내가 내일 폭포 구경시켜 줄까?”
“납대울에 폭포가 있나? 네가 안다면 같이 가 줄래?”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일 해가 머리 위에 오기 직전에 은행나무 아래서 만나자!”
설희는 말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희미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흔들리는 달구지 위에서 설희와 나는 함께 흔들리며 붉은 석양빛에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어느 덧 마을 앞 삼거리에 도착했다. 할아버지한테 허리 숙여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멀어져 가는 달구지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석양빛도 함께 흔들렸다.
아침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정말 설희가 나올까? 작년에 신설동 집에서 볼 때보다는 훨씬 더 예뻐지고 의젓해 보였다. 큰 어머니가 삶아 놓은 옥수수 두 자루를 싸 들고 일찍 암치 은행나무 밑으로 나갔다. 큰아버지 집은 은행나무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었다. 은행나무 주위를 천천히 두 세 바퀴 돌았다. 수 백 년은 됨직한 은행나무는 중간에서 세 줄기로 뻗어 올라갔다. 나무 타는 데는 이골이 난 나는 거침없이 나무 위로 올라가서 줄기 사이에 앉아 밑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말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 설희를 마음 속으로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갈래 머리를 하고 파란 바탕에 하얀 물방울 무늬가 있는 치마를 입고 흰 브라우스를 입은 설희가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나무 위에 있는 줄도 모르고 나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 찾아봐라!” 내 목소리에 놀란 설희는 차마 내가 그 큰 은행나무 위에 올라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는지 밑에서만 빙빙 돌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고 나를 찾은 설희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높은 데를 올라갔니?”
“높이 올라와야 네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볼 수 있잖아!”
해가 머리 위에 오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남아있었다. 나는 설희를 데리고 미루나무가 여러 그루 장대모양 서 있는 개울가로 갔다. 졸졸졸 명랑하게 흐르는 개울가 숲길을 걸어 올라갔다. 강아지풀을 뜯어서 줄기를 반으로 잘라 양쪽으로 벌린 뒤 코 밑에 붙였다. 설희가 깔깔대며 말했다.
“코 밑에 수염이 나니까 정말 할아버지 같다.”
“응, 할아버지가 맞지. 이 할아버지가 설희는 착하고 예쁜 아이니까 꽃반지 하나 만들어 주지.”
길옆에 토끼풀 꽃줄기를 꺾었다. 하얀 꽃 하나, 분홍 꽃 하나. 줄기를 손톱으로 반을 가르고 다른 꽃줄기를 그 사이에 집어넣으면 하얗고 붉은 두 개의 꽃술이 모여서 두 개의 봉오리처럼 보인다. 하얗고 긴 설희의 가운데 손가락에 꽃반지를 올려놓고 매어주었다.
“아이- 예쁘다. 나 이 반지 오래도록 가지고 있을 거야!”
설희는 팔짝 뛰며 좋아라 했다. 내가 넌지시 말했다.
“꽃반지는 네가 나에게 준 초콜릿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해줘.”
우리 둘은 개울물로 내려와서 개울을 거슬러 올라갔다. 조그만 돌을 들추면 그 아래서 가재가 도망갔다. 고무신을 벗어서 피라미도 잡아보며 놀라서 도망가는 개구리 소리에 우리도 놀라곤 했다. 물밑에는 동글동글 조약돌들이 물이끼가 덮여서 미끄러웠다. 설희는 어느 순간 미끌 넘어질 듯이 비틀거렸다. 순간 내가 설희 손을 잡아주며 손가락에 있던 꽃반지가 물위에 떨어져 떠내려갔다. 설희는 떠내려가는 꽃반지를 잡으려고 허리를 굽히고 손을 뻗었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말했다.
“떠내려가게 그냥 두어. 잡으려다 넘어질 수도 있어. 꽃반지는 얼마 지나면 시들지만 네 마음속에 남아있는 꽃반지는 영영 시들지 않을 꺼야.”
설희와 나는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텀벙텀벙 개울물을 걸어 올라갔다. 양쪽으로 큰 바위가 있고 그 사이를 지나가자 작은 폭포의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소나무 숲 사이를 흘러온 물이 절벽을 만나 폭포를 이루며 시원하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물가에 앉아서 내가 가져온 옥수수를 하나씩 사이좋게 먹었다.
설희가 갑자기 말했다.
“큰일났다. 시간이 많이 지났나봐. 할아버지가 너무 오래 나가있지 말고 빨리 들어오라고 하셨거든. 자 서둘러 집에 가야겠다.”
오는 길은 개울을 피해서 솔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빨리 걸어서 왔다. 오면서 내가 물었다.
“설희야, 너는 내년 방학에도 여기 올거니?”
“그럼 나는 매년 여름방학이면 할아버지 할머니 만나러 납대울에 오니까, 우리 내년 여름에도 다시 만나자!”
“그래 꼭 만나.”
뻐꾹새 소리가 ‘뻐꾹 뻐꾹’하며 우리 뒤 숲속에서 들려왔다.
설희와 헤어지고 다시 일 년이 지나가고 여름 방학이 되었다. 설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을 안고 납대울 큰아버지 집에 왔다. 다음 날 큰어머니가 이웃집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얼마 전에 설희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서 힘들게 살고 계셨는데 서울 사는 아들이 어제 할머니를 서울로 모셔갔데요. 잘 된 일이지요. 살던 집도 아마 팔렸다지요.”
나는 힘없이 집을 나와 개울가로 갔다. 개울물 위로 꽃반지가 떠내려가는 것이 보이는 듯 했다. 설희하고 같이 앉아있던 개울가에 앉아서 손에 잡히는 대로 돌멩이를 집어 개울에 던졌다. 던질 때마다 돌이 떨어지면서 ‘첨벙‘소리를 냈다. 나는 종일 하염없이 돌멩이를 던져댔다. 첨벙! 첨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