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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책 | 기록연대 | 최초 사본 | 간격 | 사본 수 |
호머 | 일리아드 | -800 | -400 | 4000 | 643 |
헤로도투스 | 역사 | -480~425 | +900 | 1,350 | 8 |
투키티테스 | 역사 | -460~400 | +900 | 1,300 | 9 |
플라톤 | 철학 | -400 | 10세기경 | 1,300 | 7 |
타키투스 | 연대기 | +100 | +1,100 | 1,000 | 20 |
<신약역본들>
- 신약 최초의 번역본들은 시리아어와 라틴어, 또는 콥틱어를 모국어로 하던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했던 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메츠거)
1) 시리아어 역본들
2) 라틴어 역본들
3) 콥틱(이집트어) 역본들
4) 기타-고딕어, 조지안어, 에디오피아어, 누비안어 등
(3) 초대교회의 신약성경 인용(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이전)
1) 폴리캅(70-156)
2) 이그나티우스(70-110)
3) 로마의 클레멘트(95)
4) 저스틴(133년에 순교)
5)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150-212)
6) 터툴리안(160-220)
7) 오리겐(185-235, 또는 254)
8) 키프리안(258년 사망)
"니케아 이전만 해도 약 32,000회 신약성경이 인용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회수는 절대로 모든 인용횟수를 포함시킨 것이 아니며 더욱이 4세기 작가들은 포함시키지도 않았다"(가이슬러& 닉스)
3. 성경의 오류에 대한 변증
<고대문헌들을 해석하는 기본 원리들>
제1원리: 아직까지 설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는 걸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제아무리 충분한 정보를 가진 사람도 모든 성경의 난제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제2원리: 해석상의 오류가 계시상의 오류는 아니다. 인간은 유한하다. 유한한 존재는 실수를 하게 되어 있다.
제3원리: 단락을 문맥 내에서 이해하라.
제4원리: 난해한 구절은 분명한 구절에 비추어 해석하라
제5원리: 모호한 구절에 근거해 가르치지 말라
제6원리: 성경은 인간이 등장하는 책이다.
제7원리: 어떤 한 기사가 불완전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잘못된 기사라는 것은 아니다.
제8원리: 구약의 내용을 신약에서 정확하게 인용한 것은 아니다
제9원리: 성경은 서로 다른 문학 기교를 사용하고 있다
제10원리: 사본 상의 오류를 원본상의 오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제11원리: 일반적 진술이 반드시 보편적 약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12원리: 나중 계시가 이전 계시보다 우선한다.
제13원리: 성경은 비 기술적인 일상용어로 기록되었다.
제14원리: 성경은 어림짐작 숫자도 사용하고 있다.
제15원리: 성경이 모든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다 인정하는 건 아니다.
<구약성경의 역사적 신뢰성>
- 구약성경의 역사적 신뢰성을 살펴보는 것은 본문의 전승 즉, 성경 원문에서 오늘날의 인쇄본에 이르기까지의 경로)과 관련이 있다. 다른 고대 문헌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겐 원본이 없다. 그러므로 다음의 요소들을 점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1) 필사과정은 얼마나 정확했나?
1) 글리슨 아처
"구약은 고대의 그 어떤 다른 문학작품들과 완전히 다르다. ... 애굽인들의 '死者의 書'는 사본간의 차이가 아주 심하며 심각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 전체 절이 삽입되거나 빠져 있고 본문에 상응하는 한줄 한줄의 의미가 어떤 경우엔 완전히 다르다. 본문 전승에 있어서 몇 세기 동안이나 간격이 있는 본문 사이에 왜 히브리 본문에서는 그와 똑같은 변개나 변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것은 히브리 성경의 본문 전승이 초자연적인 신의 간섭에 의한 것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2) 로버트 딕 윌슨
"히브리 성경엔 26개 이상의 외국 왕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 왕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기록된 문헌들에서 그 이름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이름들은 그들 스스로 세운 기념비나 그들이 다스리던 기간에 쓰여진 문헌들 속에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철자 그대로의 이름으로 발견되고 있다.... 2,300~3,900년 동안 히브리 본문에 나오는 고유명사는 거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승되었다. 원본 필사가들이 얼마나 철저한 주의를 기울인 학자들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것"
3) F.F. 브루스
"자음으로 된 히브리 성경 본문은 거의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고 마소라학파들에게 전수되어 내려왔으며 그들은 그것을 새로 편집했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 필사의 시대적 구분
제1기 필사시대: 쇼페림시대(주전 400~주후 200년)
제2기 필사시대: 탈무드시대(주후 100~주후 500년)
제3기 필사시대: 마소라학파시대(주후 500년 이후)
(2) 사본의 질은 어떠한가?
1) 2~3천년이란 세월은 길고도 긴 세월로서 고대 문서들이 남아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사본들은 질이 상당히 괜찮은 수준의 것이다.
2) 히브리사본의 첫 번째 선집은 벤자민 케니콧이 1776-1780년 사이에 만들어 옥스퍼드에서 출판된 것으로 615개의 구약 사본 목록이 들어 있다. 이후 지오반니 데 로시가 1788년에 731개의 사본집을 출판했고, 근대에 들어 1890년에 카이로에서 게니자(창고)에 보관된 사본이 20만 개나 발견되었는데 이중 절반가량은 현재 캠브리지 대학에 소장되어 있고 나머지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3) 가장 중요한 히브리 구약사본은 1947년에 발견된 사해사본으로 그 연대가 주전 3세기부터 주후 1세기 사이로 추정되며 이사야서 한 권과 에스더를 제외한 수천 개의 성경의 단편들이 포함되었다.
(3) 70인역(LXX)-'셉튜아진트'(70)은 믿을만한가?
- 유대인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전쟁 때 자국을 떠나 흩어져 살게 되었고 그 당시의 언어로 된 성경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집트의 프톨레미 왕은 문학의 후원자로 명성이 자자했다. 이 때 도서관장이었던 디메트리우스가 유대인의 율법을 왕에게 소개했고 왕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사신을 파견,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에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각 6명의 장로를 번역가로 선출, 이집트로 보냈다. 장로들은 왕의 식탁에서 먹고 마시며 토론을 통해 왕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쳤으며 이후 파로스 섬의 아름다운 주택에서 72일간 머물며 모세오경을 헬라어로 번역하는 일을 완수했다.
(4) 고고학의 뒷받침은 있는가?
1) 수많은 고고학적 발견들이 성경문사들의 역사적 정확성을 확증해 주었으며 심지어는 성경에는 나오지만 사라져 버려 알 수 없었던 외국 왕들의 이름까지 알려 주었다.
2) 고고학자 넬슨 글렉은 "분류상 지금까지 발견된 그 어떤 고고학적 증거도 성경의 진술과 모순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개략적인 진술이나 아니면 자세한 역사적 진술을 확증해 주는 고고학적 발견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했다.
3) 19세기 자유주의학자들은 성경상의 오류를 지적해 내는데 혈안이 되었다. 그들은 사르곤대제는 결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헷 족속도 존재하지 않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족장들에 대한 기사와 장막의 일곱 촛대는 그 배경이 아주 후대의 것이며, 다윗제국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같이 넓지 않고 벨사살 왕은 절대 존재하지 않았으며 성경엔 그 외에도 많은 오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4) 그러나 이후 고고학적인 발견들은 이 모든 억지들을 단번에 뒤집었다. 사르곤대제가 니느웨 북쪽 약 19km에 있던 웅장한 궁궐 같은 곳에 실제로 살았으며, 헷 족속이 실존했고, 족장시대의 배경들이 실제로 딱 들어맞으며, 일곱 촛대의 개념은 초기 철기시대를 상징하고, 다윗제국의 도시가 북쪽에 있었고, 벨사살 왕은 실제로 바빌론을 통치했음이 발굴 결과 낱낱이 밝혀졌다.
(5) 결론
1) 사마리아 오경과 70인 역, 그리고 수많은 내외부의 본문 교차 점검에 의한 확증을 받은 수천 개에 이르는 히브리어 사본들은 구약 성경 본문의 충실성에 놀라울 정도의 뒷받침을 하고 있다.
2) 구약 본문이 신약과 아주 중요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의 신뢰성은 기독교 신앙을 뒷받침해 준다.
3) 사해 사본의 발견으로 학자들은 마소라사본보다 천 년이냐 앞선 히브리어 본문을 갖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해 히브리어 성경 본문의 충실성을 검토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경우를 검토해 본 결과, 95% 이상이 단어와 단어까지 똑같으며 5%의 차이는 필사할 때 펜이 미끄러졌거나 철자상의 차이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4) 쿰란에서 출토된 이사야 두루마리는 영어성경 RSV번역자들로 하여금 마소라 사본에서 13개만 새로 고치게 했는데 그중 8개는 고대 역본에서 알려져 있던 것이며 나머지는 중요한 차이가 아니었다.
4장. 예수의 역사성
- 일반 세속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예수님에 대한 기록들은 총 45개의 고대 자료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 가르침,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건, 부활에 관한 기록들은 모두 합쳐서 129가지 이상 된다.
1. Josephus
(1) The Antiquities(고대사)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산헤드린고회를 소집한 후에 당시 그리스도라고 불린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와 어떤 사람들을 그들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율ㄹ법을 어겼다고 고소를 하고 돌로 쳐죽이도록 그들을 넘겨주었습니다."(XX9:1)
(2) Testmonium Flavianum(플라비우스의 증언)
" 이 당시에 예수라 일컬어지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다. 만약 그를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법적이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놀랄만한 기적을 행하는 자였고, 진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빌라도가 우리 중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제안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선고했을 때 처음부터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끝까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는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났다. 이는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이미 이 사실과 그 밖의 수많은 기적들을 그에 대해서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는 무리들이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2. Tacitus의 연대기
" 네로는 죄인들을 묶어두고 혐오스러운 행위 때문에 미움을 맏는 무리들, 즉 대중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격렬한 고문을 가했다. 그리스도는(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인데) 티베리우스의 통치기간에 로마의 행정관이었던 빌라도의 손에 극단적인 형벌을 받았다. 그리고 매우 해로운 미신으로 간주되던 신앙이 당장에는 박해를 받았지만 그 악이 발생한 최초의 장소인 유대지방에서 다시 일어났고 심지어 로마에서도 생겨났다.... 그래서 유죄를 인정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최초로 체포가 행해졌다. 그때 그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도시 방화죄 때문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다."(Annals XV 44)
<타키투스가 밝힌 중요한 포인트>
1)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한다는 점(행11:26)
2) 그리스도는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극단적인 처형을 받았다는 점(막15:15)
3) 그 십자가 처형이 티베리우스의 통치기간(주후14-37)
4) 예수의 죽음을 믿는 신앙이 해로운 미신으로 간주되었다는 점(행 17:6, 24:5)
5) 그 신앙이 최초의 발생지인 유대지방에서 다시 일어났다는 점
6)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로마에까지 그 신앙을 가져갔다는 점
7)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체포가 이루어졌다는 점
3. Pliny의 편지
(터키 북서부에 위치한 비두니아 지방의 총독. 친구인 로마황제 트라얀에게 보낸 편지)
" 나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귿르이 인정하면 두 번 세 번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면서 그들을 기다리는 거은 처벌 뿐이라고 경고했다. 그들이 끝가지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끝네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죄나 잘못은 이런 것 빡에 안된다고 말했다. 즉 , 동이 트기 전에 정기적으로 모여서 하나님게 대하듯이 그리스도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찬송했을 뿐이며, 도둑질, 강도, 그리고 간음을 하지 않기 위해 맹세함으로써 자신들을 구속한 일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Epistles X96)
4. 예수의 생애에 관한 고대자료들의 종합적 결론(야마우치 박사의 의견)
(1) 예수는 유대인 선생이었다.
(2) 많은 사람들은 예수가 치유를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했다고 믿고 있다.
(3) 어떤 사람들은 그가 메시야라고 믿었다.
(4) 그는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배척을 받았다.
(5) 디베랴지방의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6) 십자가라는 수치스러운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은 추종자들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주후 64년경에는 로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7) 도시와 시골 할 것 없이 모든 부류의 사람들, 남자와 여자와 노예, 자유니들 모두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했다.
5.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라는 증거들
(1) 성경은 가장 정확한 증거...일반종교와 문서는 실제 인물과 문서로 기록되는 시간의 차이가 엄청나다. 단군신화는 3,600년 차이, 조로아스트교는 1,000년, 불교는 200년에서 600년, 회교는 최소 135년,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는 약 400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예수는 죽은 후 불과 30년에서 60년 사이에 거의 완전한 형태의 문서로 기록되었다. 특히 사도 바울의 편지들은 불과 예수 사후 18년에서 30년 사이에 거의 다 완성되었다. 또 바울이 소개한 신앙고백들은 예수 사후 2-3년 후에 존재했던 신앙고백들이었다.
(2) 신약성경은 원본과 사본의 시간 간격이 고대 어떤 문서보다 짧고 그 내용들이 모두 서로 일치한다.
(3) 성경 외에 나타난 자료들은 예수의 역사성을 충분히 입증한다. 만약 예수님이 역사상 실제 인물이 아니었다면 유대 지역과 필레스타인, 소아시아, 그리고 로마지역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 기독교운동의 확산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과연 거짓을 위해 처음부터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을까? 분명히 그들은 인간 예수의 모습에서 뭔가 엄청난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예수 운동이 수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확산되었다고 보아야 합리적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요일3:16).
최더함 교수
첫댓글 지난달 공과금도 거의 다 못내고 있습니다...
카페에 일부게시판 보기 설정을 믿음회원으로 상향조정했습니다
어차피 카페를 운영 할 형편이 안되어 내린 결정입니다
긴급알림-카페후원이 전혀없으니 카페도 그만해야 되는데...
카페를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공과금을 한가지도 못내고 있습니다....
후원참여 하신분이 없습니다
카페에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카페에 후원을 해주셔야
카페를 계속 운영할 수 가 있습니다
통신료와 공과금을 내야합니다
카페지기는 월세를 살기 때문에 형편이 매우 어렵습니다
코로나19로 모두 힘든 시기입니다 카페지기도 너무 힘들게
지냅니다 먹을것(식품,반찬거리) 사도록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카페지기는 지병.때문에 매달 치료비가 많이듭니다
매월 공과금과 주거임대 임대료 관리비 마련이 어렵습니다
먹을것 반찬거리도 사야 살아가는데 지병과 장애 나이도
들다보니 수입이 전혀 없습니다 어려우시더라도 회원님께서는
작은 사랑으로 카페지기에게 용기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카페지기 전화입니다 010.2261~9301
국민은행 229101-04-170848 예금주.황종구
농협 233012-51-024388 예금주.황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