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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단체 관계자들이 정경자(가운데) 부구청장에게 외래어가 포함된 동 이름 지정을 중단해 달라고 요구하는 밝힘 글을 전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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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한글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대전 유성구청장에게 바람을 맞았다.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고경희 한국문화연대 대표, 김차균 한글학회 이사를 비롯한 한글단체 관계자들이 20일 오후 속속 대전 유성구청에 도착했다. 이날 오후 2시 진동규 유성구청정과의 면담을 위해서다. 이들은 의회 상임위를 통과한, 전국 처음으로 외래어가 섞인 '관평테크노동(洞)' 행정동 명칭을 바꿔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유성구청을 방문해 구청장과 만나 의견을 나누기로 약속했다.
이에 앞서 유성구는 분동되는 구즉동의 동 명칭을 인근 '테크노 아파트' 주민들을 의식해 영어식 표기인 '테크노동'으로 제정하려다 비난이 일자 '관평테크노동'으로 입법예고해 논란을 벌여왔다. 특히 유성구는 당시 유성구의회가 요구해 벌인 주민여론조사 결과 '관평동'을 원하는 의견이 67%로 가장 높게 나왔지만 주민간담회 결과라며 '관평테크노'라는 이름을 고집했다.
유성구, 아파트 주민 요구에 전국 처음으로 외래어 섞인 행정동 명칭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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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단체 관계자들은 진동규 구청장과 면담약속을 하고 찿아왔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구청자잉 아닌 이해당사자인 '테크노밸리 아파트'입주민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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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구의회도 지난 13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유성구가 입법예고한 대로 동 이름을 '관평테크노동'으로 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면담 10분 전인 이날 오후 1시 50분경. 유성구청 비서실 관계자는 한글관련 단체 관계자에게 "청장님이 약속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을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유성구청 관계자는 이들을 구청장실이 아닌 유성구청 중회의실로 안내했다. 구청 중회의실에는 이들보다 먼저 이해당사자인 테크노 아파트 동대표 및 통장 등 15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글단체 관계자들은 "우리는 구청장과 면담을 하기 위해 왔는데 왜 이해당사자인 아파트 주민들이 대거 와 말싸움을 하게 유도하느냐"고 항의하며 구청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구청장실에서 이들을 맞은 건 당초 약속한 진 구청장이 아닌 정경자 부구청장이었다.
정 부구청장은 "청장님이 갑자기 일이 생겨 오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부구청장은 왜 아파트 동대표와 통장들과 회의실에서 만나게 했느냐는 한글단체의 항의에 "주민들이 한글단체가 오는 것을 알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스스로 온 것"이라고 답했다.
아파트 동대표와 통장들 "주민지원센터에서 참여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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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동규 유성구청장은 한글단체 관계자들과 면담 약속을 한 같은 시간 6.2지방선거 입후보안내설명회에도 참석하기로 선약을 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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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파트 동대표와 통장들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통장은 "주민지원센터(동 사무소)에서 한글단체 관계자들과 간담회가 잡혔으니 참여하라는 연락이 와 온 것"이라며 "어떻게 구청장과 면담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을 우리와 간담회를 하는 것으로 연락할 수 있느냐"며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주민지원센터로부터 참여하라는 연락을 받고 오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진 구청장은 약속 시간을 1시간이 가까이 넘기고서도 약속 장소인 청장실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같은 시간 진 구청장은 예정에 없던 유성구 노은동의 주민 행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 구청장은 또 한글단체와 만나기로 한 같은 시간(오후 2시)에 구청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유성선관위가 주최한 지방선거입후보안내설명회에 참석하기로 선약을 해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한글학회 부설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는 "구청장이 우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해놓고 사실상 자신의 선거운동을 위해 이를 어길 수 있느냐"고 따졌다. 정 부구청장 등 비서실 관계자들은 "선거운동을 하러 간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도 진 구청장의 정확한 일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함구했다.
"선거운동하기 위해 약속어겨도 돼나"
결국 한글단체 관계자들은 정 부구청장에게 미리 준비해온 밝힘 글을 전달하고 자리를 떴다.
이들은 한글관련 34개 단체의 이름으로 작성된 밝힘 글을 통해 "'테크노'란 외국어를 끈질지게 새 마을 이름에 넣으려는 것은 우리나라의 얼이고 근본인 우리말을 내팽개치는 일"이라며 "특히 행정동 이름을 외국어로 짓는 것은 큰 잘못이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외국어로 마을 이름을 짓는 일을 하지 말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지으라고 큰소리로 요구하고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유성구의회는 21일 오전 본회의를 열어 구의회상임위원회가 가결한 '관평테크노동' 조례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유성구의회(의원 8명) 자유선진당 소속 의원 3명이 "관평 테크노동'은 해당 지역의 역사성 및 고유지명을 도외시하고 외래어를 혼용하고 있어 부정합 하다"며 '관평동 주민센터'로 수정하는 조례안을 상정해 그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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