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시는 마침내 '자연'으로 돌아왔다. 도시의 적자嫡子였던 그의 시를 두고 '자연으로 돌아왔다'고 표현한 건 출발지로 회귀했다는 뜻이 아니라 서정시의 근원으로 회귀했다는 뜻이다. 그의 시가 '도시적 서정'에서 '전통적 서정'으로 변했다. 뿐만 아니라 시의 형식도 눈에 띄게 단아해졌다. 시세계가 변하다보니 시형식도 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이런 변화를 바라보는 주위의 평가는 갈릴 수 있다. 미학적 퇴행으로 받아들이는 비판적 시각도 있을 것이고, 인간적 성숙으로 받아들이는 옹호의 시선도 있을 것이다. 결국 시를 주목해서 보느냐, 시인을 주목해서 보느냐의 차이일 테다. 전자를 두고 '애정 없는 비판'이라고 몰아붙인다면 그들은 후자를 향해 '비판 없는 애정'이라고 맞받아칠 것이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비판의 치열함보다는 옹호의 공감 쪽에 설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시란 '잘 표현된 아픔'이라고 믿으니까. 시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 없이 어찌 그 시인의 시를 평가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