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의여자 " 장녹수는 꽃미녀였나?
오늘은 조선시대 3대 저수지중의
하나였던 충남 당진 합덕방죽과 제방(도기념물70호)에
대해서 제가 역사책에 나온 글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연산군의 처였던 장녹수에 대하여
당나귀횟님들에게 한 말씀 올리고자 이렇게 컴앞에 앉았네요.
연산군은
장녹수를 너무나 사랑하고 치마폭에 푹 빠졌기에
조선시대 3대 저수지(충남 당진 합덕지, 전북 김제 벽골지, 황해도
연안의 남대지)중 2개 저수지(당진 합덕지, 연안의 남대지)를
장녹수에게 하사하는 어명을 내렸던 것입니다.
옛날부터 "농자천하지대본" 이라
했는데 농사짓는 백성들의 고통은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연산군의 방탕한 생활로 1506년
중종이 반정을 일으켜 정권을 잡게 된답니다....
장녹수의 아버지 장한필은 문과에 급제하고
성종19년에 충청도 문의 현령까지 지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크게 출세하지는 못 한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장한필의 첩이었고 신분도 천인이었답니다.
조선시대에는 부모 한쪽이 천인이면 자녀는 자동으로
천인이 되었으며, 그 자녀의 소유권은 모계를 따라
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장녹수가 제안대군(조선 여덟 번째 왕 예종의 둘째 아들)의 종과
결혼하고 제안대군의 여종 이었다는 기록이 있는것으로
보아 모친도 제안대군의 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장녹수의 젊은 시절은 불행했습니다.
가난하고 신분도 천한여인이라 몸을 팔아서 생활했고,
결혼도 여러번 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제안대군의 집 종과 결혼을 했습니다.
아들까지 낳았는데, 이 가정도 힘들었던지
다시 생활전선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바닥에서 몸을파는 수준에서
벗어나 노래와 춤을배워 정식으로 기녀 생활을 했습니다.
희대의 바람둥이(연산군)를 매혹시킨
장녹수의 매력은 어떤것이었을까요. ?
의외로 그녀는 탁월한 미인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실록에는 그녀는 그냥 중간수준의 얼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나이도 연산보다 두 세살 많았습니다.
그러나 30대에도 16세의 앳된 소녀처럼 보일 만큼
동안이었던데다 남자의 뜻에 잘 맞추고, 아양떨고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견줄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용모가 뛰어나고 가무에도 능하여
연산군의 눈에들어 입궐하여 숙원에 봉해졌습니다.
장녹수는 왕의 총애를 기화로 국사에 간여하고 재정의 궁핍을 초래 하는등 연산군 실정의 한 원인을 만들었던 것이죠.
조선같은 신분사회에서 여자의몸으로 정권을
농단할 수 있다는건 대단한 재능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지금도 정권실세들 앞에는 멋있는 여자들이 있답니다.
뉴스에서 대형사고가 나면 그때 잠깐 깜짝 놀래지만
스캔들 얘기만 나오면 오래가지요 얼마전 목사님 부부가
스와핑에 참여하여 뉴스가 되지 않았습니까.
한 마리의 미꾸라지인 셈이죠 ...
왕의남자에서 장녹수를 역을 한 강성연이
연산군을 아이 다루듯 하며 공길과
연산의 관계를 질투하는 드센여자로 나옵니다.
과연 실제의 장녹수는 어떤 여자였을까?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장녹수는 이팔청춘도 아니었고
빼어난 미인도 아닌 30여세의 농염한 여인이었으며 특히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 같이 하였다는 것을
실록에도 나옵니다.
흔히 조선시대 3대 악녀 하면
정난정, 장녹수, 장희빈을 꼽습니다.
여자는 기본 미모만 좀 갖추어져 있고
가무와 기교, 남자들 분위기만 맞추면
우리네 남자들은 거의가 꺼벅 죽지요...^*^..ㅎ
당나귀 횟님들 !
여자가 만지면 애정표현이고, 남자가 만지면 추행이니
정신 버떡 차리고 삽시다.
^*^ ^*^ ...ㅎㅎ
첫댓글 여성 횟님들 애정표현 많이 많이 해주세요..
저수지를하사한것은 첨알았네요 감사..
그러게요 하사하려면 땅을 하사하지
왜 저수지를 하사하였을까요
봉이 김선달처럼 물장사 하라고 하였는지^^
얘기 잘들었습니다 벌써 우수회원님이 되셨네요ㅎ
사랑과배려 빽이 얼마나 좋은지 가입한지 보름도 안되서 고속승진했답니다
년봉은 무보수구요.. 하지만 고맙습니다..^*^..
노래가사 장녹수만 알았었는데~~
글 감사합니다
글 끝까지 잃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잘보앗슴니다,감사함니다
잘보고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