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홀라는 오헬(천막)의 어원에서 나온 말입니다. 천막이란 단어에 여성형 어미가 붙어 '그녀의 천막'이라는 뜻이 됩니다. 오홀리바는 나의 장막이 그녀안에 있다(my tent is in her)라는 뜻입니다.
광야시대를 지나면서 장막은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임재의 상징입니다. 낮에는 구름, 밤에는 불기둥의 임재도 이스라엘 전체를 장막으로 삼으시고 하나님께서 거할 곳을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홀라와 오홀리바는 광야를 지나던 시대의 남편되어주신 하나님과 신부된 이스라엘의 밀월관계를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태평성대를 지났던 다윗-솔로몬 시대에는 형통과 평안과 축복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이후의 왕조는 내우외환을 겪습니다. 신약에서 교회의 머리되시고 신랑되신 예수님에 대한 묘사는 구약의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깊은 관계에서 유래합니다. 교회는 이스라엘이며 신랑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신부를 보살피고 축복하며 위로하고 치유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행음하는 여자로 표현됩니다. 앗수르에는 간통한 여인의 코를 베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높은 교만을 콧대가 높다라고 하는데 그것을 꺾고 수치를 안겨주는 의미입니다. 남편되신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보호와 축복과 평안을 상실합니다. 아하스는 친 앗수르 정책을, 히스기야는 친 바벨론 정책을, 시드기야는 친애굽정책을 폅니다. 왕들의 정책노선을 하나님은 자신을 배역하는 음행의 죄와 동일시하십니다.
열왕들이 강대국들과의 화친을 통해 안정을 꾀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외교활동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방패와 보호자되심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다스리는 것이 왕들의 역할이었습니다. 세상 정치가 하나님의 통치를 대체할 때 이스라엘은 그 정체성을 잃고 타락합니다. 이 모습을 하나님은 '너희가 나를 잊었다'고 하십니다.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라는 말씀도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모세의 전통을 따라 이혼서를 줘서 여인을 내보내는 것을 반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 의미는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유기적 연합을 나눌 자가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의 사랑에서 아무도 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안에서 부부간의 사랑은 생육과 번성이라는 창조질서에 부합된 결과를 창출합니다. 반면 하나님을 떠나 쾌락을 좇은 인간의 사랑은 파멸과 죽음의 낭떠러지에 자신을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부부관계는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치환되며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상의 장막을 사랑하며 세상의 힘의 논리에 지배되고 하나님을 떠난 마음이 자신의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을 택하며 신부의 정절을 버릴 때 수치와 멸망이 그의 친구가 됩니다.
오늘도 주의 사랑안에 그의 품에 안기어 주시는 사랑과 은혜를 충만히 누리며 주님만 바라보고 십자가의 사랑을 찬양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