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에게 길을 묻다.
나는 돌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화석을 좋아한다.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있는 리비아, 튀니지 그리고 알제리아 국경에 있는 가다메스라는 작은 오아시스 도시에 갔을 때 손바닥만한 조개화석을 발견했다. 사막에서 조개가 살았다는 호기심에 이끌려 화석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아는 것만치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사막에는 삼엽충과 암모나이트 등 4억년 전후에 살았던 바다 생물은 물론 아름드리 나무화석도 사하라 사막이 있는 주변 나라에서 많이 보았다. 또 이삿짐으로 여러 점을 가져와 기증후에도 몇점이 남아 있다.
나의 가까운 친구가 운영하는 개인 광물박물관을 가보고는 나 혼자 보기 미안해서 강남문협 회원들에게 권하기 시작했다. 회장단에서 공지가 끝나고 신록의 잔치가 시작되는 6월 김대현 회장과 진길자 부회장 김순오 부회장 등 십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하는 소위 벙개팅이 이루어졌다. 박물관 <<민 자연사연구소>>에 들어서니 삼성전자 부사장을 지낸 이 지섭 소장이 반겨주었다.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에 있는 민 연구소 소장은 중고등학교 동창으로 같은 직장에서 동고동락한 가까운 친구라 소장이 직접 소장품을 설명해 주었다. 홀안은 우리 강남문협 회원들 외에는 아무도 없어서 편안했다. 2시간의 긴 설명을 하는 동안 바닥에 앉아 쉬기도 하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진귀한 제품을 구경했다.
지구의 나이는 약 45억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나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운석을 방사능 연대측정으로 추산한다고한다. 운석은 지구의 역사를 스스로 기록한 첫 사관(史官)이다. 돌은 광물로 그 성질과 모양에 따라 보석, 화석, 운석, 수석 등으로 불린다. 그 나머지는 그냥 돌이다. 물론 이런 돌의 진가를 몰라보는 사람들에게는 화석도 보석도 그냥 평범한 돌일 뿐이다.
지구에 나타난 최초의 생물은 약 38억년 전 시아노 박테리아라는 단세포 동물이다. 오스트렐리아 서부 테티스 호수 주변에서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지구의 첫 생명의 흔적으로 발견된 암석으로 지구상의 최초의 생물 화석이다. 아직도 이 생물은 30억년 이상 생명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해서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에 반대하는 근거로 삼는다. 진화하는 게 아니라 창조한다고 믿는 근거다. 전시장에 보이는 이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을 보고 있노라면 꼬물 꼬물 기어가는 지렁이 같다. 지구상의 최초의 생물과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진화론자들은 침팬지가 인간과 94.4% DNA가 일치한다고 우리 인간은 침팬지에서 분리되었다고 생각한다. 침팬지와 인간이 다른 점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침팬지는 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손을 본다고 한다. 상상력이 오늘날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침팬지같은 영장류의 가장 먼 할아버지는 마다가스카르에 있는 여우 원숭이다. 머리는 여우이고 몸은 원숭이 그리고 꼬리는 호랑이 꼬리를 닮은 이 원숭이를 보았을 때에 나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어서 일행이 다 떠나고 난뒤에 잠시 서 있었다.
전시장에는 3천 여점이 있다는 데,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 공룡화석, 맘모스 이빨이나 턱뼈같은 것이 아니다. 이들은 영국의 자연사 박물관은 물론 유명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보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양팔을 벌려 안기도 어려운 큰 자수정 덩어리로 수천개의 수정이 ‘나 이뻐“ 하고 재롱을 피우는 것 같다.
나의 마음을 압도하는 것은 4억 5천만년 전에 살았던 화석이 살아서 기어 나올 것 같이 생생한 삼엽충이다. 보통 박물관에는 돌로 다음은 듯한 두루뭉술한 삼엽충인데, 여기에는 더듬이는 물론 온 몸의 세밀한 부분까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다 모란이라는 별명이 붙은 큰 연(蓮)을 연상케하는 것으로 가로 3미터 세로 5미터 정도의 동물화석이다. 산호처럼 식물로 보이지만 소회기관이 있는 동물이다. 또 하나의 명품은 황금빛 암모나이트다. 큰 쟁반만한 암모나이트가 보는 각도에 따라 무지개빛처럼 여러 색깔을 내고 있어서 신비롭기만 하다. 내가 수집한 암모나이트는 여러개 있었는데, 다른 화석과 함께 대학 박물관에 기증하고 박물관 측에서 일주일간 전시회를 열어주었다. 작은 화석과 중복되는 화석 몇 개는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데, 그 중에 모로코에서 수집한 작은 암모나이트는 약 4억년 전 살았던 것으로 김 순오 부회장에게 퀴즈 당첨상으로 넘겨주었다. 이 박물관의 소장가치가 얼마나 되겠느냐는 퀴즈였는 데, 김 부회장 외에는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아서 자동 당첨이 되었다. 전시품을 수집하는 데, 100억 원이 넘는다는 것을 들었는데, 현재의 소장가치는 그 몇배가 될 수 있겠지만 나 같은 아마추여 수집가가 그 값을 추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진길자 부회장의 방문소회가 그 가치를 가늠케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즐겁다는 경지보다는 훨씬 위에 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흥분이 가라 않지 않아서 한참 떠들었다. 신의 경지다. 당대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지질학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순수한 마음으로는 하느님이 도우신 것 같다.”
하늘의 운석과 화석을 보고 있노라면 우주의 역사속에 들어와 잠시 수십억 년에서 수억 년 전의 삼엽충과 암모나이트와 스트로마톨라이트 등과 대화를 나눈 시간이었다. 돌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보석같은 사람들이 많다. 단지 그런 사람들을 몰라보는 혜안이 없을 뿐이다.
끝
PS) 1) 성남 광물전시장 관람한 사진을 올려면 글과 어울리리라 생각합니다.
진부회장님 사진 솜씨 좀 보여주시지요.
2) 민 자연사연구소의 소장품 중 일부는 과천에 있는 국립과학관에 전시중이다.