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 을축 병인 정묘...등으로 시작해서 신유 임술 계해까지 두 글자씩 60개의 간지 글자가 이어지는 육십 갑자는 우리말 속에 제법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다. 육십갑자 동방삭, 육갑 떠네 등이 그 것들이다. 그런데 이 육십 갑자는 사실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인정받고 있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수메르 수학과 깊게 연관지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육십 갑자는 10간과 12지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60개의 경우의 수로서 간단히 말하면 10진법과 12진법의 조합이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10진법은 아마도 사람의 손가락이 열 개라는 데, 그리고 12진법은 한 해가 열 두달의 순환이라는 데에 그 연원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B.C. 3000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메르 문명은 60진법에 토대를 둔 천문학을 발전시켰다. 한 해는 약 365일인데 이는 60이라는 숫자가 여섯 번 반복되고 남는 우수리 날들로 이루어진다. 이 일부 우수리 날들 때문에 고대 천문학자들은 골머리를 싸매야 했고 역법(曆法)은 그야말로 비밀의 학문으로 자리잡았다.
문명이란 농경에서 나오는 잉여 산출물에 기반하는 것이어서 고대 문명에서 천문학과 수학, 기상학은 신의 대리인으로 행세하던 통치자에게는 권력의 원천이요 비밀의 하이테크였다. 이런 고대 수메르 문명의 60진법은 오늘날에도 엄연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원의 내각은 360도이고 한 시간은 60분, 1분은 60초이다. 하루는 24시간(중국에서는 12시진)으로 12 진법이다. 근대 물리학의 태두인 뉴톤을 배출한 영국도 불과 몇 년전까지 1파운드가 12실링이었다. 영국의 어느 할머니는 1파운드가 10실링으로 바뀌면서 그만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다는 해외 토픽도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12연기설도 실은 인도의 힌두 철학에 원래 있던 것으로서, 사주 명리 이론의 근저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근대 과학이 12진법을 버리고 일률적으로 10진법만을 택하는 바람에 60진법은 일반인들의 뇌리 속에서 희미해져 버렸지만, 이처럼 60진법은 주로 시간과 공간을 재는 단위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음양 오행의 원리에 바탕한 사주 명리학은 결국 60진법에 기초해서 한 인간이 살다 가게 될 시공간을 예측해내는 학문인 바 이는 천문학자들이 어느 해 어느 행성이 어느 지점을 통과할 것으로 예측해내는 것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서양에도 사주 명리학과 그 원리가 사실은 동일한 점성술이란 것이 있다. 독자분들은 과학과 합리의 상징인 서구 나라들은 점성술 같은 데 관심이 없는 줄 아시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 역시 관심이 엄청나다. 예로 미국의 보통 중류 가정에 가보면 두껍고 커다란 성경책이 한 권씩 있는데 그 성경책의 뒷장 여백에는 그 집안 가족들의 생년월일시가 몇분 몇초라는 것까지 적혀있다. 점성술사한테 가서 운명을 물어보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어머니가 자녀들의 생시를 기억하고 있다가 시험이나 결혼 등의 중대사가 있을 때 역술인을 찾아가지만 그들은 과학의 나라답게 아예 태어난 시각을 분초 단위까지 기록해놓고 있을 정도다. 미국이나 유럽의 정치 및 재계의 지도자들이나 그 부인들 역시 유명한 점성술사와 인연을 맺고 수시로 운세를 자문받는데 이런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은 우리와 거의 동일하다.
육십 갑자가 수메르나 인도 문명과 접해서 중국에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자체 발생적인 것인지는 알 길이 현재로서는 없다. 중국의 학자들은 육십갑자가 생겨난 기원을 대략 B.C. 2200 년경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당시 중국도 천문학이 상당한 발달하고 있었다.
동시에 육십 갑자는 미학에서 말하는 황금 분할과도 적지 않은 연관을 갖고 있다. 황금 분할은 가장 아름다운 수치적 균형으로서 1 : 0.618 이 그 비율이다. 60 과 61.8 은 근사치이며 우리가 실생활에서 응용하는 것은 오히려 60이다. 흔히들 ‘6:4 로 우세하다’라는 말을 하는게 그 예다.
이제 독자분들도 육십 갑자가 사실은 극동 세계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의 오래된 문화이자 지혜라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챘을 것으로 믿는다.
사주 명리학의 기본 이론 체계인 음양오행설은 사주 명리학뿐만 아니라 중국문명, 나아가 동아시아 문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음양오행에 대한 이해가 없이 동아시아 문명을 이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나 결과도 그것은 바깥사람의 인상(Image)일 뿐, 동아시아 문명 속으로 들어가 그 심층 결구를 들여다 본 것이라 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인이란 동아시아 문명을 접하는 서구의 학자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한국에서 태어나 우리말을 쓰면서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는 국사학자일 수도 있다.
음양오행에 대한 이해없이 동아시아 문명을 연구한다는 것은 비유컨대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면서 기독교를 알 뿐, 그리스 사상을 모르는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유교와 음양오행은 중국 문화의 양대 지주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예수 역할을 맡은 공자의 가르침은 이미 중국 진한 시대에 와서는 생명력을 상실하고 유학자들 역시 음양오행을 그들의 기본 이론 체계로 받아들였다.
유교가 중국 문화의 상층에 자리잡았다면 음양오행은 중국 문화의 기층을 이루고 있다. 유교가 중국 문화의 정신이라면 음양오행은 중국 문화의 몸이다.
음양오행설은 엄밀한 견지에서 중국 문화의 주도권을 행사했던 서주(西周) 사람들이 동이(東夷)라 부르던 사람들로부터 기원하고 있다. 따라서 유가의 경전인 주역(周易)과 음양오행과는 그 기원이 다르고 이론 체계도 다르다.
그래서 사주 명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역술인(易術人)이라 부르지만 물론 틀린 말이다. 아울러서 무속(巫俗)과 사주 명리 또한 엄연하게 다르다. 무속은 음양오행을 넘어서 있는 인류의 오래된 문화이며 그 미치는 범위도 전 세계적이다. 우리 문화는 무속과 음양오행, 그리고 유불도(儒佛道)라는 세 가지 상이한 정신적 뿌리를 이어받은 상태에서 서구 문명과 조우하고 있는 셈이다.
서주 문화권 사람들이 동쪽의 활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붙인 동이(東夷) 사람들은 그러나 중국 문화의 형성, 발전에 있어 엄청난 자양분을 공급했는 바,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을 든다면 음양오행과 신선 사상이다.
훗날의 도교는 이 두 가지가 나름대로 결합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처럼 중국 문화의 기층을 이루는 음양오행 사상은 한 사람에 의해 주창된 것은 아니며, 그 기원에 대해 중국학자들은 다양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대다수 학자들이 음양오행설을 가장 먼저 제시한 사람으로서 ‘추연’이라는 동이 출신의 방사(方士)를 꼽고 있지만 추연 역시 완전한 형태의 음양오행 사상을 제시한 것은 아니며, 정확히 말하면 음양 사상과 오행 사상도 연원이 다르고 오행 사상 역시 그 속에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후에 정리되었다. 그러나 학자들간에 합의를 보고 있는 것은 음양오행 사상이 중국의 한나라 시대에 들어서는 거의 종합된 형태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음양오행설의 기원에 대해 음양오행 사상이 유가의 기본 이론 체계로 들어온 것은 전국 시대를 거쳐 진한(秦漢)에 의해 통일되었을 무렵 유교적 가르침은 지리멸렬한 상태에 놓여 있었던 바, 동중서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유가의 사람들이 제왕의 통치학으로서 춘추 공양전에서 제시된 대통일 사상과 함께 당시 이미 주된 사조로서 자리잡은 음양오행 사상을 편입하면서부터였다.
그 이후 음양오행 사상은 중국 문화의 최상층부터 최하층에 이르기까지 그 절대적 위치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궁궐의 배치나 복식, 관제, 의전 절차, 나아가서 군사 편제 등등 모든 것이 음양오행이라는 틀에 기준하여 제정되고 운영되었으며 중국 문화가 외래의 불교에 맞서 위기감을 느낄 무렵, 새롭게 중국 문화의 혼에 활력을 불어 넣은 송대의 성리학 또한 음양오행 사상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탐구에 바탕을 두었다.
따라서 음양오행 사상은 당연히 우리와 일본, 남쪽의 베트남으로 전해져서 사실상 동아시아 문명과 문화의 핵심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절대적인 위치를 점한 음양오행 사상이 인간의 운명을 점쳐보는 운명학에 영향을 미친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운명을 음양오행이라는 틀을 통해 예단해 낼 수 있다는 생각은 동한 시대의 사상가 ‘왕충’이 지은 논형(論衡)이라는 책 속에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는바 이를 정명론(定命論)이라 한다.
동한 말엽은 조조가 젊었을 무렵 유명한 관상가를 찾아가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효웅’이란 말을 듣고 마음에 들어했다는 바로 그 시대이다. 오늘날 사주 명리학의 출발도 대략 이 때쯤이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궁합이란 무엇인가? (1)
| 기사입력 2002-01-25 10:15| 최종수정 2002-01-2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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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은 원래 다른 글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궁합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게 되었다. 하는 일이 명리학 연구이고 사주 상담이니 궁합 보러 오시는 분들이 적잖이 있지만 난 언제나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궁합이란 거 볼 필요가 없는데 오셨네요.”
정말이다, 궁합이란 것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볼 필요가 없다. 왜 그런가를 이제부터 이야기하기로 한다.
궁합(宮合)이란 부부궁이 서로 합하느냐, 즉 서로 맞느냐를 따져보는 것이다. 예전에는 궁합이란 것이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예전이란 봉건시대를 말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남녀의 자유 교제가 허용되지 않던 시절, ‘남녀 칠세 부동석’이란 말이 문자 그대로 지켜지던 시절이다. 당시 남녀가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성춘향처럼 바람끼 다분한 처녀 정도가 되어야 단오날 그네 타는 핑계로 이 도령을 유혹할 수 있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히 궁합이 중요했다.
오 초시가 자신의 둘째 아들을 친구로 지내는 박 첨지네 맏딸과 결혼시키려고 마음먹었을 때, 신부측의 의향을 존중하는 의미로 사주 단자를 담은 함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이고, 이미 두 집안의 어른이 마음 먹기 전에 아내를 시켜 두 남녀의 사주를 보고 궁합을 보는 게 상례였다.
당시에는 아이의 사주, 즉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양반 계층이 아니면 어려웠다. 산모의 곁에서 출산을 돕는 산파의 중요한 임무 중에 하나가 아이가 태어날 때 그 시각을 기록하는 것이었고 흔히 산파는 재산깨나 있는 집안이 아니면 부르기 어려웠으니 상민들은 아이가 출생해도 새벽 닭이 울 때라든지 새참 먹고 난 뒤라든지, 겨울 저녁 밥 먹기 전에 태어났다는 식으로 기억하기 마련이었다. 지금도 40대 이상의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출생 시각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궁합을 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간에 이끌림이 있느냐를 보는 것인데,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태어난 날의 오행으로 합을 이루느냐를 보는 방식이다. 가령 어떤 총각의 태어난 날이 무자(戊子)이고 처녀는 계축(癸丑)이라면 아주 좋은 궁합이 된다. 천간의 무(戊)와 계(癸)가 합(合)을 이루고 지지의 자(子)와 축(丑)이 합을 이루니 찰떡궁합이 된다. 이 때 천간의 글자간에만 합을 이뤄도 괜찮은 궁합이고 지지의 글자까지 합을 이루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궁합이 된다. 사실 이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궁합 보는 방법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궁합을 보지 않아도 오늘날 사귀고 있는 남녀들의 사주를 보면 저절로 그렇게 궁합이 맞는 사람들끼리 사귀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남녀가 사귈 수 있는 시대에는 따라서 궁합을 볼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그래서 성립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유난히 끌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이럴 경우 두 사람의 사주를 보면 궁합이 맞는다고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궁합이 맞긴 하지만 어느 정도로 잘 맞느냐가 중요해진다. 흔히들 인연이란 말을 쓰는데 과연 그 인연이 어디까지냐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이를 두 사람의 사주로 판단하려면 앞서 말한 일간과 일지의 합을 보는 것은 물론 두 사람의 성격과 기호, 앞으로의 운명을 놓고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두 사람이 상당 기간 이미 잘 사귀고 있고 그 결과 결혼을 하기로 마음 먹게 된다면 고명한 사주 선생을 찾아가 물어볼 필요가 아예 없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이미 저들끼리 시간을 두고 사귀면서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면 이미 궁합은 다 맞아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양가 부모님한테 말씀드렸더니, 그때서야 그 부모가 궁합을 보러 간다면 이는 사물이 전도된 것이다.
즉 일의 앞뒤가 거꾸로 되었다는 얘기다. 사주 선생한테 가서 좋은 덕담이나 듣고 오면 모를까, 궁합을 본 결과 안 좋다고 해서 두 사람의 관계를 끊으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아직도 있는데, 정말 웃기는 얘기다. 실로 블랙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젊은 사람들은 그 부모들이 가진 인생에 대한 시야나 경험이 없으니 걱정이 되겠지만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사위 감이, 그리고 며느리 감이 마음에 안 들면 자신의 자녀와 상의해서 해결해야지, 왜 엉뚱한 사주 선생을 개입시키는지?
심지어는 아주 좋은 며느리 감으로 여기고 있다가 정작 궁합을 보고 와선 얼굴을 싹 바꾸는 어머니들도 있으니 실로 한심한 노릇이다. 만약 이 경우 사주 선생이 ‘예스'하는 상대를 찾아서 결혼시킨다면 그 사주 선생이 그 결혼의 앞날을 보장한다는 책임 보험까지 들어준다면 몰라도 말이다.
할 얘기가 좀 더 남았으니 다음에 이어서 궁합에 대해 쓰기로 한다.
지난 주에 이어 궁합 얘기 계속 하겠다.
요즘엔 난데없이 속 궁합이 중요하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속 궁합이란 말은 저번에 이야기했던 궁합 보는 법 중에서 두 사람의 일간(日干)이 아니라 일지(日支)를 맞추어 본다는 뜻으로 쓰던 말이다.
명리학에서는 천간의 글자들을 그 사람의 외표(外表)라 하고, 밑에 있는 글자들을 내리(內裏)라 해서 안과 밖을 구분하는데 가령 무자(戊子)일의 남자와 계축(癸丑)일의 여자라면 태어난 날의 지지(地支)에 있는 자와 축의 관계를 본다는 뜻이다.
그 사람의 속이니 속 궁합이라 하는 말인데 최근에는 그것을 두 사람의 성적인 이끌림으로 해석하면서 마치 겉 궁합이 좋아도 속 궁합이 나쁘면 부부의 성 관계에 문제가 있는 식으로 얘기를 하면서 사람들을 들뜨게 만드는 경향이 많다.
물론 사주를 보면 그 사람이 성적인 방면에 감각이 있는지, 정력은 강한지, 바람기는 또 어떤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일지간의 이끌림만으로 그 부부의 성적인 만족도를 단정짓기는 어려우며 부부의 성 관계는 사실 정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인 문제에 속한다. 애정이 좋으면 당연히 성 관계도 좋으며 횟수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최근 속 궁합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섹스가 난무하고 있는 오늘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각설하고, 결혼해서 잘 살고 못 살고는 상대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 글을 쓰는 근본 의도이다. 결혼이란 대개가 20대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하게 되는데, 이미 그 나이면 그 사람의 인성이나 성향, 가치관, 취미 등등이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결혼 상대방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자연히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반영하고 있다.
용모를 중시하는 남자는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대로 미모의 여성을 택할 것이고, 돈을 중시한다면 돈에 비중을 둘 것이다. 적극적인 성격의 상대를 좋아한다면 적극적인 상대를, 조용한 성격을 좋아한다면 그런 사람을, 이런 식으로 오늘날처럼 개방된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상대를 만날 확률은 이미 충분하다. 늦도록 결혼하지 않는 것도 사실은 그 사람의 성격이기도 하며 운의 영향이기도 하다. 모두가 선택이다.
여기서 운명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는데, 명리학에서 보는 운명이란 이미 주어져 있는 것과 선택의 조합이다. 운명이란 따라서 절대적인 주어진 프로그램(pre-defined program)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처한 환경에서 선택을 해 가는 것, 그것이 운명이다. 다만 명리를 알면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를 알아낼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도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제 뜻대로 가는 것이지만, 그 뜻이 어디에 있는 가를 사주 팔자는 말해주고 있다.
결혼을 앞둔 부모들의 심정은 한결 같다. 자녀가 탈없이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혹시나 자기 아들이, 그리고 자기 딸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겠지만, 자녀라도 다 나름의 개성과 인격이 있기에, 예전처럼 맞선보고 얼마 안 되어 결심을 내리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교제를 하고 이미 궁합까지 다 맞춘 상태에서 다른 이유도 아니고 궁합이 안 좋다는 말 한마디에 둘 사이를 갈라 놓겠다는 발상은 실로 어리석음의 소치라 할 것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모든 것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자신이 살면서 아쉬운 점을 자녀에게 보충하려는 심리는 인지상정이라 하겠지만 그같은 심리적 투사(projection)는 오히려 자녀의 앞 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확률이 더 크다. 슬하에서 자랐다고 해서 인생관이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잘 살고 못 살고는 다 제 팔자 소관이다. 살다가 이혼하는 것도, 돈을 못 벌어 궁상을 떠는 것도, 자식이 없는 것도 모두 제 팔자에 있는 것이지, 상대를 잘 만나 인생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법은 결코 없다. 유취상종(類聚相從)이란 말이 있다. 쉽게 말해서 끼리 끼리 모인다는 말이다.
따라서 모든 결혼은 균형을 이루게 마련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손해보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가난한 집 아들이 부잣집 딸과 결혼함으로써 생겨나는 갈등 같은 것은 여전히 흔하고 진부한 드라마의 주제로 반복 등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나름대로 당사자간에 균형이 잡혀 있는 것이며 또 있을 수밖에 없다.
다음 번에는 인연이란 과연 무엇이며 왜 인생사에 있어 이합집산을 만들어내는 운명적인 힘이 무엇인가에 대해 명리학적인 시야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인연과 운세의 변화 - 충(衝) <1>
| 기사입력 2002-02-08 10:13| 최종수정 2002-02-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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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이란 말은 원래 불교 용어지만 우리말 속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고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말이란 체험의 표상이니 우리 국민 정서 속에는 인연에 관한 체험이 진하게 녹아 있다는 뜻이 된다.
만나고 헤어짐, 어떤 계기의 촉발과 어떤 일의 생성과 소멸을 우리들은 인연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인연이란 말 속에는 운명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져 있다. 이 같은 운의 변화, 운명의 변화는 어떤 틀 속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그것을 명리학에서는 충(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충이란 천문학에서 지금도 사용하는 용어로서 영어로는 opposition 이다. 어떤 행성이나 위성 등이 지구에서 볼 때 태양과 정반대의 위치에 오는 것을 말한다. 태양과 천체의 황경의 차가 0 °가 될 때를 가리키는 합(合)에 대응된다.
달은 충의 위치에서 만월(滿月)이 되는데, 이 때를 망(望)이라고 하며 바로 보름이다. 충이나 합이란 천문학 용어를 명리학에서 그대로 사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예전에 천문을 관찰하던 사람들이 바로 음양 오행학의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개의 글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충이란 서로 반대의 위치에 있다는 뜻이고 반대란 바로 대극(對極)을 의미한다. 사물이 정반대되는 위치에 있을 때 서로의 개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충이란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 있어 반대되는 요소가 전면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일에도 내부 모순이 있기 마련이고 그 모순이 충되는 위치에 이르게 되면 표면화된다는 뜻이다. 명리학에서 충은 운의 순환 과정에서 일곱 번 째 되는 자리에 이르게 되면 만나게 된다.
예를 들겠다. 올해 2002년이 임오(壬午)년이니 만으로 6년 뒤, 햇수로는 7년 뒤인 2008년 무자(戊子)년에 가서 충을 만나게 된다. 이 해에 가면 임(壬)과 무(戊)가 충을 만나고 오(午)와 자(子)가 충을 만나게 된다. 임은 음양 오행상 물이고 무는 토이다. 오는 불이고 자는 물이다.
6년 뒤, 즉 7년차에 이르러 천간은 토가 물을 누르고, 지지에서는 물이 불을 누르게 된다. 이처럼 충은 서로 상극되는 힘끼리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만물은 6을 지나 7이라는 숫자에 가서 일대 전환의 계기를 맞이한다는 것을 음양 오행은 말해주고 있다.
이같은 충의 원칙은 꼭 6년이 아니라 보다 작은 시간적 스케일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루는 12시진이니 6시진, 즉 12시간이 지나면 충을 맞이하므로 밤과 낮이 바뀐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생겼을 경우 6일이 지나 7일차에 가면 일단 변화가 생기고, 6개월이 지나 7개월째가 되면 변화를 맞는다. 모든 일이 6시진, 6일, 6개월, 6년이라는 시간 단위를 지나면 변화를 맞이한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운의 변화와 인연의 이합집산을 만들어내는 커다란 동력원이다.
흔히들 결혼 7년차가 되면 권태기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충운을 만났기 때문이다. 사실 강렬한 연애 감정도 만 6년이 지나면 쇠락기로 접어든다. 나무는 양력 2월이 되면 뿌리에서 수분을 빨아올리기 시작해서 3개월이 지난 5월에 이르러 만개하기 시작하고 8월에 접어들면 이미 뿌리에서의 물 올림을 중단하고 그 때부터 잎새들은 쇠퇴하기 시작해서 11월에 가서 낙엽으로 변한다.
이처럼 크게 나누면 6개월, 세분하면 3개월 단위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이 모든 것이 지구의 공전 운동에 기초한 자연의 흐름이다. 지구상에 사는 인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서구 과학의 결정적인 맹점은 인간을 자연과 격리시켰다는 점에 있다. 이를 동양 철학에서는 물아(物我)가 분리되었다고 한다. 대상과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가 하나임을 부정하고 대상만을 분리해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이 유럽의 기계론적 우주관을 형성한 바탕이다.(이 점에 대해서도 나중에 별개의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6을 지나 7에 이르러 만물이 변화를 맞이하는 이 충의 법칙을 알아두면 살아가는 데 있어 대단히 요긴하게 응용할 수 있다. 다음 글에서 충의 작용에 대해 좀 더 알아 보기로 한다.
저번에 이어서 충의 작용에 대해 좀 더 알아 보기로 한다.
기본적으로 운의 순환은 12라는 숫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년 열두달 뿐 아니라 12년 주기에서부터 작게는 12 일 주기, 12시진(24시간) 주기가 있다. 그리고 12로 이루어진 주기가 다섯번을 순행하면 60, 즉 60갑자가 된다. 충이란 12의 절반 지점에서 반대의 흐름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해가 뜨면 지듯이 천지 자연의 기본 흐름이다.
그런데 충의 작용은 거시적인 것에서부터 미시적인 일상사까지 광범위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먼저 대국적인 차원의 일부터 실례를 들어 보고자 한다.
히틀러가 일으킨 2차 세계대전은 1939년에 시작되었지만 사실상 히틀러의 군사적 모험은 1936년 프랑스와 독일 국경 지대에 위치한 라인란트 지역을 강점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수많은 역사가들도 독일의 라인란트 진주를 유럽의 정세를 뒤바꾼 결정적인 사건이었다고 인정하고 있는 바, 그 이후 히틀러는 군사적 모험에 재미를 붙여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폴란드를 침공했으며 프랑스를 전격전으로 격파한 뒤 러시아로 들어갔다가 1942년 겨울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퇴하면서 그의 군사적 성공은 막을 내린다. 그 기간은 6년이었다.
동시에 1939년에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은 1945년에 막을 내리는데 그 또한 6년간의 전쟁이었다. 덧붙여 애기하면 히틀러는 1921년 나찌스 당수의 자리에 오른 뒤 정확하게 24년, 그러니까 12라는 숫자를 두 번 순환한 뒤에 극적인 일생을 마쳤다.
아울러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이래 정확하게 6개월 뒤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퇴함으로써 군사적 이니셔티브를 빼앗기게 된다. 역사 연표를 놓고 따져보면 6이라는 숫자, 그리고 12라는 순환 주기를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뒤 1979 년 서거할 때까지 집권기간이 18년이었는데 이는 12와 6이라는 숫자로 나뉘어진다. 즉 한 순환을 마치고 절반에 가서 생을 마쳤는데 처음의 한 순환 주기는 1973년에 끝난다.
이는 1972 년 12월 유신헌법을 통과시키고 1973년에는 김대중 납치 사건이 있었던 해다. 즉 박 대통령은 1973년부터 강력한 국민적 반발에 직면했고 유신 정권은 결국 탄생해서는 안 될 정권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충과 관련하여 보다 큰 시간적 차원의 일을 보면 60년의 절반인 30년에 가면 또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이는 12년 주기를 두 번 지나고 맞는 충운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박정희 정권 하에서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것이 시행되었는데 관 주도의 경제 근대화 프로그램으로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우리 나라의 산업화는 30 년 뒤인 1992년에 가서 일단 완성되었으며, 동시에 정권도 군부 정권에서 김영삼 문민 정부로 넘어갔다.
그 이후 김영삼 정권은 신 경제사회 발전 5개년 계획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쓰게 되는데 사실 이 또한 나름의 의미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양적(量的) 성장이 끝나고 질적(質的) 성장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질적 성장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련의 시기를 뜻한다. 양을 늘리는 것은 열심히 하면 되지만 질의 개선이란 갈등과 대립의 요소들이 저마다 최대한의 힘을 쓰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보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수 있다.
김영삼 정권 이후 우리나라는 그간의 문제점들이 모조리 튀어 나오면서 환란(換亂)으로 IMF 사태를 맞이했고, 노사간의 갈등과 계급간의 갈등, 지역간의 갈등, 공직자의 비리와 법의 부패, 남북 문제 등등 사실 질적인 개선을 요하는 문제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신문 지상을 메우고 있다.
이같은 질적 성장 과정은 1992년에 시작된 흐름이니 2022 년까지 30년간 이어질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 사이클의 1/3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1962년에 출발한 양적 성장의 열매가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은 2/3 지점인 1982년부터이고 얼마 후 우리는 '3저 경기'라는 단군 이래 최고의 경기를 맞이할 수 있었듯이, 이번의 질적 성장(이를 改善이라 한다)도 2012년이 되어야 서광이 비칠 것이다.
그렇다면 장차 두 번의 정권은 좋은 얘기를 결코 못 듣는다는 논리가 성립되는데 (왜 저리들 대통령이 하고 싶어서 안달인지 나로서는 사실 이해가 안 간다). 왜냐, 개선의 과정은 양적 성장 과정보다 더 엄혹한 시련과 도전들을 처리해야 하는 탓에 국가적 타협(national deal)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만족스런 해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의 의약 분업은 의사와 약사들의 조직적 저항 앞에서 무릅을 끓은 정부가 그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함으로써 철저히 실패한 케이스로서 반면교사의 노릇을 할 것이고 그 나름으로 의미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다음 번에는 대국적 견지에서의 사례가 아니라 우리 일상사에서 볼 수 있는 충의 작용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겠다.
저번에는 대국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충의 작용에 대해 알아 보았으니,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가령 당신이 금년에 어떤 인연을 만났다 하자. 여기서 인연이란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거나, 연인을 만났거나, 이사를 했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거나 등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말한다. 그 모든 일들이 그 나름으로 당신과 운의 작용에 의해 만나게 된 것이고 그 하나 하나가 모두 생성소멸, 이합집산의 과정을 밟게 되어 있다.
그 모든 일들 또한 6시진(12시간), 6일, 6개월, 6년 단위로 충운을 맞이하며, 경중에 따라 경과 기간이 다르다. 우리들이 흔히 하는 말로 '싫증난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 충의 작용으로서 정반대의 정서적ㆍ신체적 작용이 우리로 하여금 여태껏 몰두해 오던 일에서 흥미를 잃어버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어떤 직장에 들어가면 가급적이면 오래 근무하려고 한다. 생활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연애를 보면 그 라이프 싸이클이 얼마마 짧아지고 있는지 실로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사귄 지 1백 일이 되면 스스로 대견해서 커플링을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줄 정도다. 이만큼 오래 사귀었으니 앞으로 잘해 보자는 뜻이다. 반대로 두 젊은 남녀가 만나서 1백일 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다.
사실 1백일은 3개월 남짓의 기간으로서 사계절로 따지면 한 계절에 불과하다. 그런 커플들도 6개월이 되면 거의 헤어져 버리는 것이 오늘의 세태다. 왜 이렇게 만남과 헤어짐이 빈번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금방 다른 사람을 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만남이 가벼운 세상인 것이다. 쉽게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탓에 금방 실망하고 싫증내고 '내 인연이 아니야' 하면서 그들 말로 '찢어지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인연 탓을 하기에 앞서 서로를 가볍게 교환하는 경박한 세태를 반영할 따름이다. 지금보다 만남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던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으니, 이것만 봐도 운명이란 정해진 프로그램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싫증이 나는 것일까? 간단히 말하면 우리의 생각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생각이 변하는 것일까? 바로 운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정된 인격적 주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고정된 부분은 그 사람의 개성이고 색깔이지만 사실은 매일 매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운의 영향이다. 특히 충운을 만나면 변해도 많이 변한다.
우리의 정서적ㆍ신체적 변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그 작용이 나타나는 시기는 그 사람의 태어난 달, 가령 여름 미(未)월생이라면 축(丑)이라는 글자를 만나는 날이나 월, 해에 가서 가장 심한 변화를 가져온다. 미와 축이 바로 충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태어난 달을 명리학에서는 사령(司令: 영어로 번역하자면 command)이라 해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데 이 사령하는 힘과 정반대되는 운의 작용을 만나니 그만큼 변화가 심하게 오는 것이다. 태어난 달과 충하는 운에서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이사라든지 직장 이동, 해외 이주, 유학 등등 생활에 커다란 전기를 맞이한다.
이같은 변화와 이동 수를 흔히 역마살이라 부르고 있다. 역마(驛馬)란 옛날의 파발마를 말하는 것인데, 오늘날의 용어로 해석하자면 이동성(mobility)을 말한다. 사람에 따라 유난히 이사를 많이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던 자리에 거의 한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사람에 따라 이동성에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그 사람의 사주 팔자에 호기심이 많고 변화를 좋아하는 기운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공직에 근무하거나 한 직장에 오래 일하는 사람은 이사도 비교적 적게 한다. 반면 영업직이나 사업하는 사람은 이사하는 빈도도 잦다. 이동성이 높은 사람은 해외에 나갈 운도 많으며 나가서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세상을 차분하고 안정되게 유지하는 사람들은 전자이고 세상에 변화를 몰고 오는 사람들은 후자에 속한다. 전자의 사람들은 비교적 말수가 적고 보수적이며, 후자의 사람들은 말이 많고 활달하다.
흔히 하는 말로 공무원들을 관료 사회라 해서 복지부동(伏地不動)이라고 야단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복지부동은 좀 심한 얘기겠지만, 공무원은 생각이나 행동이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모든 관료화된 조직에서는 앞뒤를 살피는 처신이 없으면 조직은 불안정해지고 그 개인은 언제 어떤 일로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조직이 있으면 권력이 있기 마련이고, 권력이 있는 곳에 정치가 있는 게 정상이고 상식이다. 그리고 정치란 숫적 우세가 중요한 것이므로 때로는 진실이나 가치가 언제든지 폄하되고 매도될 수 있는 마당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통한 진리다.
흔히 사람들은 미국 CIA 가 모르는 게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미 비대해진 조직으로서 CIA도 일선에서 얻어진 가치있는 정보가 중간 과정에서 필터링을 통해 희석되기가 일쑤이다. 조직의 이해와 개인의 이해가 공공의 이해를 앞선다는 것은 어쩌면 상식이다.
이야기가 약간 옆으로 흘렀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연대별로 펼쳐 놓고 곰곰히 살펴보기 바란다. 그 속에는 반드시 단락이 지는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며, 그 단락들이 대개의 경우 6개월이나 6년 단위로 끊어진다는 것을 확인하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 12 년 주기가 어디서 시작했고 어디서 끝났는지도 한 번 확인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들도 어떤 변화를 가져 오게 될는지도 한 번 점쳐 보시기 바란다.
마릴린 몬로가 주연한 영화 '7년만의 외출'이 사실은 당신의 인생에서도 끊임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것이다.
이것으로 충의 적용에 대한 얘기를 끝내고 다음 번에는 우리나라의 장기적인 국운(國運) 사이클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우리 국운(國運)의 사이클 (1)
| 기사입력 2002-03-02 10:36| 최종수정 2002-03-0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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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4 년 11월 9일, 우리나라 종합주가지수는 장중 한 때 1145 포인트를 기록했었다. 이 수치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으로서 지난 1964년에 시작돼 30년간에 걸친 우리 경제의 성장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1994년 10월은 갑술(甲戌)년, 갑술(甲戌)월이었고, 입동(立冬) 다음날 정점(頂点)을 기록하면서 우리 경제는 내리막길로 들어섰고, 이미 거기에는 환란의 징조가 내포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 경제는 갑술년 갑술월을 하나의 정점으로 분수령을 이루었던 것이다.(지금부터 60이라는 숫자와 그 절반 지점인 30에서 발생하는 충의 작용을 인식하면서 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란다.)
당시는 김영삼 정권 시절로서 세계의 경제 선진국 대열인 OECD에의 가입과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라는 화려한 정치적 수사가 판을 치던 세월이었다. 지구촌의 마이너 리그에서 메이저 리그로 진입한다는 국민적 자긍심이 더 없이 높았던 시기로서, 모든 것이 낙관적이고 경박한 사조가 주름 잡던 시기이기도 했다.
결국 이같은 낙관 무드가 외환 위기를 불러오게 된 심리적 근본 배경이 되었고, 환란은 섣부른 개방과 어설픈 우리의 역량이 만들어낸 한편의 악몽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경고였다, 꿈에서 깨어나라는 계시 같은 거 말이다.
그런 우리 국운은 1994년을 시점으로 30년간의 길고 긴 질적 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질적 성장이란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시련의 시기이고 불운의 시기이기도 하다. 왜 유행가 노랫말에도 있지 않은가. ‘아픈 만큼 성숙하는’ 것이라고, 아프지 않으면 크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호운의 시기도 있고 불운의 시기도 있다. 진정으로 크는 사람은 불운의 시기에 무엇을 배우느냐에 달려있다. 우리 나라도 그렇고 우리 국민도 그렇다.
이쯤해서 지난 세기를 반추해 보자.
1964년 갑진년, 우리 경제가 근대화로 들어선 시점으로부터 60년전인 1904년 갑진년에 러일 전쟁이 발발하고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맺으면서 한반도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손에 넣었다. 당시 황성신문에 실린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은 실로 우리 주권이 저에게 넘어갔음을 알리는 민족적 울부짖음이었다.
그 이후 우리 나라는 1945년 해방을 맞이했지만 또 다시 남북이 갈라지면서 1950년 6 .25 전쟁을 치러야 했고 박정희 쿠데타를 통한 군부 정권 아래서 경제 발전에의 길로 들어선 것이 1964년이었다. 60년간 우리 나라는 실로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 이전 한 갑자(60년)전인 1844년에는 대략 어떤 일이 있었는가 살펴보자. 1840년부터 1842년 사이에 중국의 아편 전쟁이 있었는데, 이는 우리가 대국으로 모시던 청 제국이 종이 호랑이임을 서구 열강들이 완전히 알게 된 사건이었다. 그 때부터 청의 속국 정도로 알고 있던 우리나라에도 1845년에는 제주도에 영국 군함이 탐색차 들렀었고, 좀 있다가 프랑스 군대가 항의 문서를 들이미는 사건, 러시아 군함의 내항, 이런 식으로 열강들의 출몰이 잦아졌다.
급기야 병인 양요와 신미 양요를 거쳐 마침내 재빨리 메이지 유신이라는 기치하에 체제를 정비한 일본이 서구식 군함을 몰고 들어 닥친 운요호 사건이 1875년에 발발했다. 그 이후 1876년 한일 수호조약에 묶이면서 우리 국운은 몇몇 개화적 노력이 무산되고 체제 모순을 질타하는 동학 혁명 등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일로 하향 길을 달 수 밖에 없었다. 아편 전쟁은 중국의 몰락이기도 했지만 같은 시스템 내에 있던 조선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1844년부터 대략 30년(60의 절반)이 지나 한일 수호조약이 체결되고 그로부터 30년 뒤에 을사 보호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이 19세기 후반기의 모습이었고, 1904년 러일 전쟁부터 1964년까지 60년간이 한일 합방, 태평양 전쟁, 해방과 남북 분단과 6.25 전쟁 등등 일련의 질곡들이 이어진 세월이었다. 그것은 장장 120년에 걸치는 몰락의 과정이었다.
그것이 1964년 중흥의 계기가 돌아오니 그로부터 30년간 우리 경제는 근대화되었고 1988년 올림픽과 1994년 종합 주가 지수 1145 포인트라는 기록적 사건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것은 지난 30년간, 즉 60 갑자의 절반 지점에서 발생하는 충운의 작용이었다.
크게 보면 1844년부터 시작된 120년간의 흐름(60 갑자의 두 번 순환 주기)이 서구 열강들의 세계 지배 과정에서 발생했던 치욕의 세월이었다면 1964년부터 120년간은 기본적으로 우리 국운이 뻗어가면서 우리의 자리를 되찾는 발전과 진보의 세월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20년, 즉 두 번의 갑자 중에서 현재 우리는 첫 번째 60년의 절반 지점에서 양적 성장을 끝내고 새로운 발전을 위한 질적 성장(시련의 시기)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24년부터 다시 새로운 양적 성장의 길로 들어설 것이며 그로부터 30년간이 황금 시절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근간에 출생하고 있는 아이들은 사회 진출 단계에서 황금기를 맞이하니 얼마나 복받은 아이들인가! 정말 부럽기만 하다. 이렇게 따져보면 1940-1945 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 역시 행운이었다. 그들은 현재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나이인데, 그 세대는 사실 큰 경쟁없이 사회 각 부문에서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 국운을 좀 더 유장한 시야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1964년에서 600년 (즉 10갑자) 이전인 1364년은 고려 공민왕이 나라를 상당히 부흥시켰고, 그러한 발전의 바탕 위에서 사대부라는 새로운 계급과 새로운 이념이 등장하였으며, 여기에 여진과 왜구 토벌에서 명성을 얻은 이성계에 의해 조선의 개국으로 이어진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처럼 세상은 600년이라는 주기와 그보다 더 큰 1800년 주기로 세상의 운수가 순환하고 있다.(이에 대해 언젠가 다시 재미난 글을 선보일 것을 약속한다.)
따라서 지금의 시련은 발전을 위한 시련이기에 의미가 있다. 즉 희망이 있는 시련, 더 잘되기 위한 시련인 것이다.
그러면 다음 번에는 앞으로의 30년, 즉 2024년까지의 기간들 속에는 어떤 흐름이 이어질 것인지 알아 보고 좀 나아가서 2024년부터 시작되는 황금기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아보기로 한다. 특히 2024년까지의 내용은 우리의 장기 발전 전략에 대해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
저번 글에서는 우리 국운의 지난 날을 알아 보았다. 이번에는 우리 국운의 장래에 관한 얘기가 되니 혹자는 천기 예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로서는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저 1964년부터 시작된 60년 사이클의 후반부인 1994년에 시작된 시련의 시기에 대해 좀 더 말하겠다. 마라톤 코스도 반환점이 있듯이 30년의 반환점은 15년간이다. 즉 2009년까지가 된다. 이 시기의 전반에는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 소위 3김 정치의 시대가 포함되고 나머지는 금년 말에 당선될 정권의 시기에 해당된다.
사실 장거리 경주인 마라톤에서 반환점까지는 승부가 보이질 않는다. 앞이 잘 보이질 않는 시점이니 금년 말에 등장할 정권의 막판까지도 속시원한 정치는 나오질 않을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이 잘못 한다기보다 잘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있다고 봐야 더 옳은 시각일 것이다.
김영삼 정권 이래 어느 하나 잘 되는 것 없어 보이지만 가만히 그리고 너그럽게 우리나라가 변해가는 모습을 반추해보라. 사실은 상당한 변화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김영삼 정권의 치적부터 보자.
첫째, 하나회 정리를 비롯해서 육사 XX기가 힘쓰는 세상이 이제는 어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고 에피소드가 돼버렸다. 둘째, 무리해서라도 OECD 에 들어가면서 메이저리그 대열에 합류했고(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지만), 셋째, 금융 실명제라는 옆 나라 일본도 하지 못하는 엄청난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이로써 자금의 흐름이 투명해졌고 검은 돈 거래도 지대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넷째, 노동법 개정이다. 실로 엄청난 산고를 치렀지만 그 자체는 군부독재 이후 문민 정권이 수행한 최대의 국민적 협상이었고, 그 의미도 크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현 정권의 모습을 보자. 무엇보다 현 김대중 정권의 가장 큰 기여는 사회적 소수(minority)에 의한 정권이 탄생함으로써 한국적 한풀이(?)와 더불어 그만큼 우리의 국민 의식이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물론 거기에는 DJP 연합이라는 정치적 기술이 들어갔지만, 어쨌든 현 정권의 탄생은 역사의 진보가 아닐 수 없다. 따져보면 예전의 미국 카터 정권과도 유사한 점이 있는 현 소수파 정권은 그러나 나름으로 엄청난 과제들에 대해 개혁의 손길을 내뻗었다.
그중 가장 큰 개혁 시도는 소위 ‘벌(閥)’ 체제의 해체라는 엄청난 작업에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군벌은 김영삼 정권 시절에 해체되었지만, 현 정권은 그 자체가 정벌과 특정 지역에 기반했다는 출생적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 언벌, 학벌, 지역벌(이런 용어가 있었나?) 등등에 대한 해체 작업에 손을 댄 것이다.
사실 벌 체제는 어떤 사회의 초기 팽창 과정에서 안정된 권위 체계가 존재하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역동적인 사회적 힘이고 그 나름의 창조적 기능을 수행한다. 아마 우리 사회는 장차 두고 두고 벌의 공과에 대해 논쟁을 벌릴 것이다. 단지 분명한 것은 이제 우리 사회는 벌 체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에는 포퓰리즘(대중 인기주의)라고 비난받던 현 정권이 이제 게이트 시리즈로 인해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지만, 그 근본 원인은 대통령의 힘에 의한 개혁 푸시(push)가 그 방법론적인 미숙함-그 미숙의 정도가 바로 우리의 현 주소이기도 하지만-과 더불어 재벌과 언벌, 학벌들로부터 치열한 반격을 야기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현 정권은 기존의 권위 세력들과 연대해 있지 않은 처지에서 대중적 인기주의로 흐를 수 밖에 없었던 배경도 있다고 여겨진다. 이 점을 깊히 성찰해 보면 차기 정권이 추진해야 할 개혁의 전략과 방법에 대한 힌트는 다 들어있다. 여기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얘기가 아니다.
햇볕 정책만 해도 그 대의(大義)를 누가 감히 부인하겠는가? 정치란 일관된 전략도 중요하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민심의 향배를 달래고 이끌어가는 고도의 전술도 필요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고, 그런 면에서 현 정권은 전술을 구사할 토대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과욕을 부렸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통일의 초석을 놓은 사람으로 기억되고자 하는 공명심만 좀 자제했더라면 얼마든지 야당의 협조를 얻어 국가적 차원에서 일을 진행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 또한 우리 정치와 사회의 현 주소임을 어쩌랴! 정말 어떤 면에서 현 대통령에 대한 일말의 연민과 안타까움마저 느껴지는 걸 또 어찌하랴!
그러면 이쯤에서 김대중 정권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고 차기 정권의 노력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차기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는지는 사실 관심거리도 아니다. 이미 결론이 나 있기에. 다만 그 정권이 수행해야 할 역사적 과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법을 바로 세우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이 바로 강력한 법이다. 원칙보다는 현장 대응주의적으로 강요되고 훈련받아온 우리 국민들은 법이 바로 서면 힘없는 자신만 피해를 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하는 심리가 만연해 있다. 법이 바로 선다는 것은 따라서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소위 빽이나 편의주의가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가 법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인식의 보편화다.
아마도 차기 정권이 법을 바로 세우면 초기에 엄청난 국민적 반발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법대로’한다는 것이 무서운 우리 국민들이기에 먼저 법을 바로 세울 분야를 특정시키는 집중적 노력이 필요한 것은 전략의 기본이다. 가장 파급 효과가 큰 도로교통법부터 바로 잡으면 어떨까?
딱지를 무진장 발부하게 되겠지만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철저하고도 집중적으로 시행하면 국민들의 인식부터 변화할 것이다. 먼저 법이 요지부동임을 알면 국민들은 법 제정부터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 지금의 법은 워낙 고무줄이니 어떤 법이 제정되는지 이해 당사자 외에 아무도 관심없고 그 때문에 쓱싹하기도 더 좋은 세상이지만, 악법도 법일진대 법이 바로 서면 자연스럽게 국민들의 법적인 마인드는 순식간에 고조될 것이다.
법이 바로 서면 모든 세력간의 이해 절충과 협상은 법의 테두리내로 들어올 것이고, 그 때부터 국민적 컨센서스를 이루는 과정도 정상화될 것이다. 손가락 자르고 죽음으로 반대한다는 살벌하고도 유치한 연극판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정권 역시 개혁 대상이 있다고 여겨지면 대통령의 통치권을 발동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왜 국민적 의제로 다루는가부터 정상적인 과정을 밟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차기 정권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다루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정착시키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될 것이다.
법정에서 다루지 못하는 문제는 정치가 해결할 수 밖에 없고 그 정치 역시 결국 사회적 이해가 대립되는 세력간의 합리적인 논쟁 무대와 합당한 절차가 바로 설 때야만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분만 가지고 정권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유치한 발상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고 그만큼의 진보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여타 분야에서도 차기 정권은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겠지만 핵심은 이것이고, 바로 차기 정권의 역사적 과업이다.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다음 정권 역시 인기는 없겠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이해 세력간의 어거지나 어리광은 없어지고 오로지 합법적인 절차와 논리에 의해 자신을 주장하는 좀 더 성숙된 한국이 될 것이다. 따라서 차기 정권은 통큰 사나이가 아니라 통 작고 외골수의 사람이 맡게 된다. 법을 바로 세우려면 쫀쫀해야 하니까.
할 말도 많지만 이만 줄이고 다음 번에는 2009년부터 시작될 시련의 정점에서 희망으로 향하는 발전 과정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저번 글까지 해서 1994년부터 2009년까지 일어났고 동시에 일어날 사안들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 모두 좋은 말로 질적 성장-사실은 시련-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그러면 반환점이 되는 2010년부터 골인 지점인 2024년까지는 앞서의 성과에 기초하여 마치 초봄처럼 시련 속에서도 한 줄기 엷은 서광이 비쳐오는 가운데 2024년 이후에 시작될 한국의 황금시기를 열기 위한 초석들이 차곡차곡 놓이는 기간들이 된다.
어렵지만 희망이 있는 시기에 대해 알아보자.
무려 20년뒤의 일이므로 개략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좋으리라. 세세하게 일정표를 말해봤자 별 관심 없을 터이니. 먼저 새로운 성장의 동력원들이 나타날 것이다. 특히 경제와 문화, 학술 방면에서. 창업주가 아닌 재벌 체제는 왕국은 될 수 있어도 헝그리 정신은 없으니, 탄력을 잃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들은 금융 기법에 입각해서 세련된 경영 관리는 할 수 있지만 창조적 이노베이션은 이미 그들의 몫이 아니다.
지금 우리 벤처들은 창조적 기업가 세력과 혼효하여 얼치기 사기꾼 무리들이 판을 치지만 그 속에 진정한 창조적 소수가 서서히 등장하면서 2010년부터 두각을 나타낼 것이고, 그에 발맞추어 전당포만도 못한 오늘의 은행 시스템이 아니라 모험 자본에 대응하는 기업가적 금융의 맹아도 싹을 틔울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부를 창출하고 거머쥐게 되겠지만 지금 우리 눈앞에는 보이지 않는다.
학술 방면에서는 먼저 인문 교육이 되살아날 것이다. 지금처럼 지리멸렬한 교육 제도는 이미 사망했다. 따라서 새로운 바람이 불 수밖에 없는바, 한문에 기초한 어문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영어 열풍과 균형을 맞출 것이다. 동서를 아우르려면 한문과 영어(좀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라틴어)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인문 없이는 과학도 기술도 없는 것을 마치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대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교육 현실이다.
정권을 맡은 이들은 이같은 바탕 위에서 앞서의 15년간에 걸친 개혁과 투쟁의 산물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특히 문제를 정당한 절차를 통해 다룰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확산 보급으로 비교적 편안하게 안건들에 대해 노력을 집중할 수 있게 되니 질적 성장은 가속화 될 것이다. 그래서 좀 되는 것이 눈에 보이고 국민들도 서서히 힘을 내기 시작할 것이다. 신명나면 못 하는게 없는 우리 국민 아닌가. 그리고 그 때의 대통령들은 인기도 상당히 좋을 것이다. 좀 되는 까닭에.
이쯤 되면 서구에 없는 새로운 문제접근 방식도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한의학에서 적용하는 변증논치의 방법이다. 변증논치(辨證論治)란 아픈 증세를 알아내어 치료 방법을 정한다는 뜻으로서 한의학 고유의 치료 방법론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명리학에서 인간의 운명을 판단하고 예측할 때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의역동원(醫易同源)이란 말이 있듯이 의술과 역학은 한 뿌리에서 발전해 왔다.
한의학에서는 사람의 병을 치료할 때 국부적인 병을 치료하는게 아니라 전반적인 병의 증세를 치료한다고 한다. 이것이 변증논치다. 사람의 병이란 인체내 모든 장기와 조직들의 부조화로 인해 생긴다고 보고, 장기간의 불균형을 맞춰줌으로써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이용하여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한의학의 기본 철학이다. 이에 반해 서구 의학은 폐에 염증이 났으면 그 부분을 직접 공격하여 해결해 버린다. 그래서 외과 수술이 우선이 된다. 즉 문제점을 최대한 좁혀서 포커스를 맞춘 다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인데, 서구인들이 단일 프로젝트에 집중하면 우수한 성과를 잘 내는 이유도 사상이나 문화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물과도 같아서 한 군데를 건드리면 다른 곳에서 반향이 일기 때문에 국소적인 방법은 자칫 끊임없이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물 전체를 조정하고 수리하는 방법은 한의학의 방법이고 보다 근본적인 치료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각자 장단점이 있지만, 우리는 서구식 방법에 대해서는 상당히 익숙해있다. 반면 원래 우리의 방식인 변증논치적인 접근법은 잊고 산다.
변증논치는 전략적인 접근법이고 양의학은 전술적인 접근법인 바, 우리가 저를 따라갈 뿐만 아니라 나중에 앞서 가려면 우리 고유의 보다 탁월한 방법론을 쓰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음양 오행의 원리가 기본적으로 지닌 해결 방법이 바로 한의학에서 말하는 변증논치인 것이다. 우리가 지닌 문제점들, 우리의 발전을 막는 요소들을 관계의 그물로서 파악하고 그물 전체에 대해 접근해가는 변증논치의 접근법이야말로 21세기가 한국의 세기가 될 수 있는 근원적인 해결책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차기 정권의 과제인 ‘법 바로 세우기’는 그물의 구멍난 부분을 조망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아울러서 이야기할 것은 우리 눈앞에 너무나 거대하고 강력해서 한없이 뻗어갈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의 로마 제국, 미국은 역사의 긴 안목에서 보면 이미 지난 1964년, 바로 우리 경제가 힘차게 근대화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던 그 때 정점에 도달했고 지금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1964년은 미국이 월남 파병을 본격화하던 시점으로서 결국 월남전이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식과 달러의 금 본위제 철폐를 가져 오면서 세계는 변동 환율제와 금리 요동 현상을 가져왔고 그 이후 미국은 국민적 구심점 역할을 하던 소련마저 물리치고 이제는 공허하고 불필요한 무력주의와 금융 자본주의를 내세워 나름으로 열심히 애를 쓰고 있지만, 생각해 보라. 이제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은 누구도 쓰지 않는다. 꿈, 즉 비젼을 상실한 체제가 무슨 탄력을 지닐 수 있는지. 상대가 사라지면 이쪽도 사라지는 것이 세상의 정해진 이치인 것을.
그러나 미국은 1964년에서 120 년간, 즉 2084년까지는 그럭저럭 세상 사람들 눈에 여전히 로마제국으로 보일 것이고 특히 전반부인 2024년까지는 상당히 건재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같은 전 세계적 권력의 교체기에 우리 나라는 세종 대왕 이래 최전성기를 열어나갈 것이다. 사실상 2084년부터 미국은 없다. (여기서 너무 먼 얘기를 하니까 좀 공허하게 들리겠지만 그냥 읽어주면 고마울 뿐이다.)
왜 미국 얘기를 하는가 하면 남북이 통일되는 시기가 바로 그 때 2024년경인 까닭이다. 남북은 반드시 하나가 될 것이지만 거기에 도달하기 까지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은 정말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주변 강대국들인 미ㆍ러ㆍ중ㆍ일의 경우 돈은 제외하고 중국만 해도 한국전쟁에서 1백만명이 사망했고 미국도 10만여의 사상자가 났다. 그런 것을 선뜻 남북이 합치는 것을 수긍하겠는가? 바보라도 그렇게는 안 한다.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받으려 들 것이 뻔하지 않는가?
또 북한 김일성 부자 체제의 기득권 세력에게 남북한 통일은 곧 고통이고 상실인데 단순한 햇볕 몇 가닥에 더워서 옷을 벗으리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달콤한 발상이 아니겠는가? 햇볕 정책이 긴장 완화 효과를 가져온 것 만해도 소득은 있었지만 그것이 통일 정책의 전부는 아니다. 단지 필요 조건일 뿐이다.
남북한 통일은 단지 우리 민족과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짧게는 냉전 체제의 최후 마무리요, 길게 보면 1844 년 아편 전쟁으로부터 본격화된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드디어 멈추는 지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북 통일은 그만큼 지난한 문제이며 동시에 우리의 역량을 총 집결하여 해결해 나가야 하는 거대한 과제인 것이다.
그 본격적인 해법은 미국이 비틀거리기 시작하고 중국이 좀 더 멋을 부릴 시점, 일본이 더 이상의 팽창주의를 포기하는 시점, 러시아가 패권주의가 아니라 진정으로 동아시아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시점들이 맞물리면서 상승효과를 보일 것이니 실로 우리 외교 역량의 기념비적인 금자탑이 될 것이다.
우리 국운의 사이클을 마치면서 하고픈 이야기가 있다. 역사가 느린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급할 뿐이다. 역사는 자기만의 정확한 시계 바늘로 일분 일초도 틀리지 않고 시간의 화살표를 따라서 진행하고 있다. 채칵채칵, 이제 역사의 시계 바늘 소리가 들리는가?
기사입력 2002-03-15 10:01| 최종수정 2002-03-15 10:01
의역동원(醫易同源) ①
| 기사입력 2002-03-22 10:37| 최종수정 2002-03-2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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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사주 팔자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지 또 장차 어떤 병을 앓을 수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수천 수만 가지 병세를 다 맞힐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 사람이 체질적으로 어디가 약한지 그리고 만나는 운에 따라 어떤 부위에 병이 발생할 수 있는지는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스스로도 그것이 너무 신기해서 더욱 더 호기심이 발동되었고, 한의학의 여러 서적들을 섭렵하게 되었다. 한문과 중국어를 좀 익혀둔 덕분에 책을 볼 수 있었고 책을 보다 보니 어문 실력이 더욱 늘었다. 내경(內經)과 상한론(傷寒論), 천금방(千金方), 동의보감 등등 적지 않은 서적들을 읽게 된 것이다.
한편 등에 담이 심해서 침구 치료를 중국 하얼빈의 교포 선생님으로부터 몇 개월 받으면서 침구를 어설프게 배운 것이 계기가 되어 더욱 한의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여기서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 까닭은 인간의 운명을 말해주는 명리학과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한의학이 정확하게 같은 이론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인데, 그것이 바로 음양오행(陰陽五行)이다.
의역동원(醫易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의술과 역술은 같은 근원에서 나왔다는 얘기인데,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의 사주를 봐 주고, 또 한의학 책을 읽어 오면서 깊게 체험한 것도 이 점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오늘날 한의학은 중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학문이지만, 불과 50년전만 해도 한의학은 미신적인 치료법으로 매도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주로 중국의 근대 계몽사조를 대표하는 양계초와 같은 사람들의 소행인데, 원래 계몽사조란 것은 위험에 처한 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 과거를 깡그리 부정하는 우를 범하기 마련이다. 연초에 프레시안에서 '토지'의 작가 박경리님과의 대담 기사를 게재한 것을 봤는데, 박경리님은 계몽 사조에 대해 대단히 분개하시고 계셨다. 빙긋이 웃으면서 동감했다. 하지만, 일이란 것은 언제나 지나치기 마련이고 지나쳐야 되돌아 오는 법이다.
또 한가지 필자가 재미나게 느끼는 사실은 한의학은 그렇건만 명리학은 여전히 미신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점이다. 명리학이 미신으로 취급받기 시작한 것 역시 아직 100년이 되지 않는다. 명리학은 일제에 강점당한 1910년까지 엄연히 과거시험의 한 분과로 들어가 있었다. 음양과속에 천문, 지리와 함께 명과(命科)라고 해서 명리학에 밝은 사람을 정부에서 채용했다. 속설이지만 배우기 쉬운 당사주라는 것은 민간에 널리 전파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초 교양이 부족하면 익히기 어려운 명리학은 명과에 급제한 관원들이나 학문이 깊은 선비들이나 연구할 수 있는 분야였다.
그러면 한의학과 명리학이 어떤 점에서 같은지 좀 더 들어가 보기로 하자.
먼저 '내경(內經)'이란 책을 간단히 소개한다. 내경은 소문(素問)과 영추(靈樞)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자는 이론이고 후자는 침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 소문은 중국 전국시대에 지배 사조로 자리잡은 음양오행 이론에 바탕하여 그후 수 백년 간에 걸쳐 보완 발전된 의학 이론서로서, 한의학의 핵심적인 이론 체계를 담고 있다.
필자는 예전에 명리서를 읽고 연구할 때, 중국 건륭제 시대에 편찬된 사고전서(四庫全書) 속에 들어있는 명리서 들까지 죄다 보았지만 크게 얻는 바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내경'을 읽고 나서 비로소 눈을 열게 되었다. 내경은 한의학의 보전(寶典)이지만, 그 이론을 인생의 일을 살펴보는 명리학에 적용하면 실로 신통한 바가 있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고, 나아가서 내경의 이론들이 가진 함의(含意)를 제대로 응용하면 세상의 일들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경의 주요 이론을 크게 나누면 인체의 오장 육부가 각각 음양 오행에 배속된다는 장상론(臟象論), 인체의 기운이 오르내리고 외부 세계와 상호 연관된다는 승강출입설(昇降出入說), 특히 그중에서도 수화상교(水火相交)에 관한 이론, 인체를 소우주로 파악하고 각 장부의 기운이 서로 연동되어 상호 견제하거나 도와주는 작용을 한다는 정체항동관(整體恒動觀) 등을 들 수 있다. 내경의 중요한 이론은 이외에도 많지만 여기서는 이만 다루기로 한다.
그러면 명리학의 기본 이론은 무엇인가 간략히 살펴보자.
기본 이론은 기운이 강하면 그 강한 기세를 이끌어 주어서 공(功)을 이루게 하든가 아니면 적당히 견제해서 균형을 맞춰 주어야 한다는 중화관(中和觀)이다. 이 또한 내경의 중화관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또 하나 명리학의 주요 이론은 오행의 기운은 끊임없이 유통하여야 좋다는 유창관(流暢觀)인데 이는 낳고 또 낳는 것(生生)을 역(易)이라 하고 도(道)라고 하는 주역 사상이자 내경의 근본 사상이기도 하다.
이와 연관되어 파생되는 이론으로서 통관(通關)이라는 이론이 있는데 사람의 사주 팔자 속에서 목(木)이 화(火)를 낳고 화가 토(土)를 낳는데 이 경우, 화(火)가 결여되어 있으면 연결 고리가 없는 탓에 생생의 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운에서 화를 만날 때 그 사람의 일이 번창한다는 이론이다.
아울러 주요한 이론으로 조후(調喉)라는 것이 있다. 이는 온난한습(溫暖寒濕), 즉 따뜻하고 추운 것, 건조하고 습한 것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것으로, 일종의 기후와 풍토에 관한 것으로서 내경에서 말하는 수화상교의 이론과 기운의 승강출입 이론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예를 하나 들면, 오행 중에서 수(水)는 인체의 생식기와 관련되는데, 여성의 경우 남성과 달리 생식기관들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교묘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여성의 경우 더운 여름에 태어난 분들은 사주팔자 중에서 물의 기운이 약하거나 부족할 경우 예외 없이 신장 기능은 물론 생리 불순, 냉대하, 자궁이나 난소 등의 기관에 이상을 가지고 있다. 수기가 부족한 형태도 다양한 까닭에 병의 원인이나 종류도 지극히 다양하게 나타난다. 필자는 이 부분에 관한 자료들을 오래 전부터 수집하고 연구하여 왔는데 언젠가는 책으로 남길 생각이다.
필자가 느끼기에 명리학을 깊이 공부하려면 한의학 서적들, 특히 '내경'이야말로 보전중에 보전으로서 실로 아무리 연구해도 지나침이 없는 텍스트로서 권하고 싶다.
장경악이라고 중국 명대의 고명한 의사가 있었는데, 이런 얘기를 했다.
“조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상생(相生)함이 없어서도 안되지만, 상제(相制)함이 없어서도 안된다. 상생하지 못하면 발육될 수 없고, 상제되지 못하면 지나쳐 화를 입는다.”
의술의 핵심 이론이기도 하지만 필자가 사람의 사주팔자를 볼 때도 가감 없이 적용하는 이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이 논리가 사람의 병을 고치거나 사람의 운명을 내다보는 데에만 쓰이는 것일까?
상생함으로써 발육시키고 상제함으로써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이치는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의 장점을 발전시켜 주고, 너무 버릇이 없거나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보이면 야단을 치거나 벌을 주는 것은 만고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흔히들 야단치거나 매를 들지 말라는 신식 교육 이론들이 등장하곤 하지만, 과연 세상에 아이를 벌 주거나 매 한 대 대지 않고 키울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단 말인가.
모든 일에는 기세나 유행이란 것이 있어서, 가만 두면 지나치게 되어 있는 법이다. 열심히 하다 보면 나중에는 지나치기 마련인 것이다. 저번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계몽 사조란 것이 결국 지나치게 옛 것을 부정한 까닭에 마침내 스스로의 정체성(identity)마저 부인하는 우를 범하는 것도 이런 이치다. 이와 관련해서 할 말이 하나 더 있다.
19 세기말, 서구 열강들이 도도하게 전 세계를 휩쓸어 가는 과정에서 위기를 느낀 한ㆍ중ㆍ일 삼국은 저마다 대책을 내놓았다. 우리는 동도서기(東道西器)란 말을 썼고, 일본은 화혼양재(和魂洋才), 중국은 중체서용(中體西用)이란 말을 썼다. 뜻을 보면 이런 말이다. 주체성을 잃지 않는 가운데, 서양의 신식 기술을 적극 사용해서 나라를 부흥시켜 보자는 말이다. 그러나 그 점에서 성공을 거둔 나라는 일본 밖에 없다.
왜 실패했을까? 수없는 이론과 주장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핵심은 이렇다. 서양의 기술은 서양의 문화적 전통 위에서 발전되어 온 것이기에 문화적 체험 세계가 다른 동아시아 나라들이 서양 기술을 제대로 써먹기 위해서는 서구 문화에 대한 이해와 그것의 발전적 수용 과정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 문화 속에 체화(體化)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동아시아 문화의 인력권에서 비교적 변방에 속한 일본은 서양 기술을 도입하여 비교적 쉽게 체화하는 과정을 밟을 수 있었지만, 우리나 중국은 그렇질 못했다. 그렇기에 근대화 또는 서구화는 일본, 한국, 중국 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근대화, 서구화란 말에는 어폐가 있다. 지금 우리나 일본, 중국이 거치고 있는 과정은 서구화도 아니고 근대화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서구 문화의 발전적 수용과정, 즉 체화 과정이라고 봐야 옳다. 하지만 한번 우리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린 마당이라, 그 과정은 엄청난 폐단을 낳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지금 대학 갈 때 보는 수능시험, 바로 수학능력시험은 미국의 SAT(Standard Achivement Test)를 그대로 번역한 말이데, 제도 도입도 거의 번역 수준을 넘어서질 못하고 있어, 그 폐단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왜 그럴까 대충 살펴보자.
미국이란 나라의 기본 사상은 모든 이에게 기회의 균등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이는 미국 헌법 조문에도 실려 있다. 따라서 대학 들어오겠다는 사람은 쓰고 읽는 기본 소양만 있으면 문호를 널리 개방해서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기에 수능 시험의 난이도는 평이하며 학생을 가르친 고등학교 선생들의 평가를 오히려 중요한 판단 자료로 쓰고 있다.
즉 싹이 틀 가능성이 있는지만을 확인한다. 그 어린 묘목들 중에서 될성부른 나무를 키워내는 것은 대학의 몫이 된다. 따라서 엄혹한 교과 과정이 수반될 수밖에. 그러나 교육이란 엘리트만 키워내는 것이 아니기에 소위 엘리트는 사립 명문 고등학교가 있고 공립을 나왔어도 명문 대학에서 철저하게 확인하고 평가한다. 그래서 명문 대학, 명문 학과를 들어가도, 어느 교수에게 배웠는지, 어느 스터디 그룹에서 공부했는지, 학점은 어떤지를 철저히 구분하고 옥석을 가려낸다. 결국 몇 학번이냐, 어느 명문 대학, 명문과, 명교수의 지도 여부, 전통있는 스터디 그룹인가에 따라 입사할 때 연봉도 천차만별이다.
기회의 균등이란 어떤 면에서 냉정하고도 철저한 평가 과정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우수한 학생이 배경이 모자라서 밀리는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철저한 일련의 평가 과정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서는 어려운 것이다. 대학도 얼마나 우수한 학생을 키워냈느냐에 따라 해마다 점수가 주어지는 미국이다. 그러한 과정이 엄정하고 공평한 것은 미국이 기본적으로 청교도적인 윤리의 바탕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에게 ‘공정하지 않다’(unfair)는 말은 최대의 항의를 나타내는 말이다. 공정하지 못한 것에 설움과 압박을 느낀 유럽인들이 도망쳐 와서 만든 미국이기에, 그 생명력과 탄력은 한마디로 말해 공정성(fairness) 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미국이 최근 별로 공정(fair)하지 못한 행동을 대국이랍시고 버젓이 하고 있으니 정말 심상한 일이 아니다. 시쳇말로 맛이 갔다고나 할까!
수능 제도 뒤에는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연유하는 그들만의 하부 제도와 장치들이 작동되고 있다. 그것을 우리의 몇몇 고명하신 박사님들이 미국에 가서 그 제도를 보고 이 땅에다 옮겨 놓았으니 얼마나 문제점이 많겠는가 말이다. 수능을 도입해 놓고 언제까지고 미봉책만을 연발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나아가서 비단 이런 문제점이 수능에만 그칠까.
이는 청일전쟁에서 청 해군이 일본 함대와 결전을 벌일 때, 프랑스식 대포의 작동법은 알았지만 대포를 정비하고 부품을 조달하는 하부 체제가 정비되지 않았던 탓에 제대로 쏴 보지도 못하고 괴멸한 것과 사실은 동일한 이치다. 체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어설픈 중체서용의 비극적 결말이었다. 그러기에 다른 산의 돌(他山之石)을 가져다 쓸 때는 이 쪽의 충분한 수용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자칫 우리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도 청 해군 꼴이 나지 않을까 정말 두렵다.
정체성에 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약간 옆으로 흘렀다. 다시 한의학과 명리학의 관련에 관한 얘기로 돌아가겠다. 한의학의 소의 경전인 내경의 이론에 바탕하여 병을 치료하는 법을 더욱 발전시킨 사람으로서 장중경(張仲景)을 빼 놓을 수 없다. 장중경은 ‘상한론(傷寒論)' 이라는 저술에서 저번에 ‘우리 국운의 사이클’에서 필자가 언급한 변증논치의 사상을 제시하였다.
변증논치란 다시 얘기하지만, 병명을 진단하기에 앞서 변화되어 가는 증후의 차이에 따라 치료하는 방법을 정하는 것으로서 단순한 대증 요법이 아니라, 인체 전체에 대한 접근 방법이다. 아울러 명리학에서 사람의 운명을 예단할 때도 바로 이 변증논치의 법을 쓴다.
갑자 을축 병인 정묘...등으로 시작해서 신유 임술 계해까지 두 글자씩 60개의 간지 글자가 이어지는 육십 갑자는 우리말 속에 제법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다. 육십갑자 동방삭, 육갑 떠네 등이 그 것들이다. 그런데 이 육십 갑자는 사실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인정받고 있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수메르 수학과 깊게 연관지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육십 갑자는 10간과 12지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60개의 경우의 수로서 간단히 말하면 10진법과 12진법의 조합이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10진법은 아마도 사람의 손가락이 열 개라는 데, 그리고 12진법은 한 해가 열 두달의 순환이라는 데에 그 연원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B.C. 3000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메르 문명은 60진법에 토대를 둔 천문학을 발전시켰다. 한 해는 약 365일인데 이는 60이라는 숫자가 여섯 번 반복되고 남는 우수리 날들로 이루어진다. 이 일부 우수리 날들 때문에 고대 천문학자들은 골머리를 싸매야 했고 역법(曆法)은 그야말로 비밀의 학문으로 자리잡았다.
문명이란 농경에서 나오는 잉여 산출물에 기반하는 것이어서 고대 문명에서 천문학과 수학, 기상학은 신의 대리인으로 행세하던 통치자에게는 권력의 원천이요 비밀의 하이테크였다. 이런 고대 수메르 문명의 60진법은 오늘날에도 엄연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원의 내각은 360도이고 한 시간은 60분, 1분은 60초이다. 하루는 24시간(중국에서는 12시진)으로 12 진법이다. 근대 물리학의 태두인 뉴톤을 배출한 영국도 불과 몇 년전까지 1파운드가 12실링이었다. 영국의 어느 할머니는 1파운드가 10실링으로 바뀌면서 그만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다는 해외 토픽도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12연기설도 실은 인도의 힌두 철학에 원래 있던 것으로서, 사주 명리 이론의 근저에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근대 과학이 12진법을 버리고 일률적으로 10진법만을 택하는 바람에 60진법은 일반인들의 뇌리 속에서 희미해져 버렸지만, 이처럼 60진법은 주로 시간과 공간을 재는 단위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음양 오행의 원리에 바탕한 사주 명리학은 결국 60진법에 기초해서 한 인간이 살다 가게 될 시공간을 예측해내는 학문인 바 이는 천문학자들이 어느 해 어느 행성이 어느 지점을 통과할 것으로 예측해내는 것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서양에도 사주 명리학과 그 원리가 사실은 동일한 점성술이란 것이 있다. 독자분들은 과학과 합리의 상징인 서구 나라들은 점성술 같은 데 관심이 없는 줄 아시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 역시 관심이 엄청나다. 예로 미국의 보통 중류 가정에 가보면 두껍고 커다란 성경책이 한 권씩 있는데 그 성경책의 뒷장 여백에는 그 집안 가족들의 생년월일시가 몇분 몇초라는 것까지 적혀있다. 점성술사한테 가서 운명을 물어보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어머니가 자녀들의 생시를 기억하고 있다가 시험이나 결혼 등의 중대사가 있을 때 역술인을 찾아가지만 그들은 과학의 나라답게 아예 태어난 시각을 분초 단위까지 기록해놓고 있을 정도다. 미국이나 유럽의 정치 및 재계의 지도자들이나 그 부인들 역시 유명한 점성술사와 인연을 맺고 수시로 운세를 자문받는데 이런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은 우리와 거의 동일하다.
육십 갑자가 수메르나 인도 문명과 접해서 중국에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자체 발생적인 것인지는 알 길이 현재로서는 없다. 중국의 학자들은 육십갑자가 생겨난 기원을 대략 B.C. 2200 년경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당시 중국도 천문학이 상당한 발달하고 있었다.
동시에 육십 갑자는 미학에서 말하는 황금 분할과도 적지 않은 연관을 갖고 있다. 황금 분할은 가장 아름다운 수치적 균형으로서 1 : 0.618 이 그 비율이다. 60 과 61.8 은 근사치이며 우리가 실생활에서 응용하는 것은 오히려 60이다. 흔히들 ‘6:4 로 우세하다’라는 말을 하는게 그 예다.
이제 독자분들도 육십 갑자가 사실은 극동 세계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의 오래된 문화이자 지혜라는 것을 어느 정도 눈치챘을 것으로 믿는다.
사주 명리학의 기본 이론 체계인 음양오행설은 사주 명리학뿐만 아니라 중국문명, 나아가 동아시아 문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음양오행에 대한 이해가 없이 동아시아 문명을 이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나 결과도 그것은 바깥사람의 인상(Image)일 뿐, 동아시아 문명 속으로 들어가 그 심층 결구를 들여다 본 것이라 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인이란 동아시아 문명을 접하는 서구의 학자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한국에서 태어나 우리말을 쓰면서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는 국사학자일 수도 있다.
음양오행에 대한 이해없이 동아시아 문명을 연구한다는 것은 비유컨대 서양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면서 기독교를 알 뿐, 그리스 사상을 모르는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유교와 음양오행은 중국 문화의 양대 지주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예수 역할을 맡은 공자의 가르침은 이미 중국 진한 시대에 와서는 생명력을 상실하고 유학자들 역시 음양오행을 그들의 기본 이론 체계로 받아들였다.
유교가 중국 문화의 상층에 자리잡았다면 음양오행은 중국 문화의 기층을 이루고 있다. 유교가 중국 문화의 정신이라면 음양오행은 중국 문화의 몸이다.
음양오행설은 엄밀한 견지에서 중국 문화의 주도권을 행사했던 서주(西周) 사람들이 동이(東夷)라 부르던 사람들로부터 기원하고 있다. 따라서 유가의 경전인 주역(周易)과 음양오행과는 그 기원이 다르고 이론 체계도 다르다.
그래서 사주 명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역술인(易術人)이라 부르지만 물론 틀린 말이다. 아울러서 무속(巫俗)과 사주 명리 또한 엄연하게 다르다. 무속은 음양오행을 넘어서 있는 인류의 오래된 문화이며 그 미치는 범위도 전 세계적이다. 우리 문화는 무속과 음양오행, 그리고 유불도(儒佛道)라는 세 가지 상이한 정신적 뿌리를 이어받은 상태에서 서구 문명과 조우하고 있는 셈이다.
서주 문화권 사람들이 동쪽의 활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붙인 동이(東夷) 사람들은 그러나 중국 문화의 형성, 발전에 있어 엄청난 자양분을 공급했는 바,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을 든다면 음양오행과 신선 사상이다.
훗날의 도교는 이 두 가지가 나름대로 결합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처럼 중국 문화의 기층을 이루는 음양오행 사상은 한 사람에 의해 주창된 것은 아니며, 그 기원에 대해 중국학자들은 다양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대다수 학자들이 음양오행설을 가장 먼저 제시한 사람으로서 ‘추연’이라는 동이 출신의 방사(方士)를 꼽고 있지만 추연 역시 완전한 형태의 음양오행 사상을 제시한 것은 아니며, 정확히 말하면 음양 사상과 오행 사상도 연원이 다르고 오행 사상 역시 그 속에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후에 정리되었다. 그러나 학자들간에 합의를 보고 있는 것은 음양오행 사상이 중국의 한나라 시대에 들어서는 거의 종합된 형태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음양오행설의 기원에 대해 음양오행 사상이 유가의 기본 이론 체계로 들어온 것은 전국 시대를 거쳐 진한(秦漢)에 의해 통일되었을 무렵 유교적 가르침은 지리멸렬한 상태에 놓여 있었던 바, 동중서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유가의 사람들이 제왕의 통치학으로서 춘추 공양전에서 제시된 대통일 사상과 함께 당시 이미 주된 사조로서 자리잡은 음양오행 사상을 편입하면서부터였다.
그 이후 음양오행 사상은 중국 문화의 최상층부터 최하층에 이르기까지 그 절대적 위치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궁궐의 배치나 복식, 관제, 의전 절차, 나아가서 군사 편제 등등 모든 것이 음양오행이라는 틀에 기준하여 제정되고 운영되었으며 중국 문화가 외래의 불교에 맞서 위기감을 느낄 무렵, 새롭게 중국 문화의 혼에 활력을 불어 넣은 송대의 성리학 또한 음양오행 사상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탐구에 바탕을 두었다.
따라서 음양오행 사상은 당연히 우리와 일본, 남쪽의 베트남으로 전해져서 사실상 동아시아 문명과 문화의 핵심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절대적인 위치를 점한 음양오행 사상이 인간의 운명을 점쳐보는 운명학에 영향을 미친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운명을 음양오행이라는 틀을 통해 예단해 낼 수 있다는 생각은 동한 시대의 사상가 ‘왕충’이 지은 논형(論衡)이라는 책 속에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는바 이를 정명론(定命論)이라 한다.
동한 말엽은 조조가 젊었을 무렵 유명한 관상가를 찾아가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효웅’이란 말을 듣고 마음에 들어했다는 바로 그 시대이다. 오늘날 사주 명리학의 출발도 대략 이 때쯤이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궁합이란 무엇인가? (1)
| 기사입력 2002-01-25 10:15| 최종수정 2002-01-2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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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은 원래 다른 글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궁합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게 되었다. 하는 일이 명리학 연구이고 사주 상담이니 궁합 보러 오시는 분들이 적잖이 있지만 난 언제나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궁합이란 거 볼 필요가 없는데 오셨네요.”
정말이다, 궁합이란 것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볼 필요가 없다. 왜 그런가를 이제부터 이야기하기로 한다.
궁합(宮合)이란 부부궁이 서로 합하느냐, 즉 서로 맞느냐를 따져보는 것이다. 예전에는 궁합이란 것이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예전이란 봉건시대를 말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남녀의 자유 교제가 허용되지 않던 시절, ‘남녀 칠세 부동석’이란 말이 문자 그대로 지켜지던 시절이다. 당시 남녀가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성춘향처럼 바람끼 다분한 처녀 정도가 되어야 단오날 그네 타는 핑계로 이 도령을 유혹할 수 있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히 궁합이 중요했다.
오 초시가 자신의 둘째 아들을 친구로 지내는 박 첨지네 맏딸과 결혼시키려고 마음먹었을 때, 신부측의 의향을 존중하는 의미로 사주 단자를 담은 함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이고, 이미 두 집안의 어른이 마음 먹기 전에 아내를 시켜 두 남녀의 사주를 보고 궁합을 보는 게 상례였다.
당시에는 아이의 사주, 즉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양반 계층이 아니면 어려웠다. 산모의 곁에서 출산을 돕는 산파의 중요한 임무 중에 하나가 아이가 태어날 때 그 시각을 기록하는 것이었고 흔히 산파는 재산깨나 있는 집안이 아니면 부르기 어려웠으니 상민들은 아이가 출생해도 새벽 닭이 울 때라든지 새참 먹고 난 뒤라든지, 겨울 저녁 밥 먹기 전에 태어났다는 식으로 기억하기 마련이었다. 지금도 40대 이상의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출생 시각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궁합을 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간에 이끌림이 있느냐를 보는 것인데,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태어난 날의 오행으로 합을 이루느냐를 보는 방식이다. 가령 어떤 총각의 태어난 날이 무자(戊子)이고 처녀는 계축(癸丑)이라면 아주 좋은 궁합이 된다. 천간의 무(戊)와 계(癸)가 합(合)을 이루고 지지의 자(子)와 축(丑)이 합을 이루니 찰떡궁합이 된다. 이 때 천간의 글자간에만 합을 이뤄도 괜찮은 궁합이고 지지의 글자까지 합을 이루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궁합이 된다. 사실 이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궁합 보는 방법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궁합을 보지 않아도 오늘날 사귀고 있는 남녀들의 사주를 보면 저절로 그렇게 궁합이 맞는 사람들끼리 사귀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남녀가 사귈 수 있는 시대에는 따라서 궁합을 볼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그래서 성립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유난히 끌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이럴 경우 두 사람의 사주를 보면 궁합이 맞는다고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궁합이 맞긴 하지만 어느 정도로 잘 맞느냐가 중요해진다. 흔히들 인연이란 말을 쓰는데 과연 그 인연이 어디까지냐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이를 두 사람의 사주로 판단하려면 앞서 말한 일간과 일지의 합을 보는 것은 물론 두 사람의 성격과 기호, 앞으로의 운명을 놓고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두 사람이 상당 기간 이미 잘 사귀고 있고 그 결과 결혼을 하기로 마음 먹게 된다면 고명한 사주 선생을 찾아가 물어볼 필요가 아예 없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이미 저들끼리 시간을 두고 사귀면서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면 이미 궁합은 다 맞아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양가 부모님한테 말씀드렸더니, 그때서야 그 부모가 궁합을 보러 간다면 이는 사물이 전도된 것이다.
즉 일의 앞뒤가 거꾸로 되었다는 얘기다. 사주 선생한테 가서 좋은 덕담이나 듣고 오면 모를까, 궁합을 본 결과 안 좋다고 해서 두 사람의 관계를 끊으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아직도 있는데, 정말 웃기는 얘기다. 실로 블랙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젊은 사람들은 그 부모들이 가진 인생에 대한 시야나 경험이 없으니 걱정이 되겠지만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사위 감이, 그리고 며느리 감이 마음에 안 들면 자신의 자녀와 상의해서 해결해야지, 왜 엉뚱한 사주 선생을 개입시키는지?
심지어는 아주 좋은 며느리 감으로 여기고 있다가 정작 궁합을 보고 와선 얼굴을 싹 바꾸는 어머니들도 있으니 실로 한심한 노릇이다. 만약 이 경우 사주 선생이 ‘예스'하는 상대를 찾아서 결혼시킨다면 그 사주 선생이 그 결혼의 앞날을 보장한다는 책임 보험까지 들어준다면 몰라도 말이다.
할 얘기가 좀 더 남았으니 다음에 이어서 궁합에 대해 쓰기로 한다.
지난 주에 이어 궁합 얘기 계속 하겠다.
요즘엔 난데없이 속 궁합이 중요하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속 궁합이란 말은 저번에 이야기했던 궁합 보는 법 중에서 두 사람의 일간(日干)이 아니라 일지(日支)를 맞추어 본다는 뜻으로 쓰던 말이다.
명리학에서는 천간의 글자들을 그 사람의 외표(外表)라 하고, 밑에 있는 글자들을 내리(內裏)라 해서 안과 밖을 구분하는데 가령 무자(戊子)일의 남자와 계축(癸丑)일의 여자라면 태어난 날의 지지(地支)에 있는 자와 축의 관계를 본다는 뜻이다.
그 사람의 속이니 속 궁합이라 하는 말인데 최근에는 그것을 두 사람의 성적인 이끌림으로 해석하면서 마치 겉 궁합이 좋아도 속 궁합이 나쁘면 부부의 성 관계에 문제가 있는 식으로 얘기를 하면서 사람들을 들뜨게 만드는 경향이 많다.
물론 사주를 보면 그 사람이 성적인 방면에 감각이 있는지, 정력은 강한지, 바람기는 또 어떤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일지간의 이끌림만으로 그 부부의 성적인 만족도를 단정짓기는 어려우며 부부의 성 관계는 사실 정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인 문제에 속한다. 애정이 좋으면 당연히 성 관계도 좋으며 횟수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최근 속 궁합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섹스가 난무하고 있는 오늘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각설하고, 결혼해서 잘 살고 못 살고는 상대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 글을 쓰는 근본 의도이다. 결혼이란 대개가 20대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하게 되는데, 이미 그 나이면 그 사람의 인성이나 성향, 가치관, 취미 등등이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결혼 상대방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자연히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반영하고 있다.
용모를 중시하는 남자는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대로 미모의 여성을 택할 것이고, 돈을 중시한다면 돈에 비중을 둘 것이다. 적극적인 성격의 상대를 좋아한다면 적극적인 상대를, 조용한 성격을 좋아한다면 그런 사람을, 이런 식으로 오늘날처럼 개방된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상대를 만날 확률은 이미 충분하다. 늦도록 결혼하지 않는 것도 사실은 그 사람의 성격이기도 하며 운의 영향이기도 하다. 모두가 선택이다.
여기서 운명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는데, 명리학에서 보는 운명이란 이미 주어져 있는 것과 선택의 조합이다. 운명이란 따라서 절대적인 주어진 프로그램(pre-defined program)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처한 환경에서 선택을 해 가는 것, 그것이 운명이다. 다만 명리를 알면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를 알아낼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도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제 뜻대로 가는 것이지만, 그 뜻이 어디에 있는 가를 사주 팔자는 말해주고 있다.
결혼을 앞둔 부모들의 심정은 한결 같다. 자녀가 탈없이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혹시나 자기 아들이, 그리고 자기 딸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겠지만, 자녀라도 다 나름의 개성과 인격이 있기에, 예전처럼 맞선보고 얼마 안 되어 결심을 내리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교제를 하고 이미 궁합까지 다 맞춘 상태에서 다른 이유도 아니고 궁합이 안 좋다는 말 한마디에 둘 사이를 갈라 놓겠다는 발상은 실로 어리석음의 소치라 할 것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모든 것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자신이 살면서 아쉬운 점을 자녀에게 보충하려는 심리는 인지상정이라 하겠지만 그같은 심리적 투사(projection)는 오히려 자녀의 앞 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확률이 더 크다. 슬하에서 자랐다고 해서 인생관이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잘 살고 못 살고는 다 제 팔자 소관이다. 살다가 이혼하는 것도, 돈을 못 벌어 궁상을 떠는 것도, 자식이 없는 것도 모두 제 팔자에 있는 것이지, 상대를 잘 만나 인생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법은 결코 없다. 유취상종(類聚相從)이란 말이 있다. 쉽게 말해서 끼리 끼리 모인다는 말이다.
따라서 모든 결혼은 균형을 이루게 마련인 것이다. 어느 누구도 손해보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가난한 집 아들이 부잣집 딸과 결혼함으로써 생겨나는 갈등 같은 것은 여전히 흔하고 진부한 드라마의 주제로 반복 등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나름대로 당사자간에 균형이 잡혀 있는 것이며 또 있을 수밖에 없다.
다음 번에는 인연이란 과연 무엇이며 왜 인생사에 있어 이합집산을 만들어내는 운명적인 힘이 무엇인가에 대해 명리학적인 시야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인연과 운세의 변화 - 충(衝) <1>
| 기사입력 2002-02-08 10:13| 최종수정 2002-02-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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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이란 말은 원래 불교 용어지만 우리말 속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고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말이란 체험의 표상이니 우리 국민 정서 속에는 인연에 관한 체험이 진하게 녹아 있다는 뜻이 된다.
만나고 헤어짐, 어떤 계기의 촉발과 어떤 일의 생성과 소멸을 우리들은 인연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인연이란 말 속에는 운명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워져 있다. 이 같은 운의 변화, 운명의 변화는 어떤 틀 속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그것을 명리학에서는 충(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충이란 천문학에서 지금도 사용하는 용어로서 영어로는 opposition 이다. 어떤 행성이나 위성 등이 지구에서 볼 때 태양과 정반대의 위치에 오는 것을 말한다. 태양과 천체의 황경의 차가 0 °가 될 때를 가리키는 합(合)에 대응된다.
달은 충의 위치에서 만월(滿月)이 되는데, 이 때를 망(望)이라고 하며 바로 보름이다. 충이나 합이란 천문학 용어를 명리학에서 그대로 사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예전에 천문을 관찰하던 사람들이 바로 음양 오행학의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개의 글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충이란 서로 반대의 위치에 있다는 뜻이고 반대란 바로 대극(對極)을 의미한다. 사물이 정반대되는 위치에 있을 때 서로의 개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충이란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 있어 반대되는 요소가 전면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일에도 내부 모순이 있기 마련이고 그 모순이 충되는 위치에 이르게 되면 표면화된다는 뜻이다. 명리학에서 충은 운의 순환 과정에서 일곱 번 째 되는 자리에 이르게 되면 만나게 된다.
예를 들겠다. 올해 2002년이 임오(壬午)년이니 만으로 6년 뒤, 햇수로는 7년 뒤인 2008년 무자(戊子)년에 가서 충을 만나게 된다. 이 해에 가면 임(壬)과 무(戊)가 충을 만나고 오(午)와 자(子)가 충을 만나게 된다. 임은 음양 오행상 물이고 무는 토이다. 오는 불이고 자는 물이다.
6년 뒤, 즉 7년차에 이르러 천간은 토가 물을 누르고, 지지에서는 물이 불을 누르게 된다. 이처럼 충은 서로 상극되는 힘끼리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만물은 6을 지나 7이라는 숫자에 가서 일대 전환의 계기를 맞이한다는 것을 음양 오행은 말해주고 있다.
이같은 충의 원칙은 꼭 6년이 아니라 보다 작은 시간적 스케일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루는 12시진이니 6시진, 즉 12시간이 지나면 충을 맞이하므로 밤과 낮이 바뀐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생겼을 경우 6일이 지나 7일차에 가면 일단 변화가 생기고, 6개월이 지나 7개월째가 되면 변화를 맞는다. 모든 일이 6시진, 6일, 6개월, 6년이라는 시간 단위를 지나면 변화를 맞이한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운의 변화와 인연의 이합집산을 만들어내는 커다란 동력원이다.
흔히들 결혼 7년차가 되면 권태기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충운을 만났기 때문이다. 사실 강렬한 연애 감정도 만 6년이 지나면 쇠락기로 접어든다. 나무는 양력 2월이 되면 뿌리에서 수분을 빨아올리기 시작해서 3개월이 지난 5월에 이르러 만개하기 시작하고 8월에 접어들면 이미 뿌리에서의 물 올림을 중단하고 그 때부터 잎새들은 쇠퇴하기 시작해서 11월에 가서 낙엽으로 변한다.
이처럼 크게 나누면 6개월, 세분하면 3개월 단위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이 모든 것이 지구의 공전 운동에 기초한 자연의 흐름이다. 지구상에 사는 인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서구 과학의 결정적인 맹점은 인간을 자연과 격리시켰다는 점에 있다. 이를 동양 철학에서는 물아(物我)가 분리되었다고 한다. 대상과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가 하나임을 부정하고 대상만을 분리해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이 유럽의 기계론적 우주관을 형성한 바탕이다.(이 점에 대해서도 나중에 별개의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6을 지나 7에 이르러 만물이 변화를 맞이하는 이 충의 법칙을 알아두면 살아가는 데 있어 대단히 요긴하게 응용할 수 있다. 다음 글에서 충의 작용에 대해 좀 더 알아 보기로 한다.
저번에 이어서 충의 작용에 대해 좀 더 알아 보기로 한다.
기본적으로 운의 순환은 12라는 숫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년 열두달 뿐 아니라 12년 주기에서부터 작게는 12 일 주기, 12시진(24시간) 주기가 있다. 그리고 12로 이루어진 주기가 다섯번을 순행하면 60, 즉 60갑자가 된다. 충이란 12의 절반 지점에서 반대의 흐름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해가 뜨면 지듯이 천지 자연의 기본 흐름이다.
그런데 충의 작용은 거시적인 것에서부터 미시적인 일상사까지 광범위하게 작용하고 있는데 먼저 대국적인 차원의 일부터 실례를 들어 보고자 한다.
히틀러가 일으킨 2차 세계대전은 1939년에 시작되었지만 사실상 히틀러의 군사적 모험은 1936년 프랑스와 독일 국경 지대에 위치한 라인란트 지역을 강점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수많은 역사가들도 독일의 라인란트 진주를 유럽의 정세를 뒤바꾼 결정적인 사건이었다고 인정하고 있는 바, 그 이후 히틀러는 군사적 모험에 재미를 붙여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폴란드를 침공했으며 프랑스를 전격전으로 격파한 뒤 러시아로 들어갔다가 1942년 겨울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퇴하면서 그의 군사적 성공은 막을 내린다. 그 기간은 6년이었다.
동시에 1939년에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은 1945년에 막을 내리는데 그 또한 6년간의 전쟁이었다. 덧붙여 애기하면 히틀러는 1921년 나찌스 당수의 자리에 오른 뒤 정확하게 24년, 그러니까 12라는 숫자를 두 번 순환한 뒤에 극적인 일생을 마쳤다.
아울러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이래 정확하게 6개월 뒤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퇴함으로써 군사적 이니셔티브를 빼앗기게 된다. 역사 연표를 놓고 따져보면 6이라는 숫자, 그리고 12라는 순환 주기를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뒤 1979 년 서거할 때까지 집권기간이 18년이었는데 이는 12와 6이라는 숫자로 나뉘어진다. 즉 한 순환을 마치고 절반에 가서 생을 마쳤는데 처음의 한 순환 주기는 1973년에 끝난다.
이는 1972 년 12월 유신헌법을 통과시키고 1973년에는 김대중 납치 사건이 있었던 해다. 즉 박 대통령은 1973년부터 강력한 국민적 반발에 직면했고 유신 정권은 결국 탄생해서는 안 될 정권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충과 관련하여 보다 큰 시간적 차원의 일을 보면 60년의 절반인 30년에 가면 또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이는 12년 주기를 두 번 지나고 맞는 충운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박정희 정권 하에서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것이 시행되었는데 관 주도의 경제 근대화 프로그램으로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우리 나라의 산업화는 30 년 뒤인 1992년에 가서 일단 완성되었으며, 동시에 정권도 군부 정권에서 김영삼 문민 정부로 넘어갔다.
그 이후 김영삼 정권은 신 경제사회 발전 5개년 계획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쓰게 되는데 사실 이 또한 나름의 의미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양적(量的) 성장이 끝나고 질적(質的) 성장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질적 성장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련의 시기를 뜻한다. 양을 늘리는 것은 열심히 하면 되지만 질의 개선이란 갈등과 대립의 요소들이 저마다 최대한의 힘을 쓰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보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수 있다.
김영삼 정권 이후 우리나라는 그간의 문제점들이 모조리 튀어 나오면서 환란(換亂)으로 IMF 사태를 맞이했고, 노사간의 갈등과 계급간의 갈등, 지역간의 갈등, 공직자의 비리와 법의 부패, 남북 문제 등등 사실 질적인 개선을 요하는 문제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신문 지상을 메우고 있다.
이같은 질적 성장 과정은 1992년에 시작된 흐름이니 2022 년까지 30년간 이어질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 사이클의 1/3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1962년에 출발한 양적 성장의 열매가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은 2/3 지점인 1982년부터이고 얼마 후 우리는 '3저 경기'라는 단군 이래 최고의 경기를 맞이할 수 있었듯이, 이번의 질적 성장(이를 改善이라 한다)도 2012년이 되어야 서광이 비칠 것이다.
그렇다면 장차 두 번의 정권은 좋은 얘기를 결코 못 듣는다는 논리가 성립되는데 (왜 저리들 대통령이 하고 싶어서 안달인지 나로서는 사실 이해가 안 간다). 왜냐, 개선의 과정은 양적 성장 과정보다 더 엄혹한 시련과 도전들을 처리해야 하는 탓에 국가적 타협(national deal)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만족스런 해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의 의약 분업은 의사와 약사들의 조직적 저항 앞에서 무릅을 끓은 정부가 그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함으로써 철저히 실패한 케이스로서 반면교사의 노릇을 할 것이고 그 나름으로 의미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다음 번에는 대국적 견지에서의 사례가 아니라 우리 일상사에서 볼 수 있는 충의 작용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겠다.
저번에는 대국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충의 작용에 대해 알아 보았으니,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가령 당신이 금년에 어떤 인연을 만났다 하자. 여기서 인연이란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거나, 연인을 만났거나, 이사를 했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거나 등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말한다. 그 모든 일들이 그 나름으로 당신과 운의 작용에 의해 만나게 된 것이고 그 하나 하나가 모두 생성소멸, 이합집산의 과정을 밟게 되어 있다.
그 모든 일들 또한 6시진(12시간), 6일, 6개월, 6년 단위로 충운을 맞이하며, 경중에 따라 경과 기간이 다르다. 우리들이 흔히 하는 말로 '싫증난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 충의 작용으로서 정반대의 정서적ㆍ신체적 작용이 우리로 하여금 여태껏 몰두해 오던 일에서 흥미를 잃어버리도록 만드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어떤 직장에 들어가면 가급적이면 오래 근무하려고 한다. 생활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연애를 보면 그 라이프 싸이클이 얼마마 짧아지고 있는지 실로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사귄 지 1백 일이 되면 스스로 대견해서 커플링을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줄 정도다. 이만큼 오래 사귀었으니 앞으로 잘해 보자는 뜻이다. 반대로 두 젊은 남녀가 만나서 1백일 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다.
사실 1백일은 3개월 남짓의 기간으로서 사계절로 따지면 한 계절에 불과하다. 그런 커플들도 6개월이 되면 거의 헤어져 버리는 것이 오늘의 세태다. 왜 이렇게 만남과 헤어짐이 빈번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금방 다른 사람을 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만남이 가벼운 세상인 것이다. 쉽게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탓에 금방 실망하고 싫증내고 '내 인연이 아니야' 하면서 그들 말로 '찢어지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인연 탓을 하기에 앞서 서로를 가볍게 교환하는 경박한 세태를 반영할 따름이다. 지금보다 만남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던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으니, 이것만 봐도 운명이란 정해진 프로그램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싫증이 나는 것일까? 간단히 말하면 우리의 생각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생각이 변하는 것일까? 바로 운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정된 인격적 주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고정된 부분은 그 사람의 개성이고 색깔이지만 사실은 매일 매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운의 영향이다. 특히 충운을 만나면 변해도 많이 변한다.
우리의 정서적ㆍ신체적 변화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그 작용이 나타나는 시기는 그 사람의 태어난 달, 가령 여름 미(未)월생이라면 축(丑)이라는 글자를 만나는 날이나 월, 해에 가서 가장 심한 변화를 가져온다. 미와 축이 바로 충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태어난 달을 명리학에서는 사령(司令: 영어로 번역하자면 command)이라 해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데 이 사령하는 힘과 정반대되는 운의 작용을 만나니 그만큼 변화가 심하게 오는 것이다. 태어난 달과 충하는 운에서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이사라든지 직장 이동, 해외 이주, 유학 등등 생활에 커다란 전기를 맞이한다.
이같은 변화와 이동 수를 흔히 역마살이라 부르고 있다. 역마(驛馬)란 옛날의 파발마를 말하는 것인데, 오늘날의 용어로 해석하자면 이동성(mobility)을 말한다. 사람에 따라 유난히 이사를 많이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던 자리에 거의 한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사람에 따라 이동성에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그 사람의 사주 팔자에 호기심이 많고 변화를 좋아하는 기운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공직에 근무하거나 한 직장에 오래 일하는 사람은 이사도 비교적 적게 한다. 반면 영업직이나 사업하는 사람은 이사하는 빈도도 잦다. 이동성이 높은 사람은 해외에 나갈 운도 많으며 나가서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세상을 차분하고 안정되게 유지하는 사람들은 전자이고 세상에 변화를 몰고 오는 사람들은 후자에 속한다. 전자의 사람들은 비교적 말수가 적고 보수적이며, 후자의 사람들은 말이 많고 활달하다.
흔히 하는 말로 공무원들을 관료 사회라 해서 복지부동(伏地不動)이라고 야단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복지부동은 좀 심한 얘기겠지만, 공무원은 생각이나 행동이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모든 관료화된 조직에서는 앞뒤를 살피는 처신이 없으면 조직은 불안정해지고 그 개인은 언제 어떤 일로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조직이 있으면 권력이 있기 마련이고, 권력이 있는 곳에 정치가 있는 게 정상이고 상식이다. 그리고 정치란 숫적 우세가 중요한 것이므로 때로는 진실이나 가치가 언제든지 폄하되고 매도될 수 있는 마당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통한 진리다.
흔히 사람들은 미국 CIA 가 모르는 게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미 비대해진 조직으로서 CIA도 일선에서 얻어진 가치있는 정보가 중간 과정에서 필터링을 통해 희석되기가 일쑤이다. 조직의 이해와 개인의 이해가 공공의 이해를 앞선다는 것은 어쩌면 상식이다.
이야기가 약간 옆으로 흘렀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연대별로 펼쳐 놓고 곰곰히 살펴보기 바란다. 그 속에는 반드시 단락이 지는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며, 그 단락들이 대개의 경우 6개월이나 6년 단위로 끊어진다는 것을 확인하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 12 년 주기가 어디서 시작했고 어디서 끝났는지도 한 번 확인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들도 어떤 변화를 가져 오게 될는지도 한 번 점쳐 보시기 바란다.
마릴린 몬로가 주연한 영화 '7년만의 외출'이 사실은 당신의 인생에서도 끊임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것이다.
이것으로 충의 적용에 대한 얘기를 끝내고 다음 번에는 우리나라의 장기적인 국운(國運) 사이클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우리 국운(國運)의 사이클 (1)
| 기사입력 2002-03-02 10:36| 최종수정 2002-03-0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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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4 년 11월 9일, 우리나라 종합주가지수는 장중 한 때 1145 포인트를 기록했었다. 이 수치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으로서 지난 1964년에 시작돼 30년간에 걸친 우리 경제의 성장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1994년 10월은 갑술(甲戌)년, 갑술(甲戌)월이었고, 입동(立冬) 다음날 정점(頂点)을 기록하면서 우리 경제는 내리막길로 들어섰고, 이미 거기에는 환란의 징조가 내포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 경제는 갑술년 갑술월을 하나의 정점으로 분수령을 이루었던 것이다.(지금부터 60이라는 숫자와 그 절반 지점인 30에서 발생하는 충의 작용을 인식하면서 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란다.)
당시는 김영삼 정권 시절로서 세계의 경제 선진국 대열인 OECD에의 가입과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라는 화려한 정치적 수사가 판을 치던 세월이었다. 지구촌의 마이너 리그에서 메이저 리그로 진입한다는 국민적 자긍심이 더 없이 높았던 시기로서, 모든 것이 낙관적이고 경박한 사조가 주름 잡던 시기이기도 했다.
결국 이같은 낙관 무드가 외환 위기를 불러오게 된 심리적 근본 배경이 되었고, 환란은 섣부른 개방과 어설픈 우리의 역량이 만들어낸 한편의 악몽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경고였다, 꿈에서 깨어나라는 계시 같은 거 말이다.
그런 우리 국운은 1994년을 시점으로 30년간의 길고 긴 질적 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질적 성장이란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시련의 시기이고 불운의 시기이기도 하다. 왜 유행가 노랫말에도 있지 않은가. ‘아픈 만큼 성숙하는’ 것이라고, 아프지 않으면 크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호운의 시기도 있고 불운의 시기도 있다. 진정으로 크는 사람은 불운의 시기에 무엇을 배우느냐에 달려있다. 우리 나라도 그렇고 우리 국민도 그렇다.
이쯤해서 지난 세기를 반추해 보자.
1964년 갑진년, 우리 경제가 근대화로 들어선 시점으로부터 60년전인 1904년 갑진년에 러일 전쟁이 발발하고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맺으면서 한반도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손에 넣었다. 당시 황성신문에 실린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은 실로 우리 주권이 저에게 넘어갔음을 알리는 민족적 울부짖음이었다.
그 이후 우리 나라는 1945년 해방을 맞이했지만 또 다시 남북이 갈라지면서 1950년 6 .25 전쟁을 치러야 했고 박정희 쿠데타를 통한 군부 정권 아래서 경제 발전에의 길로 들어선 것이 1964년이었다. 60년간 우리 나라는 실로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 이전 한 갑자(60년)전인 1844년에는 대략 어떤 일이 있었는가 살펴보자. 1840년부터 1842년 사이에 중국의 아편 전쟁이 있었는데, 이는 우리가 대국으로 모시던 청 제국이 종이 호랑이임을 서구 열강들이 완전히 알게 된 사건이었다. 그 때부터 청의 속국 정도로 알고 있던 우리나라에도 1845년에는 제주도에 영국 군함이 탐색차 들렀었고, 좀 있다가 프랑스 군대가 항의 문서를 들이미는 사건, 러시아 군함의 내항, 이런 식으로 열강들의 출몰이 잦아졌다.
급기야 병인 양요와 신미 양요를 거쳐 마침내 재빨리 메이지 유신이라는 기치하에 체제를 정비한 일본이 서구식 군함을 몰고 들어 닥친 운요호 사건이 1875년에 발발했다. 그 이후 1876년 한일 수호조약에 묶이면서 우리 국운은 몇몇 개화적 노력이 무산되고 체제 모순을 질타하는 동학 혁명 등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일로 하향 길을 달 수 밖에 없었다. 아편 전쟁은 중국의 몰락이기도 했지만 같은 시스템 내에 있던 조선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1844년부터 대략 30년(60의 절반)이 지나 한일 수호조약이 체결되고 그로부터 30년 뒤에 을사 보호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이 19세기 후반기의 모습이었고, 1904년 러일 전쟁부터 1964년까지 60년간이 한일 합방, 태평양 전쟁, 해방과 남북 분단과 6.25 전쟁 등등 일련의 질곡들이 이어진 세월이었다. 그것은 장장 120년에 걸치는 몰락의 과정이었다.
그것이 1964년 중흥의 계기가 돌아오니 그로부터 30년간 우리 경제는 근대화되었고 1988년 올림픽과 1994년 종합 주가 지수 1145 포인트라는 기록적 사건을 맞이했던 것이다. 그것은 지난 30년간, 즉 60 갑자의 절반 지점에서 발생하는 충운의 작용이었다.
크게 보면 1844년부터 시작된 120년간의 흐름(60 갑자의 두 번 순환 주기)이 서구 열강들의 세계 지배 과정에서 발생했던 치욕의 세월이었다면 1964년부터 120년간은 기본적으로 우리 국운이 뻗어가면서 우리의 자리를 되찾는 발전과 진보의 세월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20년, 즉 두 번의 갑자 중에서 현재 우리는 첫 번째 60년의 절반 지점에서 양적 성장을 끝내고 새로운 발전을 위한 질적 성장(시련의 시기)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24년부터 다시 새로운 양적 성장의 길로 들어설 것이며 그로부터 30년간이 황금 시절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근간에 출생하고 있는 아이들은 사회 진출 단계에서 황금기를 맞이하니 얼마나 복받은 아이들인가! 정말 부럽기만 하다. 이렇게 따져보면 1940-1945 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 역시 행운이었다. 그들은 현재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나이인데, 그 세대는 사실 큰 경쟁없이 사회 각 부문에서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 국운을 좀 더 유장한 시야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1964년에서 600년 (즉 10갑자) 이전인 1364년은 고려 공민왕이 나라를 상당히 부흥시켰고, 그러한 발전의 바탕 위에서 사대부라는 새로운 계급과 새로운 이념이 등장하였으며, 여기에 여진과 왜구 토벌에서 명성을 얻은 이성계에 의해 조선의 개국으로 이어진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처럼 세상은 600년이라는 주기와 그보다 더 큰 1800년 주기로 세상의 운수가 순환하고 있다.(이에 대해 언젠가 다시 재미난 글을 선보일 것을 약속한다.)
따라서 지금의 시련은 발전을 위한 시련이기에 의미가 있다. 즉 희망이 있는 시련, 더 잘되기 위한 시련인 것이다.
그러면 다음 번에는 앞으로의 30년, 즉 2024년까지의 기간들 속에는 어떤 흐름이 이어질 것인지 알아 보고 좀 나아가서 2024년부터 시작되는 황금기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아보기로 한다. 특히 2024년까지의 내용은 우리의 장기 발전 전략에 대해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다.
저번 글에서는 우리 국운의 지난 날을 알아 보았다. 이번에는 우리 국운의 장래에 관한 얘기가 되니 혹자는 천기 예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로서는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저 1964년부터 시작된 60년 사이클의 후반부인 1994년에 시작된 시련의 시기에 대해 좀 더 말하겠다. 마라톤 코스도 반환점이 있듯이 30년의 반환점은 15년간이다. 즉 2009년까지가 된다. 이 시기의 전반에는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 소위 3김 정치의 시대가 포함되고 나머지는 금년 말에 당선될 정권의 시기에 해당된다.
사실 장거리 경주인 마라톤에서 반환점까지는 승부가 보이질 않는다. 앞이 잘 보이질 않는 시점이니 금년 말에 등장할 정권의 막판까지도 속시원한 정치는 나오질 않을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이 잘못 한다기보다 잘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있다고 봐야 더 옳은 시각일 것이다.
김영삼 정권 이래 어느 하나 잘 되는 것 없어 보이지만 가만히 그리고 너그럽게 우리나라가 변해가는 모습을 반추해보라. 사실은 상당한 변화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김영삼 정권의 치적부터 보자.
첫째, 하나회 정리를 비롯해서 육사 XX기가 힘쓰는 세상이 이제는 어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고 에피소드가 돼버렸다. 둘째, 무리해서라도 OECD 에 들어가면서 메이저리그 대열에 합류했고(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지만), 셋째, 금융 실명제라는 옆 나라 일본도 하지 못하는 엄청난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이로써 자금의 흐름이 투명해졌고 검은 돈 거래도 지대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넷째, 노동법 개정이다. 실로 엄청난 산고를 치렀지만 그 자체는 군부독재 이후 문민 정권이 수행한 최대의 국민적 협상이었고, 그 의미도 크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현 정권의 모습을 보자. 무엇보다 현 김대중 정권의 가장 큰 기여는 사회적 소수(minority)에 의한 정권이 탄생함으로써 한국적 한풀이(?)와 더불어 그만큼 우리의 국민 의식이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물론 거기에는 DJP 연합이라는 정치적 기술이 들어갔지만, 어쨌든 현 정권의 탄생은 역사의 진보가 아닐 수 없다. 따져보면 예전의 미국 카터 정권과도 유사한 점이 있는 현 소수파 정권은 그러나 나름으로 엄청난 과제들에 대해 개혁의 손길을 내뻗었다.
그중 가장 큰 개혁 시도는 소위 ‘벌(閥)’ 체제의 해체라는 엄청난 작업에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군벌은 김영삼 정권 시절에 해체되었지만, 현 정권은 그 자체가 정벌과 특정 지역에 기반했다는 출생적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 언벌, 학벌, 지역벌(이런 용어가 있었나?) 등등에 대한 해체 작업에 손을 댄 것이다.
사실 벌 체제는 어떤 사회의 초기 팽창 과정에서 안정된 권위 체계가 존재하지 않을 때,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역동적인 사회적 힘이고 그 나름의 창조적 기능을 수행한다. 아마 우리 사회는 장차 두고 두고 벌의 공과에 대해 논쟁을 벌릴 것이다. 단지 분명한 것은 이제 우리 사회는 벌 체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에는 포퓰리즘(대중 인기주의)라고 비난받던 현 정권이 이제 게이트 시리즈로 인해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지만, 그 근본 원인은 대통령의 힘에 의한 개혁 푸시(push)가 그 방법론적인 미숙함-그 미숙의 정도가 바로 우리의 현 주소이기도 하지만-과 더불어 재벌과 언벌, 학벌들로부터 치열한 반격을 야기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현 정권은 기존의 권위 세력들과 연대해 있지 않은 처지에서 대중적 인기주의로 흐를 수 밖에 없었던 배경도 있다고 여겨진다. 이 점을 깊히 성찰해 보면 차기 정권이 추진해야 할 개혁의 전략과 방법에 대한 힌트는 다 들어있다. 여기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얘기가 아니다.
햇볕 정책만 해도 그 대의(大義)를 누가 감히 부인하겠는가? 정치란 일관된 전략도 중요하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민심의 향배를 달래고 이끌어가는 고도의 전술도 필요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고, 그런 면에서 현 정권은 전술을 구사할 토대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과욕을 부렸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통일의 초석을 놓은 사람으로 기억되고자 하는 공명심만 좀 자제했더라면 얼마든지 야당의 협조를 얻어 국가적 차원에서 일을 진행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 또한 우리 정치와 사회의 현 주소임을 어쩌랴! 정말 어떤 면에서 현 대통령에 대한 일말의 연민과 안타까움마저 느껴지는 걸 또 어찌하랴!
그러면 이쯤에서 김대중 정권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고 차기 정권의 노력 방향에 대해 알아보자.
차기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는지는 사실 관심거리도 아니다. 이미 결론이 나 있기에. 다만 그 정권이 수행해야 할 역사적 과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법을 바로 세우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이 바로 강력한 법이다. 원칙보다는 현장 대응주의적으로 강요되고 훈련받아온 우리 국민들은 법이 바로 서면 힘없는 자신만 피해를 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하는 심리가 만연해 있다. 법이 바로 선다는 것은 따라서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소위 빽이나 편의주의가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가 법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인식의 보편화다.
아마도 차기 정권이 법을 바로 세우면 초기에 엄청난 국민적 반발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법대로’한다는 것이 무서운 우리 국민들이기에 먼저 법을 바로 세울 분야를 특정시키는 집중적 노력이 필요한 것은 전략의 기본이다. 가장 파급 효과가 큰 도로교통법부터 바로 잡으면 어떨까?
딱지를 무진장 발부하게 되겠지만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철저하고도 집중적으로 시행하면 국민들의 인식부터 변화할 것이다. 먼저 법이 요지부동임을 알면 국민들은 법 제정부터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 지금의 법은 워낙 고무줄이니 어떤 법이 제정되는지 이해 당사자 외에 아무도 관심없고 그 때문에 쓱싹하기도 더 좋은 세상이지만, 악법도 법일진대 법이 바로 서면 자연스럽게 국민들의 법적인 마인드는 순식간에 고조될 것이다.
법이 바로 서면 모든 세력간의 이해 절충과 협상은 법의 테두리내로 들어올 것이고, 그 때부터 국민적 컨센서스를 이루는 과정도 정상화될 것이다. 손가락 자르고 죽음으로 반대한다는 살벌하고도 유치한 연극판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정권 역시 개혁 대상이 있다고 여겨지면 대통령의 통치권을 발동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왜 국민적 의제로 다루는가부터 정상적인 과정을 밟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차기 정권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다루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정착시키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될 것이다.
법정에서 다루지 못하는 문제는 정치가 해결할 수 밖에 없고 그 정치 역시 결국 사회적 이해가 대립되는 세력간의 합리적인 논쟁 무대와 합당한 절차가 바로 설 때야만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분만 가지고 정권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유치한 발상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고 그만큼의 진보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여타 분야에서도 차기 정권은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겠지만 핵심은 이것이고, 바로 차기 정권의 역사적 과업이다.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다음 정권 역시 인기는 없겠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이해 세력간의 어거지나 어리광은 없어지고 오로지 합법적인 절차와 논리에 의해 자신을 주장하는 좀 더 성숙된 한국이 될 것이다. 따라서 차기 정권은 통큰 사나이가 아니라 통 작고 외골수의 사람이 맡게 된다. 법을 바로 세우려면 쫀쫀해야 하니까.
할 말도 많지만 이만 줄이고 다음 번에는 2009년부터 시작될 시련의 정점에서 희망으로 향하는 발전 과정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저번 글까지 해서 1994년부터 2009년까지 일어났고 동시에 일어날 사안들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 모두 좋은 말로 질적 성장-사실은 시련-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그러면 반환점이 되는 2010년부터 골인 지점인 2024년까지는 앞서의 성과에 기초하여 마치 초봄처럼 시련 속에서도 한 줄기 엷은 서광이 비쳐오는 가운데 2024년 이후에 시작될 한국의 황금시기를 열기 위한 초석들이 차곡차곡 놓이는 기간들이 된다.
어렵지만 희망이 있는 시기에 대해 알아보자.
무려 20년뒤의 일이므로 개략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좋으리라. 세세하게 일정표를 말해봤자 별 관심 없을 터이니. 먼저 새로운 성장의 동력원들이 나타날 것이다. 특히 경제와 문화, 학술 방면에서. 창업주가 아닌 재벌 체제는 왕국은 될 수 있어도 헝그리 정신은 없으니, 탄력을 잃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들은 금융 기법에 입각해서 세련된 경영 관리는 할 수 있지만 창조적 이노베이션은 이미 그들의 몫이 아니다.
지금 우리 벤처들은 창조적 기업가 세력과 혼효하여 얼치기 사기꾼 무리들이 판을 치지만 그 속에 진정한 창조적 소수가 서서히 등장하면서 2010년부터 두각을 나타낼 것이고, 그에 발맞추어 전당포만도 못한 오늘의 은행 시스템이 아니라 모험 자본에 대응하는 기업가적 금융의 맹아도 싹을 틔울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부를 창출하고 거머쥐게 되겠지만 지금 우리 눈앞에는 보이지 않는다.
학술 방면에서는 먼저 인문 교육이 되살아날 것이다. 지금처럼 지리멸렬한 교육 제도는 이미 사망했다. 따라서 새로운 바람이 불 수밖에 없는바, 한문에 기초한 어문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영어 열풍과 균형을 맞출 것이다. 동서를 아우르려면 한문과 영어(좀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라틴어)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인문 없이는 과학도 기술도 없는 것을 마치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대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교육 현실이다.
정권을 맡은 이들은 이같은 바탕 위에서 앞서의 15년간에 걸친 개혁과 투쟁의 산물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특히 문제를 정당한 절차를 통해 다룰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확산 보급으로 비교적 편안하게 안건들에 대해 노력을 집중할 수 있게 되니 질적 성장은 가속화 될 것이다. 그래서 좀 되는 것이 눈에 보이고 국민들도 서서히 힘을 내기 시작할 것이다. 신명나면 못 하는게 없는 우리 국민 아닌가. 그리고 그 때의 대통령들은 인기도 상당히 좋을 것이다. 좀 되는 까닭에.
이쯤 되면 서구에 없는 새로운 문제접근 방식도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한의학에서 적용하는 변증논치의 방법이다. 변증논치(辨證論治)란 아픈 증세를 알아내어 치료 방법을 정한다는 뜻으로서 한의학 고유의 치료 방법론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명리학에서 인간의 운명을 판단하고 예측할 때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의역동원(醫易同源)이란 말이 있듯이 의술과 역학은 한 뿌리에서 발전해 왔다.
한의학에서는 사람의 병을 치료할 때 국부적인 병을 치료하는게 아니라 전반적인 병의 증세를 치료한다고 한다. 이것이 변증논치다. 사람의 병이란 인체내 모든 장기와 조직들의 부조화로 인해 생긴다고 보고, 장기간의 불균형을 맞춰줌으로써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이용하여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한의학의 기본 철학이다. 이에 반해 서구 의학은 폐에 염증이 났으면 그 부분을 직접 공격하여 해결해 버린다. 그래서 외과 수술이 우선이 된다. 즉 문제점을 최대한 좁혀서 포커스를 맞춘 다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인데, 서구인들이 단일 프로젝트에 집중하면 우수한 성과를 잘 내는 이유도 사상이나 문화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물과도 같아서 한 군데를 건드리면 다른 곳에서 반향이 일기 때문에 국소적인 방법은 자칫 끊임없이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물 전체를 조정하고 수리하는 방법은 한의학의 방법이고 보다 근본적인 치료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각자 장단점이 있지만, 우리는 서구식 방법에 대해서는 상당히 익숙해있다. 반면 원래 우리의 방식인 변증논치적인 접근법은 잊고 산다.
변증논치는 전략적인 접근법이고 양의학은 전술적인 접근법인 바, 우리가 저를 따라갈 뿐만 아니라 나중에 앞서 가려면 우리 고유의 보다 탁월한 방법론을 쓰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음양 오행의 원리가 기본적으로 지닌 해결 방법이 바로 한의학에서 말하는 변증논치인 것이다. 우리가 지닌 문제점들, 우리의 발전을 막는 요소들을 관계의 그물로서 파악하고 그물 전체에 대해 접근해가는 변증논치의 접근법이야말로 21세기가 한국의 세기가 될 수 있는 근원적인 해결책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차기 정권의 과제인 ‘법 바로 세우기’는 그물의 구멍난 부분을 조망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아울러서 이야기할 것은 우리 눈앞에 너무나 거대하고 강력해서 한없이 뻗어갈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의 로마 제국, 미국은 역사의 긴 안목에서 보면 이미 지난 1964년, 바로 우리 경제가 힘차게 근대화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던 그 때 정점에 도달했고 지금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1964년은 미국이 월남 파병을 본격화하던 시점으로서 결국 월남전이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식과 달러의 금 본위제 철폐를 가져 오면서 세계는 변동 환율제와 금리 요동 현상을 가져왔고 그 이후 미국은 국민적 구심점 역할을 하던 소련마저 물리치고 이제는 공허하고 불필요한 무력주의와 금융 자본주의를 내세워 나름으로 열심히 애를 쓰고 있지만, 생각해 보라. 이제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은 누구도 쓰지 않는다. 꿈, 즉 비젼을 상실한 체제가 무슨 탄력을 지닐 수 있는지. 상대가 사라지면 이쪽도 사라지는 것이 세상의 정해진 이치인 것을.
그러나 미국은 1964년에서 120 년간, 즉 2084년까지는 그럭저럭 세상 사람들 눈에 여전히 로마제국으로 보일 것이고 특히 전반부인 2024년까지는 상당히 건재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같은 전 세계적 권력의 교체기에 우리 나라는 세종 대왕 이래 최전성기를 열어나갈 것이다. 사실상 2084년부터 미국은 없다. (여기서 너무 먼 얘기를 하니까 좀 공허하게 들리겠지만 그냥 읽어주면 고마울 뿐이다.)
왜 미국 얘기를 하는가 하면 남북이 통일되는 시기가 바로 그 때 2024년경인 까닭이다. 남북은 반드시 하나가 될 것이지만 거기에 도달하기 까지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은 정말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주변 강대국들인 미ㆍ러ㆍ중ㆍ일의 경우 돈은 제외하고 중국만 해도 한국전쟁에서 1백만명이 사망했고 미국도 10만여의 사상자가 났다. 그런 것을 선뜻 남북이 합치는 것을 수긍하겠는가? 바보라도 그렇게는 안 한다.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받으려 들 것이 뻔하지 않는가?
또 북한 김일성 부자 체제의 기득권 세력에게 남북한 통일은 곧 고통이고 상실인데 단순한 햇볕 몇 가닥에 더워서 옷을 벗으리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달콤한 발상이 아니겠는가? 햇볕 정책이 긴장 완화 효과를 가져온 것 만해도 소득은 있었지만 그것이 통일 정책의 전부는 아니다. 단지 필요 조건일 뿐이다.
남북한 통일은 단지 우리 민족과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짧게는 냉전 체제의 최후 마무리요, 길게 보면 1844 년 아편 전쟁으로부터 본격화된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드디어 멈추는 지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북 통일은 그만큼 지난한 문제이며 동시에 우리의 역량을 총 집결하여 해결해 나가야 하는 거대한 과제인 것이다.
그 본격적인 해법은 미국이 비틀거리기 시작하고 중국이 좀 더 멋을 부릴 시점, 일본이 더 이상의 팽창주의를 포기하는 시점, 러시아가 패권주의가 아니라 진정으로 동아시아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시점들이 맞물리면서 상승효과를 보일 것이니 실로 우리 외교 역량의 기념비적인 금자탑이 될 것이다.
우리 국운의 사이클을 마치면서 하고픈 이야기가 있다. 역사가 느린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급할 뿐이다. 역사는 자기만의 정확한 시계 바늘로 일분 일초도 틀리지 않고 시간의 화살표를 따라서 진행하고 있다. 채칵채칵, 이제 역사의 시계 바늘 소리가 들리는가?
기사입력 2002-03-15 10:01| 최종수정 2002-03-15 10:01
의역동원(醫易同源) ①
| 기사입력 2002-03-22 10:37| 최종수정 2002-03-2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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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사주 팔자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지 또 장차 어떤 병을 앓을 수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수천 수만 가지 병세를 다 맞힐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 사람이 체질적으로 어디가 약한지 그리고 만나는 운에 따라 어떤 부위에 병이 발생할 수 있는지는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스스로도 그것이 너무 신기해서 더욱 더 호기심이 발동되었고, 한의학의 여러 서적들을 섭렵하게 되었다. 한문과 중국어를 좀 익혀둔 덕분에 책을 볼 수 있었고 책을 보다 보니 어문 실력이 더욱 늘었다. 내경(內經)과 상한론(傷寒論), 천금방(千金方), 동의보감 등등 적지 않은 서적들을 읽게 된 것이다.
한편 등에 담이 심해서 침구 치료를 중국 하얼빈의 교포 선생님으로부터 몇 개월 받으면서 침구를 어설프게 배운 것이 계기가 되어 더욱 한의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여기서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 까닭은 인간의 운명을 말해주는 명리학과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한의학이 정확하게 같은 이론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인데, 그것이 바로 음양오행(陰陽五行)이다.
의역동원(醫易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의술과 역술은 같은 근원에서 나왔다는 얘기인데,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의 사주를 봐 주고, 또 한의학 책을 읽어 오면서 깊게 체험한 것도 이 점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오늘날 한의학은 중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학문이지만, 불과 50년전만 해도 한의학은 미신적인 치료법으로 매도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주로 중국의 근대 계몽사조를 대표하는 양계초와 같은 사람들의 소행인데, 원래 계몽사조란 것은 위험에 처한 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 과거를 깡그리 부정하는 우를 범하기 마련이다. 연초에 프레시안에서 '토지'의 작가 박경리님과의 대담 기사를 게재한 것을 봤는데, 박경리님은 계몽 사조에 대해 대단히 분개하시고 계셨다. 빙긋이 웃으면서 동감했다. 하지만, 일이란 것은 언제나 지나치기 마련이고 지나쳐야 되돌아 오는 법이다.
또 한가지 필자가 재미나게 느끼는 사실은 한의학은 그렇건만 명리학은 여전히 미신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점이다. 명리학이 미신으로 취급받기 시작한 것 역시 아직 100년이 되지 않는다. 명리학은 일제에 강점당한 1910년까지 엄연히 과거시험의 한 분과로 들어가 있었다. 음양과속에 천문, 지리와 함께 명과(命科)라고 해서 명리학에 밝은 사람을 정부에서 채용했다. 속설이지만 배우기 쉬운 당사주라는 것은 민간에 널리 전파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초 교양이 부족하면 익히기 어려운 명리학은 명과에 급제한 관원들이나 학문이 깊은 선비들이나 연구할 수 있는 분야였다.
그러면 한의학과 명리학이 어떤 점에서 같은지 좀 더 들어가 보기로 하자.
먼저 '내경(內經)'이란 책을 간단히 소개한다. 내경은 소문(素問)과 영추(靈樞)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자는 이론이고 후자는 침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 소문은 중국 전국시대에 지배 사조로 자리잡은 음양오행 이론에 바탕하여 그후 수 백년 간에 걸쳐 보완 발전된 의학 이론서로서, 한의학의 핵심적인 이론 체계를 담고 있다.
필자는 예전에 명리서를 읽고 연구할 때, 중국 건륭제 시대에 편찬된 사고전서(四庫全書) 속에 들어있는 명리서 들까지 죄다 보았지만 크게 얻는 바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내경'을 읽고 나서 비로소 눈을 열게 되었다. 내경은 한의학의 보전(寶典)이지만, 그 이론을 인생의 일을 살펴보는 명리학에 적용하면 실로 신통한 바가 있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었고, 나아가서 내경의 이론들이 가진 함의(含意)를 제대로 응용하면 세상의 일들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경의 주요 이론을 크게 나누면 인체의 오장 육부가 각각 음양 오행에 배속된다는 장상론(臟象論), 인체의 기운이 오르내리고 외부 세계와 상호 연관된다는 승강출입설(昇降出入說), 특히 그중에서도 수화상교(水火相交)에 관한 이론, 인체를 소우주로 파악하고 각 장부의 기운이 서로 연동되어 상호 견제하거나 도와주는 작용을 한다는 정체항동관(整體恒動觀) 등을 들 수 있다. 내경의 중요한 이론은 이외에도 많지만 여기서는 이만 다루기로 한다.
그러면 명리학의 기본 이론은 무엇인가 간략히 살펴보자.
기본 이론은 기운이 강하면 그 강한 기세를 이끌어 주어서 공(功)을 이루게 하든가 아니면 적당히 견제해서 균형을 맞춰 주어야 한다는 중화관(中和觀)이다. 이 또한 내경의 중화관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또 하나 명리학의 주요 이론은 오행의 기운은 끊임없이 유통하여야 좋다는 유창관(流暢觀)인데 이는 낳고 또 낳는 것(生生)을 역(易)이라 하고 도(道)라고 하는 주역 사상이자 내경의 근본 사상이기도 하다.
이와 연관되어 파생되는 이론으로서 통관(通關)이라는 이론이 있는데 사람의 사주 팔자 속에서 목(木)이 화(火)를 낳고 화가 토(土)를 낳는데 이 경우, 화(火)가 결여되어 있으면 연결 고리가 없는 탓에 생생의 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운에서 화를 만날 때 그 사람의 일이 번창한다는 이론이다.
아울러 주요한 이론으로 조후(調喉)라는 것이 있다. 이는 온난한습(溫暖寒濕), 즉 따뜻하고 추운 것, 건조하고 습한 것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것으로, 일종의 기후와 풍토에 관한 것으로서 내경에서 말하는 수화상교의 이론과 기운의 승강출입 이론과 전적으로 동일하다.
예를 하나 들면, 오행 중에서 수(水)는 인체의 생식기와 관련되는데, 여성의 경우 남성과 달리 생식기관들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교묘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여성의 경우 더운 여름에 태어난 분들은 사주팔자 중에서 물의 기운이 약하거나 부족할 경우 예외 없이 신장 기능은 물론 생리 불순, 냉대하, 자궁이나 난소 등의 기관에 이상을 가지고 있다. 수기가 부족한 형태도 다양한 까닭에 병의 원인이나 종류도 지극히 다양하게 나타난다. 필자는 이 부분에 관한 자료들을 오래 전부터 수집하고 연구하여 왔는데 언젠가는 책으로 남길 생각이다.
필자가 느끼기에 명리학을 깊이 공부하려면 한의학 서적들, 특히 '내경'이야말로 보전중에 보전으로서 실로 아무리 연구해도 지나침이 없는 텍스트로서 권하고 싶다.
장경악이라고 중국 명대의 고명한 의사가 있었는데, 이런 얘기를 했다.
“조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상생(相生)함이 없어서도 안되지만, 상제(相制)함이 없어서도 안된다. 상생하지 못하면 발육될 수 없고, 상제되지 못하면 지나쳐 화를 입는다.”
의술의 핵심 이론이기도 하지만 필자가 사람의 사주팔자를 볼 때도 가감 없이 적용하는 이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이 논리가 사람의 병을 고치거나 사람의 운명을 내다보는 데에만 쓰이는 것일까?
상생함으로써 발육시키고 상제함으로써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이치는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의 장점을 발전시켜 주고, 너무 버릇이 없거나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보이면 야단을 치거나 벌을 주는 것은 만고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흔히들 야단치거나 매를 들지 말라는 신식 교육 이론들이 등장하곤 하지만, 과연 세상에 아이를 벌 주거나 매 한 대 대지 않고 키울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단 말인가.
모든 일에는 기세나 유행이란 것이 있어서, 가만 두면 지나치게 되어 있는 법이다. 열심히 하다 보면 나중에는 지나치기 마련인 것이다. 저번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계몽 사조란 것이 결국 지나치게 옛 것을 부정한 까닭에 마침내 스스로의 정체성(identity)마저 부인하는 우를 범하는 것도 이런 이치다. 이와 관련해서 할 말이 하나 더 있다.
19 세기말, 서구 열강들이 도도하게 전 세계를 휩쓸어 가는 과정에서 위기를 느낀 한ㆍ중ㆍ일 삼국은 저마다 대책을 내놓았다. 우리는 동도서기(東道西器)란 말을 썼고, 일본은 화혼양재(和魂洋才), 중국은 중체서용(中體西用)이란 말을 썼다. 뜻을 보면 이런 말이다. 주체성을 잃지 않는 가운데, 서양의 신식 기술을 적극 사용해서 나라를 부흥시켜 보자는 말이다. 그러나 그 점에서 성공을 거둔 나라는 일본 밖에 없다.
왜 실패했을까? 수없는 이론과 주장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핵심은 이렇다. 서양의 기술은 서양의 문화적 전통 위에서 발전되어 온 것이기에 문화적 체험 세계가 다른 동아시아 나라들이 서양 기술을 제대로 써먹기 위해서는 서구 문화에 대한 이해와 그것의 발전적 수용 과정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 문화 속에 체화(體化)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동아시아 문화의 인력권에서 비교적 변방에 속한 일본은 서양 기술을 도입하여 비교적 쉽게 체화하는 과정을 밟을 수 있었지만, 우리나 중국은 그렇질 못했다. 그렇기에 근대화 또는 서구화는 일본, 한국, 중국 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근대화, 서구화란 말에는 어폐가 있다. 지금 우리나 일본, 중국이 거치고 있는 과정은 서구화도 아니고 근대화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서구 문화의 발전적 수용과정, 즉 체화 과정이라고 봐야 옳다. 하지만 한번 우리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린 마당이라, 그 과정은 엄청난 폐단을 낳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지금 대학 갈 때 보는 수능시험, 바로 수학능력시험은 미국의 SAT(Standard Achivement Test)를 그대로 번역한 말이데, 제도 도입도 거의 번역 수준을 넘어서질 못하고 있어, 그 폐단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왜 그럴까 대충 살펴보자.
미국이란 나라의 기본 사상은 모든 이에게 기회의 균등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으로서 이는 미국 헌법 조문에도 실려 있다. 따라서 대학 들어오겠다는 사람은 쓰고 읽는 기본 소양만 있으면 문호를 널리 개방해서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기에 수능 시험의 난이도는 평이하며 학생을 가르친 고등학교 선생들의 평가를 오히려 중요한 판단 자료로 쓰고 있다.
즉 싹이 틀 가능성이 있는지만을 확인한다. 그 어린 묘목들 중에서 될성부른 나무를 키워내는 것은 대학의 몫이 된다. 따라서 엄혹한 교과 과정이 수반될 수밖에. 그러나 교육이란 엘리트만 키워내는 것이 아니기에 소위 엘리트는 사립 명문 고등학교가 있고 공립을 나왔어도 명문 대학에서 철저하게 확인하고 평가한다. 그래서 명문 대학, 명문 학과를 들어가도, 어느 교수에게 배웠는지, 어느 스터디 그룹에서 공부했는지, 학점은 어떤지를 철저히 구분하고 옥석을 가려낸다. 결국 몇 학번이냐, 어느 명문 대학, 명문과, 명교수의 지도 여부, 전통있는 스터디 그룹인가에 따라 입사할 때 연봉도 천차만별이다.
기회의 균등이란 어떤 면에서 냉정하고도 철저한 평가 과정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우수한 학생이 배경이 모자라서 밀리는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철저한 일련의 평가 과정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서는 어려운 것이다. 대학도 얼마나 우수한 학생을 키워냈느냐에 따라 해마다 점수가 주어지는 미국이다. 그러한 과정이 엄정하고 공평한 것은 미국이 기본적으로 청교도적인 윤리의 바탕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에게 ‘공정하지 않다’(unfair)는 말은 최대의 항의를 나타내는 말이다. 공정하지 못한 것에 설움과 압박을 느낀 유럽인들이 도망쳐 와서 만든 미국이기에, 그 생명력과 탄력은 한마디로 말해 공정성(fairness) 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미국이 최근 별로 공정(fair)하지 못한 행동을 대국이랍시고 버젓이 하고 있으니 정말 심상한 일이 아니다. 시쳇말로 맛이 갔다고나 할까!
수능 제도 뒤에는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연유하는 그들만의 하부 제도와 장치들이 작동되고 있다. 그것을 우리의 몇몇 고명하신 박사님들이 미국에 가서 그 제도를 보고 이 땅에다 옮겨 놓았으니 얼마나 문제점이 많겠는가 말이다. 수능을 도입해 놓고 언제까지고 미봉책만을 연발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나아가서 비단 이런 문제점이 수능에만 그칠까.
이는 청일전쟁에서 청 해군이 일본 함대와 결전을 벌일 때, 프랑스식 대포의 작동법은 알았지만 대포를 정비하고 부품을 조달하는 하부 체제가 정비되지 않았던 탓에 제대로 쏴 보지도 못하고 괴멸한 것과 사실은 동일한 이치다. 체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어설픈 중체서용의 비극적 결말이었다. 그러기에 다른 산의 돌(他山之石)을 가져다 쓸 때는 이 쪽의 충분한 수용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자칫 우리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도 청 해군 꼴이 나지 않을까 정말 두렵다.
정체성에 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약간 옆으로 흘렀다. 다시 한의학과 명리학의 관련에 관한 얘기로 돌아가겠다. 한의학의 소의 경전인 내경의 이론에 바탕하여 병을 치료하는 법을 더욱 발전시킨 사람으로서 장중경(張仲景)을 빼 놓을 수 없다. 장중경은 ‘상한론(傷寒論)' 이라는 저술에서 저번에 ‘우리 국운의 사이클’에서 필자가 언급한 변증논치의 사상을 제시하였다.
변증논치란 다시 얘기하지만, 병명을 진단하기에 앞서 변화되어 가는 증후의 차이에 따라 치료하는 방법을 정하는 것으로서 단순한 대증 요법이 아니라, 인체 전체에 대한 접근 방법이다. 아울러 명리학에서 사람의 운명을 예단할 때도 바로 이 변증논치의 법을 쓴다.
첫댓글 좋은정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