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일 추석 연휴 끝날, 10월 3일 개천절, 바로 그 사이 샌드위치 휴업일인 10월 2일에
해운대 장산(萇山)에 올랐습니다.
장산은 다래(키위같은)가 많았는데, 장萇이란 글자를 씁니다.
다래를 한자로는 양도(羊桃)라고 했습니다. 자그맣고 단 것이 순한 양이 연상되었는지, 아니면 보송보송한 솜털이 잔뜩 덮인 과육의 표피를 나타냈는지 모르지만, 양도란 이름에서도 벌써 옛사람들의 눈썰미가 섬세했음을 느끼게 됩니다.
또 장萇이란 글자는 장초나무를 뜻합니다.
장초나무가 뭣인고 싶어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이렇게 설명글이 나옵니다.
“조선 초기에는 마하존(摩何尊)·백길초(百吉草)라 하였고, 장초(長草)·망초(芒草)·백막(白幕)·미초(薇草)·골미(骨美) 등이라고도 하였다. (...) 높이는 50㎝에 이르고 가지가 갈라지지 않으며 잎과 더불어 털이 밀생한다. 잎은 타원형으로 마주 나며, 길이 6∼15㎝, 너비 3∼10㎝로서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흑자색으로 5∼7월에 핀다. 뿌리는 해열작용이 있어서 폐결핵으로 조열이 있는 데나 혈열·허열에 약재로 쓰인다. 또 폐결핵으로 인한 토혈·신장염·요로감염증과 열성병 말기의 작열감 등을 해소시키는 효능이 있다. 전신부종과 임질에도 효과가 있다.”
검색어로 확인하면 관련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땅을 보고 핀 자주색 꽃이 있습니다.
미리 이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장산을 올랐다면 장초를 확인해보았을 터인데, 후기를 적으면서 장산의 이름에 대해 생각해보고 늦은 후회를 합니다.
일단 집을 나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수영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 장산역 하차, 10번 출구로 나섰습니다.
거기서 해운대도서관과 양운고등학교를 향해 15분 정도 걸었더니, 대천공원 입구가 보입니다.
대천공원은 작은 저수지를 끼고 있는데, 얼마전 여대생이 그곳에서 실족사한 곳이라 대천호가 가까워지면서 자꾸 그 사건이 기억났습니다.
대천공원 입구 횡단보도에서는 한 청년이 허깅(끌어안기)를 해달라고 여인들에게 청합니다. 껴안아주기 운동도 있어서 그런 것인가 보다 싶었는데, 나중에 그 청년을 폭포사 위쪽 체육공원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여자만 골라서 안기려고 하고, 아니면 스킨십을 하려고 했습니다. 여자들이 부담을 느꼈습니다. 게 중에 그에게 익숙한 듯 지긋한 분들이 그 청년을 안아주고 토닥여주었습니다.
대천호를 지나 폭포사라는 절을 가는 길에는 백양산 유두봉을 오를 때처럼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머리가 경쾌하였지요. 폭포사 가까이에는 3단으로 떨어지는 작은 폭포가 있었습니다. 산행길로 넓혀놓은 곳을 일부러 벗어나 폭포 앞에까지 갔습니다.
3m.
흠, 다이빙을 해도 다치지 않겠군! 하고 생각했는데,
양옆에 구조를 위한 던져주는 튜브가 배치되어 있고, 폭포에 못뛰어들도록 경고 안내판과 접근을 금하는 줄이 쳐져 있었습니다.
볼썽 사나웠습니다.
안전을 위한 시설이지만 그 투박함과 무지막지함에 놀랐습니다. 어떤 이의 사고나 어떤 이의 생, 어떤 이의 죽음에 대한 과도한 개입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노자가 생각났습니다.
물론, 인증샷을 보탰지요.
장산 역시 초행길이라 중간중간 이정표가 도움을 주긴 했는데, 필요한 곳에 적절히 배치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불편했죠.
장산의 특징은 큰 바위가 쪼개져 바위를 쏟아놓듯 흘러내린 모습이 눈에 많이 뜁니다.
이를 너덜겅(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이라 하더군요. 큰 바위의 틈에 물이 스며들고, 이것이 얼고 녹고를 반복하면서 바위를 쪼개버리지요. 그렇게 파편화된 바위들이 물이 흘러내리듯 흘러내리면서 일정한 영역을 온통 돌로 덮은 상태를 너덜겅이라고 했습니다. 너덜겅이 노출된 곳을 쭉 이어 장산의 등산코스를 만들어 두었는데, 이를 너덜길이라고 이름지어 놓았습니다.
장산을 등산하면 너렁덩을 뒷배경으로 꼭 인증샷을 찍으세요.
장산 등산의 또다른 특징은 해운대 신시가지쪽에서 접근했을 경우, 정상으로 오르는 초행자의 코스는 이정표를 따를 때 매우 우회하여 올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길이 그리 재미있지 않아요.
나는 이날, 억새가 있는 곳을 경유하여 정상을 올랐는데, 그 길에 꽤나 우회하여 아주 길었습니다. 저의 산타기는 길이 없더라도 어지간하면 아래에서 정상까지 직선코스를 선택하길 잘합니다. 나혼자는 그렇지만 동행이 있을 때는 보폭을 맞추고 대화에 추임새를 넣어야 하므로 그럴 수 없지요. 그래서 우횟길을 다 따라가 보았습니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는 사이에 어느 새, 억새가 장관인 곳에 도착했습니다.
준비해간 음식을 먹고 다시 정상을 향했습니다. 억새밭에서 정상까지는 대략 1km 남짓.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방향을 정했는데, 이곳에서부터는 곳곳에 “지뢰주의”를 알리는 표식이 많았습니다. 군사주둔지이기도 했던 장산은 만약을 대비하여 적의 기습 등을 방지하느라 산 곳곳에 지뢰를 묻어둔 모양입니다. 그리고 등산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날카로운 철조망으로 금을 그어두었습니다.
나는 매우 날카로운 그 철조망을 보면서 매우 서글퍼졌습니다. 철조망의 날카로움만큼, 동족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첨예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못찍어 두었네요. 아쉽습니다.
하여간,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은 정상입니다. 시야를 가림이 없어지는 것이죠. 내 앞에서 메뚜기 한 마리가 나타나 길잡이를 했습니다. 대략 50m이상을 길잡이를 하더니 쏙 길가 풀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늘소가 기어다니는 것이 목격되었습니다. 동행인에게 하늘소라는 것을 가르쳐 주자 신기해 했습니다. 부산에 처음 왔을 때, 강원도 태백에서 못보았던 바퀴벌레를 처음보고 장수하늘소인가 착각해서 마구 잡아서는 친구들에게 하늘소를 닮았다고 보여주자, 기겁을 하며 달아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바퀴벌레에 대한 아무런 경험이 없던 나는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바퀴벌레는 손으로 때려잡는 수준을 초월해서, 바퀴벌레를 손바닥에 놓고 갖고 놀았던 것이지요. 그런 나를 친구들은 매우 지저분한 놈으로 생각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