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nkc9Qn2dIyM
** 한문 사설의 풀이는 유툽 영상 더보기에 썼음
** 영상의 사진은 전남 순천시 낙안마을에서 찍음
이쁘나 마나
배홍배
"아가, 이쁘나 마나 어서 가자.. "
늙은 시아버지가 말 모퉁이를 질렀다.
그리곤 모두 말이 없었다.
들판을 내달리는 바람도 숨을 죽이고
서걱거리던 볏 잎들도 뾰족하게 섰다.
아낙의 가슴은 철렁 발등으로 흘러내리고
논둑길에 맨발이 찍는 발자국마다
여러운 그림자가 고였다.
새댁 며느리와 시아버지와 남편은
논에서 집으로 볏단을 나르고 있었다.
맨 앞엔 며느리가 볏단을 머리에 이고,
남편과 시아버지가 볏단을 지게에 지고
뒤따라 논둑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머리에 인 볏단의 푸른 잎 하나가
색시의 예쁜 볼을 간지럽히자
새댁은 수줍게 남편에게 말을 건냈다.
"애기가 들어설랑가 요새 당신이 이쁘단 말이요..!"
뒤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며느리가 다시 말했다.
"당신이 이뻐 죽겄단 말이여라..!!"
뒤 따라 온다고 생각한 이쁜 서방님은
저 만치 뒤떨어져 오고
바로 뒤엔 시아버지가 묵묵히 오고 있었다.
그날 밤 두 칸짜리 초가집 지붕 위론
새 쌀밥 같은 보름달이 떠오르고
아들 며느리의 방엔 일찍 불이 꺼졌다.
젊은 시절 고을에서 한 소리 했던 노인은
뭇 여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으나
일찍 홀로 된 뒤론
소리부터 쓸쓸하게 늙어갔다.
뚫린 창구멍으로 달빛이 흘러들어와
방안에 여인의 하얀 소복처럼 쌓인다.
노인은 잊고 있었던 가야금을 꺼낸다.
나뭇가지 같은 손으로 줄을 어루만지고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손가락 사이
사이에 꼬인 가락이 밤새 서럽게 풀렸다.
창백한 달이 진 아침 지붕 위엔 노인의
하얀 저고리가 평화롭게 올려져 있었다.
나는 노인의 생전 그를 몇 번 찾아갔다.
준비해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킨 노인은
"젊은 학상이 별 일이여..."
하며 가래 가득한 호흡 속에
끊길 듯 끊어지지 않는
질긴 소리가 뱉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젊은 귀 명창은 순수한 푸른 호흡에의 갈증과
현실의 경계로부터
핏속 깊이 아름다움의 경계를 넓혀가고 있었다.
노인의 소리는 이른바 정통의 소릿제는 아니나,
상청 위로 속목이 밀어 올리는 세성이 일품이었다.
하나의 소리 속에 수 십 개의 소리가 들어있어
각각의 헐렁함으로 음악의 단순한 아름다움에
봉사하는 소리였다.
그 단순함 속엔
대가의 향수를 불러오는 아름다운 타락이 숨겨져 있었다.
배홍배 산문집 『내 마음의 하모니카』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