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51편 1~19절
[서론] 거짓된 가면의 파멸과 짐을 짊어진 인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기를 원합니다.
영화《미션(The Mission)》에는 잊을 수 없는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스페인의 용병이자 노예 상인이었던 '로드리고 멘도사'입니다. 그는 권력과 혈기, 탐욕에 사로잡혀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급기야 그는 자신의 질투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하나뿐인 친동생을 칼로 살해하는 비극을 저지릅니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절대적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그의 영혼을 완벽하게 파괴했습니다. 그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음식을 거부하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왕이라는 거룩한 가면, '성군'이라는 외적 명분 뒤에 숨어 간음과 교묘한 교살(絞殺)을 저지른 후, 다윗은 약 1년 동안 아무 일도 없는 듯 왕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철학자 사르트르가 말한 '자기기만(Mauvaise foi)'과 영적 마비 속에서 짓눌려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51편은 선지자 나단의 폭로 앞에 다윗의 거짓된 가면이 완전히 찢겨 나가고, 오직 하나님 앞에 발거벗겨진 '단독자(The Single Individual)'로 서서 올려드린 통찰과 눈물의 고백입니다.
오늘 이 시간, 본문을 통해 다윗의 참회가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재창조하고 신약의 복음으로 연결되는지 깊이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째, 나의 죄를 정직히 고백하고 십자가의 우슬초를 바라보십시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히브리어의 3가지 핵심 죄 용어를 모두 꺼냅니다. 내가 저지른 죄과, 즉 하나님을 향한 의도적인 반역과 적극적인 거역의 범죄인 ‘페샤(פֶּשַׁע)’, 그리고 올바른 길에서 비틀어지고 구부러진 내면이 오염된 상태인 죄악/죄책인 ‘아본(עָוֺן)’과 창조 목적의 표적을 벗어난 일반적인 죄 ‘하타아(חַטָּאָה)’를 자복합니다. 특히 다윗은 2절에서 자신의 죄를 '말갛게 씻어 달라'고 부르짖을 때 ‘카바스(כָּבַס)’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단순히 얼굴을 씻는 세수가 아니라, 찌든 때를 빼기 위해 옷감을 몽둥이로 두들기고 발로 비벼 씻어내는 극단적 정화를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가 영혼의 섬유질 깊숙이 찌들어 있어, 뼈가 꺾이는 고통의 두드림 없이는 깨끗해질 수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단독자로서 "내가 주께만 범죄하였나이다"(4절)라고 고백하는 다윗의 통회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합니다. 다윗은 7절에서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 구약의 우슬초는 죽음과 정결 의식에 피를 적셔 뿌리던 식물입니다. 그리고 수천 년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페샤'와 '아본'과 '하타아'을 짊어지시고 숨을 거두시기 직전 머금으셨던 가지가 바로 우슬초였습니다(요 19:29).
성도 여러분, 우리는 혹시 사회적 체면과 교회의 직분이라는 가식 뒤에 우리의 '아본(비틀어진 내면)'을 숨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지은 죄의 무게를 정직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용서가 시작됩니다. 내 힘으로는 이 찌든 죄를 '카바스(비벼 씻음)'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우슬초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앞으로 정직하게 나아가십시오.
둘째, 자아의 파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재창조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10절에서 다윗은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위대한 간구를 올립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바라)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여기서 사용된 ‘바라(בָּרָא)’라는 히브리어는 성경 전체에서 주어가 오직 '하나님'일 때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나님이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실 때' 쓰였던 그 단어입니다. 다윗은 자기 내면에 선한 것이 조금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기존의 부패한 자아를 조금 수선하거나 결심을 새로이 하는 도덕적 재수용(Repair)으로는 영혼이 살 수 없음을 알았기에,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전능하신 권능으로 '새로운 마음을 재창조(바라)해 주실 것'을 부르짖은 것입니다.
이는 바울 사도가 선언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는 신약의 거듭남의 역사입니다.
그 재창조는 어디서 일어납니까? 바로 17절의 ‘상한 심령’입니다. 히브리어로 '상하다'는 ‘다카(דָּכָה)’로, 가루가 되도록 짓밟히고 으깨진 상태(Crushed)를 말합니다.
영화《미션》에서 멘도사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죄의 무게를 상징하는 무거운 갑옷 뗏목을 줄로 묶어 등에 지고, 험난한 폭포 절벽을 기어올라갑니다. 그의 자아와 교만이 완벽하게 으깨지고 부서지는 '다카(상한 심령)'의 순간이었습니다. 절벽 끝에서 원주민 전사가 칼을 들고 다가왔을 때, 멘도사는 죽음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원주민은 그의 목을 베는 대신, 그의 몸에 매여 있던 죄의 짐(갑옷) 줄을 잘라 폭포 아래로 던져버립니다. 멘도사는 그 자리에서 꺾인 뼈의 고통을 뚫고 통곡의 눈물을 흘립니다. 이것이 바로 자아가 깨어진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바라(재창조)’의 은혜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완벽함과 당당함, 자존감을 말하지만, 하나님이 찾으시는 제사는 스스로의 공로와 의를 내세우는 교만이 아니라 가루처럼 으깨진 '상한 심령(다카)'입니다. 나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상한 심령으로 엎드릴 때, 하나님은 성령(루아흐)을 거두지 아니하시고 우리 안에 새로운 거룩한 마음을 재창조하여 주실 것입니다.
셋째, 용서받은 은혜로 자신을 살리고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십시오
참회는 나의 감정적 정화나 개인적인 안도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13절에서 다윗은 결단합니다.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여기서 '주의 도'는 히브리어 ‘데라케카(דְּרָכֶיךָ)’로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방식과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 율법의 다양한 도리, 그리고 '죄인을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시는 다양한 은혜의 비결(Ways of God)' 전체를 포괄합니다. 깊은 죄와 절망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 חֶסֶד’)으로 용서받은 사람은, 이제 다른 죄인과 연약한 자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로 거듭납니다.
영화《미션》에서 죄의 짐을 벗은 멘도사는 자신을 용서해 준 과라니 족 원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 아이들과 약자들을 섬기고 목숨 바쳐 지키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밤새 통곡하며 예수를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 회복된 후, 형제를 세우고 양을 치는 사도로 거듭난 것과 같습니다.
나아가 다윗의 참회는 개인의 회복을 넘어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18절)라는 공동체의 회복으로 확장됩니다. 19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제사'가 드려집니다.
내면의 가식이 깨지고 통회한 심령들이 모여 드릴 때, 그 예배야말로 신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예배"(요 4:24)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사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용서받은 자의 특권은 나만 구원받았다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죄와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는 세상을 향해 '주의 도'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나의 부서진 상처가 타인을 살리는 통로가 되게 하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진정한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시온)로 바로 설 것입니다.
[결론] 상한 심령 위에 임하는 재창조의 복음
오늘 우리는 시편 51편을 통해, 영화《미션》을 통해, 하나님 앞에 선 다윗과 로드리고 멘도사의 처절한 실존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세상의 화려한 가면을 벗어던집시다.
ㆍ우리의 죄는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죄과(‘페샤, פֶּשַׁע’)와 죄악(‘아본,עָוֺן’), 죄('하타아, חַטָּאָה’)입니다. 나의 어설픈 자아나 결심으로는 결코 나 자신을 수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우슬초 가지에서 흘러내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찌든 죄를 말갛게 씻어(‘카바스, כָּבַס')주십니다.
ㆍ하나님은 산산조각 난 우리의 상한 심령('다카, דָּכָה’)을 결코 멸시하지 않으시고, 그 부서진 빈자리에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무에서의 재창조(‘바라, בָּרָא’)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ㆍ그리하여 깊은 죄와 절망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 חֶסֶד’)으로 용서받은 사람은, 이제 다른 죄인과 연약한 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주의 도(‘데라케카, דְּרָכֶיךָ)’를 증거합니다.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 부르짖읍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심령 속에 정한 마음을 재창조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 은혜의 힘으로 일어서서, 이 어두운 세상 속에 용서의 복음을 전하고 참된 예배를 회복하는 거룩한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